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제목 : 이렇게 기도하자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8장 1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1) 우리는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18장 1절 말씀에
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 기도가 곧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을
비유로 하여 말씀하신다.
우리는 기도가 내가 원하는 대로
즉시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낙심하기를 잘한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
내가 바라는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바라는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보다 더 커 보이면
나는 낙심하게 됩니다.
따라서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과 밤낮 부르짖는 과부의 간청을 비유로 하여 말씀하신다.
<누가복음>18장 5절 말씀에
5절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하며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말을 인용하여,
<누가복음>18장 7절 말씀에
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시며. 너희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지만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로마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로마서> 8장 32절 말씀에
8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로마서> 8장 35절 말씀에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에 사랑으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현실적인 상황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때로는 느린 것 같지만
나에게 가장 좋은 시간에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맷돌(millstone)은
느린 것 같지만 가장 곱게 갈아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현실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2)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6장 7절 말씀에
7절 ” 또 기도 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방인들이 기도할 때에 중언부언하는 까닭은 저희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 신지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6장 8절 말씀에
8절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요한1서> 4장 8절 16절 말씀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로마서> 8장 32절 말씀에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요한1서> 4장 10절 말씀에
10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따라서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과 같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사야> 65장 24절 말씀에
24절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들을 것이며”
라고 하신 분이시다.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은
20절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
중언부언하며 길게 기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시편> 38편 9절 말씀에
9절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 이지. 아니 하나이다.
<다윗>과 같이 소박하고 명료하며 진실된.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말을 많이 하거나
길게 한다고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니시다
(참고 성경 <전도서> 5장 2절)
따라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와”와 “들에 핀 백합화”를 비유로 하여
말씀하시기를 (참고 성경 <마태복음> 6장 26절-28절)
저들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키우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시며, 너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참고 성경 <마태복음> 6장 25절. 31절-32절)고
말씀하시며. 너희 자신의 필요를 위한 간구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너희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참고 성경 <마태복음> 6장 33절.
우리는 이방인과 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중언부언하며. 길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여호와를 전심으로 찬양(Adoration)하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참고 성경 <로마서> 8장 26절. 나의 죄를 회개(Confession) 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참고 성경 <시편> 6편 1절. 38편 1절 51편 1절)
범사에 감사(Thanksgiving)하고
(참고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간구(Supplication)하며. 진심으로
(참고 성경 <예레미야> 29장 13절.<잠언> 8장 7절)
남을 위한 간절한 사랑의 도고(Confession) 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이방인들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드리도록 힘써야 한다.
3) 너희는 기도 할 때에 서서 기도하라
<모압>과 <암몬> 자손이 <유다>를 치고자 할 때에 <여호사밧>왕이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고 공포하고 여호와의 전(殿)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회 중 가운데서서. 겦맛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전(殿)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殿)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셨나이다.“
(참고 성경 <역대 하> 20장 9절.) 하였으며
<느혜미야> 9장 1절-3절) 을 보면
1절 그달 스무 나흔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절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절 이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라고 되어있으며,
<욥기서> 30장 28절 을 보면
28절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고 되어있다.
또한 <마가복음> 11장 25절 을 보면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리라
(참고 성경 <누가복음> 18장 11절-13절 에는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討索).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고 되어 있다.
여기서 보면 <유다>왕 <여호사밧>은 환난 날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서서 기도했고 (참고 성경<역대 하> 20장 9절)
<이스라엘>민족은 <바벨론>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감격 속에
초막절(草幕節) 절기를 지키고 (참고 성경<느혜미야> 8장 13절-18절)
곧 죄에 대한 회개와 금식을 선포하고 율법 책을 봉독할 때에
서서 기도하였으며 (참고 성경<느혜미야> 9장 1절-3절)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욥>도
(참고 성경<욥기서> 1장 1절) 기도할 때에 서서 기도했고
(참고 성경<욥기서> 30장 28절)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할 때에 서서 기도했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다.
“서서기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목회자가 강단에서 기도를 드릴 때든지.
공중기도. 대표 기도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서서 기도를 드리는 예가 많지 않다
미국에서도 복음 송이나. 찬송을 부를 때에 서서 찬양하는 교회를
가끔 볼 수 있다. 서서 기도하고, 서서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찬양과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敬畏)한다는 뜻이다
미국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설교 중에 크게 은혜를 받으면 은혜 받은
성도들이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서서 말씀을 듣는 예가 있다.
이는 설교자에 대한 예우(禮遇)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부모님이나
어른이나 윗사람을 대하게 되면 앉아 있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예의를 표한다. 또한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이나 퇴장 때에는 모든
축하객들이 일어나 서서 축하한다. 이는 신랑 신부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릴 때에 예의(禮義)있는 몸가짐으로
기도하여야만 한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우리의 몸가짐이 어떠하던지 관계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시며 두려우신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경외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겨야 할 줄 안다.
우리는 아직 몸에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찬양드릴 때나. 기도할 때에 보다
예의 있는 최선의 몸가짐을 배우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더욱
유익한 줄 안다.
