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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 인명진 목사
여러분은 어느 날 갑자기 외로움과 고독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마음이 쓸쓸해지고 눈물이 핑돌며 울 적하고 가슴이 허전하고 세상에 나 혼자라는 적막감, 아무 것도 좋은 것이 없고 세상이 다 귀찮고 손가 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외로움과 고독의 병을 앓아보셨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누구든지 홍역을 앓듯이 한번쯤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발표에 의하면 남자는 15%, 여자는 25% 정 도 이런 증상을 갖는다고 합니다. 고독이라는 병은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고독을 견딜 수 없어서 삶을 포 기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독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밀려오듯이 고독이 몰려옵니다.
또 하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쓸쓸하고 외로워할 일도 고독해야 할 일도 울적할 일도 눈물을 흘릴 일도 없는데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옆에서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 이나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이 있고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 이 있는데도 고독한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를 안다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볼 텐데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자주 그런 경험을 합니다. 계절적으로는 여름에 하루 중에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에 괜히 눈물이 나고 울적해집니다. 어딘가로 무작정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제가 생각해도 제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주위에 좋은 사람도 있고 명예도 있고 보람있 는 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울적하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런 경험 을 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목사님도 그런데 하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너무나도 심한 고독감에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의외의 사람인 바로 열왕기 상 19장의 엘리야 선지자였습니다.
성경은 아주 자세하게 엘리야가 얼마나 깊은 고독과 절망 가운데 몸부림 쳤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9장 4절에 보면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 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삶의 의욕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고 고독과 절망 가운데 하나님 앞에 죽기를 간청하 고 있는 엘리야를 보게 됩니다. 이제는 더 살기 싫다고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의 마음이 얼마 고독하고 쓸쓸했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가 죽기를 바랄만한 그 어떤 이유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울증은 이유가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엘리야는 이런 절망과 고독에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당대의 선지자였으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 지도자로 명예도 있었고 많은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제자 중 엘리사는 스승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했는지 스승 엘리야의 겉옷이라 고 입고 싶어 엘리야에게 겉옷을 달라고 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성이 하늘에 닿았으며 모 든 백성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는 선지자이므로 그가 당하는 외로움과 고독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독과 절망에 울부짖으며 죽여 달라고 할 수 있지만 엘리야는 그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입니다. 그런 증 상이 있더라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엘리야는 고독에 빠져 죽고 싶다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엘리야가 이런 입장이 아닙니다.
바로 며칠 전 엄청난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 가 잘 알고 있듯이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엘리야 선지자 혼자서 대결을 해서 이겼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승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큰 승리를 얻고 하나 님의 기적을 생생하게 체험한 엘리야는 용기백배하고 당당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 렇게 고독해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적을 본 사람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셔 서 이기게 하셨는데 왜 고독하고 울적하고 죽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고독과 외로움에 못견뎌하는 오늘 의 엘리야의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절망과 고독을 느끼며 살 아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고독과 절망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고독과 절망의 수 렁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설사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 라는 시가 있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처럼 우리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고독과 절망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독입니다.
우리가 다 경험하듯이 육신이 연약하여 병 중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도 따라서 아프고 슬프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의 아픔이 우리를 울적하게 합니 다. 그래서 우리가 앓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잘 보살피고 위로해야 합니다.
둘째로 정신적인 고독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슴 속 깊이 몰려드는 고독, 인생 이 무엇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내 인생은 무엇인가 하다가 인생이 허무해지 고 나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헤아릴 수 없는 고독의 늪에 빠져들게 됩니다. 견딜 수 없 는 인생의 아픔입니다.
다음으로 영적인 고독이 있습니다.
흔히 가인의 고독이라고 말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무 런 문제가 없는데도 산더미와도 같은 고독이 밀려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많은 것을 가졌지만 고독하고 외로웠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인정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재로 인한 심연의 고독이 영적인 고독입니다. 결국 가인은 영적 고독 때문에 아우 아벨을 죽이는 끔직한 일을 저지르게 됩 니다. 우리들 인간은 영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영 물이 되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고독의 자리 빈자리가 우리의 심연 가운데 있습니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독의 깊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화려한 공연을 하고 박수갈채를 받고 돌아서서 고독함에 마약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인간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고독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갈멜산에서 위대한 승리 후의 고독, 3년 동안 비가 안오다가 비가 오게 된 기적 후의 고독이 하나님 앞에 죽기를 간청하는 절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명예나 재물이나 권력으로 메울 수 없는 우리의 삶 저 밑바닥 실존으로의 공허 함 빈자리 그것이 영적인 고독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고독은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고독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 나는 이제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으니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
고독 과 절망 가운데 절규하는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달래십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들에게 돌에다 구운 과자와 물을 준비하셔서 일어나서 먹어라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네가 할 일을 다 하지 못할 까 염려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밤낮 40일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엘리야가 앞으로 해야 할 일, 엘리야게 게 부탁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호렙산에서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 첫째가 인생의 고독은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설 때만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고독은 하나님을 만날 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 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층 저 아래 고독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산 호 렙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만이 우리의 고독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 선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그가 해야 할 일을 말씀 하십니다.
첫째로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 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너 자 신에게서 눈을 떼서 밖을 보고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독은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집착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역사를 바라 보고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거기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을 때 외로움과 고독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과 씨름하고 자신에게서 매달려있는 한 고독의 수렁에서 나올 수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제 너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라 역사를 바라보고 세 상을 바라보라고 아직 네가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으로 바로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칠천 명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와 더불어 인생을 살아 갈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자 있지 말고 그들과 더불어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주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를 염려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이 있는 한 우리는 외로울 수 없습니다.
칠천 명의 바알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는 것입니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너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너를 위해 기 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고독은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집착할 때 생깁니다. 주위를 생각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내 주위의 아름다운 사람을 생각할 때 외로울 수 없고 고독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때로는 절망과 고독에 사로잡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이 귀찮고 나 혼자라는 절망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절망과 회의가 우리 생의 밑바닥을 흔들 때가 있습니다.
그 옛날 로뎀나무 아래 앉았던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북녘의 아직도 굶주리는 우리 동포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한 끼의 밥을 먹지 못하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있는데 언제 고 독할 새가 있으며 언제 외로울 새가 있습니까?
이들을 보지 않고 나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고독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 얼마나 많은 귀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따뜻하게 잡아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외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칠천 명이나 남아 있는 신앙의 동지가 있는데 왜 외로워하느냐 엘리야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 옛날 실망과 좌절과 외로움가운데 수렁에 빠져있는 엘리야를 불러 세우시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고독할 새가 없다 무엇 때문에 외로워하느냐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고 너 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절망에 빠져 있느냐 눈을 들어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라”고 오늘 아침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말씀으로 떨쳐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외로울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망할 틈이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