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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자가 본 113년 전 조선 : 황당한 의술, 끔찍한 감옥
한국은 러일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데
당시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많은 외국 기자들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된다.
그중에 스웨덴 기아손 그렙스트도 있었다.
그의 입국은 원래 일본 정부로부터 금지되었지만
그는 영국인 양말 장수로 위장하여 한국 땅에 몰래 밀입국했고
일본 순사
"읭? 조선에 양말 신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양말장수?"
그렙스트
"그건.."
이후 수개월 동안 한국의 이곳저곳을 돌며 섬세한 관찰과 함께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했고
본국으로 돌아가 '코레아 풍물지'를 발표하게 된다.
본문은 그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코레아인
● 코레아인의 외모
① 체구가 큰 코레아인
일본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더 컸으나
코레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코레아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컸다. 또한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균형이 잡혀 있었다.
매사 여유가 있었고 똑바로 치켜올린 얼굴은 거침 없이 당당했고 걸음걸이는 힘찼다.
즉 비굴함과 과장된 예의가 특징인 일본인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② 수염 사랑
코레아 남자들은 수염을 남성의 상징이라 여기고
수염에 대해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미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도
유독 수염에 대해서만은 큰 정성을 들인다.
듬성듬성한 수염은 수치스럽다고 여기고
볼과 턱을 시커멓게 뒤덮은 수염은
행복과 무한한 만족을 준다.
만약 코레아를 찾는 서구인이 덥수룩한 수염을 길렀다면, 공경을 받을 것이며
매끈하게 면도를 했다면 은밀한 조소 속에 푸대접을 받을 것이다.
③ 상투머리와 댕기머리
남자가 장가를 들게 되면 상투머리를 틀어 올리는데,
이때 머리 주위에는 말총으로 만든 망건을 두른다.
헌데 이 망건이 이마를 매우 단단히 조이기 때문에
이마의 윗부분에 깊은 자국이 남게 된다.
이것이 코레아 신사들의 복장 중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이다.
싸구려 망건도 있기는 하지만 품위에 신경을 쓰는 코레아인이라면
질 좋은 망건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에 이것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반면에 미혼의 남자는 댕기머리를 하는데
이것 때문에 물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가끔씩 이들을여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 코레아인의 의복
① 흰옷 사랑
사람들은 흰옷 때문인지 대체로 선한 인상을 풍겼다.
하다못해 신발까지도 전부 흰색이었다.
노동자들은 보통 흰 옷 세 겹 네 겹으로 껴입고
땀이 눈 안으로 흘러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머리 주위로 하얀 헝겊띠를 둘렀고,
펑퍼짐한 바지는 무릎 밑까지 걷어올렸다.
이런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불결했지만
양반들의 경우는 흠잡을 데 없이 청결했다.
② 너무 많이 껴입는다
코레아인들은 여름이나 겨울을 막론하고 옷을 여러겹 껴입는다.
다만 이런 옷차림은 청결 면에서나
편리함에서 볼 때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코레아인들에게는 이런 복장이야말로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고
의복의 본래 취지와 부합되는 것이다.
③ 두루주머니
코레아인들의 옷에는 호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허리춤에 두루주머니를 차고 다니거나 넓은 소매 속을 이용한다.
이곳에는 잘게 썬 담뱃잎과 부싯돌, 긴 담뱃대, 약간의 엽전 등이 있다.
다른 것들은 여간해서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는데,
짐을 잔뜩 가지고 돌아다니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④ 신발
코레아인들의 가죽신은 중국산이거나 국산이고,
노동자들은 짚신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데 그 수명이 사흘 정도이다.
그러나 값이 매우 싸기 때문에 며칠 가지 않는다 해도
근심거리는 되지 않는다.
⑤ 모자
코레아인들이 쓰는 모자는 수십 종이나 되는데
어떤 것은 조그맣기 때문에 상투를 겨우 덮을까 말까 하며,
또 어떤 것은 그 크기가 엄청나 주저앉으면 모자 챙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런 모자를 쓰고도
바람 부는 날에도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⑥ 갈모
코레아인들은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 않고
깔데기 모양의 기름종이(갈모)를 쓰고 다닌다.
● 코레인들이 게으른 이유 : 노동천시
① 게으름
코레아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낙천적인 민족이다.
이들은 일하는 것을 대부분 증오한다.
▲ 삽 하나에 5~6명의 장정이 달라붙은 모습
따라서 코레아에서는 풍부한 어장이 있음에도,
또 코레아 사람들은 생선을 무척이나 좋아함에도
부산 앞바다에서생선을 잡아 돈을 버는 사람들은
▲ 당시 부산포 개항장
조선인들이 아닌, 중국인과 일본인들이었다.
② 노동천시
기차에서 만난 일본인 대위가 말했다.
"일본 사람은 즐겁게 일하고 결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집니다."
"반면에 조선인들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서럽게 생각하며,"
"편하게 지내야 할 시간을 축내는 시간적인 손실이라고 여깁니다."
