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문을 올라 동남각루 가는 길이 보인다.
팔달문시장은 수원의 본거지이며, 중심상가다. 정조대왕께서 화성을 쌓고 남쪽에 팔달문을 지으며 상권을 조성하고자 전국의 상인들을 모이게 하여 생긴, 이른바 왕이 만든 시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말로는 국립시장 쯤 되지 않을까. 그런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보니 지금도 그 맥을 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곳에 가면 꼭 사야할 물건이 없어도 그냥 돌아다니며 구경만 하여도 좋다. 왁자지껄 세상 풍경도 보고 사람 사는 냄새가 전해온다. 그러다가 시장기가 찾아들고 점심이라도 먹을라치면 주머니 손 만져가며, 보기 힘든 시장안의 2천 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그리고 이빨 쑤시며 으시대고 나오면 갈비 먹은 귀족과 뭐가 다르랴. 마음은 더없이 부자가 되는 것이며, 발길은 어느덧 수원천을 향한다.
전에는 지동교 위 난간을 붙잡고 서서 물속에 노니는 잉어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높아진 난간석 탓에 옛날처럼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수원천 아래로 내려가 물길을 따라 걷노라면 곳곳에서 유영하는 잉어들을 만날 수가 있다. 물은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맑고 깨끗하며, 그런 물고기들을 볼 때면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져 그들 속에 빠져들고 만다.
이런 평화로운 낙원이, 생명을 살리는 젖줄과도 같은 깨끗한 천혜의 물줄기가 어디서 왔는고? 물에 비친 그림자도 거울처럼 다가오며 화두를 던진다. 돌다리 지나는 물소리도 속삭이며, 무지개 꽃피우는 화홍문 지나 광교저수지, 상광교 골짜기 거슬러 올라 쫄쫄쫄 흐르는 그곳 ‘절터약수터’ 별처럼 반짝이는 은빛 물줄기가 이내 마음을 흔든다. 그렇다! 누가 뭐래도 수원천의 발원지, 사시사철 마를 줄 모르는 옹달샘 하나, 더 가까이 보려고 남수문 계단을 오른다. 그러나 건물에 가려 광교산은 볼 수가 없다.
동이포루 앞의 솔밭 길
그때 눈길을 유혹하는 것은 동남각루였다. 이곳 남수문에서 아마 그곳으로 오르는 길이 있어 보이며,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동남각루가 이날따라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뭐란 말인가. 약간의 돌계단도 오르며, 숨은 오솔길 같은 그곳을 오르니 동남각루는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화려하다.
이곳은 성곽의 비교적 높은 곳에 있어 병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또한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 밖의 시야가 넓은 곳이라 전하고 있다. 아래 쪽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해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그곳, 나무계단을 2m쯤 올라가 보지만 사방으로 문이 막힌 채 총구만 숭숭 뚫려있다.
그러나 목재로 지어진 건물은 단청도 곱게 꾸며져 있으며, 단순히 병사들의 초소역할 뿐만 아니라 화성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곳에서부터 예상치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냥 한번 각루나 살펴보고 가려던 참이었지만 마음이 곧 변한 것이다. 성곽을 따라 산책길이 펼쳐지며 누구라도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봉돈은 마치 불란서에 온 기분도 든다.
한참을 가자 ‘동이포루’ 앞에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더 마음을 끈다. 산책하다가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으며, 곳곳에 이야기를 나누는 저들의 여유로운 모습도 보기 좋다. 성곽 길은 그렇게 ‘봉돈(烽墩)’이 나온다. 일반적인 봉수대는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위에 별도로 만들었지만, 그와 달리 이곳은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화성행궁과도 마주하여 신풍루에서 동쪽 정면으로 바라보며, 봉화의 상황을 감시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적인 시설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도 하며, 성안 길은 그렇게 봉돈을 지나 동이치, 동일치 등 여러 곳의 포루를 지나는 가운데 창룡문에 이른다. 여기서 하차했다.
마침내 창룡문이 보이고,
그렇지만 연결 길은 동북노대, 동북공심돈, 동장대(연무대), 동암문, 동북포루, 북암문, 동북각루(방화수류정), 화홍문, 동북포루, 장안문, 서북각루, 서장대, 서암문, 서포루, 서남암문, 서남각루(화양루), 남포루, 남문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성의 성곽모습은 버들잎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며, 그동안 와보지 못했던 이곳 성 길을 돌아보니 수원화성의 모습도 이제는 한눈에 그려진다. 정조의 예술작품이 틀림없다. 어느 화가가 이토록 거대한 풍경화를 감히 그릴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그저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