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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 34. 바리새인들 - 마 22: 37. 하나님을 사랑하라.
4. 가장 큰 계명 ( 22: 34-40. 막 12: 28-34. 눅 10: 25-28 )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부활 문제로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던 사두개인들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계명 문제로 논쟁을 걸어왔다.
천국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를 거론했듯이 율법과 계명의 중요성을 따지기 좋아하는 바리새인은 '가장 큰 계명' 문제로써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신 6: 4-5와 레 19: 18을 통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을 드러내 주셨다.
마 22: 34. 바리새인들 -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
바리새인들은 예수와 사두개인의 논쟁에 대한 결말을 듣게 되었다.
1]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는 말을 들었고, 소수는 그 자리에서 직접 보았다.
사두개인들은 벙어리가 되어 물러갔다. 그들로서는 예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패(敗)하지 않은 것이 일단은 안심이었다.
헤롯 당원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물었던 것은 유대의 정통성에 벗어나 있는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시켰던 이론들로서 예수께서 이 논쟁에서 패했다면 정통성이 있다고 믿었던 바리새파도 함께 넘어지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자기들이 예수를 넘어뜨리면 정통성은 더욱 확실해지고, 예수를 신임하나 율법을 모르는 무식한 백성들로부터 예수를 분리시켜 처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 요 7: 49 -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모였다'(*, 쉰에크데산)에 '에피 토 아우토'(*)가 번역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행 2: 1처럼 '같은 장소'를 의미한다.
* 행 2: 1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이 문구는 사 2: 2의 인용이며(26: 3에 반복사용), 원수들이 그리스도를 잡아 죽이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Tasker).
* 사 2: 2 -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2]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바리새인들은 총회로 모이는 것처럼 무리를 지어 모였다.
그들의 대책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이 그들이 짜낸 유일한 묘책(妙策)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모여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려는 것을 보면 그들의 적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알 수 있다.
마 22: 35. 율법사의 질문 -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 그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
율법사는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가르치는 사람이다.
마가복음에는 ‘서기관’이라고 표현했다. (막 12: 28).
1]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가는 '한 서기관'(*, 그람마튜스)으로 기록했다.
* 막 12: 28-34 – 가장 큰 계명 –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율법사(*, 노미코스)는 '교법사'(*, 노모디다스칼로스)로도 불리는데, 율법의 해설자이고 가르치는 박사들로서 넓게는 서기관에 속한다.
그들은 율법에 정통한 신학자들이며 법률 전문가들이었다. 당시에는 성경뿐만 아니라 성경 해석과 유전들이 방대했고, 실제 생활의 민사(民事)적인 일들에 적용하는 데는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했다.
막 12: 28-34에는 그 서기관이 질문을 하는 것을 책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두개인들을 논박하여 물리치신 것을 기뻐하며 나왔으므로 대단히 우호적인 분위기이다.
마태는 바리새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도를 표현하고 있고, 마가는 그들 중에서도 내심 예수께 호의적인 소수가 예수의 사두개파를 이기신 것을 기뻐하고 자기들과 일치하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물었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눅 10: 25-37에는 율법사가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의 입으로 두 큰 계명을 말한다. 그리고 유명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연결된다.
* 눅 10: 25-37 –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 –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마 22: 36. 큰 계명 -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모세 오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들은 그 수가 많다.
그 많은 법들 중에 어느 계명이 큰 계명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관심 있는 문제이었을 것이다.
1] 선생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가복음에는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이다. 이는 동일한 의미이다.
* 막 12: 28 -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본문의 '크다'(*, 메갈레)는 말이 정도나 계급에 대하여 사용될 때 최상급으로 '제일 중요한'이라는 의미가 된다(Arndt Gingrich).
유대인들이 계명들을 크고 작은, 곧 중요하거나 사소한 법들로 구별했던 것은 철두철미한 율법 준수의 정신에서 그리하였다. 대표적인 것은 탈무드에 나오는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이다.