③ 양반들의 노동천시
코리아의 양반들은 약간의 노동이라도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옷을 자기 손으로 입어서는 안 되고 담뱃불도 스스로 켜서는 안 된다.
▲ 엄청난 길이의 장죽 : 혼자서는 불을 부칠 수 없어, 시종이 거들어야 했다
옆에서 거들어주는 사람이 없이는 말 안장에 제 힘으로 오르는 법이 없고
또 조랑말에서 굴러떨어졌다 하더라도
누가 와서 그를 일으켜세우기 전까지는 땅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다.
또 양반은 사사로운 장사에 관여하지 않아서
아무리 단순한 지게꾼이라 하더라도 양반을 쉽게 속일 수 있다.
"열 냥은 주셔야 하겠는데요."
양반은 시쳇말로 일상 생활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④ 독립하기를 무서워하는 코레아인들
일본인 대위가 말했다.
"조선인은 망국의 운명에 처한 민족이에요."
"장래성이 없고 중국인보다 더 엉망인 민족입니다."
"1천 년 전 잠든 바로 그 자리에 아직도 머물러 있습니다."
"더 나쁜 건, 잠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어나기를 원치 않으며 독립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 코레아인들이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
① 땅을 수탈하려는 일본인
코레아인들이 일본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유를 알아냈다.
가장 큰 이유는 최근(1904년)에 발표된 '황무지 개간령'에 있었다.
코레아 사람들은 땅에 대한 애착심이 무엇보다 강하다.
특히 농업을 생명의 원천이라 여기기 때문에
경작권을 다른 민족에게 빼앗는다는 것은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황무지가 어딨다고?"
② 일본의 개척민
일본인이 증오의 대상이 된 이유로
토지 강점뿐만 아니라 일본 당국의 '이민 정책'도 한몫했다.
일본에서 코레아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 하층민들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로서
그들에게는 무서울 게 없었으니,
일본 군대가 엄격한 규율로 인해 신뢰를 살 수 있었던 반면에
이 군대 뒤를 따라온 수많은 개척민들은 아주 딴판이었다.
"조센징, 꺼져!"
이들은 코레아인들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폭행을 휘두르고 뻔뻔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일본 군 당국은 러일전쟁에 온 정신이 팔려
코레아인들의 불만 사항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듯 했다.
코레아의 모습
● 코레아의 거리
① 좁고 불결한 도로
부산에서 받은, 코레아의 첫인상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거리는 좁고 불결했고 가옥은 낮고 볼품이 없었다.
▲ 부산 동래성
일본처럼 상점이나 눈길을 끄는 오래된 사찰도 없었다.
사방에서 악취가 풍겼으며 집집마다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고
측은한 모습의 개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 부산
여기저기에 말라붙은 하수도가 있는데 끈적끈적한 바닥에서
온갖 종류의 오물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머리가 더펄더펄한 애들이 놀고 있었는데
어제 그제 세수한 얼굴은 결코 아니었다.
② 도로 청소는 오직 견(犬)공의 식욕
코레아 사람들은 개를 아주 많이 기른다.
개를 키우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이고,
개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대문에는 개구멍이 항상 마련되어 있다.
이들 개들의 역할은 거리 곳곳에 널려진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이다.
그걸 알고 사람들은 쓰레기나 인분을 함부로 거리에 버리는 것일 지도 모른다.
견공의 청소는 겨울철에 보다 깔끔해지는데
이때는 내다버린 쓰레기가 별로 없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③ 소문난 부자집에도 악취가..
하루는 부자로 소문난 고관댁에 초대를 받았다.
한양에서도 매우 덕망이 높고 지체가 높으신 분의 집이었다.
하지만 이 방문은 나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바깥 대문을 통해 아담한 뜰로 들어섰는데
이 뜰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수가 악취를 풍기며
길 밖을 향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④ 소 달구지 사건
서울의 골목들은 서로 비슷하여 분간하기 쉽지 않고,
마치 미로처럼 엉켜 있어 골목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사방이 담과 하수도였고 곳곳에서 연기와 악취가 났다.
어떤 곳은 좁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어
소나 말의 달구지가 만나거나 가마가 지나칠 때면
몸을 담에 찰싹 붙여야만 했다.
한번은 옴짝달싹 못하고 아주 갇힌 몸이 되었다.
앞에 한 무리의 소달구지가 나뭇짐을 싣고 다가오고 있었고
뒤에도 소달구니가 오고 있었는데,
양쪽이 서로 지나칠 수 있는 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한 쪽에서 양보를 하고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헐!"
달구지 주인들은 꽤 오랫동안 누가 양보할 것인지에 대해
말다툼을 했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고
"얼른 비켜!"
"너가 비켜!"
땅바닥에 주저앉아 담뱃대를 꺼내 물고 느긋이 협상을 시작했다.
마침내 결판이 났으나 이제는 무슨 수로
이 좁은 골목에서 달구지를 돌리느냐가 문제였다.
