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전창수 지음
1. 예수님은 마음이 넓은 성인이시다
나는 이 글을 끝까지 보려 하지 않는 분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우선,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읽으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 알게 될 테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사역을 하셨다. 아주 넓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예수님은 진정한 성인으로 사역을 해 나가셨다. 이 어렵고 험난한 세상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그야말로 시대의 축복이었고, 예수님은 그렇게 성인이 되셨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 예수님은 4대 성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 예수님은 성인 중의 한 분이시다. 그런데, 이 글의 주제는 예수님이 4대 성인 중의 한명이시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4대 성인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인가?
2. 예수님은 예언 속의 인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많은 예언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점쳤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순간들에 점을 보는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그렇게, 예수님은 축복 속에서 태어나시기도 했지만, 사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척박하게 태어나셨다. 그래서, 에수님의 탄생이 축복인 것은 맞지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3. 예수님이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는 이유
예수님은 성관계를 하지 않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성관계를 하지 않은 처녀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이었다. 바로 여기서 이단 및 사이비종교와 정통교회와의 차이점이 생겨난다. 이단에서는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우리의 희망적인 구세주라고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처녀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까?
4. 예수님은 놀라운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잉태한 것을 믿지 않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이 거짓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은 기적적인 일들이 많다. 그 기적들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하실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사역을 하실 때에도 기적은 일어났다. 대표적은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그런 놀라운 기적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인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된다면, 이 기적들은 모두 거짓이 되어 버려 성경을 왜곡해서 해석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5. 예수님이 4대 성인이 아닌 이유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이며,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다.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4대 성인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4대 성인에 포함되기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단 한 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을 예수님이 또 다시 태어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시라. 지금의 나의 몸이 나중에 다시 태어나 또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진짜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이 또 다시 태어난다? 말이 되는가? 예수님도 사람의 몸을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예수님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으로서 일을 하셔야 하고, 이제 다시 태어나야 하실 이유가 없다. 우리의 바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다시 태어나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하시길 원하지 않는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
그러므로 나의 바람, 우리의 바람은 이제 예수님을 친근한 사람으로, 또한 나를 도와주는 구주로서 우리를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나를 책임지고, 너를 책임지고, 사람을 책임져 주시기를. 사람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주님으로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예수님께 의지한다. 누군가 나를 의지하려 한다면, 나는 그분을 무시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이 아니라서, 누군가 나를 의지하려 한다면, 너무나 많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운 삶은 싫다. 나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