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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 하나님이 떠난 사람 (삼상 18:12-16, 28-30) /이영무목사
할렐루야!
오늘 3부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이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에 분들하고 한 번 웃는 얼굴로 인사하십시다.
“지혜로운 인생이 됩시다.”
감옥에 수감된 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로부터 반가운 편지가 왔는데 그 편지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여보, 텃밭에 감자를 심고 싶은데, 언제 심었으면 좋겠어요?’
밖으로 나가는 편지는 일일이 검열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 죄수는 이렇게 답장을 했습니다. ‘여보 우리 텃밭은 절대로 파면 안돼요. 그 텃밭에는 사실 내가 총을 숨겨놨거든.’
얼마 후에 아내로부터 다시 또 답장이 왔습니다. ‘여보 참 이상해요. 어제는 수사관들이 6명이나 와가지고 우리 텃밭을 다 파헤쳐놨어요.’남편은 그 답장을 보는 순간 즉시 편지를 또 보냈어요. ‘여보 이제 되었소. 지금이 바로 감자를 심을 적기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죄수는 참 지혜롭지요? 아내를 도와줄 순 없지만 감옥 안에서 편지 한 장으로 온 텃밭을 다 뒤엎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지혜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 농부가 길을 지나가는데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지나가려니 그 소리가 너무 간절하고 처량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더니 그만 큰 웅덩이에 호랑이가 빠져있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굶었는지 거의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이 농부는 사랑이 많은 사람인고로, 그 호랑이를 위해 사다리를 내려줘서 구해주었습니다. 이제 호랑이가 농부에게 큰 절을 할 줄 알았더니, 웬걸요. “내가 며칠 굶었는데 너를 잡아먹어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농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세상에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아보자.”고 제안을 해서 노루를 붙들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호랑이가 은근히 압력을 주니까 노루는 제대로 재판을 못합니다. 사슴에게 재판을 받아보았습니다. 사슴도 재판을 못합니다. 이 때 토끼가 한 마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토끼한테 한 번 물어보자.” 토끼가 양 측의 설명을 다 들었습니다. “내가 듣고 보니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현장검증을 좀 해봐야 되겠다. 처음의 상황이 어떠했지요?” “웅덩이에 호랑이가 들어 있었어요.” “좋아요, 그럼 한 번 들어가 보시죠”“농부는 어디 있었죠?”“길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아, 그럼 지나가 보세요”처음처럼 호랑이가 웅덩이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 토끼는 “자~ 이제 농부는 그냥 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 못된 호랑이는 쫄쫄 굶다가 굶어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토끼의 지혜가 착한 농부를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혜란 참 귀한 것입니다. 지혜란 말을 우리가 오해하면 ‘꾀’나 ‘좋은 생각’쯤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아닙니다.
잠언 4:13에 보니까 ‘지혜를 얻는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진주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잠언 14:1에 보니까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은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그 손으로 집을 허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참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1:14에 보니까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참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참 지혜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다윗입니다. 다윗은 참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른 후에 인기와 영광도 얻었지만, 반대로 사울왕으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많은 여인들은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 불렀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
그 말이 사울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저 다윗이 곧 나의 왕위를 빼앗을 자가 아니겠느냐?’ 이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고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울은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한 그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찬양은 사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것입니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시시각각 다윗은 생명의 위협 가운데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승리와 성공이 그에게 곧 무서운 위기가 되었습니다. 한 설교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위기는 골리앗이라는 장수를 만나 싸울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가 인기를 얻었을 때, 그 때가 바로 다윗의 위기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도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가난할 때가 위기가 아닙니다. 부유할 때가 위기입니다. 실패했을 때가 위기가 아닙니다. 성공했을 때가 위기입니다. 병들었을 때가 위기가 아닙니다. 건강할 때가 위기입니다. 병들었을 때는 남의 손 부축 받고도 교회에 잘 나옵니다. 한숨을 쉬면서도, 숨을 몰아쉬면서도 교회에 잘 나옵니다. 그러나 건강해보십시오. 하나님 주신 건강, 주일에 자연을 보러 가야 되겠다고 말합니다. 놀러가기에 바쁩니다. 건강한 사람이 범죄 하기 쉽지, 가난한 사람이 범죄 할 수 있나요? 병든 사람이 범죄할 수 있나요? 참 어렵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이것이 바로 다윗의 위기였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다윗은 동시에 두 가지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백성들에게서는 인기와 사랑을 받았지만, 사울 왕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오늘 사무엘상 18장에 보면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14절~1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14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다윗이 지혜롭게 행했다는 성경 구절은 무려 네 번이나 소개됩니다. 18:5에 보니까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다윗은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어려운 위기 속에서 지혜롭게 행하므로 그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그는 기다리는 인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과 같은 딱한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때문에 고통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공 때문에 오는 위기도 있을 수 있고, 여러분의 실패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위기도 있을 수 있고 고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위기 속에서 다윗의 지혜를 배워서 우리도 승리할 수 있는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의 지혜로움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고 그와 함께 하심을 믿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17:37에서도 사울 왕에게 전쟁에 나가 싸우겠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다윗은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이 블레셋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그와 동행하심을 다윗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많은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노래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찬양했습니다. 