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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들의 계보 II
권력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Force],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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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세뇌를 통해 믿게 된 바와는 달리, 고대 이스라엘의 13개 부족 대부분은 유태 혈통이 아니었다[non-Jewish stock].
이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진정으로 선택된 백성들이자 셈[Shem]의 후손들로서 세미트[Shemites]라 불렸다.(또는 후에 헤브루인들[Hebrews]로 불리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같은 계보 상의 아브라함[Abraham]의 손자인 헤베르[Heber]의 자손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B.C. 2141년에 태어났다. 노아[Noah], 셈[Shem], 아르팍사드[Arphaxad], 헤베르[Heber], 테라[Terah], 아브라함[Abraham], 이삭[Isaac], 야곱-이스라엘[Jacob-Israel]은 물론 야곱-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유태인이 아니었다. 유다[Judah](야곱-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하나--역주)가 타마르[Tamar]를 통해 낳은 두 아들인 자라[Zarah]와 파레즈[Pharez]도 역시 유태인이 아니었다.(파레즈는 다비드 왕[King David]의 아버지인 이새(제스)[Jesse]의 조상이었다.) 물론 다비드 왕의 아들인 나탄[Nathan]의 혈통에서 천년 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마리)[Mary]가 태어나기도 했다.
따라서 예수 또한 분명코 유태인이 아니었다.
그러니 부디 “크리스찬[Christian]”-시오니스트들, ADL(반-비방연맹 : Anti-Defamation League, 유태인 권익보호단체--역주)을 통해 세뇌된 TV 속 장관들 그리고 기독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의 광대들이 정부 연방통신위원회[FCC :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를 통해 허락된 설교단 앞에서 부르짖는 주장들과 관련하여 더 이상 혼동하지는 말기 바란다.
소위 성경에서 말하는 유태인들은 사실상 열왕기하[II Kings] 17장 24절에서 언급된 세파르비트족[the Sepharvites]으로, 이들은 B.C. 703년 아시리아[Assyria]의 전제 군주가 세파르바임[Sepharvaim]에서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Samaria]로 이주시켰던 자들로서, 이들은 당신 호세아[Hoshea]가 이끌던 10개 부족들(이 부족들은 ‘지식의 결여[lack of knowledge]’로 멸망했다.)이 살고 있던 비옥한 땅을 차지했다.
이들 세파르비트족은 무지막지했던 자들로서 같은 장 7절 뒤(열왕기하 17장 31절--역주)에 보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 “세파르비트족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불살라, 세파르바임의 신들인 아르다멜렉[Ardammeleck]과 아말렉[Amalek]에게 바쳤다.” 여기서 말하는 아말렉은 에돔[Edom]에 살았던 에소[Esau](에도미트족[the Edomites]의 창시자로, 이삭[Issac]의 아들이며, 야곱[Jacob]의 쌍둥이 형--역주)의 악마적인 손자로, 세파르비트족은 사실상 결혼이 금지되었던 가나안계 ‘매춘부’[Canaanite kedeschoth] 여자, 슈아[Shuah]의 가장 어린 아들,셀라[Shelah]의 후손들이었다. 슈아는 (창세기 38장 1절에서 12절에 따르자면) 야곱-이스라엘[Jacob-Israel]의 열두 아들 가운데 하나였던 유다[Judah]가 욕정으로 차지했던 여자였다(이들은 결혼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나만의 주의깊은 성경상의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유다와 슈아가 맺어진 건, B.C. 1873년이었다.
