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의 스투키에게 / 이주현
안녕? 네가 항상 지켜보는 주현이야. 편지도 오랜만이고 사람한테만 편지를 써 봐서 어색하고 오글거리지만 그냥 쓸게. 2019년 7월 9일 화요일. 네가 내 방에 온 날을 기억해. 장을 본 아빠가 짐이 가득 든 상자와 함께 너를 집으로 데려왔지. 내가 먼저 반긴 건 네가 아니라 그 상자였어. 아빠는 아토피로 고생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공기를 정화하려고 너를 샀다 그랬지만 나는 별 관심 없었어. 내 관심은 오직 상자에 든 삼겹살과 과자였어. 그날 무슨 생각으로 널 내 방 책상 한 구석에 놓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 그냥 날 위해 무언가를 사 주신 아빠가 고마웠고 무의식적으로 날짜를 적은 포스트잇을 네가 심어진 화분 몸통에 붙여 놓았을 뿐이야.
그날부터 대략 한 달 전까지 미안하지만 일 년 넘게 너에게 정말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 넌 살아있는 식물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책상 위의 책, 필통, 거울, 모니터와 같은 무생물과 똑같은 존재였어. 진짜 심각한 건 뭔지 알아? 네 이름도 몰랐어. 무식하게 그냥 보이는 대로 위로 길게 뻗은 가시 없는 선인장 종류라고 넘겨짚었지.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라는 아빠 말씀도 까먹고 두세 달에 한 번 줄 때도 많았지. 네가 건조한 상태를 좋아하는 다육식물이라 지금 살아있는 거지 물을 좋아하는 열대식물이나 관엽식물이었다면 넌 말라 죽었을 거야. 너 하나 건사하지 못할 만큼 바쁘고 힘들었다는 사과 아닌 사과를 늘어놓으며 변명하고 싶지만 그냥 인정할게. 난 그냥 너에게 무관심했던 거야.
이랬던 내가 너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 10월 3일 토요일 아침이었어. 매달 1일마다 물을 주기로 혼자 생각하고 있었지만 또 잊어 버렸고 이틀이나 지났지. 아침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서 갑자기 네가 떠올랐어. 부엌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고 내 방으로 들어와 너에게 평소처럼 무심하게 개체 사이사이로 보이는 흙에 물을 뿌렸지. 그런데 화분 구석진 곳에 내 소지의 반 마디 정도 되는 2개의 새순이 돋아난 놀라운 광경을 본 거야. 정말 깜짝 놀랐어. 언제부터 새순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모르겠어. 분명한 건 다 큰 개체들의 10분의 1도 안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애들이 옅은 초록빛을 영롱하게 빛내며 곧게 피어 있었다는 거지. 난 이걸 보고서야 네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 작고 귀여운 모습에 넋이 나갔던 것 같아. 그날, 오랫동안 네 앞에 앉아 너를 감상했지. 너도 그날 깜짝 놀랐지? 물 줄 때만 잠시 너를 스쳐갔던 내가 반나절 동안 너와 눈맞춤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처음에는 새순만 보았는데 내 방에 쭉 있었던 성체들한테도 점점 눈길이 갔어. 너를 오랫동안 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깨달았어. 넌 그냥 초록색이 아니고 줄무늬 초록색이었어. 진한 초록색과 옅은 초록색이 번갈아 띠 모양을 이룬 아름다운 문양으로 마치 줄무늬 옷을 입은 듯했어. 곧게 뻗은 것도 있지만 휘어진 채 자라는 것도 있었지. 맨 끝은 둥글게 주름이 져 있지. 핸드폰을 꺼내 너를 사진 찍었고 드디어 이름을 알았어. 너는 산세베리아의 일종으로 ‘스투키’라는 식물이었지. 1분도 안 걸려서 알 수 있는 네 이름을 1년이 넘도록 모른 채로 살았다니 너에게 미안했고 참 부끄러웠어.
이제부터라도 너를 잘 키우고 싶어서 ‘스투키’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몇 번이나 입력했는지 몰라. 마치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어. 너를 하나씩 알아갔지. 음이온 배출량이 많아 공기정화식물로 잘 알려져 있더라고. 너의 길쭉하고 두꺼운 잎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다고 했지. 그동안 내 방의 텁텁한 공기를 네가 정화하느라 많이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 고마웠어. 네가 통풍이 잘 되고 적당한 햇빛이 드는 곳을 좋아한다고도 했어. 마침 아무렇게나 놓은 책상 위 자리가 딱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잘 두었다고 내심 뿌듯해도 했지. 네 덕분에 창문을 여는 날이 많아졌고 나도 더불어 신선한 공기도 많이 접하게 되었어. 단단한 줄기가 좋다던데 네가 딱 그래서 내가 잘 키웠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네가 강한 애니까 잘 버텨낸 것뿐인데 우습지? 웃어도 좋아. 또, 네 꽃말은 ‘관용’이었어. 지난 1년 동안의 내 잘못을 네가 용서해 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 뭉클해졌지.
새순을 보면서 하나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 성체는 잎이 오므라져 끝이 하나로 동그란데 새순은 잎이 2개나 3개로 갈라져 있는 거야. 모양이 너무 달라서 같은 종이 맞는지 의심까지 했어. 그런데 검색하면서 새순이 자라면 성체처럼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원통처럼 하나로 길쭉한 성체도 이파리를 가진 시절을 거쳤다니 정말 신기했지. 너는 알면 알수록 되게 흥미로운 아이야. 앞으로 새순이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 중이야. 지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어서 시간이 나기만 하면 널 보는 재미에 빠져 있어. 또 새순이 올라올까 봐 흙을 덮고 있는 장식용 돌멩이도 치웠지. 새순이 꽤 자라서 튼튼해지면 모체와 떼어내서 분갈이도 할 예정이야. 계속 두면 새순이 모체의 영양분을 다 뺏어간대. 너를 다 살리고 싶어. 그래서 화분도 곧 사려고.
항상 주어진 공부만 했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알아 간 적은 거의 없었어. 그런데 너에게 관심이 생기면서 스스로 정보를 탐색했어. 대상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무생물이든 관심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했지. 그래야 흥미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알아 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엄마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 내 무관심이 새순을 태어나게 했다고. 내가 너에게 관심을 많이 두었으면 물을 많이 주고 오히려 죽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씀하셨어. 가슴이 뜨끔했지.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 관심이 많으면 너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니까 더 잘 키울 수 있는 거잖아. 슬프기도 해. 네가 만약 새순을 피워내지 않았다면 널 전과 다름없이 무심하게 대했을 것 같아. 그래도 이번을 계기로 내 주위를 많이 둘러보게 되었어. 여러모로 너에게 고맙고 미안한 점이 참 많아.
넌 식물이라서 이 글을 전할 방법이 없어. 그래도 넌 살아있는 존재니까 내 마음을 느낄 수는 있겠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무관심해도 죽지 않고 잘 버텨내었을 뿐만 아니라 새순까지 피워내서 참 대견해. 네가 1년 넘게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은 채로 나를 지켜본 것처럼 나도 이제 너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잘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어. 같이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