또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시편23:1을 보시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니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편은 유명한 다윗의 시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동행하고 있음을 그는 노래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편 18:1에 “나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그와 함께하시는 ,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다윗도 범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범죄 했을 때 다윗의 가장 간절한 기도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 제발 저를 떠나지 마세요. 하나님 제발 저를 버리지 마세요. 주 떠나가시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품에 늘 거하려고 그 말씀 안에 거하려고 그 사랑 안에 거하려고 그는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능력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12절에도 쓰여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사울을 떠난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계셨습니다. 28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피해는 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과 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이 험난한 인생길을 여러분 혼자 걸어간다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내 손 잡아 주신다면, 하나님이 내 곁에서 늘 나를 돌봐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사야 41장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반대로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는 외적으로 왕의 직위를 가지고 있지만, 불행과 고통과 괴로움의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무엘상15:23에 보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왕이 여호와의 무엇을 버렸다고 했습니까? 말씀을 버렸습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당신을 버렸습니다. 버림받은 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버릴 때,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사람은 말씀을 버린 사람입니다.
요한복음15:10에 보니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듯이,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가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시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다윗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루아침에 목동 소년에서 장수가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군대의 장을 삼았다 혹은 천부장을 삼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높은 직위에 오르면 사람들은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겸손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군대의 장이 되든 천부장이 되든 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겸손으로 자신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인격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그가 겸손한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인격입니다. 그가 어떠한 높은 중요한 자리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을 갖춘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높은 직위에 올라가면 자신에게나 이웃에게 오히려 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때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인격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잠언27:21 “하나님은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해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 됨됨이가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잘 되었다고, 출세했다고 교만에 빠지면 그것은 바로 몰락의 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고래의 교훈이 있습니다. 고래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서 바다위로 올라와 물을 뿜을 때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고래가 죽을 수도 있는 위기입니다. 고래잡이 어부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작살을 들고 기다리다가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물위로 올라올 때 작살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상에 이르러 뽐내며 자랑할 때 그 순간이 작살에 꽂히는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18절에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일 수 없어서 그를 전쟁터에 내 보내서 죽이고자 했으며 딸까지 다윗에게 주겠다며 결혼 지참금으로 블레셋 사람 100명을 잡아서 그들의 양피(살껍데기)를 가져오라고도 했습니다. 저 같으면 왕의 사위가 되고 출세가 보장되니 아마 얼른 대답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18장 18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와서 또 이야기 할 때 다윗은 23절에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처음 전쟁에 나가서 이긴 후,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만들었습니다. 전쟁에 승리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자기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탑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기념탑은 인간을 스스로 우상 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7절에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자신을 가장 작은 사람으로 여길 때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올려놓았으며,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자 할 때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오래 지속하는 길은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14-1965.9.4, 독일) 가 아프리카 밀림지역에 가서 오랫동안 선교활동과 의료 활동을 하다가 고향으로 잠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이 소문이 나고 신문에 대서특필 되어 고향 사람들은 기차역에서 그를 마중하려고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마침 슈바이처가 탄 기차가 정시에 역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1등 칸에서 내리려나 하고 기다렸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등 칸에서 내리는가 하고 기다려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슈바이처가 3등 칸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열렬한 환영 인파가 그리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슈바이처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3등 칸에 타셨습니까?” 그러자 슈바이처는, “4등 칸이 없어서 3등 칸을 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슈바이처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겸손에 더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겸손을 보십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다윗의 지혜는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오늘 18장 11절에 보면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여러 번 죽이고자 했습니다. 18장엔 두 번 창을 던졌지만 19장에 가면 단창으로 찌르는 것이 나옵니다. 