따라서 시간이 한동안 지체되었고 골목길에서는 달구지를 돌리느라
질러대는 소리로 온통 떠들석했다.
달구지 주인은 소에 채찍질 가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높였지만
좁은 골목 사이로 소가 쉽게 돌아서기는 힘들었다.
● 주막에서의 숙식
① 온돌방
대구의 한 주막에서 숙식을 했다.
방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고 오물과 마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구석에 있는 호롱불은 심지가 고르지 않아 그을음을 냈고
진흙 방바닥은 딱딱하고 뜨겁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코레아의 모든 주택은 이런 온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돌은 창문만 열어놓지 않으면 오랫동안 보온이 되어 상당히 편리했으나
겨울 동안 실내에는 신선한 공기가 너무 부족했다.
② 엄청난 난방비
코레아 사람들은 밖에서는 옷을 겹겹히 포개입고
밤에는 펄펄 끓는 방바닥 위에서 빵처럼 구워지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땔감으로는 건초·나뭇가지·마른 나뭇잎·가축의 배설물 등을 가리지 않았다.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 불을 때는데,
적당한 연료가 부족한 탓에 연료비가 엄청나게 들어서
도시의 경우 1인당 수입의 1/4이 난방비로 소비되는 게 보통이다.
③ 코레아인들의 엄청난 식사량
주막에서의 식사를 나름 충분히 했다고 싶었는데,
주모
"와 이것밖에 안 묵습니꺼?"
코레아인들은 내가 너무 적게 먹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알고보니 코레아인들은 매 끼니 엄청난 양을 먹어치우고,
결과적으로 소화 장애의 어려움을 자주 겪고 있었다.
④ 코레아인들의 식문화
코레아 사람들은 생선·육류·채소를 막론하고 날것으로 자주 섭취한다.
이 나라에서 개고기는 별미로 인기가 좋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의 경우에는 가볍게 손질한 후 털째 구워지며,
내장도 고기와 마찬가지로 인기가 좋아 버릴 게 전혀 없었다.
● 서울의 위용 : 태양은 서울에만 뜬다
① 서울의 위용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 나라의 수도는 위용이 있기 마련이다.
스웨덴에서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 스톡홀름과 시골로 나누는 것처럼,
서울의 토박이들도 코레아를 서울과 시골로 나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웨덴의 시골 사람들은 이에 항의를 하는 반면
코레아의 시골 사람들은 이를 기꺼이 수긍한다는 것이다.
태양은 서울에만 뜨는 것이고 지방은 늘 그 그늘에 가려져 있다.
▲ 경복궁과 육조거리
모든 코레아 사람에게 서울은 죽기 전에는 가봐야 할 성지였다.
서울의 눈부신 영화보다 더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파리나 런던의 찬란함을 늘어놓고
▲ 1905년 런던
뉴욕의 고층 빌딩에 대해 침을 튀겨가면서 자랑하더라도
▲ 1905년 뉴욕
코레아인이 꿈에 그리는 서울의 대로와 성곽과 장엄한 성문들,
임금이 사는 대궐, 우아한 시민들 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② 서울말(言)
코레아에서 사투리는 지역적으로만 사용되고 이해되는 반면에,
서울말은 중국의 만다린어의 경우처럼 이 나라 어디에서나 통용된다.
③ 물자가 풍부한 도시
서울로 항상 생필품이 풍부하게 공급되므로
전국이 빈곤에 허덕인다 할지라도 서울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서울로 유통을 담당했던 경강상인
지방에는 도적이 빈번히 출몰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약탈하지만,
서울 내에서는 개인의 안전도가 비교적 높다.
지방의 백성들은 과세 부담이 큰 반면,
서울 사람들은 완전한 세금 면제를 받는다.
조합을 형성하여 이익을 도모하고 있지만,
▲ 경강상인들의 한강 나루터 모형
지방의 수공업자나 상인들은 그런 제도가 전혀 없어서
관료와 양반들의 권력 남용에 대처할 방도가 없다.
④ 승려가 없다
서울에서 승려를 보기는 매우 힘들다.
승려는 서울 안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무당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⑤ 서양인들이 봤을 때 서울은..
하지만, 이 나라의 백성들이 그토록 대단한 도시로 생각하고있는 서울은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결코 대단한 모습이 아니었다.
▲ 서울의 모습
사실 서울은, 일본이나 중국의 작은 도시와 비교해보아도
볼 수 있는 구경거리는 별로 없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 가건물이 들어선 서울의 모습
코레아의 산업
● 농촌
① 농가의 모습
조선의 농가는 전국 어디를 가나 모습들이 비슷했는데,
작고 낮은 초가 지붕의 모양은 마치 보트를 뒤집어 놓은 것과 같았고
집 주위는 진흙이나 돌, 대나무로 만든 담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벽은 더러웠으며, 원시적인 농기구들이 모통이에 쌓여 있었다.
② 농경
코레아는 아직 농경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처리했다.
논밭에 필요한 거름으로는 인분이 이용되고
쇠똥이나 돼지똥은 말려서 땔깜으로 쓴다.
