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농가(宿農家)
종일연계불견인終日緣溪不見人
행심두옥반강빈幸尋斗屋半江濱
문도여와원년지門塗女媧元年紙
방소천황갑자진房掃天皇甲子塵
광흑기명우도출光黑器皿虞陶出
색홍맥반한창진色紅麥飯漢倉陳
평명사주등전도平明謝主登前途
약사경소구미신若思經宵口味辛
김병연<金炳淵>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이고
방을 쓸었는지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 때 만든 거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으나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 하구나.
이 시(詩)는 김삿갓(金笠) 시(詩)다. 당(唐)나라에 이태백(李太白) 시선(詩仙)이 있다면 우리나라 조선에서는 김삿갓(金笠) 시선(詩仙)이 있다. 김삿갓 시는 평생을 세상을 등지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그때 당시 민심(民心) 인심(人心)을 시심(詩心)으로 달래며 남겨놓은 시다. 김삿갓이 평생을 삿갓을 쓰고 방랑 생활을 하게 된 사연은 가계(家系) 조부(祖父)를 신랄(辛辣)하게 비판(批判) 비난(非難)을 했기 때문이다. 김삿갓이 20세가 되던 해에 강원도 영월 향시(鄕試)에 참석하였는데, 시제(試題)가 논(論) 정가산(鄭嘉山) 충절(忠節) 사탄(死嘆) 김익순(金益淳) 죄통우천(罪通于天)이란 시제(試題)가 게시(揭示)되었다, 김병연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정가산(鄭嘉山)은 만고)(萬古) 충신(忠臣)이라고 극찬(極讚)을 하고, 반대로 김익순(金益淳)에 대해서는 18구(句) 장문(長文)으로 역적(逆賊)이라고 통열(痛烈)하게 질책(叱責)을 해서 장원(壯)을 하게 된다. 장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 김삿갓 모친께서 장원한 글 내용을 보고 손자(孫子)가 어떻게 조부(祖父)를 몰라보고 그토록 무지(無知) 몽매(蒙昧)한 글로 장원했다고 자랑을 하느냐고 꾸중을 듣자. 손자가 조부 할아버지를 만고역적으로 꾸짖는 시로 장원을 하였지만, 향시에 장원한 것이 후회(後悔)스럽고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고 하면서 모친(母親)과 가족(家族)들을 뒤로하고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조선팔도(朝鮮八道)를 방랑객(放浪客) 시인(詩人)이 된 사연(事緣)이다.
화옹은 14살 때 김삿갓시를 접했다. 시어(詩語)가 통쾌(痛快) 자유분망(自由奔忙)하고 말은 욕(辱)이지만 시구(詩句)는 명시(名詩)로 바꿔놓은 통쾌(痛快) 명쾌(明快)한 풍자(諷刺)는 방랑시인(放浪詩人) 김삿갓 시에서만 볼수있는 매력을 어릴 때부터 느꼈다. 오늘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 측기식(仄起式) 시제(詩題)가 숙농가(宿農家)다. 압운(押韻)은 맞춰보니, 상평성(上平聲) 진통(眞統) 운족(韻族) 중에 인(人) 빈(濱) 진(塵) 진(陳) 신(辛)으로 운에 맞춘 율시(律詩)다. 전국(全國) 팔도(八道) 강촌(江村)을 발길 닫는 대로 떠돌다 보니, 하루 종일 개울가를 걸어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 다행히 해질 무렵에 두옥(斗屋)하나를 발견하고 보니, 땅에 딱 붙은 작은 오막집이라 찾아가서 하룻밤 묵어가자고 청을 드렸는데, 문에 발라놓은 종이는 중국 상고 시대 복희씨 누이동생 여와(女媧) 원년에 종이이고. 방 청소는 천황씨 갑자년에 티끌이 그대로 있고, 밥그릇은 순임금 때 쓰던 그릇같이 빛깔도 검붉은 색을 띠고, 보리밥은 한(漢)나라 때 창고에 묵혀 두었던 보리쌀로 지은 듯한 묵은내 나는 보리밥을 먹고 잤는데, 날이 밝아서 주인에게 하룻밤 잘 자고 간다고 인사를 드리고 가면서 지난밤에 겪은 일을 생각하니, 뒷입맛이 씁쓸하다고 결구(結句)를 맺고 있다. 농가에서 하룻밤 묵고 가면서 쓴 시지만 그 당시 민초(民草)들의 생활상(生活相)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방은 방인데 청소도 아예 하지 않는 먼지투성이고, 문 창호지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와(女媧) 때 창호지로 발라놓아 떼가 더덕더덕하고, 여와(女媧)는 중국 신화에 아이를 낳은 첫 번째 존재자로 모든 인간의 어머니라는 신화다. 몸은 뱀이고 얼굴은 여인이다. 천황씨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이다. 삼황(三皇)의 한사람으로 팔천 년이나 왕 노릇을 했다는 전설 속의 왕이다. 먹은 보리 밥은 한(漢) 나라 때 창고에 묵혀 둔 듯한 보리쌀이 등장 한다. 김삿갓이 시어(詩語)에 인용(引用) 언급(言及)한 것들은 중국 고대 역사 전설에 나온 것이다. 문사철(文史哲) 인문학적(人文學的) 지식(知識)이 박학다식(博學多識)했다는 증거다. 김삿갓은 그 때 당시 최고 선비인 셈이다. 묵은내가 얼마나 났기에 김삿갓이 하룻밤 먹었던 농가 생활이 얼마나 곤고(困苦) 했는가가 여실하게 드러난 시(詩)다. 김삿갓이 이렇게 명시(名詩)를 남기지 않았다면 그때 당시 가난에 쪼들린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상을 오늘날 현대인들은 역사기록에도 없는 자료만큼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당(唐)나라 때 두보(杜甫)가 쓴 시는 당(唐)나라 역사(歷史)라고 해서 시사(詩史)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는 시사(詩史) 측면에서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분야라고 생각이 든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