정식 혼인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셀라[Shelah]와 그의 두 형제, 에르[Er]와 오난[Onan]은 주님[the Lord]의 시각으로 볼 때 저주받은 존재들이었고, 그들에 앞서 에소[Esau]가 그러했듯(기억하는가?), 그들 역시 엄격한 탄핵을 받아야만 할 명백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축약된 내용만을 가지고는 전체 이야기를 알 수 없고, 종종 부적당한 부분은 삭제된 채로 남겨진 창세기의 간단한 설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톤: 여기서 잠깐만 참견할까 합니다. 당신들은 이 글에 나오는 주장들, 날짜들, 연대들, 기타 구체적인 정보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치 주의하라고 하는 부분과 관련해서 내가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나 역시 종종 그러한 계산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여기 나오는 연대 산정 등이 적어도 나의 계산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이 오해를 갖지 않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일반적으로 날짜와 같은 것은 제시하기를 거부하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할 때, 상황에 따른 즉각적인 ‘대안 작전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짓과 타협하는 진술을 요청받거나, 또는 거짓을 맞는 것이라고 증언해 달라는 요구를 가장 많이 받는 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 글의 저자처럼 공부를 많이 한 연구자나 작가, 그리고 그들의 진술을 접할 때면, 항상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언어, 변화된 정의 그리고 용어들(이름들) 등을 통해 저자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현들은 “시간”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의 “전개”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서, 적절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해를 돕는 데 있어서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날짜와 같은 “류”의 정보는 대개 틀린 것 정도로 간주하고 건너 뛰라는 뜻이 아닙니다.--날짜는 어쩌면 사건들의 전개에 있어서 정확히 들어 맞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종종 다가올 사건의 목표 시간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한 것입니다.--예를 들면, 제 3차 세계 대전의 시작 등. 꼭 나와 마찬가지로, 이 저자들은,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지는 않으며, 시간대를 최대한 좁히고, 적들과 그들의 계보와 관련된 사실들을 당신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궁극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당신들이 ‘카운트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이들 몰로크[Moloch](몰로크는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역주)를 사랑하는 세파르딕족(세파르딕 유태인)[Sephardics]은 가나안족[the Canaanites], 에도미트족[Edomites], 히타이트족[Hittites], 기타 그들 주위의 악마를 숭배하는 종족들[devil-worshipping peoples]과 습관적으로 교혼했다. 실제로 이들은 B.C. 1236년, 모세[Moses]가 이끄는 마지막 이집트 탈출(출애굽)(엑소더스)(세 번의 엑소더스가 있었다.) 당시 일정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첫번째 엑소더스는 B.C. 1453년에 일어났으며, 이 엑소더스는 유다족[the Tribe of Judah]의 절반, 그 중에서도 주로 자라[Zarah]와 그의 다섯 아들들의 후손들에 의한 것이었다.--그들 중 헤만[Heman]은 반-이집트인[half-Egyptian]으로 페니키아[Phoenicia]의 상속자가 되었다. 칼콜[Chalcol]도 반-이집트인[half-Egyptian]으로 테베[Thebes]와 아테네[Athens]의 설립자가 되었으며, 다르다[Darda] 또한 반-이집트인[half-Egyptian]으로 트로이[Troy]의 창립자가 되었다(트로이는 B.C. 1196년 그리스인들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같은 해 제리코의 벽[the walls of Jericho](제리코는 요르단강 서안의 도시며, 제리코의 벽은 B.C. 8000년경 홍수 방지용으로 건립--역주) 또한 무너졌다).
야곱-이스라엘[Jacob-Israel]이 66명의 자녀와 아내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이주한 B.C. 1853년 이래, 그 후손들은 이집트 고센 지방[the Land of Goshen]에 400년간 머물렀으나, B.C. 1453년 엑소더스와 함께 그들의 체류는 끝났다.
고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왕들은 다르다[Darda]의 후손들이었으나, 오늘날 이러한 사실은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전혀 가르쳐지지 않는다. 자라[Zarah]의 후손들은 스칼렛파[the Scarlet Branch]로 불렸고, 파레즈[Pharez]의 후손들은 브리치파[the Breach Branch]로 불렸다. 반면, 유다의 후손들 중 세파르딕족(세파르딕 유태인)[the Sephardics]은 그 수도 매우 적었고, 결코 유다 가문 전체의 5분의 1을 넘지는 않았다--세파르딕족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유다의 후손들은 유다족[Judahites]으로 불린다! 이 5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늘날 여전히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다섯번째 칼럼리스트(제 5열 사람들)(한 국가나 사회 등 주류 집단을 잠식하는 비밀 단체와 그 구성원들을 의미--역주)”와 같은 표현이 유래되었다.