또 코레아 사람들은 쌀농사를 주로 짓는 대신에
밀은 별로 경작하지 았았고 아편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았다.
● 수공업
① 톱질
톱으로 통나무를 자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굉장히 원시적이었으니,
톱질할 통나무의 한쪽을 다른 통나무 위에 얹고
▲ 당시 장면
한 사람이 올라타고 다른 사람은 무릎을 꿇고 앉아 톱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5분 정도 일을 하더니
충분히 힘을 썼다고 생각했는지 15분 동안 휴식을 취했다.
이런 식이면, 통나무를 하나 자르는 데 두 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았다.
② 초라한 생필품
코레아에는 산업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무명과 삼베는 농촌의 볼품없는 베틀에서 제작되며,
비단의 품질은 좋지 못했고 염색은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행해진다.
▲ 염색 작업
대장 기술도 예외는 아니다.
낙천적인 풍조와 노동을 기피하는 태도는
▲ 대장장이
불가피한 생필품을 생산하는 것 외의
다른 물품을 생산하는 데 전혀 정력을 쏟지 않는다.
하다못해 생필품이라 하더라도 마지못해 되는 대로 제작된다.
③ 빨랫방망이
빨랫방망이는 주로 목수들에 의해 제작되는데
목수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지칠 줄 모르고 방망이를 만들어낸다.
팔리지 않아 재고품이 쌓이는 경우는 드물며 만들기가 바쁘게 팔려 나간다.
매매 행위는 이렇다.
고객이 와서 쌓여 있는 빨랫방망이 중에서 자신이 사고 싶은 한 쌍을 고른 뒤
흥정을 할 필요도 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값을
재고품 옆에 놓여 있는 그릇에 던져놓고는 사라지고
부지런한 목수는 한쪽 눈만으로
고객의 행동을 따르면서 자기 일을 계속한다.
고객의 선택이 끝나고 엽전을 그릇 속에 넣으면
그는 손을 뻗어 동전을 집어 허리띠에 매여 있는 돈주머니에 넣는다.
● 시장
① 화폐
코레아에서는 지폐가 없고 고액 동전도 거의 없어서
만약 노잣돈을 휴대하고 여행을 떠나려면 100냥(1만개의 상평통보)이 필요한데,
이 어마어마한 양의 엽전을 100개 단위로 실에 꿴 다음
가지고 다녀야 하니 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겠는가!
② 난전과 시전
서울에는 크게 두 종류의 상점이 있었으니,
'난전 상인'의 상가는 일본의 가게를 연상시킨다.
길 옆에 물품들을 진열해놓아서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원하는 상품을 고를 수 있다.
여기서 반지, 납, 유리잔, 참빗, 나막신,거울, 주판, 담뱃대, 안경, 돈주머니
등등 온갖 것이 거래되고 있었고
골동품, 장롱, 병풍을 파는 곳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옷감이나 종이를 사려면 '시전 상인'의 가게에 가야 했는데,
▲ 시전상인이 운영하던 육의전
여기서는 구매자가 직접 원하는 물품을 말하면
상인이 재고품을 가지고 와서 물건을 파는 형태였다.
▲ 육의전
이때 상인은 절대로 모든 재고품의 견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른 물건은 없어요?"
시전 상인
"없어.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은 없어."
때문에 고객들은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정확히 설명해야 하며,
가격은 깎을 수 있을지언정 품질에 대한 언급은 금기로 되어 있다.
③ 호객행위
서울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에 간판을 걸지 않는다.
대신 큰 점포에는 예외 없이 호객행위를 하며 손님을 끌었다.
"아저씨, 여기 좋은 물건 들어왔는데 한번 보시구 가셔."
④ 노천시장의 떡가게
서울의 노천시장에서 떡가게를 봤다.
이곳의 떡은 양념이 많이 되어 있어서, 맛이 맵고
무척 질겨서 입 안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러나 떡장수는 장사가 대단히 잘 되어 쉴 새 없이 떡을 만들어내야 했다.
간혹 떡장수들이 한눈을 팔면 떡판 앞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견공들이 달려들어 떡을 물고 달아나곤 했다.
재수가 좋으면 떡을 두 개 물어가고 급할 때는 군밤 한 개라도 물고 달아났다.
그러면 그때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이런 X새끼!"
떡장수들은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마치 개사냥이라도 하듯 귀머거리의 혼까지 빼놓을 정도로 소란을 피운다.
● 유통업
① 도보와 가마
일본인 대위가 말했다.
"코레아인들은 걷기를 잘해서 하루에 20km를 걸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40km까지도 해치웁니다."
"하루 세 끼 밥과 가끔 갈아 신을 짚신만 있으면 족합니다."
그렙스트
"하지만 모두가 도보로 여행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아니지요. 양반들은 가마를 타고 다니는데.."
"그 좁은 궤짝 안에서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꼼짝도 안하고 견뎌냅니다."
