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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 고후 1: 20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고후 1: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경솔하게 예 하고 아니오 하는 분이 아니다. 그는 불신실하신 분이 아니셨다. ‘저에게는 예만 되었다’는 말은 ‘오직 저에게는 예만 있었다.’라는 뜻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예’ 하시고 끝까지, 죽기까지 그것을 지키셨다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실하셨다.
1]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미쁘시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는 사업의 거래나 공적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신실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는 표현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란 뜻이다.
구약에서 '신실하신 하나님'(*, 하엘한네에만)은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하나님의 명칭이기도 하다.
* 신 7: 9 -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사 49: 7 -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따라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사 2: 2-4 –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 미 4: 1-4 – 1 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 눅 1: 68-79 –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 고전 1: 9 -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것이 바울의 신실함의 근거가 된다면 그의 신실함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은 매우 효과적이고도 담대(膽大)하게 자신을 변증하고 있다.
2]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말은 그의 여행 계획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까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13절).
이렇게 볼 때 바울은 그의 사역을 수행하면서 매사에 하나님의 종 된 자로서 신실함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후 1: 19 너희 가운데 전파된 -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다. 예수님에게는 ‘예’와 ‘아니오’ 사이에 동요가 없다. 모든 약속에 대한 ‘예’만 있다.
만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약속을 모두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독생자를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가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사실이나 그가 이 세상에서 지내신 사실, 이 모두가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의 보증이 된다는 말이다.
1]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실루아노는 '실라'(*)의 로마식 이름이다.
* 살전 1: 1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 행 15: 22 -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에 동참했던 동역자이자 친구였다.
* 행 15: 36-41 –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2]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가 고린도에 복음을 증거한 것은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기간이었다. 먼저 바울이 복음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 행 18: 1-4 –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나중에 합세하였다.
* 행 18: 5 –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이들 세 사람은 고린도에 1년 6개월간 머물면서 교회를 세우고 세례를 베풀었다.
* 행 18: 7-11 –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 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 세 사람의 삼중 증거에 의해 전해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결코 모순과 우유부단함과 이중성이 없음을 단언하고 있다.
3]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여기서 '되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고넨'(*)은 강조적 현재 완료형(Intensive Perfect)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현실로서 동일한 효력을 나타냄을 보여준다(Harris).
고후 1: 20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하나님의 약속’은 구원의 약속 곧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의 약속이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약속이다.
그것은 영육의 복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이며 아멘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아멘은 그것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so be it). 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이다.
자신이나 상대방이 말한 것에 대하여 동의하고 확증하는 말이다.
그 말은 하나님의 뜻과 지혜에 복종하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표현이다.
1]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당신의 종들을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자이다.
* 롬 1: 3 -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 갈 3: 16 -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스라엘의 전 역사가 지향해 온 목적을 완성하신 분으로 모두가 의롭다 함을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 롬 10: 4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러한 사실은 구체적으로 예수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실현되었고, 성도들과 교회는 그것의 증거이다.
* 눅 5: 17-26 –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 눅 7: 18-23 –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가 있는 말로 구약성경에서도 사용되었다.
* 신 27: 15-16 –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렘 11: 5 -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 시 41: 13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서도 예배 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성도들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아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 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표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된다.
바울의 헌신적인 사도적 수행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아멘'의 한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