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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2:1-10) 밍크와 잉크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오늘 함께 읽은 시편112편 말씀중심으로 <밍크와 잉크>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코트의 악동 전 미프로농구 선수가 있습니다. 데니스 로드맨이라고 하는 친구예요. 흑인인데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거나 무지개 색깔로 물들이고, 농구뿐만 아니라 연예계에 진출해서 최근에 동물 애호가들의 입장에서 광고를 하나 찍었습니다.
맨몸에 잉크로 문신을 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포스터에 함께 실린 문구가 재미있습니다.
"Think Ink, Not Mink(잉크를 생각하라, 밍크는 생각하지 마라)"라는 표제입니다. 의역하면 ‘그렇게 아름답기를 원하면 당신 몸에다 잉크로 문신을 새기시죠. 그러나 애매한 동물 밍크를 잡아서 그 털을 걸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요. 밍크코트가 롱 코트의 경우 천만 원도 호가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 번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과격한 동물 애호가가 밍크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사람에게 잉크를 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Think Ink, Not Mink’는 이렇게도 들립니다.
‘밍크 생각하지마라. 항상 밍크를 생각하려고 하면 잉크를 생각해라. 말 안 듣고 계속 밍크를 입으면 내가 잉크를 뿌릴 것이다.’라는 경고성 문구로도 들리는 거예요.
밍크코트를 사랑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동물 애호가들이 마음을 먹고 몰래 뒤따라 다니면서 뒤에서 잉크를 뿌리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마련한 밍크코트인데 지울 수도 없는 잉크를 뿌려 버린다는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입고 나가지를 못할 것이에요. 바로 이 마음을 비유적으로 하나님 경외함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니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밍크코트를 입고 나가고 싶은데 동물 애호가들이 공공연하게 선언을 했습니다.
‘밍크 입지 말아요. 만약 입으면 우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당신의 밍크코트에 잉크를 뿌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밍크코트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밍크 코트에 대한 그 애절한 안타까움 이게 바로 하나님 경외의 마음입니다.
오늘 시편 112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설명하는데 “하나님의 계명을 무지하게 기뻐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뻐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인데, 이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해서 2절부터 쭉 열거해나갑니다. 이 복은 여러분들이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늘 듣는 하나님 경외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새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 경외’가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하나님을 공손하게 섬기며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공손하게 섬기며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두려워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예를 들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을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가 보시는 앞에서 이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라고 하는데 요셉의 마음상태는 분명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밍크코트를 가진 여인에게 잉크를 뿌릴 것이라는 동물 애호가들의 협박을 받았다고 가정할 경우에 갖는 그 마음을 거울삼아 볼 때 무엇이 상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뜻인데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봐요.
유혹을 받아서 보디발의 아내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징계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렵다는 겁니까? 그러면 요셉에게는 밍크코트는 나 자신이에요.
나 자신의 인생이, 나 자신의 삶이, 나 자신의 피안의 세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짓을 했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망하게 된다면 큰일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밍크코트를 가진 여인이 잉크가 뿌려질 것을 두려워하듯이, 요셉이 아끼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일 겁니다. 결국 두려워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이 망가질까 두렵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어떤 마음이라야 진정한 하나님 경외가 되겠습니까? 요셉에게 있어서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때, 밍크 코트와 같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이 자기를 쳐다보고 계시고 그 마음이 상할까 하나님의 마음에 잉크가 뿌려질까 두려워했는데 이게 바로 하나님 경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스크래치가 갈까봐, 하나님의 마음이 상할까 하나님의 마음에 잉크가 뿌려질까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 경외지,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벌주실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 자신을 경외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큰 형님, 작은 형님 두 분이 계세요. 큰 형님 댁에도 딸이 없어요. 저도 아들 하나뿐이고, 작은 형님 댁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그 딸을 낳았을 때에 어머니가 병원에서 얼마나 서운해 하셨는지 몰라요. 당신도 아들만 셋을 낳아 길러 놓으시고는 딸을 낳았다고 서운해 하셨다고 합니다. 요즘은 저희 어머니의 고백 아닌 고백이 그 손녀 때문에 생의 기쁨을 누리며 사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째 형님의 딸 사랑은 옆에서 보기가 눈물겨워요. 정말 불면 날아갈세라 만지면 터질세라, 혹시 학교 갔다 오는 동안에 다치거나 흠이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보여요.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 딸이 두려운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 딸이 망가질까 상할까 다칠까 잘못될까 두려운 겁니다. 바로 하나님 경외란 이런 상황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이 상할까 섭섭할까 화가날까 아쉬워할까 서운해할까 무서워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마음에 상함을 드리지 않으려고 찾다보니까 길이 있어요.