"특히 고위층 관리들은 체통을 중시해서
항상 네 명의 가마꾼을 두고 여행을 합니다."
"이 나라에서 관리들이나 양반들은
가난해 보이는 것을 최고의 수치로 생각합니다."
② 경이로운 운반도구 지게
코레아에서 엄청난 무게의 짐을 운반하는 지게꾼들을 보면
모두가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코레아인들의 지게에는 수천 년의 경험이 서려 있었다.
지게를 사용하면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무게를 운반할 수가 있는데,
엉덩이와 등 그리고 어깨에 그 무게를 고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코레아인을 빼놓고는 이 방법을 착안한 민족은 없다.
지게꾼은 115kg까지 너끈히 들 수 있지만
보통은 45kg이 넘는 짐을 운반하기는 꺼려했고,
말들은 90kg을 운반하며, 황소는 보통 180kg의 짐을 운반한다.
③ 보부상
지게가 발달한 점과 도로 사정이 최악이라는 점이 맞물려,
코레아에서 유통업은 전적으로 '보부상'이 맡아서 했다.
이들은 이 장터에서 저 장터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구입해서,
이 물품들을 등에 지고 나라 끝에서 끝까지 돌아다니면서 다시 파는 것이다.
보부상들 중에 봇짐을 지는 '보상'이 취급하는 물건은
담뱃대, 가방, 분, 신부 패물, 빗, 다리미, 봉투, 벼루, 허리띠, 안경집
등의 주로 가벼운 종류의 것들이 많았고
지게를 지는 '부상'의 경우, 항아리, 접시, 마른 생선, 과일 등의
보다 무거운 물품들도 취급을 했다.
④ 물지게꾼
물을 운반하는 직업은 비록 힘든 노동이지만
수입이 좋아 매우 인기있는 직종이었다.
때문에 물지게꾼이 되려는 자는 허가 신청서를 당국에 제출해야 하며,
허가를 받을 때 일정액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 철도
① 경부선 개통식
경부선의 개통식이 있었다.
새 철로를 개통하는 민간용 열차여서 기관차는 온통 일장기로 치장되어 있었고
플랫폼은 기관차를 구경하러 나온 코레아인들로 온통 흰색 일색이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기관차의 큰 바퀴 중 하나에 손가락을 대자
주위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 용기 있는 사나이를 추켜세웠다.
"오~!"
그러나 기관사가 장난 삼아 환기통으로 연기를 뿜어내자
사람들은 도망가느라고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났다.
② 회초리를 든 일본인
플랫폼에서는 키가 난쟁이처럼 조그마한 일본인 역원들이
인정사정 없이 잔인하게 코레아인들을 다루고 있었다.
코레아인들은 일본인만 보면 두려워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갔다.
이때 행동이 잽싸지 못할 때는 등에서 회초리가 바람을 갈랐다.
키가 작은 섬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언제고 회초리 맛을 보여주었다.
"하하하"
이 북새통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제일 왜소한 일본인이 키 크고 떡 벌어진 한 코레아 남자의 멱살을 거머쥐고
흔들면서 발로 차고 때리다가 내동이치자
그 큰 덩치의 코레아 남자가 어린애처럼 징징 우는 모습이었다.
③ 혼비백산한 사람들
그렇게 출발한 경부선 열차. 차창 밖으로 경치를 보고 있는데,
기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달려가자,
강가에 구부리고 앉아 빨래를 하던 여인네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혼비백산하여 근처 숨을 곳을 향해 뛰었고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 뒤를 따랐다.
기차가 무시무시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④ 무너진 나무 다리
기차가 철거덕 거리면서 달려가자 건너편 강가에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다리를 건너기 위해 서둘렀다.
그리고 갑작스런 북새통에 이 조그만 다리가 무너져
20여 명이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들이야 어쨌든 보는 이에게는 우스꽝스런 장면이었다.
보통 코레아의 시골에서는 다리를 튼튼하게 짓지 않는다.
좁은 데다 난간조차 없다.
이 다리들은 보통 통나무 위에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진흙으로 덮어 만든다.
그렇게 때문에 비가 한 차례 쏟아져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거지와 죄수
● 서울의 거지
① 서울의 거지 소년들
서울에서 접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거지 아이들이었다.
집도 절도 없는 이들은 다 떨어진 옷에다
천 조각을 기워 몸에 두르고 있어서 마치 하나의 넝마 자루 같았다.
이들은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면서 동냥을 한다.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며, 해묵은 때가 끼어 더럽기 짝이 없다.
귓바퀴 속에는 진흙이 가득하고, 콧구멍에는 콧물이 흘러내리며,
헝클어진 머리털은 끈적끈적한 말갈기처럼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그 거지 아이들은 끊임없이 우는 소리를 내며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이 거리 저 거릴 헤매고 다녔다.
"한 푼만 줍쇼."
그러다 임자를 만났다 싶으면 한 줌의 동냥을 얻어내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옛다!"
그렇게 목적이 달성되면 아이들의 흐느낌은 즐거운 비명으로 돌변했다.
