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포,옥포,아주] 장승포지역(長承浦地域)
경덕왕(景德王) 16년(757) 거제군(巨濟郡)의 속현으로 아주현(鵝洲縣)이라 하고 치소(治所)를 두었으며, 아주성(鵝洲城)을 쌓았다. 고려(高麗) 원종(元宗) 12년(1271) 왜구(倭寇)의 침범으로 아주현(鵝洲縣)의 사람들이 모두 거창현(居昌縣)에 속하는 가조현(加祚縣) 등지로 피난갔다가, 조선(朝鮮) 세종(世宗) 4년(1422)에 옛터로 돌아왔다.
세종(世宗) 14년(1432) 관하에 칠면(七面)을 두었는데, 이운면(二運面)이라 칭하고 권농관(勸農官)이 집정(執政)하였다. 성종(成宗) 원년(1470) 거제현(巨濟縣)에 칠진(七鎭)을 두었는데, 옥포진(玉浦鎭)을 두고 만호병정(萬戶兵政)이 다스렸다. 동왕(同王) 19년(1488) 진성(鎭城)으로 옥포성(玉浦城)을 쌓았다. 1990년 12월 20일 지방기념물(地方紀念物)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나라가 위기에 있을 때, 5월 7일 왜적을 맨 처음 무찌른 승첩지다. 영조(英祖) 45년(1769) 면리제(面里制) 개편으로 고현면(古縣面) 이운(二運)이라 하고, 장승거리(長承巨里), 옥명포(玉鳴浦), 관송(貫松), 당항(堂項), 아주(鵝洲), 옥포(玉浦), 조라포(助羅浦), 해명(海明), 수월(水月), 양정(良井)의 10방(坊)을 두었다.
고종(高宗) 26년(1889) 면리제(面里制) 개편으로 고현면(古縣面) 이운(二運)을 이운면(二運面)으로 독립하고 면장(面長)이 집정(執務) 하였으며, 저산(猪山), 해명(海明), 수양(水陽), 수동(水東), 양정(良井), 상아(上鵝), 하아(下鵝), 거노(居老), 관화(官化), 옥명(玉明), 장승(長承), 능포(菱浦), 늦대,두모(杜母), 옥포(玉浦), 조라(助羅), 국산(菊山) 등 17리가 되었다.
고종(高宗) 26년(1889) 11월 12일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입좌촌(入佐村) 사람들이 장승포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 되던 해 243호, 1,893명이 살고 있었다. 고종(高宗) 32년(1895)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 면리(面里) 개편으로 장승포(長承浦), 옥명(玉明), 능포(菱浦), 관송(貫松), 우산(牛山), 거노(居老), 늦대, 두모(杜母), 상아(上鵝), 하아(下鵝), 옥포(玉浦), 조라(助羅), 국산(菊山), 저산(猪山), 양정(良井), 해명(海明), 수양(水陽), 수동(水東) 등 18리로 개편하였다.
융희(隆熙) 3년(1909) 6월 25일 칙령(勅令) 제30호 면리(面里) 개편으로 외포면(外浦面)이 폐지되어 상덕(上德), 하덕(下德), 덕포(德浦)를 이운면(二運面)에 편입하여, 21개 리(里)가 되었다.
1913년 아양(鵝陽)에 처음으로 이운면사무소(二運面事務所)를 두고 면장(面長)이 집정(執務)하였고, 1935년 10월 1일 부령(府令) 제197호(1935년 9월 27일 공포) 이운면(二運面)을 장승포읍(長承浦邑)으로 승격되어 아양리(鵝陽里)에서 장승포(長承浦)리로 옮겼다.
1942년 5월 1일 2차대전의 전시행정(戰時行政)을 위하여 부락구제(部落區制) 실시에 따라 부촌(舊村), 신부동(新富洞), 중앙(中央), 장승(長承), 마전(麻田), 능포(菱浦), 옥명(玉明), 두모(杜母), 늦대, 관송(貫松), 당목(堂木), 장기(場基), 탑곡(塔谷), 내곡(內谷), 용소(龍沼), 옥포(玉浦), 조라(助羅), 국산(菊山), 팔랑포(八浪浦), 상덕(上德),하덕(下德), 수월(水月), 해명(海明), 양정(良井), 저산(猪山) 등 25개 부락이 되었다.