pp.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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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탈출로부터 거의 정확히 300년이 지난 후대에 내려와서, 이스라엘은 B.C. 938년 솔로몬 왕[King Solomon]의 사후에, 절반은 암몬계[half-Ammonitish](암몬[Ammon]은 요르단강 동부에 위치했던 고대국가--역주) 핏줄을 가졌던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Rehoboam](그녀의 어머니는 나마[Naamah]였다.)의 잔인한 억압과 과도한 과세로 인해 나라가 분열되었다. 르호보암은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메이슨주의에 기원한 솔로몬 신전[Masonic-oriented Temple of Solomon]에서 왕권을 승계받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욕정에 따라 모든 종족의 무수히도 많은 이교도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었기에, 르호보암도 자연히 그러한 종족들의 가짜 신들(아슈타로트[Ashtaroth]나 체모시[Chemosh] 등)을 숭배했다. 그리고 흑마술[the Black Occult]에 대한 강한 끌림으로 이를 신봉함으로써, 솔로몬 왕의 선조들이 주 하나님[Lord God]과 일찍이 맺었던 신성한 서약들은 그 때 이후로 왕의 후손들에게 있어서는 무효가 되었다. [하톤: 여기서는 마치 정말로 “주 하나님”과의 계약이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당연히 그러한 계약은 결코 없었습니다! 참된 “주 하나님”은 악의적 주장자들에게 그들 수하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속되는 왕권을 건네는, 그러한 계약을 맺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 사탄주의자들[The Anti-Christ Satanists]은 당신들을 속이는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어 냅니다.--그렇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이 거짓을 참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당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감춰진 기록 속에 들어 있는 진실입니다. 진실과 사실들만을 함께 모을 때, 어떤 정연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탄은 거짓말쟁이의 왕[the King of Liars]으로, 사탄이 자유-의지가 주어진 삼차원적인 수준의 나라[third-dimensional free-will state]에서 왕권과 연결된 일련의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때, 이는 대부분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권력과 지배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결국, 한 때 단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되었다. 두 개의 부족(주로 세파르딕 유태인들[Sephardics]과 레비족[the Tribe of Levi])으로 구성된 유다 왕국은, 위압적이고 권력에 미쳐 있었으며 혼혈 출신이었던 르호보암왕에게 충성하는 나라로 남아 예루살렘에 자리잡았으며, 훨씬 더 자비롭고 현명했던 여로보암[Jeroboam]왕(여로보암은 요셉 집안의 후손으로 한 때 솔로몬 왕의 하인이었으나, 실성한 왕이 그를 죽이려 하자 이를 피해 이집트로 달아났다.)이 통치한, 열 개 부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은, 약 70마일 북쪽 사마리아[Samaria]에서 분리된 왕국으로 세워졌다. 열왕기상 12장 19절[I Kings 12:19]에는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가문(솔로몬 왕은 다윗의 아들--역주)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고 언급되어 있다. 우리가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벤자민 부족[The Tribe of Benjamin](12지파중 하나--역주)은 이 때, 남과 북, 두 개의 왕국으로 갈라진 데 비해, 앞서 이야기한대로 “유태계” 세파르비트족[“Jewish” Sepharvites]은 르호보암 왕에 충성을 다하며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태인들은 포악한 세금 징수인으로 역할했다. 열왕기상에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열왕기상 11장 39절--역주)라고 쓰여진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솔로몬 신전[the Temple of Solomon]에 관해서는 열왕기상 6장에도 나와 있듯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처음) 이집트를 떠난 지 정확히 480년 후에, 솔로몬 왕이 모리아 산[Mount Moriah]에 지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B.C. 973년 5월 1일(내 계산에 따르자면), 메이슨들의 도움[Masonic Help]과 페니키아의 루시퍼계 왕[the Luciferian King of Phoenicia]이었던 티레의 히람[Hiram of Tyre]이 제공한 건축 자재들로 시작된 일이었다. 티레는 “디오니소스 건축 형제단[the Dionysiac Fraternity of Builders]”내 주요 직위 가운데 하나였으며, 히람 왕은 당시의 그랜드 마스터들[Grand Masters]의 최고 의회에서 두번째로 높은 인물이었다. 첫번째 자리[the Number One position]는 솔로몬 왕의 것이었다.(맨리 팔머 홀[Manly Palmer Hall], 메이슨 형제단[[Masonic Orders of Fraternity], 1950년) 오컬트적인 전승에 따르자면, 솔로몬은 아스모데우스[Asmodeus] 왕의 도움도 받았는데, 아스모데우스 왕은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라틴어로는 YHWH에 해당하고, 야훼[Yahweh] 또는 여호와[Jehovah]로도 불리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통함, YHWH(JHWH 또는 IHWH)에 대해서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참조--역주)의 72 악령들의 왕으로, 그는 마술적인 샤미르 돌[Shamir stone](돌이나 쇠 등 어떠한 물질이라도 자르고 분해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졌던 물건으로 전함--역주)을 이용해 거대한 블록도 쉽게 들어올렸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아주 특별한 사건들을 기록해 둔 프리메이슨들의 연대기와 의식서[the annals and rituals of Freemasonry]에 담긴 채,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중히 보관되어 왔다. 7년 후, 그리고 아브라함 사후 정확히 1000년 후, 웅장한 신전은 마침내 완성되었고, 수순에 따라 신에게 바쳐졌다. 그렇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건물은 부정의 본거지[house of iniquity]가 되었다.
