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3장 통일교, 세계로 뻗어나가다 10. 차코와 레다의 아름다운 변화
남미에 머물면서 판타날, 자르딘에 이어 문선명이 정성을 기울인 또 한 곳은 차코이다. 차코(Chaco)는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그랜드차코 지역의 일부로 면적은 약 25만킬로제곱에 달한다. 문선명은 파라과이 국토의 60% 를 차지하는 버려진 땅 차코를 사서 주민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교육했다. 이곳은 너무 거칠고 너무 넓고 너무 원시적이어서 많은 사람의 일손이 필요했다.
1999년 8월, 문선명은 일본의 '국가 메시아'들을 남미로 불러 모았다. 그들은 모두 일본 신도들로 그동안 각 나라에 흩어져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문선명은 그들을 전부 차코로 불러들여 이곳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하도록 했다. 문선명의 부름을 받은 각국 선교사들은 그 즉시 혹은 며칠 간격으로 차례차례 도착했다. 신도들이 도착하자 개척의 사역을 시작했으며 첫날 문선명은 기도를 드렸다.
"오늘 일본의 국가 메시아가 40일 동안 이 판타날에서 새롭게 기지를 만들어 건축하기 위해 출발식을 거행합니다. 정성을 다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체가 되고, 당신이 기원하는 것을 완수하는 그 출발의 날이 되도록 해주십시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방향을 나타내시고, 승리의 전진을 하도록 기도드립니다."
문선명의 기도가 끝난 후 한학자 총재도 기도를 올렸다. 이곳에서의 향후 개척활동이 매우 험난할 것임을 잘 알기에 모든 사람들을 격려했다.
"오늘 일본의 국가 메시아가 여기 판타날을 중심으로 큰일을 하기 위해 40일 수련회를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이들이 당신의 뜻을 받들어 하늘의 사업을 실천해서 성공시켜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을 통해 연결된 모든 나라와 세계적인 인연이 당신의 승리와 영광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세계 각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일본 신도들은 당장에라도 차코로 오려 했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즉시 올 수 없었다. 또 선교사들은 언제나 맨몸으로 임지로 가서 선교활동을 했기에 늘 돈의 압박을 받았다. 겨우겨우 비행기 삯을 마련한 그들은 차례차례 차코로 왔다. 그렇게 9월 초까지 102명이 차코에 도착했다. 문선명은 그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레다(Leda)로 가서 농장을 개척할 것을 당부했다.
레다는 차코에서도 사람이 살아가기에 가장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문선명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변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땅의 일부는 농장으로 만들되 대부분의 자연은 그대로 유지하는 계획을 세웠다.
레다 바로 옆에는 파라과이강이 흘렀으며 그 옆은 소를 키우는 목초지였다. 그러나 홍수가 여러 차례 덮쳐 심하게 손상되었고, 이후 버려진 땅으로 황량하게 남아 있었다. 몇 명의 원주민들만이 그곳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상점이나 관공서 등은 전혀 없는 곳이었다. 도로는 황폐해져서 자동차는물론 사람조차 제대로 갈 수 없었고 그나마 강을 따라 배를 이용해야 했다. 사람들은 강물을 퍼 식수로 사용했고, 전기와 전화는 물론 없었다. 그야말로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일본에서 온 국가 메시아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원시적일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곧 일을 시작했다. 신도들이 처음 머문 곳은 돼지 축사였다. 사람이 사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돼지 축사에서 먹고 자고 했다. 축사는 너무 낡아 비가 내리면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모기, 독개미, 독사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고 온갖 곤충들이 달려들었다. 들짐승의 공격도 무서움에 떨게 했다. 재규어가 나타나 양들을 공격했다.
특히 화장실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사람이 사는 집조차 오두막에 불과한 데 화장실을 일러 말할 것이 없었다. 대변이라도 해결하러 작은 움막 안으로 들어가서 앉으면 3초도 지나지 않아 수백 마리의 모기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런 삶이 불편하다 하여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문선명 부부 역시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온갖 고난을 견디어 나갔다.
"진실로 우리는 여기에 하나의 기반을 건설해야 합니다. 삽으로 땅을 파십시오. 더위와 싸우며 땀을 흘리는 최고의 노동자들이 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여러분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해방 받을 수 있도록 땅을 개척하십시오. 그 어떤 일보다도 여러분의 노동에 정성을 다 하십시오.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일본 신도들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서도 땀을 흘리며 일했다.너무나 더워 견딜 수 없으면 강으로 뛰어들어 몸을 식혔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집들이 서서히 완성되었고 배를 댈 수 있는 정박지도 만들었다. 차츰차츰 기초적인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간 것이다. 매일 계속되는 사투였지만 그만큼 즐거움과 보람도 많았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에서 힘들께 노동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태고의 아름다움, 해가 뜨고 지는 풍경, 유유히 흐르는 강물, 열대지역 황새인 특유유(tuyuyu)의 멋진 날갯짓, 기분 좋게 햇빛을 쏘이는 악어, 별이 쏟아지는 밤 등이 모두 친구였다.
1년이 지나자 레다는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일꾼들을 위한 숙소 하나, 신도들을 위한 숙소 하나, 방문자들을 위한 숙소 하나, 그리고 작은 공관 하나를 지었다. 강기슭에는 8척의 배를 댈 수 있는 정박지도 만들었다. 나아가 말, 소, 양, 돼지, 닭 축사도 말끔하게 세웠다. 또 마을에서 부두까지 반듯하게 길도 닦았고,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도 들여놓았다.
그 무렵 파라과이 해군 지휘관 한 명이 방문했다. 그는 해군 보급기지가 필요하지만 나라에 돈이 없어 건설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문선명은 그 말을 듣고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힘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해군 기지 건설에 팔을 걷어붙였고 2000년 11월에 완성되었다. 개관식이 열리는 날 지휘관은 연설을 통해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또 문선명이 파라과이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훈독회를 열 때 참석하기도 했다.
문선명은 세계적인 행사가 많았기에 늘 남미에 있지 못하고 미국과 한국, 유럽, 중동 등 여러 나라를 수시로 방문했다. 그러다가 2000년 1월, 5월 그리고 11월 세 차례에 걸쳐 레다를 찾았다. 1월에 방문했을 때 문선명은 일본 신도들의 그을린 얼굴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막노동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노고를 위로했다. 2000년 11월 30일에는 봉헌식을 거행한 뒤 '순결한 사랑, 생명의 혈통 그리고 몸과 마음의 통일'이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단지 건물을 짓고 길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올림포(Olimpo)와 에스페란자( Esperanza) 마을에 있는 여러 학교들을 지원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는 돈이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러나 문선명의 뜻을 아는 전 세계의 신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두어 보내주었다. 미국이든, 러시아든, 콩고든 가리지 않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그 돈은 모두 레다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후 남미 지역에서 통일교는 카우사와 함께 성장했으며, 판타날, 자르딘에서의 개척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