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빛 아래 앉은 여인
성탄의 불빛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잠시 멈춰 세운다. 거리마다 매달린 전구의 조각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겨울밤은 그제야 비로소 ‘겨울의 표정’을 갖게 된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붉은빛과 초록빛이 뒤섞인 포토존 한가운데에 도착하자, 오래전 추억 속의 크리스마스가 내 어깨를 살포시 두드리는 듯했다.
낡은 벤치가 놓여 있고, 그 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쓰인 ‘Merry Christmas’ 문구가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빛과 달리 벤치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벤치에 조용히 앉았다.
빛에 비친 내 그림자가 벽에 흔들리고, 머플러의 올이 작게 흔들렸다. 어쩌면 나 역시 올해를 건너온 작은 나무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때로는 잎을 떨구며, 때로는 다시 피어나며 살았다.
그런 내 앞에 이 겨울의 빛은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는 손을 들어 네온사인의 한 글자를 가리켰다.
아마도 그 순간을 담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준 선물처럼, 누군가에게 “여기, 이 장면이 참 좋지 않나요?” 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빛에 비친 내 얼굴은 다른 계절보다 조금 더 따뜻해 보였다. 겨울의 차가움이 오히려 인간의 온기를 더 두드러지게 보여주듯, 불빛은 내 미소를 살짝 감싸 안았다. 나는 그 미소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겨울이 아름다운 이유는, 추워서가 아니라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스카프를 두른 목덜미로 은은한 열이 퍼지고, 긴 원피스 자락은 다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 겨울 공기, 살짝 시린 손끝—all of that이 어우러지며 이 순간을 한 폭의 겨울 그림처럼 완성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손끝으로 빛을 가리키고 있었고, 네온사인의 하얀선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처럼 반짝거렸다. 빛과 내가 한 공간에서 서로를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든다. 봄이나 여름에는 잘 돌아보지 않던 마음들을, 겨울의 빛 앞에서는 하나씩 살펴보게 된다. 올해 나는 어떤 계절을 지나왔는지, 얼마나 웃었고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놓아주었는지. 그 모든 질문들이 벤치 위에서 조용히 나를 향해 건너왔다. 나는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그 질문들과 함께 머물러 보기로 했다. 빛 속에서 잠시 마음을 쉬어가는 것도 괜찮으니까. 사람들은 사진 속 나를 보며 “참 따뜻해 보인다”,
“성탄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따뜻함은 불빛 때문이 아니라, 올 한 해를 끝까지 살아낸 나 자신이 만들어낸 색이라는 것을.
살아온 날들이 쌓여 미소가 된다면, 그 미소는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불빛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벤치는 나의 온기를 살짝 머금은 듯 따뜻했다. 누군가는 이 벤치에 앉아 또 다른 미소를 남기겠지. 그 미소 위로 성탄의 빛이 다시 한 번 내려앉으며, 또 하나의 겨울을 완성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벤치에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겨울을 살아낸 모든 사람들에게.” 그 말이 공기 속에서 천천히 녹아 사라질 때,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 조금은 따뜻해진 숨결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