그럼, 사마리아[Samaria]와 이를 둘러싼 북이스라엘 지역에 정착했던 이스라엘의 10개 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대사에 관하여 간단히 언급된 내용들에 따르자면, 아시리아 왕들의 과세와 박해에 40년간 시달린 후, 점차 타락해버린 백성들은 B.C. 703년 아시리아의 무력 공격을 받았고,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고향으로부터 보다 북쪽과 동쪽에 살던 사람들은 자연히 성경 상의 역사 기록에서는 잊혀졌다. 아시리아인들[Assyrians](이들은 셈[Shem]의 다섯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수르[Asshur]의 후손들이었다.)의 포로로 잡혔던 이들 이스라엘계 사마리탄들[Israelite Samaritans]은 가미르[Gamir]에 정착했다. 가미르는 세속 역사학자들에 따르자면 당시 가미라[Gamira](또는 기미라[Gimira])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아시리아의 기록 문서 상에는 우라르투[Urartu]에서 온 무리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B.C. 약 700년경, 이들은 탈출하여 보다 북쪽으로 달아난 후 다시 서쪽으로 도망갔다(이들은 후에, B.C. 679년에 이르러, 투에스파[Tuespa]라는 이름의 전사의 지도를 따랐다). 흑해 연안을 따라 여행했던 이들 이스라엘족들은 키메리오이[Kimmerioi], 키메리[Cimmeri], 또는 키마리안족[Cimmarians]으로도 불렸으며, 이들 가미라(출신의) 이스라엘족들[Gamira/Israelites]의 다수는, 동쪽으로부터 메데스[Medes](메디아[Media]에 살던 고대 이란족--역주)와 페르시아인들[Persians]을 공격을 받게 되었을 때, 에살하돈 왕[King Esarhaddon](아시리아의 왕--역주)과 동맹을 맺어야만 했다. 이 무렵 그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그 중 첫번째 그룹은 후에 크리미아에서 쫓겨나 아르메니아의 반[Van] 호수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고, 그 곳에서 다시 소아시아[Asia Minor]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동하여 B.C. 645년 리디아[Lydia](오늘날의 터키)에 있는 사르디아[Sardia]에 이르렀다. 한편, 이스라엘족들의 두번째 그룹은 다시 두 개의 하위 그룹들로 나뉘어졌고, 각각 사카센[Sacasene]과 박트리아[Bactria]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그 때 이후로는 사카족[the Sakka](또는 사카에[Sacae]족)과 마사가타에족[the Massagatae](나중에 사가타에족[the Sagatae] 또는 고티에[Gauthie]족이 됨)으로 불렸다. B.C. 600년경 소아시아에서 쫓겨났던 첫번째 그룹은 흑해 서쪽 카르파티안 지방[the Carpathian regions]에 정착했고(에스드라스 하 13장 40절[II Esdras 13:40]), 이후아르-사레트 민족[People of Ar-Sareth]으로 불렸다. 10년 뒤 이들 키마리안족들[Cimmarians]은 야베틱 시티안족들[Japhetic Scythians]과 충돌하게 되었다. 야베틱 시티안족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종족으로 보다 규모가 크고 사나웠으며, 이들에게 쫓겨난 키마리안족들은 보다 북서쪽으로 밀려났고, 다시 세 그룹으로 쪼개졌다. 이들 하위 그룹들은 오늘날 셀트족[Celts], 골족[Gauls], 그리고 킴브리족[Cimbri](고대 독일 민족의 하나--역주)으로 불린다. 셀트족과 골족은 B.C. 390년 로마를 침략하고 점령지를 차지하여, B.C. 150년경에는 갈라시아[Galacia](초기 프랑스) 지방에 정착했다. 반면, 킴브리족은 B.C. 102년에서 101년 사이, 자신들의 사활을 건 전투에서 마리우스 장군[General Marius]이 이끄는 로마군에 패배했다. A.D. 2세기 무렵, 킴브리족은 로마의 적들에게는 튜튼족[the Teutons]으로 알려졌다. 튜튼[Teuton]이라는 이름은 A.D. 9년, 오늘날 북서 독일 베스트팔리아주[Westphalia, NW Germany]에 있는 튜토부르크 숲 전투[the Battle of Teutoburg Forest]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이 곳에서 로마 장군이자 총독이었던 바루스[Varus]와 그가 이끌었던 3개 군단 15,000명의 병력은 아르미니우스[Arminius]와 그가 이끌던 독일계 킴브리족에 패배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근친 종족이었던 마사게테족[the Massagetae] 또는 게테족[Getae](이후 이들은 고트족[the Goths]으로 불렸는데, ‘고트’란 “고귀하게 태어난[nobly born]”이라는 뜻이었다.)