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5)
한국의 구한말이 그랬듯이, 베트남 역시 아니 아시아 대부분 국가들이 비참한 19세기 말을 보내고 20세기를 맞이했음을, 그 20세기 역시 아픔의 역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바오다이 황제 여름 궁전에서 다음 코스로 이동한 곳은 한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여겨 보았던 향응아 빌라(Hang Nga Guesthouse)로 일명 크레이지 하우스’(Crazy House)다. 미로 같은 공간을 헤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이 건축물은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물을 연상하게 한다. 베트남 2대 대통령 쯔엉찐의 딸인 당 비엣 응아(Dang Viet Nga)가 설계한 건축물로 건물 관람이 재밌는 책을 넘겨보는 것 같다. 동화책 속에 그려진 그림이랄까? 입구를 거쳐 들어간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게스트 하우스로 쓰는 방이 나오는데 개미, 호랑이 등 동물 이름과 코코넛, 대나무 등 식물 이름을 붙였다. 그곳은 투숙객 전용이라 일반 관광객은 관람 불가다. 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좁은 통로를 따라 이쪽저쪽으로 걷다보면 잃었던 동심이 회복되는 느낌이다. 좁은 길은 밖으로, 안으로 그야말로 구불구불 미로다. 구부러진 건축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하늘 어딘가와 닿을 것 같다. 사람의 창의력이란 것이 자본과 결합할 때 그 결과는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축물이란 생각도 들게 한다. 좋고 멋진 생각이 있어도 돈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랏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보아야 할 코스다.
달랏엔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사람들이 만든 건물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달랏 성당이다. 달랏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높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을 찾았다. 하느님을 믿는 신자로서 성당 안에서 성호를 긋고 주모경을 바칠 때 빗소리가 들린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조금 머물며 기도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빗방울에 서둘러 뒤뜰 정원을 둘러보고 나가야 했다. 유럽의 이름난 성당보다는 왜소했지만 아담한 고딕 건축물로 뒤 정원도 예쁘게 조성해 놓아 차분한 맘을 갖게 하는 곳이다.
달랏에서 나트랑으로 이동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야시장이다. 관광 중 재래시장, 야시장을 구경하는 일은 여행의 맛을 끌어올리는 즐거움이다. 쑤언흐엉 호수 길 건너 롯데리아 가게에서 안쪽으로 뚫린 길 양편으로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딸기, 아보카도, 망고, 바나나 등 과일부터, 고구마, 반짠느엉, 스어더우난, 반깐 등 먹거리도 가지가지다.
어느 나라든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유독 길가 노점상 매대에는 딸기가 많이 눈에 띈다. 달랏 주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딸기다.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어시장, 정육시장까지 둘러보고 나와 계단으로 올라갈 때였다. 후다닥! 계단에 펼쳐놓은 물건을 싸들고 이쪽저쪽으로 사람들이 도망친다. 경찰들이 노점상 단속을 나온 것이다. 나이든 아주머니 한 분이 펼쳐놓은 물건 바구니를 경찰에게 빼앗겼다. 경찰은 빼앗은 바구니를 경찰차에 싣는다. 단속과 단속을 피해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는 서민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쓰러움이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았다. 계단 위쪽 호텔 맞은편 커피숍을 지나 낮은 건물에 자리잡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베트남 전통 쌀국수를 파는 곳이다. 단골들이 많은지 현지인들이 포장으로 먹거리를 구입해 갔다. 현지인이 먹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잠시 후 닭 날개와 닭고기, 파가 놓인 살국수가 나왔다. 별도로 고수, 양배추, 양파도 딸려왔다. 한국 여행객의 식성에 많이 거론되는 고수를 손으로 잡았다. 상추를 먹듯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아내가 괜찮으냐고 묻는다. 여행지 음식을 그대로 먹기로 작정한 것은 10여 년 되었다. 김치와 고추장을 싸 가지 않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여행 매니아가 된 것이다. 노마드 인생의 바탕에는 음식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야시장 입구 롯데리아 쪽으로 내려가 쑤언흐엉 호수 길 건너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벤(Ben)을 테이크 아웃했다. 벤 커피는 에스프레스와 같이 소량이면서 맛도 그와 유사하다. 쑤언흐엉 호수 주변을 걷다가 기념사진을 몇 컷 찍었다. ‘쑤언’은 봄, ‘흐엉’은 향기란 의미를 갖고 있다. 둘레의 길이만 5킬로미터다. 다시 야시장으로 들어서며 반짠느엉 두 개를 시켰다. 모습은 피자 같다. 숯불 위에 라이스페이퍼를 올리고 그 위에 계란을 깨서 펼친 다음 대여섯 가지 재료를 올려 굽는다. 그것을 손으로 먹을 수 있도록 접어 종이에 싸준다. 사장 곳곳엔 새로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왼편으로 옷가게 상점이 줄지어 문을 연 것이다. 어둠을 쫓는 불빛 아래 옷이 반짝반짝 야시장을 들어올린다. 겨울옷이다. 달랏의 겨울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런 옷을 사서 입어야 하는 한 풍경을 보여준다. 시장을 빠져 나오며 듀리안이 보이기에 그것도 샀다. 듀리안은 열대 과일 중 왕자 대접을 받는 과일이지만 향이 구린내를 풍긴다. 다른 과일에 비해 비싼 편이다. 쉽게 먹기 힘든 열대과일이라 의도적으로 가족들이 맛볼 수 있도록 구입한 것이다. 그런데 달랏에서 나뜨랑까지 이동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듀리안 냄새가 솔솔 풍겼다. 냄새를 막기 위해 비닐로 두 번이나 에워쌌는데 말이다. 나트랑으로 가는 버스는 어둠 속을 달린다. 1,500미터 고지에서 바닷가 도시 나트랑으로 이동하며 중간에 한 번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만 이용할 수 있었다. 시각이 늦어서인지 매점 물건을 파는 사람은 없다. 아침 나뜨랑에서 버스를 탔던 코모도 호텔 앞에서 내려 차를 갈아타고 모벤픽 리조트 숙소에 도착하니 손주들이 반긴다. 호텔 10층에서 풀 빌라 리조트 308호로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텔 종업원이 옮겨 주어 팁으로 5달라 주었다고 하였다. 듀리안을 꺼내자 신기한 듯 쳐다보기만 한다. 결국 나 혼자 그것을 해결해야 했다.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안 먹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