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중고등학교 때의 동기생인 친구들을 만나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속길을 걷고 속초 앞 바다의
롯데리조트에서 머물며 낙산사를 산책하고 맛있는
활어회를 사먹고 인근 섭국을 맛있게 점심으로 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15명이 갔는데 롯데월드에 근무하는 친구의 퇴직기념으로
롯데리조트의 호텔방과 리조트 다인실 2개를 빌려서 모처럼의
호화스런 숙박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맛있는 포도주나 양주도 곁들이고 꽤나 끈적한
얘기와 소통속에 오랫동안의 친근함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강릉에 살고있는 친구가 인제 자작나무 숲을 안내하고
막국수와 감자전을 사주고 삼척 특산물 과자 선물셋트를
한 상자를 나눠 주었는데 포옹하는 순간 대구에서 어릴 때의
몸이 아니고 탱탱한 근육질로 변해 있었다. 용평스키장에서
근무했는데 스키를 오랫동안 타서 그랬나 강원도에 살면서
산행을 많이 해서인지는 모른다.
해병대에 교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고 나온 친구는 2동안의
렌트카 쏠라티 15인승을 몰고 우리의 여행길의 운전을 해주었고
술과 과일들을 꽤 많이 준비해 왔고 동기생 중에 구미에서 신부님으로
우리동기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친구는 양주와 많은 금일봉을 건네주며
아침에 집결지에 배웅해 주었다.
상주에서 교사인 남편을 따라 여러가지의 농사일을 재미있게 짓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공예품을 제작하며 사는 효성대 철학과 출신의
친구는 모과 캠벨 포도즙 등 다양한 농작물을 먹기 편하도록 가공해서
유기농의 귀한 음료를 우리들에게 제공을 한다. 꽤 유식한 이 친구는
대구 4개 대에서 철학세미나에 강사로 나올 정도로 철학적인 안목이
높아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 친구었는데 국민윤리교사로 경북에
사는 남편을 따라 상주로 따라가서 시골에서 소박하지만 풍성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노래방에 노래 부르는 것이며 자작나무 숲 산행에서
공예품과 재료에 대한 식견을 듣는데 그 정교함에 세밀한 지식의 내용이
혀를 내두를만큼 놀랍기만 하였다.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몇년 전에 명퇴를 한 친구는 횟집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나와 여러 얘기를 들을 나누었는데 박사논문들이 그러한 실험이었고
학생들이 과학경연대회에 나가서 아이디어를 부들의 재료를 가지고 불타지
않은 불연재료의 벽지를 만들어서 입상하여 특전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얘기며 아주 재미있는 창의적인 실험과 이력들을 가지고 나와 수다를 떠는데
시간 가는줄 모르게 얘기는 끝이 없이 쏟아져 나왔고 늘 전통차 국화 꽃봉우리차
보이차 등 여러 차를 가지고 다니며 나와 주변친구들을 함께 마시도록 베풀었고
지금은 지역에서 시니어 모델로 사는 모양인데 이쁜짓을 많이 하는 친구였다.
그리고 50년간 우리에게 술담배를 한다고 고자질 한 죄로 선배들에게 탄로나서
배트맞은 것이 본인이 아니라 다른 친구인 것을 드러내어 선입견을 지울수 있어서
기쁜 표정에는 눈물이 배여나왔다.
평생을 가장 비천한 마지막 보루인 사회복지시설에서 평생을 살아온 친구는
우리들을 위해 좋은 타올을 선물했는데 '축일을 축하합니다'고 한 문구를 새긴
수건 모두들 기뻐했는데 난 호텔에서 베갯닢으로 쓰다가 두고 나와버렸다.
회장은 닥종이 문화원에 강사로 살고 노래도 잘하며 누구에게나 무던하고 편하게
대해주는 친구였는데 수더분하여 누구에게나 만만한 성격의 여성카리스마 부드러움
품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였고 총무는 귀엽고 착한 경북여고 출신의 친구인데
인생 60을 넘겨도 맑고 단아한 수녀님 같은 인상을 친구라서 청명한 공기를 공급하는
친구이다. 욕을 하던지 큰 소리를 질러도 너무 귀엽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대구고등학교 4번 타자 야구선수 출신의 친구는 유명한 스타인 친구들을 성당에도
데리고 왔는데 16년간 초등학교 야구감독을 해 왔다고 했다. 늘 코믹하고 친근하여
웃음을 달아놓고 우리를 대하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을 물어보니 인공관절을
무릎에 넣었다고 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는 유전적으로 머리가 중학교 때 부터
새치가 나와 교모를 쓸 때 놀림이 되었는데 지금은 염색을 하지 않아 흰머리 소년
산신령이 되었다며 회장이 놀려도 씨익 웃고 만다. 이 친구 뿐만이 아니라 우리 동기생들은
먹고 사는 공간이 늘 함께 어릴 때 부터 공유되었고 나눠가졌으며 가족들도 집을
다 알고 대 식구가 되어 성당 전체를 이루었는데 미사참여 수가 1500명이었다.
우리는 부모 형제 동생 조부모들이 누가누구인지 다 알고 그 집의 숟가락 수가 몇개인지
다 알 정도로 환하게 되었다. 먹고 자는 것이 어릴 때 부터 공유되어온 삶이었으니까
나는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모처럼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마음이 되었다.
먼 타향살이의 고달프고 피폐해진 내 영혼을 부르시고 이끄시는 곳 마다
풍성한 잔치를 열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를
아무것이 없어도 맑아져 숨통이 열리고
새털처럼 가벼워졌고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곳 마다
막힘이 없어졌으며 톱니바퀴처럼 촘촘히 맛물려 돌아가는
하나하나의 일정이 너무 친근하고 절묘한 순간들의 만남이었다.
하나님은 미리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맘이 들었다.
각자가 품어내는 네파토리와 향기는
애꿎은 세월의 흔적을 다 지워내기 시작했고
알게 모르게 덧 입혀진 여러 잡다한 껍질들을 벗겨내었다.
민낯에 맨몸만 남아서 만나는 얼마나 홀가분한 만남인지
막역하여져 여러 장의 페르조나가 필요없고
각자의 인생의 썰물밀물로 잘 깍여지고 연마된
아름답고 매끌매끌한 몽돌같은 친구들이 귀하게 여겨졌다.
어릴 때 부터 가난하였지만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를 끝까지 놓지 않고
품고 이끌고 베푸시며 늘 함께 하셨는 성당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의 본이신 그리스도 예수로 살아간 선배와 우리 후배들로 인해서
또다시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고의 축복이고 은혜였다.
영광을 십자가에 뛰어내려 올 수 없는 주님께 돌리며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