"우아! 고맙습니다."
하지만 거지 소년들은 우르르 동전을 향해 몸을 던졌으니,
"내 놔. 안 내놔."
서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승냥이처럼 물고 할퀴었다.
급기야 모두 녹초가 되어 어느 누구도 계속 싸울 마음이 없어지면
그제서야 서로 동전들을 나눈 다음 또 다시 먹이를 찾아 사냥길에 나서는 것이다.
② 엄동설한의 소년들
이 거지 아이들은 엄동설한의 밤이라 할지라도
담을 바람막이로 삼거나 다리 밑에서 쓰레기와 함께 잔다.
해어진 가마니를 이불 삼아 짚더미 속에 파묻혀 잠을 청하며,
추위가 극심할 때는 주위에서 땔감을 긁어모아 모닥불을 피운다.
궁색한 모닥불을 쬐면서 딱딱 부딪치는 이빨과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사지로 긴 밤을 앉은 채로 꼬박 새우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날이 밝으면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로
먹을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찾아다니고 있었으니,
서울 하늘을 날아다니는 굶주린 매들과 견공들과 함께 먹이를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먹이는 많을 턱이 없었다.
코레아인들은 무엇이든지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감옥
① 감옥 구경
운 좋게 한성부의 감옥을 구경할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감옥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 그 자체였다.
감옥에는 오래되어 더럽기 짝이 없는 가마니가 밑에 깔려 있고,
지붕에는 갈라진 틈이 많아서 외풍이 심해 실내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바로 이곳에 죄수 열네 명이 감금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벽 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는데,
일부는 긴 칼을 목에 썼고 나머지는 손이나 발에 전부 족쇄를 찼다.
죄수들은 불결하기 짝이 없었으며 텁수룩하게 긴 머리는 어깨에 와 닿았다.
이들은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듯 우리가 들어가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들이밀었을 때조차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았다.
모두가 3년이 넘게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2명은 12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한시도 칼에서 해방된 적이 없으며,
수의도 다 해어져 걸레조각이 될 지경에야 새 옷으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먹는 음식으로는 반찬도 없는 밥뿐이며 가뭄에 콩 나는 격으로 채소가 나왔다.
이들은 수감 중 옥사를 당해도 가족들은 아무 소식도 받지 못할 뿐더러
형기를 치르는 동안 면회뿐만이 아니라 편지 받는 일조차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 다만 형졸에게 돈을 찔러주면 이러한 사식넣기가 가능했다
② 태형 구경
뜰의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형틀에 눕혀져
어깨에서 종아리까지 노출한 채 회초리를 맞고 있었다.
회초리의 강도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회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볼기짝에 새빨간 자국을 선명하게 남겼고,
죄수는 살이 에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이구구.."
열두 번이나 거듭된 회초리가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자
비명을 지르던 죄수는 결국 졸도하고 말았다.
그러자 형 집행이 일시 중단되었고 죄수의 머리 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죄수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경련을 계속하다가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었고 용서해달라고 애걸했다.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데 추호도 인정을 둘 수 없는 법,
그에게는 아직 태형 열두 대가 더 남아 있었다.
"철썩! 철썩!"
형 집행이 끝났을 때 죄수의 몸은 이미 인간의 육신이 아니었고
단지 피투성이의 고기 덩어리에 불과했다.
▲ 회초리로 치는 태형은 그나마 가장 약한 수준의 형벌이었다
③ 사형 구경
태형이 끝나자 곧바로 사형 집행이 이어졌다.
대상자는 40대의 산적 두목으로, 양민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흉악범이라고 했다.
수염이 텁수룩하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그는
악취가 풍기고 눈동자에는 벌써 체념의 빛이 어려 있었다.
여윈 몸을 덮은 누더기가 그가 그동안 살았던 감옥이
얼마나 더럽고 불결했는지를 애처롭게 나타내주었다.
사형 준비는 순식간에 끝났다.
방금전 회초리를 치던 사람들이 바로 사형집행인들이었다.
그들은 굵은 막대기로 산적의 주리를 틀었다.
죄수의 안다리에 막대를 집어넣고 형졸들은 온몸의 무게를 막대 끝에 얹었다.
"뜨아!"
죄수가 연달아 토해내는 비명은 듣기에 처절해다.
다리뼈가 부러져 으깨어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으드득!"
아픔을 더이상 표현할 소리가 없는 듯 사형수의 처절한 비명도 멎었다.
사형수의 얼굴에는 핏기가 싹 가셨고 두 입술은 새파랗게 변했다.
눈은 흰자위만 남았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사형집행인들이 막대를 빼내고 다리뼈가 정말로 완전히 부러졌는지를 확인해도
사형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양 죽은 듯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기절한 죄수는 의식을 회복해 신음을 하기 시작했고,
"아아아..!"
집행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죄수의 팔뼈와 갈비뼈 사이에
다시 막대기를 집어넣어 이 뼈들을 차례차례로 부러뜨린 다음,
"두두두둑!"
