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24일
'악의’ 추정에 ‘중과실’ 책임 덧씌워 징벌… 언론자유 봉쇄하는 ‘위헌 입법’
美 징벌적 손배 요건은 명백한 ‘현실적 악의’… 일부러 피해 주장하는 ‘도덕적 해이’ 초래할 위험성도
與, 언론에 허위·조작보도 판단 입증책임 떠넘기기… 다수의석 앞세운 입법폭주, 군사독재 시절과 다르지 않아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범여권 180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획득했다. 이런 다수 의석의 힘을 보여 주려는 듯 수많은 입법을 양산했으며, ‘야당 패싱을 통한 입법 폭주’가 계속됐다. 최근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에서 강행 처리한 것은 이런 흐름 위에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해 ‘추정적 악의’에 ‘중과실’ 책임까지 덮어씌워 허위·조작보도로 규정해 ‘징벌’하려는 건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봉쇄하는 ‘위헌적 입법’이다.
◇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
여당의 입법 폭주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나타났다. 첫째, 민주당은 전례 없이 국회의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했고, 과거 야당에 배정되던 관례를 깨고 법제사법위원장까지 차지함으로써 야당에 의한 견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법사위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법사위까지 장악한 것은 입법 폭주를 사실상 예고한 것이었다.
둘째, 다수의 힘을 앞세워 과거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던 국회선진화법의 허들(장애)을 넘어 충분한 논의 없이 처리된 쟁점 법안이 매우 많다. 특히 국내외적으로 논란됐던 ‘대북전단 금지법’을 비롯해 ‘5·18 비판 금지법’ ‘부동산임대차 3법’ 등이 수많은 국민, 언론사, 대한변협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됐을 뿐 아니라 야당의 비토(거부)권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 등은 입법 과정에서의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기대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셋째, 다수의 힘에 의존해 상임위뿐 아니라 법사위, 본회의까지 사실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재 문제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상임위를 통과했는데, 엿새 후인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결국 법사위나 본회의의 논의 자체가 사실상 무력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며, 그 내용을 떠나서 절차만으로도 대화와 토론에 의한 입법 절차가 갖는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했다.
◇ ‘징벌적 손해배상’ 법리적 문제
지난 1년여 동안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16개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상임위를 거쳐 하나의 안으로 정리됐다. 대안의 중요 내용으로 정정보도에 관한 것, 기사의 열람 차단에 관한 것 등이 포함돼 있는데, 언론중재법 개정의 핵심이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영국의 판례에서 시작된 징벌적 손해배상은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제조물책임법 등에서 예외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영미법계 국가에서 인정되는 제도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수용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게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점이다.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로 발생한 ‘피해의 전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적인 가해자에 대해 ‘징벌’의 의미를 담아, 발생한 피해의 몇 배까지 배상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강화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악의적으로 피해 발생을 유도하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도 크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제조물책임법과 특허법 등의 사례처럼 피해액의 산정 및 입증이 어려운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함으로써 피해자 구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대부분 ‘가해자의 고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한다. 다른 하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나 환경보건법처럼 피해자가 침해를 유발하는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다.
언론중재법은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언론 피해의 경우도 그 피해액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렇다면 재산상 피해가 아닌 정신적 피해가 발생한 모든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해야 하며, 언론에 대해서만 특별히 적용할 게 아니다. 따라서 여권이 언론에 특별히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의도’가 문제가 된다.
더욱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널리 인정하는 미국의 판례에 따르면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으로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요구한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는 고의 외에 중과실을 포함하고 있다. 중과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까지는 수긍할 수 있지만, ‘징벌’의 의미를 담아 5배까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할까. 이는 오히려 미국보다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더 확장하는 것이며, 언론사에 부담을 가중하는 것일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것이다.
◇ 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위헌성
언론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초이기도 하다. 언론의 자유를 통한 국민 의사의 수렴 및 소통 없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된다.
우리 헌법 제21조에서 언론 자유를 명시하면서 사전억제(허가 및 검열) 금지를 규정한 것이나,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언론 자유를 명시하고 연방대법원이 언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인정돼야 한다고 했던 것도, 언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매우 강력한 공익적 요청’이 있어야 한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보복·반복적 허위·조작 보도,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등에 대해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예전에 문제가 돼 삭제됐던 입증 책임의 전환과 사실상 같은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허위·조작 보도라는 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전제로 한 반복 보도 또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순환논법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도 하다.
열람차단청구권도 언론 보도에 대한 위헌적 침해 소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자유에 반하는 위헌적 입법으로 평가된다. 이런 입법을 야당과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 의석을 앞세워 강행 처리하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여당이 보여준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장영수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화일보
■ 세줄 요약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 : 여당은 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야당 패싱을 통한 입법 폭주’를 계속함.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도 그 연장선에 있음. 이는 절차만으로도 대화와 토론에 의한 입법 절차가 갖는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
‘징벌적 손해배상’ 법리적 문제:여당이 언론 보도에 대해 ‘추정적 악의’에 ‘중과실’ 책임까지 덮어씌워 ‘징벌’하려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 이는 악의적으로 피해 발생을 유도하는 ‘도덕적 해이’ 위험성을 부름.
언론 자유에 반하는 위헌성 : 언론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이를 제한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인정돼야 함. 하지만 여당은 ‘순환논법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면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행태를 보임.
■ 용어 설명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은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에 나온 표현. 수정헌법 제1조 언론자유의 제한을 위해서는 그 오·남용으로 인한 해악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
‘현실적 악의’는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제시된 언론자유 제한의 요건. ‘추정적 악의’가 아닌 ‘현실적 악의’가 인정돼야 한다는 것으로, 언론자유와 비판 기능의 확보에 큰 영향을 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