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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감성
성경본문 : 에스라 3:8-13
이스라엘의 교육은 특이합니다.
종교와 교육이 일치된 교육입니다. 그들의 교육은 자기들의 민족종교인 유대교(Judaism) 기반 위에 가정과 학교가 힘을 합하여 자녀교육을 실천합니다. 한마디로 가정과 교회와 학교가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교육입니다. 이런 교육으로 지금 온 세계가 불경기를 맞아 허덕이는 현실에서도 그들은 불경기를 모르고 지냅니다. 모든 나라들의 은행이 흔들리고 국가들이 부채로 시달리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만큼은 은행이 한 곳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국가 부채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욱이나 그들은 아랍 국가들과의 오랜 전쟁 상태에 놓여 있는 처지입니다.
아랍인들의 테러로 수시로 희생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중에서 번영을 계속하고 있을까요?
다시 말해 그들의 탁월한 교육시스템 탓입니다.
그들은 교육의 중심에 “헤브루타 교육”이 있습니다.
헤브루타는 한 마디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깊어집니다. 거기서 더 깊어지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면 논쟁이 됩니다.
헤브루타가 어떻게 우수한 유대인들을 길러낼까요?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오늘은 선생님께 무엇을 배웠니?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유대 어머니들은 다릅니다. “오늘은 선생님께 무엇을 질문하였니?” 하고 묻습니다.
질문 많이 하는 어린이가 똑똑한 어린이입니다.
질문이 많은 곳에 발전이 있습니다.
질문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만들고 토론과 논쟁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상대의 말을 들으며 그에 대해 답할 말과 논리를 치열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견해와 다양한 시각을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헤브루타의 힘입니다.
친구와 가족과 성도 간에 대화가 필요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건강해지고 든든해집니다. 건강한 감성이 조성됩니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은 이성적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슬퍼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성을 잘 조절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감성의 조절이 어려워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감정의 폭발로 인하여 엄청난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감성의 표현은 좋은 인격과 신앙과 밀접합니다. 오늘 스룹바벨 성전을 짓는 상황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감성을 점검하고 채우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감사하는 감성
본문 11절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찬송하며 감사하며 노래했다는 것입니다. 찬송과 감사는 쌍둥이이며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심에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한 조건이 인간이나 물질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감사의 이유가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영원토록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서도 불평만 하는 사람도 있고 감사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못하고 감사만 해도 인격과 신앙과 삶의 변화와 성숙이 됩니다. 좋은 것들이 따라 옵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인생과 미래와 영원이 달라집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어 집니다.
감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알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떤 과학자가 사람 키 높이의 선인장에 초음파 진단기를 연결하고 파장의 변화를 측정했습니다. 이 실험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첫째는 한 사람을 선인장 옆에 세워놓고 “이 선인장을 콱 잘라버려.”라고 계속 말하도록 하고 선인장의 변화를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선인장이 갑자기 급격한 파장을 나타내며 몹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둘째 실험은 반대로 선인장에게 “예쁘다.”는 말을 계속 들려주며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곡선이 나타나며 선인장이 안정감을 보였습니다.
하다못해 식물도 사람의 언어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사람은 동물과 식물과는 달리 저절로 성장하지 않고 칭찬을 들을 때 성장하는 법입니다.
칭찬은 사람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그 능력을 배가시키는 영양제와 같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도 배우자들끼리 칭찬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잘못을 지적했다면 두 번 이상 칭찬하고,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은 칭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칭찬은 천국의 언어가 되고 그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병원에서는 아예 하루에 세 번씩 주위 사람들을 칭찬하자는 취지에서 “찬찬찬(贊贊贊)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배우자를 칭찬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부부 사이에 숨겨진 엄청난 칭찬거리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외모만 가지고 칭찬한다 해도 눈, 눈썹, 눈동자, 이마, 머리, 머릿결, 헤어스타일, 귀, 귓불, 뺨, 턱, 코, 입술, 윗니, 아랫니, 인중, 살결, 목, 목덜미, 어깨, 팔, 팔꿈치, 손, 손목, 손등, 손바닥, 손금, 손가락, 손톱 등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만 120가지가 넘습니다.
또 사람이 갖는 얼굴 분위기와 표정으로 5만 가지 이상을 칭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얼굴 분위기가 다양한 사람을 가리켜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하고 표정이 변화무쌍한 사람을 가리켜 “오만상을 찌푸렸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얼굴에 대한 칭찬도 찾아보면 천 가지가 넘고 표정에 대한 칭찬은 5만 가지가 넘는다는 말입니다.
여하튼 배우자의 장점은 찾을수록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죽는 날까지 칭찬거리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은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감성이 건강한 감성입니다.
