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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도 비판
1. 도란 무엇인가?
도는 형이상학의 원리이다. 그 말은 물론 한자에서 온 것이다. 도라는 말이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처음 쓰인 것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이후 이 도라는 말은 동양의 문화권에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사의 법칙을 가리키는 말로 굳었다. 그리고 이것은 불교가 들어오고 성리학이 성립하면서 자연현상과 인사의 배후에 서려있는 어떤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것처럼 막연하고 넓은 범주를 가리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 갖다 붙여도 다 통하는 말로 변질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광범위한 쓰임이 정작 생각의 정밀한 체계를 전개시키는 데는 아주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생각의 법칙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성리학자들은 도라는 말을 버리고 이와 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송나라의 장재, 주돈이를 거쳐 정이 정호 두 형제에 와서는 없으면 안 될 중요한 개념으로 정착하고 그 이후의 논의에 가장 중요한 말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벌어진 사칠논쟁과, 그 뒤의 이간과 한원진 사이에서 벌어진 인물성동이논쟁으로, 어찌 보면 성리학 논쟁의 대단원을 내리는 상황에 이른다. 물론 이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며, 각기 조선 중기와 후기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도라는 말이 가진 심오한 내용에 관한 논쟁이 조선에서 벌어졌다.
2. 도에 대한 태도의 차이
따라서 한국의 철학사에서 도란 우주와 자연과 인사의 비밀을 밝히는 원리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것을 이와 기라는 개념으로 분화시켜서 도 논쟁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따라서 한국에서 '도'란, 철학사의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일반인들의 도 관념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도를 닦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도인', '도사'라고 하면,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함은 물론, 세상 만사를 두루 꿰뚫는 능력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러한 문화와 전통의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의 문화에서 도란 이 세계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원리이며, 그러한 원리를 밝히는 데 온 삶을 던진 사람을 도인, 도사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원리를 터득하는 것을 득도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도와 도사란, 성리학의 근본 이념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을 말하거나, 아니면 자연의 섭리를 완벽하게 실천하여 인간이 지닌 초능력까지도 발휘할 수 있는 개념이나 그러한 사람을 뜻한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성리학으로 마음을 닦던 선비들이나 산 속에서 목숨을 걸고 면벽대좌 하던 중들, 그리고 역시 산 속에서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던 일군의 사람들을 뜻한다.
이 세 부류 중에서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도의 관념에 가장 부합한 인물들은 성리학자들이다. 나머지 두 부류는 세상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까닭에 소설이나 전설 속에 등장할 뿐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접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런 부류는 막연한 상상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도와 도인이란 성리학의 개념과 그것을 조금 확대한 정도의 영역에 그친다. 예를 들여 평양의 화담 서경덕이 신비한 측면을 많이 갖춘 것으로 왕왕 설화에 등장하는데, 화담은 성리학자의 한 분파였다. 그것이 조선 성리학의 정통 노선인 주리론에서 약간 벗어났기 때문에 신비한 인물로 인구에 회자되었을 뿐이다. 이것은 경직화한 주리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심리와 그 대안에 대한 기대심리가 만든 상승효과의 결과이다.
이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에서 도란 인생과 우주의 섭리를 밝히는 원리이며 도인이란 그러한 최상의 형이상학에 생애를 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적어도 도인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거대한 사상을 펴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도란 바로 그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3.일본의 도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조선 5백년 동안 성리학의 개념으로 세계를 통치했고 그것이 적용된 나라지만, 일본은 성리학보다 먼저 들어간 선불교의 전통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 나라이다. 따라서 일본의 도는 다분히 이 선불교의 개념과 맞물려있다.
선불교는 개인의 구원을 우선한다. 그 다음에 세상을 구하던가 말던가 한다.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의 수련에서 모든 것의 출발점을 삼는다. 따라서 개인의 득도가 이루어져도 세상으로 만행을 나서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전통과 만나게 되고, 실천 행각 역시 그 사회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일본 선불교의 주종을 이루는 임제종과 조선의 불교인 조계종간의 묘한 차이를 만든다. 임제종과 조계종은 모두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계파이다.