과 합세하여 싸웠다. 게테족(고트족)은 고트란트[Gothland](스웨덴) 지방에 정착했었지만, 이후 동부계와 서부계로 나뉘어졌다. 튜튼족은 인구가 점차 증가하고 내부적인 라이벌 의식이 커져감에 따라, 다시 보다 작은 소그룹들로 분열되어 갔으며, 그들 가운데는, 고트족[Goths](오스트로고트족[Ostrogoths]과 비시고트족[Visigoths]), 반달족[Vandals], 부르군디안족[Burgundians], 프랑크족[Franks], 알레마니족[Alemanni], 앵글족[Angles], 색슨족[Saxons], 유트족[Jutes], 쿠아디족[Quadi], 마르코마니족[Marcomanni], 샤티족[Chatti], 바타비족[Batavi], 수에비족[Suebi] 등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상한 이름들을 가진 다양한 종족들이 있었다. 이들 이스라엘족/킴브리족/튜튼족은 모두 집단적으로 아리안족[Arians]으로 불렸으며, 이들은 야베틱 아리안족[JapheticAryans]과는 정반대되는 종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발음으로 인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 두 종족(두가지 다른 아리안족들)을 혼동하게 되었다. 그럼 이제 다시 유태인들과 그들의 역사로 되돌아 가보자.
비록 다음 설명은 훨씬 나중에 킹 제임스 판[the King James Version] 성경에서는 삭제된 내용이지만, 셀라[Shelah](유다와 슈아간의 아들--역주)의 세파르딕계 후손들은 여러 세기가 지난 후, 점차 문제를 일으키고 피에 굶주린 율법학자들[Scribes]과 바리새인들[Pharisees]이 되어 갔다. 이들은 그랜드 산헤드린[Grand Sanhedrin](유태인들의 집회, ‘미국 언론 통제사’ 참조--역주)의 구성원들로서, 약 24세대가 지난 후,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Jesus, the Christ]를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도 했다. 율법에 기반한 유태주의[Rabbinical Judaism]의 창설자는아키바 벤 요셉[Akiba Ben Joseph]이었다. 악마를 숭배했던 이들 종족 가운데 다수는 그들을 통치했던 헤롯 왕[King Herod]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에도미트족[Edomites]과 가나안족[Canaanites]의 피가 섞여 있었는데, 수 세기에 걸친 이들 민족들간의 교혼에 따른 것이었다. 조셉 카스타인[Josef Kastein]의 책, ‘유태인들의 역사와 운명[History and Destiny of the Jews]’에 보면, 헤롯왕은 “짐승적이고, 비극적인 혼혈아[a bestial and tragic Half-caste]”로 묘사되어 있다. 자신들의 선조들을 뒤따르는 직접적인 결과로서, 세파르딕 “유태인들”[Sephardic “jews”]은, 또는 최소한 그들 중 대다수는 B.C. 586년에서 B.C. 538년에 이르기까지, 즉 바빌론 유폐(B.C. 598년 바빌론의 공격으로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유태인들 대다수가 바빌론에 잡혀 갔으나, B.C. 538년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론이 무너진 후 고국으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이 억류기간을 바빌론의 유폐 시기로 지칭--역주) 초기부터 바빌론 유폐가 끝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신성하지 못한 탈무드[unholy Talmud]’에 의해 점차 타락해 갔으며,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저주와 비난의 대상”이 되어 쫓겨나는 운명이 되었다. 이들은 예수 사난다[Jesus SANANDA][하톤: 보십시오, 독자들이여. ‘사난다’는 실제로 존재하는 표현입니다!]가 예로 드는 우화 속에서 “악마의 열매[evil figs]”라든지, 또는 “독사의 자손들[a generation of vipers]”이라 언급되는,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종종 등장하는 종족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뱀 민족[Snake People], 또는 뱀 종족[Serpent Race]이자, 사탄의 시나고그[the Synagogue of Satan]의 집회자들이었다! 예수는 분명히 자신이 누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를 잘 알았던 것이다. 