마지막으로 비단 끈을 사용하여 죄수의 목을 졸라 죽였다.
대단한 사형 광경이었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 칼을 찬 죄수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할 뿐, 놀랍도록 태연했다.
종교와 의료 수준
● 식수와 빨래
① 식수
여인네들은 우물 주위에서 빨래를 하고 채소나 생선도 다듬었다.
그런데 이때 나온 찌꺼기들이 다시 우물로 흘러 내려가 우물물을 더럽혔다.
식수에 대한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이 나라는 콜레라가 만연하고 있다.
② 빨래
쓰레기 더미 사이사이를 꾸불꾸불 흐르면서
온갖 불순물을 실어내어 그다지 향긋하다가고 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하수도나 도랑 가에는,
아낙네들이 줄을 짓고 앉아서 열심히 빨래를 한다.
이들은 더러운 물에 빨랫감들을 억척스럽게 주무르고 문질러,
결국은 두 눈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해놓는 것이다.
빨래는 빨래터 근방에 설치되어 있는 빨랫줄에 널어 말리며,
빨랫감들이 다 마른 뒤에는 거두어 집으로 가져가 다듬이질을 한다.
밤새 홍두깨질로 옷을 두드려주면
빨랫감은 어느새 하얗고 눈부시게 다듬이질이 되어 있다.
그리고 다듬이질 된 옷은 옷장이나 함에 넣어 보관한다.
● 미신 숭배
① 불교와 유교의 현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코레아 사람들에게 잘 맞는 종교입니다."
"이들은 원래 두뇌가 명석한 민족입니다."
"이들이 무기력 상태에서 깨어날 수만 있다면.."
"타고난 탐구심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을 겁니다."
"불교나 유교는 코레아 사람들에게 그다지 영향을 끼쳤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백성들은 이 두 종교를 믿었던 것은,권력자들이 찬미하라고 하니깐 했던 것 뿐이죠."
"불교는 철학적이서, 유교는 너무 냉철하고 현실적이서.."
"이 나라에서는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미신(하느님)숭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② 하느님을 믿는 한국인
"코레아 사람들의 믿음에 의하면 하느님은 전 우주의 통치자입니다."
"코레아의 하느님은 기독교의 신의 개념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편의상 기독교의 신을 하느님이란 말로 그대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절대적인 힘을 소유하고,"
"비와 햇빛을 관장하며, 죄 지은 자들에게 번개나 마마 등으로 벌을 줍니다."
그렙스트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 코레아 사람들은 일신교 신자인 셈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③ 스웨덴에 얼음이 얼지 않는 것은?
한양의 지체높은, 은퇴한 고관과 얘기를 했다.
"잘 오셨습니다. 손님께서는 얼음이 녹지 않은 나라에서 오셨다는데 정말입니까?"
그래서 나는 스웨덴의 겨울과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어떤 곳에서는 겨울 내내 눈 한 번 오지 않고 얼음도 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혹시 귀신들과 사이좋게 지내서인가요?"
그래서 나는 망설였다. 그러자 통역을 맡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통역
"맞아요.
스웨덴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요."
④ 사진 찍기 싫어하는 코레아인들
코레아인들은 사진을 찍으려하면 겁을 먹고 난색을 한다.
그래서 내가 사진기의 초점을 그들에게 맞출 적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는 등 두려워하는 몸짓으로 줄행랑을 쳤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날아간다는 미신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노천시장에서 두 소년은 의외로 웃는 표정까지 지어줬다.
나중에 알고보니, 두 소년은 사진을 찍히면 대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각자 20전씩을 받자, 그 돈을 가지고
바로 옆에 있는 노상 식당으로 향했다.
아마도 예전에 백인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던 것일까?
사진 찍는데 이렇게 순순히 응한 코레아인들은 또 처음이었다.
● 천연두
① 무서운 천연두
코레아인들은 세 명에 두 명 꼴로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었으니,
여전히 코레아에는 이 병이 만연하여 해마다 대규모의 희생자를 내고 있었다.
나를 만난 고관은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스웨덴에서도 호랑이로인한 피해가 큰가요?"
"댁은 얼굴이 멀쩡한데 무슨 수로 마마에 걸리지 않았나요?"
② 천연두 시체
성벽에 세워진 고약한 냄새가 나는 짚더미가 궁금해졌다.
▲ 당시 장면
그래서 가까이 가서 지푸라기들을 헤쳐보니
"뜨아!"
그 안에 시체가 들어 있었다. 대강 짚 더미의 수를 헤아려보니 40개가 넘었다.
어떤 짚 더미에서는 부은 손이, 또 다른 곳에서는 다리 한 쪽이 나와 있었다.
천연두로 죽은 사람의 경우에 이런 식으로 시체를 처리한다고 한다.
▲ 조선시대 천연두에 걸려 죽은 시신은 가마니에 넣어 나무에 매달았다
코레아인들은 이렇게 해야만 천연두를 일으킨 마마신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멀리 달아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신은 넉 달이 지난 후 뼈를 수습해서, 장례식을 치른다고 한다.
