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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로서
진주박물관의 병자호란 특별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친정집에서 광주시로 올라가는 길에
진주성에 들렸습니다
해설사라서 그런지 지나칠 수가 없네요~
시간에 맞추어가면 진주성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성문 안으로 들어오니
김시민 목사의 동상이 보여요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셨죠?
진주성의 운치를 느끼기에도 잠시
바로 진주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긴 여정을 앞에 두고 있어
진주박물관을 빨리 돌아봐야 했어요
정문 지나 전시실로 향하니
승자총통 체험실이 있었어요
1시간 간격으로 예약이 가능했습니다.
예약을 하고 잠시 전시실을 돌아보다가
체험 시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ㅗㅜㅑ..
그래픽에 신경 많이 쓰셨네요~
뭐든지 뭐니 뭐니 해도 안전!
그냥 스틱일 뿐이지만 센서가 달려있고
긴 막대 형태라 안전에도 유의해야 하니
사용방법과 유의사항을 친절히 알려주십니다
연습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임진왜란의 대표 전투
한산도대첩과 진주대첩을 통해
승자총통을 체험해 봅니다
왜구들이 3면에서
써라운드로 달려들더라고요
그래픽... 좋은데요?
체험이 끝난 후
큐알코드를 통해 책록을 받습니다 ㅎㅎ
(깨알 디테일)
제 딸내미는 2등 선무공신이네요
(1등은 남편몬-_-)
오~ ㅎㅎ
이제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였던
병자호란 특별전을 볼 차례입니다.
강화도행이 좌절된 어가행의 첫 문구죠
이미 길을 틀어막은 청나라 군을 피해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47일간의 산성생활(?)이 시작되죠
처음 보는 유물이었습니다
관방도라는 것은 군사적 목적의 지도라고 하네요
조선의 북쪽인 요동과 북경이 그려진 모습이
신기해서 오래 들여다보았던 것 같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조선
병자호란 특별전은 세계정세의 관점에서
전시의 첫 서두를 풀어내었습니다
한 달 반여 간의 짧은 전쟁이었지만
조선 말기까지
국내 중앙 정치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
국제 전쟁이었기에
국제 정세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병자호란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
현절사에 배향 중인
홍익한, 윤집, 오달제, 정온, 김상헌의 흔적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척화와 주화의 논리로
남한산성에서 첨예한 대립을 했던
홍익한과 최명길의 주장을 글로 담아
전시한 모습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배치를 해놓으니
꼭 두 사람의 대화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보다는
그들의 글과 말들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겼다는 점이
매우 좋았습니다
병자호란 특별전은 병자호란만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그전의 국제정세부터
정묘호란 당시를 버텨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유물과 기록으로 보여줬는데요
정묘호란 때도 임진왜란처럼 의병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유품을 통해
약간의 울림 타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역사로서만 배웠던 것들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내짐으로써
실제 있었던 일,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중 남이흥 장군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네요
인조대의 대표적인 장수로서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나주목사 남유의 아들이자
이괄의 난을 진압했고
정묘호란에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바치셨군요
왕이 된 인조와 조선
국제 정세를 돌아봤으니 인조의 집권과 함께
조선이 취한 대명, 대 후금 정책을 살펴봅니다
인조 책봉을 위한
사신단의 여정을 그린 그림이라죠
이번 특별전을 통해 인조의 책봉을 청하는 사신단의 여정에 대한 글과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림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한 장이 아니라 25장이나 된다네요!
명청 교체기 육지가 막혀 해로로 갈 수밖에 없었던 덕(?)에 이런 유물도 남게 된 것 같습니다
왕위에 오른 인조는 남한산성을 축조하게 되죠~
남한산성을 축조한 중요한 인물인 벽암 각성대사에게 인조가 내린 교지인 것 같네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이은
도총섭이셨다고 하죠
이로써 남한산성에는 축조와 방어를 위해
전국 8도의 승군들이 모여
총 10개의 사찰이 생기게 되죠~
지금은 망월사와 장경사,
국청사와 개원사만 다시 재건되고
터만 남았습니다.