예수는 신성한 기원을 가진 헤브루-이스라엘족[a Hebrew-Israelite]으로 태어났으며, “이새(제스)의 혈통[stem of Jesse]”이었다. 예수는, 킹 제임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변경, 왜곡된 이래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게 된 바와는 달리, 너무나도 분명코 유태인 만큼은 아니었다. 나아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열 한 명은 벤자민 부족[tribe ofBenjamin]으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유태인이 아니었다. 오직 예수를 배반한 자, 돈에 눈이 멀어 그러한 짓을 행한 광신자 한 명만이 유태인이었다. 또한 예수가 이 무렵, 이 세상에 온 것은 이 특이한 에도미트-세파르딕족들[Edomite-Sephardics]에게 무언가를 확신시켜 주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그 당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 먼 곳에까지 흩어져 있던 자들, 하나님이 약속한 백성들이자, “이스라엘 가문의 잃어버린 양떼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왔었다. 따라서, 유대-기독교주의[Judeo-Christianity]라는 신화는 하나의 모순[oxymoron]이자, 가장 터무니없고, 불경스러운 표현에 해당되는 것이다.
A.D. 70년, 티투스[Titus]가 이끄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과 완전히 타락해 버린 솔로몬/헤롯 신전[Temple of Solomon/Herod]을 파괴(정확히 40년 전 예수가 예언한 대로)하고 난 후, 바리새 세파르딕족[Pharisaic Sephardics] 그리고 에도미트족[Edomites]은, 당시 ‘신성하지 못한 땅’으로 전락해 버린 곳에서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말하자면, 디아스포라[Diaspora](유태인들의 이산--역주)가 뒤따랐던 것이다. 그리고 역사 기록에 따르자면, 이 치명상을 입은 유태인 생존자들은 모든 방향을 향해 달아났다. : 이집트로 간 유태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들었고, 그 수가 증가하여 이내 십만명에 달했으며, 그들의 랍비들은 ‘악마적인 아문 사제단[evil Amun Priesthood]’(카르낙 신전[Temple of Karnak]에서 악마적인 바포멧 염소[demonic Goat of Baphomet]를 숭배했던 자들)과 어울렸다. ; 바빌론[Babylon]으로 간 유태인들은 4세기 후 탈무드를 완성(A.D. 499년 12월 2일)시켰으며, 이후 적그리스도적인 탈무디즘[Antichrist Talmudism]이 중세 시대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이끌었다. ; 로마로 간 유태인들은 이내 노예 무역과 환전업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법정을 세웠다.--이는 결국 A.D. 476년 로마 제국의 부패와 멸망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기븐[Gibbon]이 쓴 7권으로 된 역사서(로마제국 흥망사--역주)를 읽어 보라.) ; 북아프리카로 간 유태인들은, A.D. 711년 타리크[Tarik] 장군이 이끄는 무어인들[the Moors]이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을 침공[the Moorish invasion]하도록 선동하고, 그 발판을 놓았다. 이후 스페인은 완전한 혼혈 국가가 되었다.(이에 따른 결과로, 이베리아 반도[the Iberian Peninsula]를 중심으로 한 포르투갈과 프랑스에서도 혼혈이 이루어졌다.) ; 터키와 그리스로 간 유태인들은, 동 터키 지방에 살고 있던 아나톨리안족[the Anatolians](야벳[Japheth]의 후손들로, 손자 토가르마[Togarmah]와 토가르마의 아들 위구르[Uigur]의 후손들)과 교혼하고, 서 터키 지방에 살고 있는 로얄 시트족[Royal Scyths](토가르마의 아들 바실리[Basilli]의 후손들)과도 교혼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티아[Scythia](사르마티아[Sarmatia])로부터 온 야만적인 기마 부족을 묘사하기를, 이방인들을 잡아 먹고, 그 해골을 물컵으로 사용하는 자들이라고 기록했다.