어떤 길이냐? 하나님의 계명이 있더라는 겁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신 하나님의 계명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계명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밍크코트 입고 다니면 잉크 뿌리겠다는 동물 애호가들의 협박성 문구를 받은 자들이 경찰에 고소했더니 경찰들이 이야기합니다. 만약에 밍크 코트에 잉크를 뿌리는 그런 과격한 행동이 적발될 경우에 엄중 처벌하겠다고 광고를 딱 때렸어요.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내 밍크 코트를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생겼으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 아까워해서, 도저히 하나님의 마음에 잉크 뿌리고 싶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서, 내 딸처럼 귀해서 그럴 만큼 귀중한 것인데 어떻게 해야 그분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드리는가가 내 마음의 관심이었는데 하나님이 계명을 주셨어요. 이게 웬 떡입니까? 이 길로 행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드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누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내가 지옥에서 멸망할까 내가 벌 받을까 내 인생에 금이 가고 내 인생에 스크래치 갈까 그래서 하나님 섬기고 주일 성수하고 헌금 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말하지요. 누가 진짜 하나님의 마음이 밍크 코트처럼 아깝고 내 딸처럼 아까워서 그것에 금이 갈까 두려워하는 자가 있습니까?
1절에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라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즐겁습니까?
명령 하나하나가 힘들기 짝이 없고 귀찮기 짝이 없고 간섭이고 속박인데 그게 왜 그렇게 즐거워요? 이 '즐겁다'는 마음을 이해하려면 밍크 코트를 평생에 하나 구입한 여인의 마음으로 잉크를 뿌리겠다는 동물애호가들의 협박 앞에 서있는 그런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계명을 크게 기뻐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경외라는 거예요.
언젠가 사무실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점심을 먹고, 예술의 전당 쪽으로 가다가 서울 고등학교 쪽으로 턴을 해서 산책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서울 고등학교 다 갔을 때에 사무실 이전을 하기 위해서 2.5톤짜리 타이탄 트럭이 인도 위에 올라와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 세워졌는지 모르겠는데 인도 위에 서있던 새 포르쉐가 나란히 서 있다가 한 젊은이가 그 차를 빼내려고 하는데 옆에 가게에서 물건들을 놔두고 있어서 그 사이를 빠져나오기가 쉽지를 않아요. 나 같았으면 가게 아저씨한테 치워 달라고 하던지, 짐차를 조금 움직여달라고 한 다음에 뺐을 텐데, 그 사이를 무리해서 빼려고 했다가 그만 포르쉐 바퀴 뒤쪽 부분 몸체가 이 타이탄 트럭에 의해서 스크래치가 30cm정도 난거예요. 내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긴 것 같아요. 아까워서 아주 소름이 끼쳐요.
왜 아깝냐? 그 친구는 돈이 많은 집안 아들이었던 것 같아요. 별로 아까워하는 것 같지도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새 차를 타본 적이 있어요. 비싸지도 않은 차입니다. 밴쿠버에서 담임 목사로 있을 때 제가 굳이 고집해서 국산차를 샀어요. 산타페를 샀습니다. 산타페가 사실 그렇게 비싸거나 좋은 차라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머리에 이고 다니다시피 했어요. 혹시 긁힐까봐. 주차도 차들이 없는 저 구석에 합니다. 마트를 가도 사람들이 차를 안 세우는 저 구석에다 세웠어요. 옆에 차가 내리면서 문으로 찍고 그럴까봐. 그러니까 괴로워요. 나는 새 차 못 탈 팔자인가 봐요.