일본은 오랜 세월 동안 칼잡이들이 봉건세계의 지배자 노릇을 한 세계이다. 따라서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무사시대의 전략 전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우주와 자연의 이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거기서 어떤 궁극의 원리를 찾아내려는 조선의 상황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이 왕권과 중앙 권력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관념철학으로 나아갔다면 일본은 자신과 자신의 계파를 지키는 현실철학으로 나아간다. 일본 불교의 대처승 제도와 대물림 관습은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정신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부연되는 법이다. 전국 각지에 칼을 든 무사들이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군웅할거 한 상태에서 하루가 다르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모든 도는 그러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이때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로서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과 그렇지 못한 채 선불교만이 그들의 무상한 삶을 달래주는 유일한 사상으로 존재하던 사회에서는 그 해결 방법이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본 무사들이 검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이 선불교를 통해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한 방향을 강하게 암시한다. 선불교의 깨달음이 개인의 구원이지만, 그 구원이 정신과 몸의 일치를 통한 해탈이라면, 그래서 그 해탈이 현실의 문제를 구원할 한 방법이 된다면 칼의 논리와 선불교 깨달음의 논리는 동일 선상에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때 칼과 화두는 동일한 것이 된다. 그리고 선불교의 수행법에는 이 양자가 만날 수 있는 한 지점이 있다. 정신이 집중된 상태의 무한한 가능성이 그것이다. 일정한 단계에 이른 중들이 이따금 초능력을 체험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유추된 것이 일본의 도이다. 일본의 도는 수련을 통해서 자신을 칼 속에 일치시켜서 상대의 칼이 어느 방향에선 날아들든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경지, 즉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는 선정삼매의 선불교와 다를 것이 없다. 결국 일본의 도는 칼잡이들이 추구한 정신의 경향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의 문제 때문에 조선에서 가장 큰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던 <도>는 선정삼매의 경지에 든 상태와 거기에 이르는 방법상의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도는 자연의 이법이라는 원칙은 조선과 일본에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게 된다. 조선에서 도인이란 세계를 구원할 사상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정신과 사물의 생리에 투철하여 거기에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
4. 예와 도
따라서 일본인들이 강조하는 궁도의 뜻 또한 자명해진다. 궁도인이란 세계를 구원할 만한 사상을 활에서 찾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활이라는 사물의 생리에 투철하여 거기에 통달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검도, 유도, 역도가 성립하고 나아가 이들의 상위개념인 무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가 우주와 인사의 이법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궁도라고 한다면 활을 통해서 우주의 이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상으로 만들어 세상을 구원한다는 뜻이 되니, 어찌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일본의 도가 틀리거나 잘못 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에 대한 인식 태도와 문화의 전통이 달라서 그런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활쏘기를 그저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활을 매개로 혼연일치가 되는 상태를 활쏘기의 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지향하는 방법상의 문제를 궁도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절차와 순서가 있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궁도라고 하지 않는다. 현재의 우리나라식 활쏘기는 일본인의 눈에는 난장판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개념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예(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기술이 극한 상태에 이르러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예술로 표현한다. 축구공이 아주 멋지게 골문을 뚫으면 '예술 같다!'고 감탄한다. 이런 감탄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다 넣는 방식으로 넣으면 박수를 칠지언정 '예술 같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우리가 예술 같다는 표현을 쓰는 장면은 가장 멋진 경우이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도'라는 말을 붙여서 표현하고자 하는 그 상태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藝)로 인식했고, 그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활쏘기도 사예(射藝)라고 했고, 궁예(弓藝)라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차례(茶禮), 서예(書藝), 무예(武藝)라고 했다. 일본말인 다도(茶道), 서도(書道), 무도(武道)라는 말을 보면 이들의 발상과 우리의 발상이 한 곳에서 정확히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붓글씨를 서예라고 하는 것은 도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도라는 우리말의 쓰임이 붓글씨와는 안 어울리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도는 우주의 이법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붓글씨 같은 작은 재주에 붙이는 것이 아니다. 붓글씨 안에 우주의 이법이 들어있다는 믿음은 추사의 붓글씨에 관한 견해를 보면 잘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도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도라는 말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붓글씨에 붙이는 도가 정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에서 도는 그런 데 붙이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와 도의 차이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이다. 단순히 편해서 쓰고 좋아서 쓰고 할 차이가 아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고, 예라고 한다는 것은 한국인의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의 문화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본에서 수입된 문화라면 도라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우리나라에 무술이라고는 태껸과 활쏘기 밖에 없었으니, 가라데를 도입하여 태권도라고 하고, 유도를 도입하여 유도라고 하고, 검도를 도입하여 검도라 한들 그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제를 수입한 것도 아닌, 우리의 활쏘기를 하면서 말은 일본말인 궁도라고 한다면 이 말은 그대로 일본의 활쏘기 개념으로 우리 활을 보겠다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하려는 의도를 밝힌 다음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자가 갖추어야 할 성실성의 기본항목일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남의 글을 도입해서 우리의 본래 모습에 잘 맞지도 않는 가면을 들씌우려는 의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5. 근대의 활쏘기와 궁도
우리의 활쏘기에 '궁도'라는 왜색 짙은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932년의 일이다. 즉 3.1운동으로 민족의식이 한창 고양된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활쏘기는 부활하였고, 1928년에는 황학정 사두 성문영의 주도로 <조선궁술연구회>가 출범하여 각종 '궁술대회'를 주관하기에 이른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각지에서 벌어진 대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1932년에 이 모임이 <조선궁도회>로 이름을 바꾼다. 그 전후 사정을 당사자인 성문영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소화 삼 년에 나와 몇몇 동지가 발기하야 조선궁술연구회(朝鮮弓術硏究會)라는 것을 조직하였는데 소화 칠 년에 그 명칭을 변경하야 조선궁도회(朝鮮弓道會)라 하고 매년 춘추로 궁술대회를 열어 궁도를 장려하고 있지요』(조선일보 1938년 1월 1일 대담)
궁술대회와 궁도를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궁도는 <활쏘기>의 개념과 일치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때의 궁도가 지금 말하는 그런 개념의 일본 궁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시대에 활자매체에서 간간이 궁도라는 말이 쓰이지만, 그것은 일본말 궁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 궁사도(弓士道)의 준말로 쓰였다. 이것은 같은 신문의 칼럼에 나오는 설명이고 글쓴이는 정언산인(正言散人)이다. 물론 이 말이 일본말 '궁도'의 영향임은 분명하다. 일본의 활쏘기를 가리키는 말이 들어와 쓰이자, 그 말의 기원이 우리 쪽에서 흘러나간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 뜻이다. 따라서 '조선궁도회'의 <궁도>는 비록 일본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선택과 의미로 쓴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말의 겉모양은 일본을 닮지만, 그 내용까지 닮을 수는 없다는 강한 자존심이 들어있는 말이다.
