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을 포함하여 고성군에서 삼척시까지 바다와 접한 강원도 지역은 모두 한 번씩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서해와 남해에 비해 완만한 해안선을 지닌 동해안은 왠지 단조로운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역마다 독특한 지질 환경 등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다채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어 즐거웠어요.
강릉의 주문진항과 속초의 동명항처럼 항구도시의 풍경과 동해의 추암 촛대바위처럼 능파대(Stone Forest, 파랑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와 촛대바위같은 암석 기둥인 '라피에’들을 총칭하는 말. 이곳은 국내 유일의 ‘해안 라피에’라고 합니다.)가 형성된 곳, 경포ㆍ강문ㆍ안목 해변처럼 아름다운 해변과 동양 최대의 해송숲이 형성되어 있는 곳. 이처럼 독보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접한 지역에서는 경포호, 송지호, 화진포, 영랑호, 청초호 등 '석호(潟湖)'를 쉽게 볼 수가 있는데요. 석호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형성된 만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사주나 *사구의 발달로 바다의 일부를 막아 형성된 호수입니다. 바다 근처에 있는 호수를 보게 된다면 지형의 형태나 생태환경 등을 유심히 살펴보며 여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양양으로 여행해볼까요? :)
* 사주(sand bar) : 해안의 모래가 파랑과 연안류 등에 의해 이동ㆍ퇴적되면서 생긴 모래나 자갈로 이루어진 퇴적 지형
* 사구(sand dune) : 바람으로 운반된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
하조대 해수욕장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다음 날 아침, 속초를 떠나 1박 2일 동안의 짧은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양양에 왔습니다. 양양도 고성과 마찬가지로 첫 방문이었는데요. 이곳에 대해 아는 거라곤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던 낙산사와 거대한 해수관음상, 낙산해수욕장, 서핑 그리고 여름에 이용했던 양양국제공항 뿐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고, 또 기대가 컸던 곳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양양 중간쯤에 위치한 하조대 해수욕장을 방문했는데요.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해변은 한적했고, 갈매기들이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동해의 여느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최근 1년간 수많은 해수욕장을 방문했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바다다운' 곳으로 이곳을 꼽고 싶습니다. 짙푸른 색의 청량한 바다와 백사장이 무척 아름답지만, 빠르고 강한 파도 때문에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이지요.
▼ 사람보다 갈매기가 더 많았던 가을 아침의 하조대 해수욕장
▼ 마름모 모양의 귀여운 갈매기 발자국
지난 9월, 양양군은 연이은 태풍 마이삭(제9호)과 하이선(제10호)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태풍 당시 1시간 동안 무려 1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지요. 해변에는 이렇게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떠밀려와 있습니다. 이곳 뿐만 아니라 다음에 소개해 드릴 낙산해수욕장은 더욱 심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어요. 지금쯤 복구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빨리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파도가 굉장히 근사하죠? 이곳 특유의 리드미컬한 파도를 보고 있으면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합니다. 이렇게 쉴새없이 밀려오는 파도로 인해 서핑하기 좋은 곳으로 명성이 자자한가 봅니다. 다만, 물살이 굉장히 빠르고 이안류(역파도)에 휩쓸리기 쉬우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제 해변 오른쪽에 있는 하조대 전망대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이 일대는 거대한 바위섬과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양양국제공항이 근처에 있어 비행기가 수시로 지나며, 바다 뒤로는 거대한 산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굉장히 멋진 곳이었어요.
하조대 전망대
■ 강원도 양양군 하륜길 56
기암괴석을 따라 난 계단을 올라가면 하얀 등대 모양의 스카이워크가 있습니다. 이곳은 '하조대 전망대'인데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이 위를 걸을 때 조금 무섭지만, 푸른 바다와 백사장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으니 한 번 올라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망대 중간에 난 해안데크길을 걸어가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비밀 장소 같은 작은 백사장이 있으며, 이 길을 계속해서 따라가면 '하조대'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아요.
기암 괴석 위에는 노송이, 그리고 바위의 작은 틈에서 이름 모를 하얀 꽃이 피어 있었어요. 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견뎌 왔을까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바위 위에 자그마한 게가 보이나요? :)
하조대 (2009년, 명승 제68호 지정)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하조대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며 여기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날 하조대는 방문하지 않아 사진으로 담아오지는 못했지만, 이곳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노송이 자라나 있는 기암 절벽을 쭉 따라가보면 그 위에는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육각정(1955년 건립)이 있습니다. 이곳은 양양 최고의 경승지로 꼽히는 곳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음풍농월하며 말년을 보낸데서 하륜과 조준의 앞 글자를 따서 그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음풍농월: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속에서 시를 지으며 즐김)
(하조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보는 경치는 정말 근사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바다였습니다.
양양에 오면 하조대 해수욕장과 하조대 전망대, 가능하다면 하조대까지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계속해서 양양의 다채로운 풍경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