그런데 아니 포르쉐 3억 5천짜리 자동차를 타고 타이탄 트럭에 긁히고도 얼굴표정이 걱정하나 없더라고요. 그 정도 돼야 포르쉐 타고 다니나 봅니다. 저한테 포르쉐 줬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탈거예요. 그것도 새벽 2-3시 사이 차가 제일 없을 때. 못 타겠어요. 제가 제일 마음 편하게 탄 것은 영락 교회에 있을 때에 1년 된 헌차를 앞선 목사님이 타시던 것 물려받았을 때. 정말 교통수단으로서 달구지처럼 잘 타고 다녔어요. 지금도 중고 산타페를 하나님 은혜로 얻게 되어서 아주 잘 탑니다. 이거 뭐 스크래치 갈까봐 겁내지 않고 잘 타고 다녀요.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이 3억 5천짜리 포르쉐만큼 여러분의 마음에 귀하게 느껴집니까? 평생에 처음 얻게 된 1,000만 원짜리 밍크 코트만큼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이 귀합니까? 그 정도만 귀해도 눈곱만한 스크래치가 가도 못 견디는 게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내 판단대로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본문 1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나옵니다. 계명을 크게 즐거워해요. 미쳤어요? 답답해죽겠는데. 구속이고 속박인데. 왜 계명을 즐거워합니까? 3억 5천짜리와 같은 포르쉐 자동차에 스크래치가 절대 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막 몰고 다녀도.
그 방법이 뭐냐? 하나님의 계명대로 움직이면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절대 스크래치가 안 가고 상하거나 섭섭해 하시지 않는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마음을 포르쉐 자동차처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에요.
2-3절에 “정직한 자가 되고 후손이 강대해지며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자가 되고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고 흉악한 소문에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부와 재물이 항상 부요한 자로다.”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밍크 코트 아끼는 마음으로, 외제차에 스크래치 갈까 겁내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 사랑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나의 삶의 현장과 하늘 사이에 터널이 뚫린다는 겁니다. 터널이 뚫리고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흉악한 소식이 들려도 내 삶의 현장에는 관계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시작 된 터널이 날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때에 열 가지 재앙이 임하는데 우박이 그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그때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엄청난 재앙으로서의 우박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내리지 않았다고 그래요. 하늘과 터널이 뚫린 겁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보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는데 이 땅에서 필요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하기만 하다면 천억, 이천억, 삼천억을 부어주십니다.
제가 하는 말이 뻥입니까? 뻥이라고 믿으시려면 믿으세요. 어쨌든 삼천억, 육천억... 얼마든지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부어주실 수 있는 겁니다. 하늘과 통해있기 때문에.
어차피 재산이 육천억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쓰는 것 아니잖아요. 재산관리자들을 두고 쓰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재산 관리해 주시는 거예요. 은행에 있지 않고 하늘나라 저금통에 있습니다. 하늘과 뚫려 있으면.
어떤 사람에게 그런 복이 주어진다고요? 외제차에 스크래치 갈까 벌벌 떠는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을 좋아하고, 하나님 마음을 생각할 때에, 밍크 코트에 잉크 뿌려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에 내 행동이 잉크를 뿌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하나님 경외의 사람들에게 이런 복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계명이 달콤해질까요? 어떻게 하면 기쁜 일이 될 만큼, 외제 차에 스크래치 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마음을 걱정하게 될까요?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아끼고 좋아하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준다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에 눈곱만큼이라도 밥풀떼기 하나만큼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가 해답이 되어 줄 거예요. 이 땅에 대해서 완전히 죽는 땅의 죽음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땅의 죽음이 내 마음에서 이루어질 때 이 땅에서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하여 다 끊어지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내가 상대하는 분으로 남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밍크코트처럼 외제 자동차처럼 그분 마음에 조금이라도 스크래치가 가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십자가 복음의 힘으로 되어져간다면, 오늘 시편112편에 약속 되어진 복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들 어느 약속도 마음에 담지 마시고, 오직 십자가에서 죽는데 치중하시고 하나님을 향해서만 사는 일을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종일 하나님 마음에 잉크 뿌려질까, 하나님의 마음에 스크래치 갈까 노심초사하면서 하나님 경외하는 자의 삶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밍크와 잉크. 오늘 하루 종일 기억하면서 내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밍크 코트만큼이나 귀하게 여겨졌었는데 외제차를 산 사람의 마음, 새 차를 산 사람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귀하게 여겨져서 하나님의 마음에 스크래치가 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경외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나와 만나는 삶의 현장과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십자가를 기억함을 통하여 그 모든 관계와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나는 죽고 하나님만이 내 안에 살아 있는 복된 이진법 복음의 삶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십자가 붙들고 하나님의 눈치만 보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