또한 자객을 보내서 잠자는 다윗을 해치려고도 시도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 보내기도하는등 수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이처럼 계속 당하는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안했을 것인데도 다윗은 그저 위기만 모면하거나, 몸을 피할 뿐 한 번도 사울 왕에게 대항한 적이 없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저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사무엘상 26장에 보면 사울 왕이 동굴 속에서 자고 있을 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지만 다윗은 죽이지 않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절대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지금은 고난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높이 쓰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을 그 날을 기다리며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무척 조급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 불안해서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어떻게 할 줄 모를 때가 있는데 사울 왕도 그랬습니다. 사울 왕은 언제 다윗에게 왕위를 빼앗길지 몰라 늘 불안해했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는 중에 수많은 대군 앞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가 떨어져 가자, 사기가 더 떨어지지 전에 빨리 제사를 드리고 전쟁에 나가야 하는데 약속한 날짜에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서 조급해진 사울왕은 스스로 번제와 화목 제물을 가져오라 하여 제사를 드려 버렸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고난당하고 계시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제거하실 때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어려우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광된 순간을 주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골리앗을 무찌른 후 금방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10년 이상을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도망자의 삶을 살았고, 굶주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애써야 했습니다.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그 고난의 세월이 다 지났을 때, 하나님은 그를 들어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지혜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성경 13절~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을 때도 최선을 다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사람들에게 신망과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14절 15절 이하에 보면 그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출입함을 인해서 그는 사랑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입했다는 것은 원어로 보면 백성을 돌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천부장이 되어 전선에 나가 싸우면 승리했고, 자기 백성들의 안전을 최대한 성실하게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성실은 어찌 보면 마치 양을 칠 때에 양 한 마리라도 사자가 물고가면 끝까지 추격해서 그 사자에게서 양을 구해오는 것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성실함을 가지고 자기의 직위에 최선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잠언 27장 23절에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고 했습니다.
그가 목동시절에 그에게 주어진 양떼들을 잘 보살피고 돌보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 성실할 때 하나님께서 큰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구역장님들, 교사 분들 몇 명의 영혼을 돌보지만 그것이 작은 일이 아님을 기억하시고 그 일에 최선을 다 하십시오.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성실이란 누가 보든 안보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불황의 늪에 시달릴 때, 우동 체인점인 ‘하나마르’란 체인점을 시작해서 큰 성공을 거둔 ‘히데토’란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서 잘되는 유명한 체인점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아르바이트 여고생이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매우 친절했습니다. 햄버거를 주문해서 먹고 있었는데,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이라 아르바이트 여고생이 할 일이 없게 되자 옆에 있는 화분의 잎을 닦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뒤쪽까지 열심히 닦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당신은 사장에게 그렇게 교육 받았습니까?” 라고 그녀에게 묻자 “물론 친절하라고 교육받지요 그러나 화분의 뒷면까지 닦으라는 교육은 받지 않지만 우리 사장님은 늘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한가할 때는 어떻게 손님들을 기쁘게 할까를 연구하라고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히데토 사장은 그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자기가 시작하는 우동 체인점에서 최고의 친절과 성실로 손님을 맞이하게 하였고, 그 결과 세계적인 우동 체인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성실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성실한 인생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다윗처럼 성실한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신사람 다윗과 하나님이 떠난 사람 사울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사람의 비참함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울의 시도는 다 실패했으며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수도 없이 다윗을 죽이고자 했지만 다 수포로 돌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로인해 다윗이 더 강성해질 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핍박 속에도 점점 강한 사람이 되었고 인기있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이 요셉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 이하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은 다윗처럼 형통한 사람이 되어서 무엇이든지 그의 손만 가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과 하나님이 떠난 삶 중에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예전에 시골의 초등학교에 화재 예방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스프링쿨러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문에도 나고 교육장도 방문해서 치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겨울에 화재가 났는데, 그 스프링쿨러가 작동하지 않아서 많은 아이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분석 결과, 스프링클러의 관에 수도관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 때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제대로 동작하기 않는 스프링쿨러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인생이라면 허물어질 수밖에 없고 실패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읽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리더쉽 서적들과 경영 교재들을 보면 ‘비젼을, 판단력을, 설득력을 분별력과 지혜 등등을 가지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날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공의 비결이요 뿌리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혹시 위기와 고난 속에 있다면 정말 하나님께 붙어있고 연결되어 있는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진정 원하는 성공하는 삶을 살기위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영 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