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동서양 관리 선발 제도
中은 6세기부터 시험, 英은 19세기 돼서야 능력 보고 뽑아
입력 : 2023.07.12 03:30 조선일보
동서양 관리 선발 제도
▲ 고대 이집트의 고위 관료 조각상.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올해 국가공무원 7급 공채 경쟁률이 40.4대1을 기록해 10년 연속 하락세라고 해요.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고 하고요. 고용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큰 인기를 누렸던 것도 이제 옛말이 된 것 같아요. 역사적으로 국가공무원 제도는 국내외 상황에 맞춰 계속 바뀌어 왔어요. 동서양에서 각 국가가 어떻게 국가 업무를 할 관리를 뽑았는지 알아볼까요?
근대 이전의 관리 선발 제도
국가 공무원은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어요. 강력한 왕들은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국가 공무원인 관리를 임명했어요. 4대 문명 발상지였던 고대 이집트는 관료제를 만들고 그 꼭대기에 있는 재상을 뽑아 아래 관리들을 부리도록 했어요. 이들은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고 인구를 조사하는 등 국가 운영의 핵심이 되는 일을 맡아 했어요. 고대 로마에서는 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황제가 황족이나 귀족이 추천하는 인물을 관리로 임명해 인구 조사, 세금 징수, 재판 등 일을 담당하도록 했대요.
중세 서양에서는 '봉건제'가 시행됐어요. 봉건제는 주군에게 토지를 받은 제후가 충성을 약속하면서 만들어진 '주종(主從) 관계' 속에서 운영돼요. 서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관계죠. 따라서 제후들은 주군과의 계약에 묶여 있을 뿐 국가를 위해 관리로서 봉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서양에서는 16세기 이후 절대왕정이 등장하면서 왕권이 강력해지고 관료제가 등장했어요. 관리들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행정과 재정을 담당하며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됐어요. 하지만 관리 대부분이 추천을 통해 임명됐고,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기도 했어요. 서양에서 능력에 따라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는 19세기에 와서야 등장해요.
한편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능력 위주의 관리 선발 제도가 발전했어요. 중국은 6세기 후반 수나라 때부터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는 과거제를 운영했어요. 이후 중국 거의 모든 왕조에서 과거제를 실시했는데, 이는 동아시아 문화권 내 우리나라와 일본·베트남까지 전파됐죠.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적 소양을 평가해 관리를 뽑는 것이 일반적인 관리 선발 방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선진적인 관리 선발 제도를 완성하고 운영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요.
식민 통치 시기 영국 국가 공무원
영국은 17세기 명예혁명 이후 입헌군주제가 시작되면서 국가 공무원 제도가 자리 잡았어요.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국왕권을 제한하면서 나라의 일을 맡아서 할 전문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영국에서 국가 공무원 제도가 대규모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 개척 시기였어요. 영국이 세계 여러 곳에 식민지를 세우면서 제국을 운영할 공무원을 양성하고 선발할 필요가 생겼어요.
식민지 운영을 맡았던 동인도회사는 런던에 동인도회사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출신에 따라 관리가 되는 길이 보장된다거나 실적보다는 재산 정도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 폐단이 존재했고 매관매직도 있었어요. 19세기 중반 공무원 제도 개혁이 여러 번 이뤄지며 능력과 성과 중심의 관리 제도가 법적으로 완성돼 갔어요. 최근 영국은 다양한 배경의 공무원을 뽑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국가 공무원을 채용하고 있다고 해요.
불평등 상징된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프랑스는 최근 공무원 선발 제도와 관련해 큰 논란이 있었어요. 프랑스 교육 제도는 대학 평준화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그러는 한편 능력주의에 근거해 소수 엘리트 집단을 육성하는 학교 '그랑제콜'도 있죠. 그중 국립행정학교(ENA)는 2차 세계 대전 직후 샤를 드골의 제안으로 설립됐어요. 전후 프랑스 재건과 성장을 위한 정부 역할이 커지면서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 그룹을 양성할 필요로 만들어졌죠. 신분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능력을 바탕으로 평등하게 테크노크라트를 육성한다는 목표도 있었어요.
ENA는 다른 일반 대학이나 그랑제콜을 졸업한 학생이 엄격한 선발 절차를 거쳐 진학하고, 졸업 후에는 프랑스 정부의 간부급 관료로 일정 기간을 의무 근무해요. ENA를 졸업하면 25세쯤 되는 나이에 고위 관료가 되는데, 말단 공무원이 30년쯤 근무해야 오를 수 있는 높은 자리예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포함해 전·현직 프랑스 대통령 4명,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 등 총리 7명이 ENA 출신이에요. 프랑스 최대 통신 기업과 시중 은행 최고경영자도 이 학교를 졸업했대요.
이렇게 ENA 출신이 정부 고위 관직과 재계 핵심 위치를 차지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상류층 출신 입학생이 늘어나자 ENA는 불평등의 상징이 돼 버렸어요. 국가 공무원 선발을 위해 새로운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2021년 마크롱 대통령은 ENA 폐지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폐지와 존속을 두고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렴하고 유능한 관리 '청백리'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과거제로 유교적 소양과 업무 능력을 갖춘 관리를 선발했어요. 특히 도덕적으로 청렴하고 유능한 관리를 뽑아 상을 줬는데, 조선 시대에는 이런 관리를 '청백리'로 불렀어요. 조선 역사상 200여 명이 청백리로 선정됐는데, 조선 시대 영의정을 가장 오래 지낸 황희 정승과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이항복이 대표적인 청백리예요.
조선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는 이렇게 관리의 능력뿐 아니라 도덕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19세기 근대화 시기에 이르러 변화된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공무원의 역할이 대두됐고, 서양과 비슷한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개혁 때 과거제를 폐지하고, 이후 추천을 통해 후보를 받고 경제·법학·정치학·외교 등 시험을 보게 해 관리를 선발했답니다.
▲ 동인도회사 관리(가운데)의 행렬을 그린 그림. /브리태니커
▲ 동인도회사 대학. /영국 헤일리버리
▲ 1800년대 영국 세금징수원이 세금을 걷기 위해 한 가정을 방문한 모습.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 함흥에서의 과거 시험을 그린 조선시대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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