4) 믿음으로 기도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
(참고 성경<마가복음> 11장 22절-24절) 말씀하셨으며.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던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고
(참고 성경<마태복음> 21장 22절) 말씀하셨으며.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 하면 그대로 되리라”하신 말씀과
“너희가 기도 할 때에 무엇이던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하신
그 믿음은 어떠한 것일까?
성경에 기록된 믿음을 잠시 생각해 보면,
첫째 단계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은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세례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은 믿음으로 구속(救贖)된 사람들이다.
<요한복음> 8장 44절 말씀을 보면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신 말씀이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귀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참고 성경<로마서> 3장 10절-18절)
말씀하셨으며.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참고 성경<에베소서> 2장 8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 것이며(참고 성경<요한복음> 1장 12절-13절)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 성경<로마서> 8장 15절 <갈라디아서>4장 6절)
둘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받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나는 믿음이다.
믿음은 들음 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참고 성경<로마서> 10장 17절) 하신 말씀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로 부터 값없이 받은 구원을 이루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음으로 나며, 말씀을 실천하고 연습함으로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 성경<디모데 전서> 4장 7절-8절)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나 이웃과의 사이에 아직도 시기와 분쟁이 있으면
이는 육신에 속 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의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참고 성경<고린도 전서> 3장 1절-3절)
이 어린아이의 믿음이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려면 말씀을 계속해서
들음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참고 성경<사도행전> 11장 26절)
셋째 단계는:
장성한 믿음 곧 성령 충만한 자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믿음이다.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 져야하며
(참고 성경<고린도 후서> 2장 14절)
장성한 믿음의 신앙생활이 보여져야 하는 것이다.
(참고 성경<고린도 전서> 13장 11절)
믿음은 이론이 아니고 생활이며. 믿음은 정지된 것이 아니고
자라나야 하는 것이며. 믿음은 성도의 인격인 것이다.
성도의 삶속에서 믿음이 풍겨져야 하며. 성도의 삶 속에서
믿음이 읽혀져야 하는 것이다 (참고 성경<고린도 후서> 3장 2절-3절)
믿음으로 사는 삶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참고 성경<로마서> 1장 17절)
믿음으로 사는 자는 <바울>사도와 같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자이며,
내가 매일 죽는 자이다 (참고 성경<고린도 전서> 15장 31절)
이때에 기도하면 기도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참고 성경<야고보서> 2장 26절)
예수께서”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은 장성한 믿음
곧 성령 충만한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의존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기도 하라는” 말씀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참고 성경<로마서> 1장 17절) 하신 말씀대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으나
(참고 성경<디모데전서> 1장 15절 <요한복음> 8장 44절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和睦祭)로 보내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죄 사함을 받았고, 의롭다고 칭(稱)함을 받았으며
(참고 성경<로마서> 3장 24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축복을 받아.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자녀의 특권을 받게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참으로 믿고. 감사하며. 감격하며.
장성한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장성한 믿음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며. 축복이며. 그의 사랑인 것이다.
5) 남을 용서하고 기도하라
<마가복음>11장 25절 말씀에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기도와 용서"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기도하는 자가 죄가 있으면 그 기도는 결코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는 것이다.
(참고 성경<시편> 66편 18절)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는 모두 하나님께
은혜로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이다.
성경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참고 성경<로마서> 3장 10절-12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참고 성경<로마서> 3장 23절) 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값없이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은 이웃의 죄를 먼저 값없이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물었을 때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참고 성경<마태복음> 18장 21절) 하시며
일만 달란트 빚진 종과 일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사람의 죄의 빚은 일만 달란트 빚진 관계는
일백 데나리온 빚진 관계로 비유하셨다 (참고 성경<마태복음>18장 23절)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 빚진 일만 달란트의 빚을 용서 받은 사람이
일백 데나리온의 빚진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여 보면
1) 1 데나리온 은 당시 노동자 하루의 품삯이다.
(참고 성경<마태복음> 20장 1절-14절)
2)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으로 당시 노동자 약 16년 동안의 품삯이다.
따라서 10.000 달란트는 6.000만 데나리온으로 추산된다.
3) 따라서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빚을 무조건 용서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4) 또한 일만 달란트의 빚을 용서받은 사람은 그 빚과 함께
그 사람 자신도 용서받은 자. 빚 없는 자. 죄 없는 자.
의인 곧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어 진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실 때에 그가 지은 죄와 함께
그 사람도 용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은
동시에 남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의인 곧 용서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받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반드시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이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이다.
5)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의
죄의 빚만 용서받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으므로
(참고 성경<요한복음> 1장 12절)
그 이웃의 잘못과 죄를 반드시 용서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먼저 내 이웃의 잘못이나 과오를 모두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참고 성경<고린도 전서> 13장 5절 <히브리서>10장 17절)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기도는 사랑의 관계이며.
사랑은 반드시 용서와 남의 악한 것을 기억지 아니함
(참고 성경<고린도 전서> 13장 5절 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