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15〉이 시대, 승가의 진정한 스승됨은?
도량 넓은 벽안의 선사들이 제자들 견처 열어
선지식 찾는 승려들이 당내 禪을 최고로
기성세대와 학인들 간 진정한 화합 필요
근자에는 멘토(Mentor)라는 말이 유행하고,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멘토에 대해 생각한다. 불교에 선지식이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불교 관련 기사나 글에서까지 멘토라는 단어가 자주 부각되어 아쉽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지식의 존재를 강조하며, 시나브르 옷에 이슬이 스며들 듯 뛰어난 이를 가까이 함으로서 정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강의를 하면서 학인들과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하는지에 늘 생각해본다.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지혜와 덕을 마음에 두지만, 늘 이기적인 감정이 앞서고 마음만큼 쉽지 않다.
중국 당나라 8~10세기는 선(禪)의 황금시대였다. 당대에는 수행을 갈망하는 출가자도 많았지만 벽안(碧眼)의 스승도 많았다. 당시 벽안의 스승이란 바로 마조.석두희천.경산법흠.남양혜충 등이다. 이들은 서로를 탁마하는 도반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제자만을 교육하는 편협이 아닌 인연 있는 제자들을 서로 지도해주었다. 설령 자신에게 찾아온 제자일지라도 자신과 연이 맞지 않으면 다른 선사에게 제자를 보내었다.
오설영묵(五洩靈)은 과거시험 보러 가는 도중에 선불장(選佛場, 부처를 뽑는 도량)이라는 말을 듣고 마조에게 출가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도를 얻지 못했다. 결국 오설은 자신의 깨달음이 더딘 것을 스승에게 투정부리자, 마조가 오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출가한 것은 내가 허락했지만, 너의 깨달음은 내가 어찌해 줄 수 없다. 이곳에서 700리 떨어진 남악산의 석두 선사를 찾아가 보아라. 너의 깨달음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게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6∼824)도 선불장이라는 말을 듣고 마조를 처음 찾아왔는데, 마조는 천연에게 “자네의 스승은 석두로군. 그곳으로 가서 출가하게”라며 석두에게 보냈다.
한편 석두희천 문하의 법맥인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은 스승 문하에 있어도 공부가 매우 더디었다. 강사 출신이었던 약산에게 스승 석두는 늘 거대한 스승이었다. 이런 유엄을 보면서 스승 석두가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나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것 같네. 마조에게 가면, 네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네. 마조에게 한번 가보아라.”
또 물구나무 선채로 열반한 등은봉(鄧隱峯)은 마조의 법맥을 이은 제자이다. 괴짜배기에다 자유로움을 좋아했던 등은봉은 아무리 공부해도 남들만큼 쉽지 않았다. 등은봉은 마조와 석두 문하를 수차례 오가다 결국 마조에게서 깨달음을 얻은 승려이다.
이렇게 마조는 당신보다 석두의 교육방편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 제자들을 석두에게 보내었고, 석두 또한 제자를 개오(開悟)시킬 만한 능력이 마조가 뛰어나다고 판단해 제자를 마조에게 보냈다. 한편 마조는 남양혜충이나 우두종의 경산법흠에게 제자들을 보내면, 선사들은 제자들의 견처를 열어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도량 넓은 벽안의 선사들이 있었고, 선지식을 찾아 발초첨풍(撥草瞻風)하는 승려들이 있었기에 당대의 선은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것이리라.
근래 불교계는 벽안의 스승이 부재하다고 개탄한다. 간화선 본질 면에서 스승과 제자간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정인데다 위빠사나 수행 풍토가 보편화된 요즈음이다. 이런 때, 승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오롯이 교육만을 아이템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승가(samgha)라는 말이 ‘화합’이라는 뜻을 내포하듯 기성세대와 학인들 간의 진정한 화합이 필요한 시대이다. 기성세대 스님들은 승가 발전을 위해 내 제자만이 아닌 학인들의 진정한 교육자가 되어야 함이요, 그 반대로 젊은 세대의 승려들 또한 자신보다 선배 승려는 스승으로 섬기는 풍토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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