(폐사지에는 큰 맷돌만 덩그러니...)
각성대사는 병자호란 때
승군과 백성 3000명을 모아 항마군을 칭하며
호남병과 합세해 싸웠다고 하네요
(호남병이면 김준용 장군이랑 같이 싸웠으려나..)
하지만 조선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받고
해산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번엔 김류의 흔적입니다
남한산성 둘레길 1코스에서 북문을 지날 때 종종 김류가 생각나곤 하는데요
남한산성에서 조선군이 성 밖으로 나가 벌였던
법화골 전투에서 김류의 이야기를 뺄 수 없죠
하지만 이 안내지를 보니
그가 내부 정치에만 신경 쓴 것이 아니라
전쟁을 대비했던 모습에 좀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당시 김류가 정말 실세 중에 실세였군요~
인사권을 좌지우지했다니..
정충신의 흔적도 있었습니다
(꼼꼼합니다 국립진주박물관!!)
병자호란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일화를 많이 아실 듯합니다.
후금과 단교를 하러 가는 사신을 막은 사람이
정충신이었군요 ㅎㅎㅎ
정충신도 흥미로운 분 같습니다.
출신부터 삶의 궤적이
일반적인 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신을 막은 정충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 유배형에 처해졌다네요 ㅎㅎ
(사신을 막았을 때 왠지 목숨을 거셨을 것 같아서 ㅎㅎ)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이제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네요
아..
이 깔끔한 도표..
나중에 특별전 끝나면 이 패널은
버려지는 건가효...
(이미지 파일이라도 받고 싶드앙....ㅠㅠ)
남한산성 해설사로써
안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ㅎㅎ
결과적으로만 보면 조선은 아무런 준비 없이,
대응 없이 허망하게 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인조의 남한산성 입성 후
삼남의 근왕군들도 빠르게 움직였다고 하네요~
관련해서 진주박물관의 유튜브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남한산성 지도와 주요 시설도 빼놓지 않았네요
진주박물관은 흔하면서도 잘 접하지 못했던
기록과 그림들 위주로 전시한 것 같아요
남한산성 고지도는 여러 장 있지만
이 지도는 또 생소해서요~
(신남성 부분만 본 것 같아요)
산의 능선을 따라 지어진 성곽들의 모습이
외성까지 잘 표현이 되어있었습니다
성내의 모습도 매우 세세하게
잘 그려놓은 것 같아요~ 오~
남한산성 안에서의 항전을 기록한 책이죠
문재도가 집필했다는 다른 남한일기도 있다네요
나만갑의 병자록, 산성일기 등
다른 책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로 인해 산성안의 이야기들을
우리가 소상히 알 수 있는 거죠
전쟁 중에도 기록을 하셨던 우리 조상님들..
역시 기록의 민족..
남한산성에서 사용된 무기인 듯합니다
프랑스가 연상되는 서양식 불랑기포,
그리고 산성에서 출토되었다고 안내된
현자총통에 눈이 갑니다
추후 남한산성에 박물관이 지어지면
이렇게 흩어진 유물들이 모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천흥사 동종, 통일신라시대 기와 등등등....ㅠ)
각 나라의 군복들이 참 멋있죠
청나라의 갑옷도 꽤 멋있다는 생각했는데
전시품은 마네킹 덕분인지
뭔가 대형 피규어 같은 느낌만 드네요
그래도 천하를 호령했던 북방민족의
갑옷이어서인지 목까지 감싸는 투구와 갑주가
인상적입니다
아래에는 남한산성 포위전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홍이포가 보이네요
그래서 뭐.. 걍 그렇다구요..
혼란 속에서도 이름을 남긴 사람들
이귀의 아들이자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서쪽을 수어했던 장수, 이시백입니다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신이자,
병자호란 때는 청군이 서성을 공격해오자 막아냈다는 기록도 남아있고요
남한산성에는 서암문 파적지가 있죠~
이시백 장군과도 연관된 곳이 아닐까 합니다
병조참판을 지내면서
남한산성의 수어사를 겸직했었고
박씨전에서 박 씨의 남편으로 등장한다네요!
