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전 보성에는 코끼리가 살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있다.
상상想象이란 코끼리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 옛날 중국 남부에는 코끼리들이 살았다.기후변화로 코끼리들은 멸족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땅속에서 코끼리 상아와 이빨.갈비뼈등이 발견된다.코끼리가 지금은 없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와 발굴되는 뼈를 보고 코끼리의 생전 모습을 생각해 볼수 있다.그게 상상이다.
이제 보성군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코끼리 이야기를 상상하여 코끼리섬 장도에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창조해야 할때이다.
한양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보성 장도로 유배온 코끼리의 이동경로를 생각해본다.태어난 고향인 인도네시아를 떠나 대항해길에 오를 때는 암수한쌍 제 짝이 있었다.일본에 도착하여 조선으로 올때는 짝을 잃고 혼자서 현해탄을 건넌다.그때 일본 사신들은 일본 승려들이었다.
일본 막부정권에서 한시를 쓰고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고 외교문서를 작성할수 있는 사람들은 일본의 선종스님들이었다.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일왕사 정사와 부사는 모두 일본 스님들이었다.코끼리는 일본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현해탄을 건너 부산포에 도착했을 것이다.
부산에서 한양까지 코끼리를 끌고가는 길도 보통일이 아니었다.살인죄를 저지르고 한양에서 전라도 보성까지 오는 길도 상상이 안된다.벌교에서 배를 타고 노루섬까지는 어떻게 이동이 가능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코끼리를 태울 큰 배가 없어 코끼리가 해엄치게 하고 여러척의 배가 코끼리를 묶어 좌.우에서 호위해서 건넜다고 한다.보성 장도에 도착한 코끼리는 기구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슬픔에 젖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그 당시 백성들의 삶도 풍족하지 못했는데 하루에 콩 4.5말 물 70리터 이상을 먹어대는 코끼리를 부양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전라도 관찰사가 다시 상소를 올린다.,,길들인 코끼리를 장도에 방목하는데 수초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상소문을 읽어본 태종은 코끼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육지에 내보내 기르게 하였다.벌교.낙안.순천등지에서 돌아가면서 코끼리 시중을 들었을 것이다.
열대우림이 고향인 코끼리에게 겨울의 찬바람과 수초 먹이는 커다란 고역이었다.
세종 2년 전라도 관찰사가 다시 상소문을 올린다.,,코끼리란 것이 유익한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도내 네곳의 지방관에게 명하여 돌려가면서 먹여 기르라 하였으나 그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도내 백성들만 괴롬을 받게 되니 청컨데 충청도와 경상도까지 돌아 가면서 키우게 하소서.,,
코끼리 때문에 전라도만 개고생하니 옆동네들도 고생을 나누어 갖게 해달라는 상소였다.세종 2년차 이지만 권력은 여전히 태종이 갖고 있던 때였다.전라도 관찰사의 청을 허락한 이도 세종이 아닌 태종이었다.
태종의 명에 따라 보성의 코끼리는 충청도 공주로 보내졌다.3개월이 지나지 않아 충청도 관찰사가 또 하소연을 하였다.,,공주에 코끼리를 키우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의 열배가 넘습니다.하루에 쌀 두말.콩 한말씩 이온즉 1년에 소비되는 쌀이 48섬이며 콩이 24섬입니다.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니 이익은 없고 해만 됩니다.다시 전라도 섬으로 돌려 보내소서.,,
세종은 충청도 관찰사의 청을 들어 주면서 코끼리에 대한 당부도 하였다.물과 풀이 좋은 곳에서 키우고 병들어 죽게 하지 말라.,,
세종의 명을 받들어 기구한 운명의 코끼리는 공주에서 보성 장도로 다시 옮겨왔다.
마른 풀과 수초밖에 없는 장도에서 배고픔과 외로움의 나날을 보냈다.
고향 인도네시아를 떠나 일본을 거쳐 부산포.한양.보성장도를 거쳐.충청도 공주로 가서 한많은 코끼리의 삶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