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율법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 중의 하나는 율법은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의 명령이라는 생각이다. . 에덴동산에서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자신의 행복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착각과 오해를 마귀가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 2. 율법의 제3용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을 받은 사람들의 살아갈 삶의 교훈을 주는 것이다. 신명기 10장 12-13절에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라고 명확히 선언하신다. 율법을 지키는 삶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이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 인간이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 그분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만족이 있는 삶임을 알려준다. . 3.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궁극적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을 하고, 결혼하고, 직장을 가고, 성공을 추구하는 모든 목적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운동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몸이 건강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을 했는데 몸이 상한다면 그것은 궁극적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 하나님은 인색하신 분이 아니시다. 당신의 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신 분이 어찌 인색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풍성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우리 죄를 속량하신 이유는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5) 선언하고 있다. . 4. 우리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복음의 유산을 상속받는 존재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아들' 이라는 말에 대해 불편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마치 율법이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처럼 아들로 상속받는 다는 말도 여성을 배제하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아들'이란 당시 딸들에게 상속되지 못한 시대에 우리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은 모두 남자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여자도 상속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지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다. . 5. 바울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씨에 대해 이것이 단수로 사용되었는가? 복수로 사용되었는가? 라는 미묘한 차이에서 '단수'로 사용된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성경은 단수냐 복수냐는 단어 하나에도 영감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 팀 켈러는 이렇게 언급한다. "아들이라는 남성형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성급하게 수정하면 바울이 말하는 혁명적 본질을 놓치게 된다. 복음은 우리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상속자다." . 6. 성경은 남성중심으로 씌여진 책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표현하지만 그것은 계시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한 문학적 방식이지, 하나님은 남자가 아니시다. 젖 먹이는 여인이 아이를 잊어버릴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는 말씀은 어머니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남자 여자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성경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표현한다. 남자 성도들에게도 '신부' 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계시를 드러내고 있다. 성경 안에는 다양한 진리들이 다양한 색깔들로 드러나 있다. 그 모든 것을 다 수용할 때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성을 정립할 수 있게 된다. . 7.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것이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이즘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면 바르게 성경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성경이 진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를 성경에 맞추어갈 때 비로소 나를 벗어나는 경험과 내가 깨어지는 자기부인의 과정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나를 깨트리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이 피고석에 계실 수 밖에 없다. . 성경의 진리를 통해 모든 이즘이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해방신학이 유행했을 때는 모든 것을 권력의 관점으로 보기도 했다. 내 눈 앞에 있는 안경의 색깔대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성경이라는 잣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진리를 선포해주고 있고 그것을 만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