또 궁도회로 개칭한 이면에는 당시의 불가피한 사정도 있다. 1932년이면 일본의 지배력이 공고해져서 독립운동이 점차 쇠퇴하던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이 대담이 있던 1938년쯤에 이르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미 일본군국주의는 동아시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스포츠 역시 군국주의 사회체제의 한 부문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고, 그것의 주도권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의 군부에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활쏘기'나 '궁술'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하의 체육단체에 가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1932년의 조선궁도회 개칭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름을 조선궁도회로 바꾼 상태에서 대회 이름은 여전히 '궁술'대회라고 하는 것과, 궁도를 굳이 '궁사도'의 준말로 받아들이려는 일련의 태도는 이 같은 점을 분명히 뒷받침해준다.
6. 해방 후의 활쏘기
해방 후의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활쏘기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 여파는 1950년의 한국전쟁 때문에 지속된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전쟁 중에도 몰래 활을 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195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다시 활쏘기가 부활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대회가 처음 열린 것은 1959년의 중앙일보사 주최 대회였다. 이 대회의 정식 이름은 '제1회 전국 남녀 활쏘기 대회'였다. 해방과 함께 일본말 '궁도'가 말끔히 청산된 것이다. 그리고 전국체전에서도 역시 '활쏘기 대회'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모임의 이름은 '대한궁도협회'로, '조선궁도협회'의 앞글자만 바꾼 형태였다. 모임 이름에서만큼은 일제 잔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후, 그 관행이 우리 활을 일본 활에 예속시키는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문을 즐겨 쓰는 당시의 풍속 때문에 지방에서는 여전히 궁술대회라고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면서부터 서서히 궁도대회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이후에는 불과 30년만에 완전히 도인들의 활쏘기 판이 돼버렸다. 궁도라는 말의 마술에 홀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홀림은 한국의 활쏘기 5천년 정신을 한 순간에 일본에 팔아버린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후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기묘한 침묵의 역사가 지속되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화근으로 남아 미래에 큰 종기로 자라는 법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활이 세계를 향해 뻗어갈수록 <궁도>는 우리 활의 미래를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 화근으로 작용할 것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로 하여 한국의 활쏘기는 아직도 식민지 시대이다.
7. 궁도의 대안, 궁술!
현재 한국의 활쏘기는 일본 활 궁도에 오염되었다. 활쏘기라는 우리 본래의 말은 온깍지궁사회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을뿐더러 일년에 수백 차례 열리는 대회 이름도 궁도로 완전히 대체된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단급제도까지 가장 천박한 방법으로 도입되어 모두들 등급별 도사가 된 기묘한 자부심이 한량들의 마음을 점령해 버렸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 전부터 쓰여오던 궁술이라는 말도 죽은 말이 돼 버렸다. 언어의 주인이 쓰지 않으면 언어는 죽는다. 활쏘기 일반을 가리키는 말은 아직 활쏘기로 살아있지만, 불과 40년 전까지 수 천 년을 쓰던 활쏘기의 용어인 궁술은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앞으로 다시 활용될 기미도 없다.
궁술이란 말이 이렇게 된 데는 그 말의 적실성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 한자의 주인은 지배층이다. 활쏘기는 만백성의 언어였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들의 언어는 한자였다. 그래서 활쏘기라는 말을 쓰지 않고 궁술이라는 말을 선택하여 쓴 것이다. 이 궁술은 활쏘기보다 내포가 적다. 그래서 마치 조금 작은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용도가 생겼다. 우리의 활쏘기는 양생술의 단계까지 발전한 상태이다. 그래서 호흡과 마음의 작용을 잘 통제하면 선가에서 꿈꾼 양생술의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 따라서 이미 사멸한 궁술이라는 말을 '활을 통한 양생술'이라는 뜻으로 쓴다면 완벽하게 제 뜻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양생술과 관련된 활쏘기를 가리키는 개념을 기존의 궁술이라는 말에 덧붙여서 이 자리에서 쓰고자 한다. 궁술은 활쏘기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에 덧붙여 양생술의 일환으로 쓰이는 활쏘기라는 뜻까지 첨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궁도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우리 활을 살리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활로 몸과 마음의 주파수를 우주에 맞추어 장생을 꾀하는 양생술이 궁술이다. 활이 스포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라 술로 가는 이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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