한쪽 다리로 서 있을 동안에 율법 전체를 설명하라는 이방인의 도전에 부정적 황금률이 - 너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 '율법의 전체'이며 그 나머지는 주석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랍비들은 율법을 세밀하게 나누어서 율법 중에 613(십계명 글자의 수) 계명이 있다고 보고 그중에 248(사람 몸의 지체 수)조는 적극적, 365(일 년의 날 수)조는 소극적인 금지 계명으로 분류하였다.
그 중에는 중요하여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 마 15: 4-6 –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
이러한 변론의 정당한 근거로 그들은 다윗(10계명), 이사야(6계명), 아모스(2계명), 미가(3계명), 하박국(하나의 계명) 등의 율법 요약 선례를 들었다.
* 시 15: 2-5 – 다윗 -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 사 33: 15 - 이사야 -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 암 5: 4 – 아모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미 6: 7 - 미가 -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 합 2: 4 – 하박국 -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어떻게 하면 율법을 더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하는 율법에 대한 열심이 이런 방식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학문적이고 실제적인 중요한 문제였다.
더욱이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만을 인정했기 때문에 성경에는 명백하게 기록되지 않은 유전은 인정하지 아니함으로 바리새인들과 자주 충돌했다.
눅 20: 39-40의 증언를 보면 이미 예수의 답변은 존경받는 율법사들에 의해 유대인 중에서 우세한 견해였던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율법을 연구함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 눅 20: 39-40 – 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40 그들은 아무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그들은 그대로 행치 아니하였고 구약의 목표요 정점인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 마 23: 2-4 –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2: 37. 하나님을 사랑하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예수께서는 신명기 6: 5의 말씀을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은 주께서 신명기 6: 4부터 인용하셨다고 증언한다.
* 신 6: 4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것은 가정이나 성전에서 매일의 예배에 사용한 신앙 고백문인 '쉐마'(*)의 한 부분으로 매일 두 번씩 소리 높여 암송함으로 유대인에게는 가장 익숙한 것이었다.
이것은 십계명의 전반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의 포괄적인 요약이다.
유대인 아이들은 이 구절을 외우는 것으로 교육이 시작된다. 바리새인들은 신 6 :8-9에 따라 '쉐마'를 문의 오른편 기둥에 기록하고 또 이것을 기록한 작은 양피지를 상자에 넣어 끈으로 이마와 왼팔에 잡아매었다. (경문, 23:5).
* 신 6: 8-9 –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마음'(*, 카르디아)은 외식이 아닌 진정한 의지를 강조한 말이다.
'목숨'이라는 말은 신명기 본문에 ‘영혼’(네페쉬 שׁ)이라고 되어 있다. '목숨'(*, 푸쉬케)은 육체적 생명을 뜻하며, 이는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뜻'(*, 디아노이아)은 지적 능력을 뜻하는 말로서,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졌음을 강조한 것이다.
'다하여'(*, 엔 홀레)는 '전부 안에서, 전체로써'라는 말이다. 신 6: 5의 원문은 '뜻' 대신에 '힘'이고, 마가와 누가에는 '힘'이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들은 서로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라 중복되는 개념들로서 강조하는 것이지 의미상의 차이는 없다. 결국 전 인격을 기울여, '존재의 전 기능을 다하여'(Tasker), 전 생애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2]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사랑하라'(*, 아가페세이스)는 미래 시상인데, 이것은 명령어의 대용어로서 법조문에 쓰이는 방식이다. (Lenski).
단순한 애정이나 사랑을 나타내는 '필레오'(*)와는 엄격하게 다르다.
자기 이해를 초월한 순수하고 무목적,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는 없다. 이 사랑을 하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근원적인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 요일 4: 10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과 율법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다.
이 사랑의 온전한 모습은 예수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예수의 사랑을 풍족하게 누리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고, 이웃에 대하여도 고전 13장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요 13: 34-35 –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