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1박2일을 과정들의 사진을 정리하여 올리면서
나와 24회의 인연을 써 볼까 합니다.
아니 재경조례총동문회와 24회의 인연?역할?기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24회 경규의 노력으로 2015년도 부영회장이자 당시 재경순천향우회 이중근 회장이 추진하는
순천시 관내 '재경초등학교 동문회' 결성식에 참석했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동창들과 뷔페나 얻어 먹자는 뜻에서 별 생각없이 나갔습니다.
경규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선후배들에게 연락을 했고 난 20회 동기동창들을 소집해 간 것입니다.
부페 먹고 공구세트 하나 얻고 625 피해내역을 수록한 이중근 회장이 썼다는 책 한 권 얻어 온 걸로 끝났지요.
부페 먹을 때 생전 첨보는 손기만 이란 자그마한 사람이 '초대 동문회장'이라고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다니기에
건성으로 대했었습니다. 총동문회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걸로 끝이었지요.
난 원래 중고,동문회도 안 나갔고 향우회가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며칠 후 경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는 박사논문 준비로 바빠 도저히 못하겠다며 나보고 '총무'를 좀 봐달라는 거였어요.
그것도 임시로 잠깐만.
"뭔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냐"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간곡하게 시작만 해 달라는 거였어요.
나는 학창시절이나 직장에서 글쓰는 재주는 좀 있다고 들었고
'천상 공무원'이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행정력은 있었답니다.
결국 전혀 예상치 못한 재경조례총동문회 총무를 맡게 됐습니다.
손기만 회장님은 처음 뵌 것이었고, 원래 모든 친목회는 총무가 다 하는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나부터서 관심 없었지만 아무도 관심없는 ~~~
순천에서 제일 작은 초등학교 동문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국교생 시절 남국민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체육대회때 조례국민학교 학생들은 기도 못폈지요.
명단은 경규에게서 넘겨 받았지만 비현행도 많았고 전화해도 대부분 '귀찮게 왜?" 분위기였습니다.
"내가 왜 이런걸 해야하지? 돈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책임을 맡았으니 모양새는 갖추자고 회칙도 만들고 조직도 구성했습니다.
조직이란 것도 명단 보고 내가 그냥 만들었을 뿐 정작 당사자들은 알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국민학생일 때 두지나 신월등 큰 동네서 살았다면 아는 선후배라도 많았겠지만
변전소 앞 몇 가구 안되는 '높은한질' 출신이니 아는 사람도 없었지요.
각 기수 회장들 모임,각 기수 대표 여자(여왕벌)모임,내가 임의로 만든 조직상의 간부 모임 등을
추진해 봐도 10명도 안 모였습니다.
사진을 찍어 카페 등에 홍보를 하려해도 사진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동창이나 수도권 아는 동창들을 불러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참석 시켰습니다.
기수별 회장 모임에도,여왕벌 모임에도, 임원 모임에도 똑같은 사람으로 숫자를 채워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카페에 올리고 내 블로그에 써 뒀던 고향이야기들을 '재경조례초총동문회 카페'로 퍼 와서
우선 카페를 활성화 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카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바쁘고,약간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성향이라 동문회에 관심이 없었지요.
손기만 회장님의 영향력으로 '종로구 효행회관'을 빌려 첫 총회를 했는데 23명 모였습니다.
명색이 총 동문회인데 기수별로 한 명씩만 와도 100명은 돼야 하는데~~~
모두 관심이 없었던거지요.
참석도 안 하는데 찬조를 하라는 말을 어찌하겠습니까?
모임 비용은 손기만 회장님이 계속 부담하여 밥값만 해도 많이 나갔습니다. 계속 횟집에서 했거든요.
총회 때는 다행히 5회 선배이신 정영채 선배께서 50여만원의 밥값을 내 주셨습니다만
공식적인 총동문회에 예산은 단 10원도 없었습니다.
동문회 활성화에 대해 고민하다가 나도 잘 하지 않았던 '산행'을 한 번 추진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산행은 독립문에서 모여 '안산' 자락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안산'?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 52명 모였는데 24회가 10명이 넘었습니다.
그 때부터 선후배들이 후원금이라며 10만원도 주고 5만원도 줬습니다.
인상에 남는 분은 성격이 좋아 일용직 십장을 하면서도 돈을 못 번다는 고 정병구(10회) 선배입니다.
지갑 속의 돈을 다 털어 주시니 세어보면 18만원,23만원 그랬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가난한 총동문회였지만 50명이 넘는 동문들이 나와주니 조금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내가 왜 이 짓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이 80%였습니다.
첫 산행 이후 아차산 등 산행을 격월로 한 번씩 했고 얼굴들을 자꾸 보니 국민학교 시절 교복 입고
우리집 앞을 지나던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옛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하고~~~친해지고
야심찬 기획으로 첫 버스투어인 '선유도 여행'을 추진했고
매 행사때마다 점증하던 24회 동문들이 절반 정도를 채워주었습니다.
행사를 치루는 주최측에서는 참가자 수가 매우 중요한데 24회가 매 행사때마다 채워줬습니다.
아마도 산행 행사를 해도 10여명 참석하고 그랬으면 제가 힘들어서 총동문회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도록,나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게 인원을 채워준 기수가 24회 입니다.
더군다나 최대규 회장시절 잠실체육관에서 개최한 '한마음체육대회' 때는
24회 남여 동문들이 나서서 행사운영 봉사활동을 도맡아 해 줬습니다.
물론 새벽같이 시장을 봐와서 차로 운반해 준 양임용 선배나,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온 동문들로 오후에 음식이 모자라자 차량을 동원해 조달해 준 양재근 동문도 있었지만요.