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 항구 도시에서는 그 무렵, 고대 세계의 기록들이 담긴 70만권이 넘는 문서들이 보관된 웅장한 도서관이 있었는데(전하는 바에 따르면, A.D. 391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us]에 의해 파괴되었다), 시온의 연장자들[the Elders of Zion]은 자신들의 새로운 세파르딕 문화[Sephardic culture]를 이곳에 전파하려 했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운동[the Alexandrian Movement] 또는 유토피아 운동[Utopian Movement]으로 불렸던 것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노예제[slavery]를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전제적 문화[despotic culture]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티투스[Titus]에 의한 ‘예루살렘 몰락의 날[the Ninth of Ab]’, 예루살렘으로부터, 실제로는 모든팔레스타인 지방으로부터, 유태인들이 강제로 쫓겨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금, 은, 보화 등 그간 축적해 온 부를 함께 가지고 갔다. ; 말하자면 이들 유태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완전히 파산한 채로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때는 물론 이거니와, 그 때 이후로도 단 한 번도, 결코 “가난한 유태인들”이었던 적은 없었다. 실제로 유태계 저자인 아서 쾨스틀러[Arthur Koestler]에 따르자면, “자신들의 배타적인 종교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함께 서로 붙어 있도록 만들었고, 자신들만의 예배 장소, 학교, 거주지, 게토[ghettoes](원래는 ‘자기-구속적[self-imposed]’이라는 의미)를 가진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세우게 했는데, 어떠한 도시나 지방이든 간에 유태인들이 정착하는 곳에서는 항상 그러했다.”
유대 바리새이즘[Judaic Pharisaism]에서 말하는 “하나의 신[one God]”은, 엘리자베스 딜링[Elizabeth Dilling]이 너무나도 잘 정리하고 설명한 논문, ‘기독교에 대한 음모[The Plot Against Christianity](1963년)’에도 나와 있듯이, “엔 소프[En Sof]”(‘무한[infinite]’이라는 의미로 유태인들이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역주)로 알려져 있다.--이는 이사야 14장 12-13절[Isaiah 14:12-13]에 나오는 표현으로, 다신론적 이교신앙[pantheistic paganism]에서는 ‘알 수 없는 신[the unknowable god]’을 의미한다. 유태인들은 “메타트론[Metatron]”이 실제로 세상을 통치한다고 믿고 있으며, 메타트론은 탈무드[Talmud]와 카발라[Kaballah]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demiurge]”(플라톤 철학에서 조물주를 가리키는 표현--역주)로서, 유태인들이 주님이자 마스터로 섬기는 “YHVH”(‘기록되지 않은 역사’ 참조--역주)에 해당하는 것이다. 유태 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에 따르면, 메타트론은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스[Mithras](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이다.)와 동일한 존재이다. YHVH는 카발리스트들에게는 “테트라그라마톤”으로도 알려져 있는 대상으로, 이 표현은 (헤브루) 문자의 72가지 결합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으며, 프리메이슨들[Freemasons]은 “솀함포레시[Shemhamforesh]”라고 부르는 존재이다. 이는 자연의 법칙, 힘, 에너지를 대표한다. 나아가, 많은 저작을 남기 러시아 작가 헬레나 P. 블라바트스키 여사[Madam Helena P. Blavatsky]가 1888년에 쓴 오컬트의 고전인 ‘비밀 교리[The Secret Doctrine]’에서 밝힌 바에 따르자면, YHVH 또는 예호바(여호와)[Jehovah]는 비전(秘傳)적인 의미로는, “이브를 유혹한 뱀 또는 용”을 의미하며, 달리 말해--사탄[SATAN]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흥미로운 자료들을 통해, 예수가 분명코 자신이 언급하는 대상에 대해서 알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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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