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11월의 생활을 매듭짓는 일기.
탈장수술을 한 것이 나이 때문인지 그 회복이 오래 가는 것 같다. 젊은 사람은 일주일 정도면 거의 회복이 된다고 했는데, 나는 11월 한 달이 다 지나도 완전이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수술 부위가 견딜만하기는 해도 계속 아팠다. 돌덩이같이 단단하다가 점차 누그러지기는 하지만, 완전히 정상을 찾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나이가 많으면 수술 같은 것 하지 말라는 말을 실감했다. 건강검진 같은 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암 같은 것이 발견되어도 수술 같은 것 하지 말라고 한다. 수술받으면 고통이 심하고 후유증으로 많이 고생하기 때문에 후유증 없이 그냥 견딜 수 있는데까지 견디다가 죽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특히 암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 전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별로 큰 병이 아닌 것 같은 탈장 수술을 받아보니, 암 뿐만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모든 병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되었다.
광주 망월동 시립묘원에 있는 부모님의 묘를 파묘하여 화장해서 광주 극락강에 뿌릴 계획을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두어 번 나에게, 죽으면 화장해서 극락강에 뿌리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어 공원묘지에 매장하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 10년이 지나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 옆에 같이 매장을 했다. 돌아 가신지가 아버지는 25년, 어머니는 15년이 되었다. 그리고 수원으로 이사한 후, 매년 기회 있을 때 성묘를 다녔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성묘 다니는 것이 더디고 계속 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되고, 계속 묘를 관리해줄 사람도 없는 형편이어서 파묘 정리하려고 하고, 그런 일에 대해 경험이 있는 광주 이 장로와 의론을 하고, 금년이 가기 전 11월 중에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려면 광주에 2, 3회 왕복을 해야 되는데, 괜찮을 줄 알았던 내 몸이 수술 후유증으로 자유롭지를 못해, 하기가 어려워 취소 했다. 일을 하려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이 장로와 임 집사 등이 일이 잘 되도록 호응을 해주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웠다. 결국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에 다시 추진을 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두고 자연으로 돌아 가시게 하던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금년의 계획을 모두 접었다.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와서 곡성에서 은숙이와 은희 자매가 전원생활을 하면서, 은희가 잠시 다녀오겠다고 10월 말 독일에 갔는데, 은희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독일에서 살고 있는 동생 화자와 세 차례 페이스 톡으로 통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화자가 카톡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무료 통화를 할 줄 모르고 있어서, 은희가 가서 가르쳐 주며 통화를 하게 해주었다. 얼마든지 무료 통화가 가능한 편리한 방법을 이용하지 않고 한국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은 것 같은 동생이지만, 서로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니 반갑고 좋았다. 서로 나이가 많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안부를 묻고, 소식을 주고받으며 살았으면 좋을 것 같다. 연결 시켜 주려고 노력한 은희가 참 고맙다. 계속해서 연락이 되어지기를 바래본다.
11월은 15일이 내 생일이어서 좋은 일이 많다. 미국의 아들은 축하 전화와 함께 돈도 보내 주고, 아내는 생일 당일에 삼겹살이 곁들인 생일상을 차려 딸네 가족들과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곁에서 살고 있는 딸은 주말 날을 받아 고급식당에서 외식도 같이하고 용돈도 주었고, 손주들은 다투어 생일 축하 인사를 해주었다. 딸이 생일 당일에 보내온 문자를 옮긴다.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옆에 살면서도 살갑게 굴지 못해 늘 죄송하고 또 늘 이렇게 아이들 봐주시고 절 도와 주시니 고마워요. 아빠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사셨음 좋겠어요. 사랑해요♡”
25일 토요일에는 서울 ‘수유리 육단포 소 한 마리’ 식당에서 12월에 생일이 있는 제수와 내 생일을 함께 축하하는 모임으로 제수와 용범이 미혜, 미혜의 두 아들, 그리고 사위 현수와 우리 부부가 모여 고기파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위가 마침 서울에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사위 차로 아내와 함께 편하게 갈 수 있었고,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왔다. 식사비는 용범이가 부담했고, 제수에게와 두 아이들에게 용돈을 나누어 주는 것은 현수가 부담해 주었다. 내가 식비를 부담하려고 했는데 한사코 용범이가 하겠다고 해서 부담을 주게 되고, 같이간 사위에게도 부담을 준 것이 되어 미안했다.
경기도 노인연합회 부설 노인지도자대학원을 29일에 졸업했다. 3월 29일 수요일에 입학하여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수업을 받았는데, 그동안 7월 19일부터 7주간은 여름방학을 했고, 11월 8일 한 주는 휴강을 하고 모두 28주를 출석하고 드디어 졸업을 했다. 탈장 수술로 두 번 결석을 해서 정근상을 받았다. 여름방학 글짓기 숙제에서 ‘넓은 마음’이라는 주제로 써서 제출한 것이 우수자로 선정되어 전체 앞에서 발표도 했고, 졸업식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지만 시간에 억메이는 것이 어렵기도 했고, 나이 탓인지 대인관계도 쉽지 않아 마지막 기회로 하고 어떤 단체생활 같은 것은 마감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