안면도 버스투어 때는 버스 두 대가 넘칠 지경이었고 그 때에도 24회는 20명이 넘게 참석해 줬습니다.
순창 '강천산'때도 ,진안 마이산 때도 버스투어 좌석을 20석 이상 채워주니 행사를 할 맘이 생겼습니다.
많은 돈을 내놓는 동문은 없어도 5만원 10만원 내 놓는 사람이 많아져 후원금 만으로도
넉넉하고 푸짐하지는 못해도 다같이 즐길정도의 행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24회가 총동문 행사의 좌석을 많이 채워주지만
동문회 결성 초창기때 시작할 때 24회의 적극적인 참석이 없었다면
지금 '재경조례초총동문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중앙초,남초,북초처럼 이름만 걸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동문회는 손기만 회장님의 아낌없는 투자와 24회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여 때문에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물론 여러 선후배님들의 크고 작은 후원과 사랑이 함께 했지만요.
현재 재경조례초동문회는 순천향우회에서도 부러워 할 만큼 제일 단결된 단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순천 산악회에서도 조레초 존재감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총동문회는 2대 허태만 회장께서도 많이 키웠지요.
총회를 외부인사까지 초청하면서 거창하게 치룸으로서 명성을 높였습니다.
순천시의 초등동문회들은 물론 승주군 면단위 지역향우회에서도
조례초 동문회만큼 활성화 된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허회장님이 취임한 해에 화보집을 만들어 배포했고, 꾸준하게 카페를 관리하면서 밴드등을 통해 홍보함으로써
조례동문회 존재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유명한 조례총동문회를 만드는데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24회 동문들입니다.
총동문회 입장에서는 24회에 감사패를 전달해야 할 정도로 동문발전에 기여한 공이 큽니다.
모든 기수가 24회 1/3만 따라준다면 재경조례총동문회는 엄청 확대 발전할 것입니다.
그래서 24회의 단결력이 약해지면 안됩니다. 총동문회를 받쳐주는 기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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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4회 동창의 추억여행시 실속을 찿는 사람들 사진을 모았습니다.
둘이둘이서 꽁냥꽁냥.
동창끼리 느끼지는 마세요.ㅎㅎ
음양의 조화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동성끼리 두 사람보다는 이성끼리 두 사람이 훨씬 보기 좋습니다.
바닷가의 추억?
근데 이 사진 어디다 보관이나 할 수 있나?
이 카페에 안전하게 보관해 드립니다.
배우자에게 들켜 혼 날 일이면 찍지마!!!!
보여줄 수 있다고???? 그럼 찍어도 되고~~~~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찍자."
"싫어~~~난 남자끼리 싫은데"
"야, 우리도 좀 거시기 헝깨 일로와. 하나씩 나눠 갖자"
우리는 느끼지 않습니다. 회장과 총무입니다.
해변의 여인아~~~~~~(❁´◡`❁)
"아이 씨. 여기서 나 잡아 봐라~~해야 하는데 . 그럴 놈씨가 없네"
오늘 가장 활발하고 재미있게 논 덕만이~~~~용두산 엘레지 부르는 건가?
그래도 24회는 집중 대화가 되는 모양/ 보통 지방방송으로 전체 집중대화가 안되는데~~~
회장님의 고기굽기 서비스~~~
적게 노력하고 많이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예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상대의 대우 또한 훨씬 따뜻해집니다.
다행히 예의를 지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적게 노력하고 많이 얻는 방법’입니다.
여자는 얼굴이 예쁘면 밥을 얻어 먹지만 남자는 예의가 바르면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읽던 책이 없어져도 그 책의 내용은 머리에 남듯
내가 알던 사람이 떠나가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머리에 남습니다.
우산 잃은 사람보다 더 측은한 사람은 지갑 잃은 사람입니다.
지갑 잃은 사람보다 더 측은한 사람은사랑 잃은 사람입니다.
더 측은한 사람은 신뢰 잃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모두 만날 수 있는 행복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다리 멀쩡할 때, 오라고 할 때, 열심히 만나세요. 내일 내가 주저앉거나 친구가 쓰러질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행복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족입니다!
큰 행복 이라도 만족이 없으면 불행이고 아주 작은 행복도 만족이 있으면 큰 행복입니다.
거울은 앞에 두어야 하고 등받이는 뒤에 두어야 합니다.
잘못은 앞에서 말해야 하고 칭찬은 뒤에서 해야 합니다.
주먹을 앞세우면 친구가 사라지고 미소를 앞세우면 원수가 사라집니다.
미움을 앞세우면 상대편의 장점이 사라지고
사랑을 앞세우면 상대편의 단점이 사라집니다.
애인을 만드는 것과 친구를 만드는 것은 "물"을 "얼음"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만들기도 힘이 들지만 녹지 않게 지키는 것은 더 어려우니까요.
(모처럼 찍은 사진이 흐려져버렸네~~~~찍은 친구 누구야?)
귤이 있다 없어진 자리에는 향긋한 귤 냄새가 남고
새가 놀다 간 자리에는 지저분한 새털이 남습니다.
사랑이 있다 간 자리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남고
욕심이 설치다 간 자리에는 안타까운 후회가 남습니다.
희망이란
촛불이 아니라 성냥입니다.
바람 앞에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꺼진 불을 다시 붙이는 성냥입니다.
첫댓글 24회는 총동문회를 위해서라도 변치 않은 단결과 화합이 필요합니다.각자의 최대공약수를 찿아 조금씩 양보하여 많은 참석율로 총동문회의 뒷받침이 돼야합니다. 그것은 타기수의 모범이 될 뿐 아니라 24회 동창회비를 아끼는 일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