1951년 1월 4일 6·25사변의 두 번째 서울 후퇴(後退)로 남하시킨 서울 장정(壯丁) 1만명의 제3훈련소를 설치하였고, 이북피난민(以北避難民) 15만명을 구호하는 보건사회부(保健社會部) 거제도분실(巨濟島分室)과 통영군(統營郡) 거제도분소(巨濟島分所), CAC거제도 팀을 창설하여 전시(戰時)의 후방기지(後方基地)가 되었다.
1953년 1월 1일 법률(法律) 제271호(1952년 12월 14일 공포)로 거제군(巨濟郡) 이복군(復郡)되고, 1월 22일 대통령령(大統領令) 제737호 거제군(巨濟郡) 위치의 공포로 1914년 3월 1일 통영군(統營郡)에 통합 된지 39년만에 장승포읍사무소(長承浦邑事務所)에다 거제군의 사무소를 현판(懸板)하고 시무(始務)하였다. 1955년 6월 8일 대통령령(大統領令) 제1032호 공포로 거제군(巨濟郡) 위치를 일운면(一運面) 고현리(古縣里)로 한다에 의하여 경상남도가 청사(廳舍) 신축을 시공하여, 다음해 10월 30일 고현으로 이전하였다.
1957년 6월 12일 옥포대승첩기념탑(玉浦大勝捷紀念塔)을 아주(鵝洲) 당등산성(堂嶝山城)에 건립(建立)하고, 1963년 6월 27일 옥포정(玉浦亭)의 낙성과 제1회 옥포대첩기념제전(玉浦大捷紀念祭典)을 거행하였으며, 1973년 10월 11일 옥포조선소(玉浦造船所) 기공(起工)으로 편입되어, 1975년 탑골앞 조선소 부지내로 옮기고, 1996년 6월 22일 옥포(玉浦)의 승판치(勝判峙) 북단에 기념탑(紀念塔), 참배단(參拜壇), 옥포정(玉浦亭), 기념관(紀念館) 등 옥포대첩기념공원(玉浦大捷紀念公園)을 준공하였다.
1963년 1월 1일 법률(法律) 제1175호(1962년 11월 21일 공포)로 일운면(一運面) 고현출장소(縣出張所)를 신현면(新縣面)으로 승격하여 수월(水月), 양정리(良井里)가 편입되어 7리(里)에 21개 행정리(行政里)가 되었다.
1973년 10월 11일 옥포조선소(玉浦造船所)의 기공으로 아양리(鵝陽里)의 관송(貫松), 당목(堂木), 장기(場基)가 조선소(造船所)에 편입되어, 이주민(移住民) 480세대가 이주했다. 일부는 외지(外地)로 나가고 대부분 옥수동 이주단지로 이주했다. 옥수(玉水) 1, 2동이 신설되어 7리(里)에 20개 행정리(行政里)가 되었다.
1986년 12월 1일 군조례 제948호(1986년 11월 13일 공포)로 일운면(一運面) 옥림리(玉林里) 중촌(中村), 1, 2동(0.12㎢)을 장승포리(長承浦里)에 편입하고 대림 1, 2동이라 하였다. 1987년 1월 21일 군조례 제959호(1987년 1월 8일 공포)로 거제군(巨濟郡) 장승포직할출장소(長承浦直轄出張所)를 설치하였다.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1988년 12월 31일 공포)로 장승포읍(長承浦邑)을 시(市)로 승격하여 옛 거제중학교(巨濟中學校)에 개청하고 관하에 장승포(長承浦), 마전(麻田), 능포(菱浦), 아주(鵝洲), 옥포(玉浦) 1동과 옥포 2동 등 6개 행정동에 71통을 설치하였다.
1995년 1월 1일 법률(法律) 제4774호(1994년 8월 3일 공포)로 도농복합형태(都農複合形態)의 시(市) 설치에 따라 장승포시와 거제군을 통합하여 거제시가 되었으며, 장승포에 거제시 민원출장소를 두었다.
1995년 4월 25일 거제시조례 제136호로 옥포 2동 관할구역에 1통부터 28통까지를 30통으로 조정하였다.
1997년 거제시조례 제205호로 옥포 2동 관할구역 1통부터 30통까지를 35통으로 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