유명하진 않지만
두려움을 삼키고 용기로 맞선 분들도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남양부사 윤계가 인조를 구원하기 위해 근왕병을 모집해 남한산성에 들어가려다 죽임을 당한 일을 그린 그림이라고 하고요
윤계등 과 함께 경기도 남양에서 근왕군을 모집하려다 남양부사 윤계가 죽게 되자 군대를 일으킬 수 없어 강화도로 건너간 윤명은의 이야기
이분은 강화 유수 장신과 함께 강화도를 지키다가 함락 시 빠져나왔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병자호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의병'이라는 워딩도 보이고요
병자호란 당시 평안도에서 근왕군을 모집하여 싸우다 전사한 홍명구에 대한 흔적
홍명구는 전사했지만 이 싸움에서 평안도 병마절도사 유림이 청군을 격퇴해 몇 안 되는 승리 케이스로 남아있죠
이렇게 짧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한산성안 인조와 조선의 운명
끝내 조선의 항복을 요구하는
청 태종의 명령서를 받게 되죠
위 사진은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내린
명령을 적은 문서라고 하네요
흥미로운 것은 여기 찍힌 국새가
원나라 국새라고 해요
몽골의 차하르가 항복하고 청 태종에게
국새를 바침으로써 후금이 청으로 나라 이름을
변경하게 만든 자료라고 하네요~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열고 나아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했고
그곳에는 큰 비석이 세워지게 되죠
어마어마하게 큰 크기답게
전시실을 꽉 채운 탁본을 보니
석촌호수에 있는 삼전도비가 생각납니다
실 비석과 탁본을 모두 다 보게 되다니
기분이 묘하네요.. ㅎㅎ
그 뒤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요?
죄 없는 엄청난 수의 백성들이 끌려간 것은 물론
왕의 아들인 봉림대군과 세자까지
인질로 잡혀가게 됩니다
척화를 주장한 사람들 중 세명
홍익한, 오달제, 윤집은 심양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삼학사의 기개에 감복한 청태종이 세웠다고 알려진 삼한삼두 삼학사비
결국 김상헌과 최명길도 심양에 끌려가게 되죠~
임경업 장군 같은 걸출한 인물이 결국은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기도 하고요
인조 계보를 이은 왕과 조선의 행보
이후에는 소현이 죽고
봉림이 세자에 오르게 되죠
세자가 된 봉림이
동생 인평을 부러워한 시를 보니
민회빈 강 씨와 그의 아들들이 생각나요 ㅎㅎ
(그러면서 왜 가만히 있었던 거냐! ㅋ)
이후 왕이 된 봉림,
효종은 이후 북벌을 위해
여러 제도를 정비하고 대동법을 시행했습니다
아~ 이렇게 대동법이 시행되는군요
이 시기 북벌 준비는
굉장히 중요한 시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동법을 추진한 이완을
우의정에 임명할 정도니 말이에요
이 조치들은 숙종대에 와서
효과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그럼 이제 조선은 회복이 된 것일까?
쉽게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
적어도 백성들의 삶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역사공작단 채널을 좋아해서 선생님들이
준비해 주신 병자호란편을 들었었는데요
거기서 이야기해 주신 사례도 전시가 되어있네요
자신의 속환을 도와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아내를 버리고 재혼한 남성의 이야기,
양반 여성으로서 전란을 겪으면서
가졌던 감정과 경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으로 집안 내에서도
반청과 친청으로 갈려 끝내 친족을 잃고
외부인과 왕래를 끊은 남성,
홍익한의 딸로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어
아버지를 평생 애도하는 삶을 산 여성,
남편과 자식을 타국에 보내는
노부인의 이야기 등,
그 시대를 겪어내고 견뎌낸 사람들의
많은 단편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400여 년 전 일임에도
이러한 삶의 조각들을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인지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숙연..)