● 한의학
① 코레아의 의사
코레아에서는 병이 걸리면 무당이나 도술사의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 점쟁이
그렇다고 한의사의 수준이 높은 것은 결코 아니다.
▲ 무당(여자), 박수(남자)
이들은 돌팔이 의사들보다 더 형편없는 의술을 가지고 있고,
▲ 침을 놓는 의원
처방하는 약들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었다.
② 한의서 처방
나라 방방곡곡에 사용되는 '의학 서적'을 보면 이렇다.
복숭아 씨를 2등분하여 한쪽에는 '해'라는 단어를 쓰고
다른 한쪽에는 '달'이라고 써서 꿀을 발라 다시 붙여
단숨에 삼키면 바로 병이 낫는다고 했다.
개구리 세 마리를 산 채로 삼키면 모든 종류의 복통에 즉효가 있고
병세가 악화될 때는 구운 개(犬)의 네 발을 먹으면 좋다고 했고
만약 어린아이가 대변을 보지 못할 경우
병아리의 내장을 넣고 한 시간 동안 끓인 물을 마셔야 하며
기운이 없는 애들은 마흔 살된 여자의 머리카락을 넣고
충분히 끓인 뜨거운 물을 마셔야 된다고 했다.
배앓이의 치료법이 가장 복잡했는데,
두꺼비 한 마리를 잡아 땅에 눕혀놓고 두꺼비의 배를 세 번 두드린다.
그 다음 황토 속에 두꺼비를 묻고 그걸 불에 태운다.
그렇게 두꺼비가 시커멓게 재로 변하면 가루로 내어 물에 타 마신다.
만약 이 효험이 없을 때는 암탉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버리고
그 속에 나뭇개비 하나를 넣고 배를 꿰맨다.
암탉을 불에 잘 구운 후 나뭇개비는 꺼내버리고 암탉을 복용한다.
이런 것이 소위 코레아의 의술이었다. 1천 년 전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③ 양의학 기피
궁중의사로 있는 독일인 분쉬 박사를 만났다.
▲ 앞에 앉아있는 이가 분쉬
그는 처음 2년 동안에는 겨우 43명의 환자만을 치료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이 독일인 의사를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마지못해 그가 처방한 약을 복용하였다.
"이거 믿어도 되는 지 모르겠네.."
하지만 병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
당장 약 복용을 중단하고 더 이상 진찰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아무튼 다 나았네.."
그러다가 병이 처음 상태로 악화되면 다시 찾아왔다.
"그거 다시 한번 줘보세요."
이렇게 말이다.
분쉬
"코레아인들은 자기 나라의 의술을 깊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분쉬
"코레아인들은 내 처방을 따르는 동시에 자기들의 어처구니 없는 치료법을 실시하죠."
▲ 분쉬가 치료한 환자
분쉬
"만약 병이 나으면 내 처방이 효험을 본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고,"
분쉬
"한방의 치료법에 그 명예를 돌립니다."
▲ 이를 뽑고 있는 여인네
④ 아깝게 세상을 뜬 태자비
독일 의사 분쉬가 말한다.
분쉬
"나는 여기서 아무 하는 일도 없이그저 놀고먹기만 하는데도.."
분쉬
"보수는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돈만 받는 것이 싫어요."
분쉬
"작년 11월에 제 진가를 보여줄 기회가 있었지요."
분쉬
"태자비(순종의 첫 부인)가 갑작스레 앓아누워 그 병이 중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분쉬
"내가 환자를 보겠다고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분쉬
"코레아의 관습이란 것이 아무리 몸이 아픈 여자라 할지라도.."
분쉬
"외간 남자와 얼굴을 맞대고 앉는 것을 금합니다."
▲ 양반가 규수는 이렇게라도 치료를 해볼 수 있었지만..
분쉬
"때문에 내가 여기 와서 한 것은 고작 임금의 발에 생긴 티눈을 치료하는 것과.."
분쉬
"어떤 정승의 얼굴에 난 여드름을 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분쉬
"이 두 가지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대가로
비단 한 필과 은으로 장식된 보석함 두 개를 받았죠."
그렙스트
"아니, 그러면 그동안 태지비는 어찌 되었습니까?"
분쉬
"뻔하지요.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분쉬
"치료한 내의녀 60명은 모두 여자였지요."
분쉬
"재주를 총동원해서 약을 짓고 달이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어요."
분쉬
"급기야 어의를 불렀지만, 환자가 누워 있는 방에는 들어가지는 못하고.."
분쉬
"벽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옆방에 앉아 진찰을 해야했습니다."
분쉬
"가는 비단 줄을 환자의 손목 주위에 바짝 감아 벽 사이에 난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분쉬
"의원이 진맥을 하더니 탕약을 조제하게 하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안타깝게 죽은 태자비의 장례식은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장엄했다.
▲ 태자비 장례식
서구인들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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