이제 불평을 버리고 감사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눈물의 감성
본문 12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70년 전에 파괴를 당했던 성전 터였기 때문에 그곳에 다시 기초가 놓였다는 것은 가히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초가 놓인 것을 보고나서 뜻밖에 대성통곡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옛 솔로몬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기초가 다시 놓인 것을 보면서 그들은 솔로몬 시대의 영화가 죄로 말미암아 붕괴되었음을 새삼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옛 성전과 비교해 지금의 기초는 보잘 것 없이 작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백성들은 바벨론 땅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연로한 노인들의 감정을 대성통곡으로 폭발케 하였습니다.
불행에 대하여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음을 선고 받고 통곡하였고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한 것을 생각하고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장차 망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일본의 여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는 ‘빙점(氷点)’ 이란 제목의 소설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일본에서는 드물게 보는 크리스천입니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녀가 크리스천이 된 것은 지독한 질병 중에서였습니다. 20대 나이에 결핵과 척추카리에스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게 되면서 성경을 접하고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20대에 한창 나이에 남다른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고통이 오히려 축복이 된 셈입니다.
미우라 아야꼬가 애송하였다는 신앙 시가 있습니다.
작자 미상의 시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다.
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다.>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슬픔은 자기를 정화시켜 주기 때문에 절대 필요한 감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눈물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전주곡입니다. 우리는 국가와 교회와 이웃의 불행에 대하여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이웃의 죄를 보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주님이 주님의 병에 담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56:8) 눈물이 주님의 병에 차야 응답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를 짓거나 강퍅한 사람들은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아프고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죄와 은혜와 공감하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런 눈물이 너무 메마르고 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를 보고 경건한 어른들이 흘렸던 눈물을 이 시대에 함께 흘리는 눈물의 감성이 있는 건강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기뻐하는 감성
본문 12-13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오늘의 세상은 대성통곡하는 소리와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합니다. 분간하기가 십지 않습니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세상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의 기초를 보고 노인들은 대성통곡하고 젊은이들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통곡과 웃음의 이유가 있고 다 합당한 것입니다. 누구를 비웃거나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를 손으로 성전을 짓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했고 기뻐하였습니다.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찬양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 장애입니다. 찬양할 때 믿음과 은혜는 더 커지고 충만케 됩니다.
영적 벙어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크게 감사하고 찬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면 기쁘고, 기뻐하면 감사한 것입니다. 조건이 아니라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길 때 얼마나 기뻤던지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로 기뻐 뛰었습니다.
부인 미갈의 멸시와 조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이처럼 순전하게 기뻐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며 찬양할 때 영육이 건강하고 마귀가 물러가고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케 됩니다. 좀 방정맞게 보이고 체신이 없어 보여도 기뻐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선풍적으로 일하고 있는 라인하르트 본케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는 40명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 집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1만 명 들어가는 경기장을 예약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그 때 그가 소리쳐 말했습니다.
“큰 사람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는다.”
결과는 운동장이 그득 찼습니다. 오히려 넘쳤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20년 전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에 100만 명이 회심하리라.”
이 말씀은 20년 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곳곳을 다니면서 대형 집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곳곳마다 수십만 내지 최대 160만 명이 모여 그의 복음의 메시지를 들으며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오는 역사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그린밸리에서 집회할 때 대형 텐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심한 태풍과 먹구름이 동시에 무섭게 몰려 왔습니다.
대형 텐트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무서운 위력을 가진 태풍이었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태풍을 꾸짖었습니다.
“네가 만일 이 텐트를 무너뜨리면 나의 하나님께서 이보다 세 배나 큰 텐트를 세우실 것을 믿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태풍과 먹구름은 물러가라!”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몰려오던 구름이 칼로 자르듯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텐트를 가운데 두고 피하였다가 다시 모였다가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여자 사업가 중에 오스틴이 있습니다. 여자 속옷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미국에는 몸집이 큰 사람이 참 많습니다. 승용차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속옷을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사람이 있습니다. 창피하다고 엑스라지는 안 팔리는 것입니다. 제일 큰 옷을 창피하여 달라는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오스틴은 늘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
오스틴은 가장 큰 팬티나 속옷을 퀸스 사이즈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왕 사이즈라는 것입니다. 여왕은 몸집이 큰 사람으로 연상되게 하였습니다.
몸집이 큰 여자들이 자기들이 여왕 사이즈인 줄 알고 불티나게 사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초라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곁에는 늘 지혜를 제공하는 늙은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왕은 고마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평생 나를 위하여 일하여 주었는데 떠나게 되니 서운한 데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지.”
그 장수가 말했습니다.
“폐하! 점령하신 나라 가운데 한 나라를 제게 주십시오.”
주변에 있던 대신들이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무례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한 나라를 가져라. 그대는 내가 한 나라라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대에게 나라를 하나 준다. 가져라.”
큰 사람은 초라한 발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작은 성전을 지으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크신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고 높이 찬양하는 건강한 감성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감사와 눈물과 기쁨의 감성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따뜻하고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건강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