그럼에도 희망을 갖고자 한 사람들
병자호란 후 나타난 문학작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박 씨 부인전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아요
초인적인 힘을 가진 박 씨 부인이 청나라군을
혼내주는 군담소설이라고 합니다
임경업과 이시백 장군이 이 소설에 등장해서
흥미를 더했고요
가부장적인 당시 조선 사회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도 느낄 수 있다고 하네요
임경업전도 있죠
임경업 장군을 영웅화한 역사소설이고요
임경업에 관한 기록들과 설화를 토대로 창작하여
청에 대한 적개심과 위기에 빠진 나라 상황에도
개인의 사리사욕만 챙긴 간신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고 해요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돼 작품
강도몽유록도 있었습니다
남한산성 항복의 배경에
강화도의 함락이 있었는데요
예전에 광주시에 있는
여성제 생가에 대한 향토역사 스터디를 하면서
여성제의 어머니 청주한씨도
강화도에서 자결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당시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강화도가 함락되었을 때
얼마나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는지
여성들의 끔찍한 참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었는데요
강도몽유록은 그때 당시 죽은 여인들의 원령이
작품의 주인공 꿈에 나타나
조정 대신과 수비를 맡았던 관리를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공신의 부인이나 며느리들이 원령으로 나타나
임금이 항복의 치욕을 겪게 한
공신의 허물을 공격하는 한편,
희생된 여성들의 실상을 드러내 정절 관념의
허구성을 비판했다고 하네요
더 깊게 생각해 보는 척화와 주화
김상헌은 답답하기만 하고 최명길은 그냥 매국노일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계속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사욕을 챙긴
주장을 했느냐에 집중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항복을 두고 논쟁한 그 장면을 넘어
병자호란 후의 그들의 행보에 대해서도
면밀히 챙겨 본 후에 평가를 내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후에는 심양에서 이 두 사람이 시를 통해
오해를 풀었다고 전해지는데요
그 대목을 통해서 지금 우리 현대인에게도
생각해 볼 만한 포인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양대의 우정을 찾고,(從㝷兩世好)
백 년의 의심을 푼다.(頓釋百年疑)
-김상헌-
그대 마음 돌 같아서 끝내 돌리기 어렵고,
(君心如石終難轉)
나의 도는 둥근 꼬리 같아 경우에 따라 돈다.
(吾道如環信所隨)
-최명길-
항존착인통함원과 무망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전시의 마지막은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
바로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장 약하고 가장 보호를 받지 못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영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저도 그 시대를 살았다면
저들과 별반 삶이 다르지 않았겠지요
해서
남한산성 행궁의 주련과 무망루가 떠올랐습니다
(한남루 사진은 많은데 뒤편 사진은 행사 게임하면서 찍은 이사진 딱 하나뿐이네요 ㅎㅎ;)
당시 왕과 사대부들은 좀 다른 의미에서
이 문구들을 새겼겠지만
우리가 진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싶어요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전시장을 나왔습니다
병자호란 전후의 국제정세와 전쟁,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병자호란 특별전.
좋은 자료들과 유튜브를 통해 영상들을
제공해 주신 진주박물관에 감사합니다
좋은 공부 되었습니다
진주박물관 방문 당일
남한산성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동료 해설사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입니다
이날 전시 컨셉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눈이 펑펑 내렸네요~
ㅎㅎ
리뷰는 한 페이지지만
긴 호흡에 쓰다 보니 벌써 3월에 접어들어
따듯해지고 있는 남한산성입니다!
이제 곧 벚꽃이 피겠지요?
이제는 청나라도 없고 일제도 없는 남한산성에서
씨 유 어게인!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마치 진주 박물관을 다녀온 듯합니다.
사진과 설명 잘 보았어요~^^
감사합니다.
저 역시 지난 2월 하동 출장 중에 한 시간쯤 짬을 내어 들렸더랬습니다.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민중들의 애환을 보면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전쟁을 막는 일 ㅡ 그것이 국방력이든 외교력이든 ㅡ 이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부분까지 보충할 수 있어 너무 고맙습니다.^^
진주박물관과 역사저널 그날 덕분에 산성에 해설 수요도 반짝 많아졌더랬죠 선생님께서도 보셨다니 반가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