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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세상 향한 발걸음 | ||||||||||||||||||||||||||||||||||||
[사람과 현장] 한달 국토대장정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자~ 오늘도 한 번 걸어 봅시다.” 21일 아침 9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앞 50여 명이 걸을 준비를 서두른다. 5월 30일 시작한 풍산마이크로텍 42명 노동자들의 희망국토대장정이 오늘로 23일째다. 오늘은 현대차 아산공장을 출발해 유성기업까지 가는 코스다. “오늘 22키로미터 코스면 양호한 겁니다. 고개 넘고 40키로미터 걸을 때는 아유 말도 마십쇼.” 그간 걸어온 거리만 6백 키로미터에 달한다. 천리길(4백 키로미터)도 훌쩍 넘겼다.
23일 동안 비는 하루밖에 오지 않았다. 비오는 날이 더 걷기 힘들다고 날씨 덕 봤다고 말하는 이들이지만 한 낮에 30도를 넘는 날씨에 그늘을 찾기 힘든 땡볕 아래 하루종일 걷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 옷으로 가린 곳과 햇빛에 노출돼 탄 곳의 경계는 마치 옷이라도 입은 양 명확하다. 이미 발에 물집은 몇 번을 생겼다 터졌다를 반복했고, 심한 이들은 발바닥이 다 벗겨지고 물집을 잡느라 실로 꿰맨 상처가 한 두 개가 아니란다.
23일동안 천리길도 넘는 강행군 23일 동안 가장 힘든 것이 뭐였냐고 물으니 “더운 날 걷는거나 길에서 노숙하는 건 참을만한데 씻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빨래도 문제다. 저녁에 하루 일정을 마치고 빨아둬도 잘 마르지가 않아 낮에 걸으면서 빨래를 말려야 한다. 조합원들이 뒤로 짊어진 가방에 빨래집게가 서너개 씩 달려있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오늘도 어제 다 말리지 못한 양말을 가방에 걸고 힘찬 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곳곳에 보인다.
대장정을 벌이고 있는 풍산마이크로텍지회는 7개월째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풍산그룹은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팔아버렸고, 회사를 인수한 이는 고용승계를 약속했지만 지난해 11월 52명을 정리해고했다. 지난 2월 29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가 이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지만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여전히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투쟁을 진행 중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번 대장정은 어떤 의미일까. 이영기 조합원은 “자본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강조했다. “걷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전국에서 기운도 모았고 우리 준비 다 됐으니 한판 제대로 붙어보자고 가는 중입니다.” 최일수 조합원도 “내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며 “한편으로는 이후 투쟁을 하기 위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영섭 지회장은 걸어서 서울까지 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서울까지 전국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면서 가보자는 것이 이번 대장정을 기획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재벌이 단협 무시하고 매각안하겠다고 선언하고도 회사 팔아버리고, 그 뒤에는 정리해고 해버려도 사회적으로는 ‘합법적’인게 지금 세상”이라며 “세상에 절망하기 전에 마지막 발버둥을 해보는 것”이라고도 덧붙인다.
정리해고 문제를 제대로 알려내기 위해 이들은 선전에 핵심을 뒀다. 사람 많은 곳으로 찾아가 선전전을 하고 유인물을 나눠주며 내용 알리기에 열심히다. “외진 곳에 가보면 정리해고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제대로 알려야 됩니다.” 문 지회장은 이번 대장정의 목표를 강조했다.
하지만 대장정을 하는 이들은 시민들을 만나면 “풍산마이크로텍입니다”가 아니라 “금속노조입니다”라고 인사한단다. 풍산마이크로텍 정리해고 문제 만이 아니라 금속노조, 더 나아가 전국 투쟁사업장이 동일하게 갖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알려내는 것이 이들이 나선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장정의 모토도 ‘정리해고, 비정규직, 재벌특혜가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시민들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전국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성세경 지회 노안부장은 “처음 시작이야 풍산 때문에 한거지만 투쟁하는 동지들 만나면서 더 이게 우리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며 “투쟁하기 전에 연대 다니던 때와는 다르게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정말 같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한다”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복수노조, 정리해고, 비정규직문제 정말 심각합니다. 거기다 손배가압류며 가처분까지 투쟁하는 걸 더 고통스럽게 하기도 하구요. 지금까지 우리도 노조도 이것 막지 못하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많이 반성했습니다.” 성 부장은 “7개월 동안 투쟁하면서, 이번 대장정 하면서 정말 많이 느끼고 배웠다”면서 “정말 이 길 나서길 잘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최일수 조합원도 “우리는 풍산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얘기하는 건 노동자가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본가들도 노동자 없이는 살 수 없는데, 억울하게 노동자만 고통받고 죽으란 법 있습니까.” 그 마음으로 걷는 길이라 더 힘을 낸다.
“이 길 나서길 잘했다” 걷고 있는 이들 모두 스스로 대장정 참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대장정 초반에는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한다고 했나 후회도 조금 했단다. 그런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같이 걷고 있는 동지들, 부산과 서울에서 또 다른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지회 조합원들 덕분이었다. 최일수 조합원은 “부산에서 농성하고 상경투쟁하는 조합원들도 힘든데 우리 더 힘들거라면서 걱정만 합니다”라며 “또 형님들이며 같이 걷는 동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힘이 돼주니 기운 내서 걸을 수 있지요”라고 말한다.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부산에서 포항, 울산, 구미, 대전 등을 거쳐오는 동안 지역마다 동지들이 밥을 준비하고 같이 걸으며 힘을 줬다. “전국 어딜가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나와서 맞아주고 조금이라도 잘해주려고 애쓰는 것 보면서 정말 고맙고, 진짜 전국조직 맞구나 실감했습니다.” 성세경 부장은 지난 기간 지역에서 연대해 준 동지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노조 조합원들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보내주는 응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최일수, 김충배 조합원은 대장정을 시작하면서 트위터를 더 열심히 하게 됐단다. 트위터 친구도 7배 가까이 늘었다. “우리 어디 지나가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트위터에 올리면 사람들이 관심도 많이 갖고 이리저리 날라주면서 선전도 해주고요. 그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최일수 조합원은 트위터를 통해서 시민들의 연대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고 말한다.
트위터로 전해지는 응원, 직접 찾아오는 시민들까지 한번은 늘 트위터로 소식을 전하던 청주에 사는 시민이 대장정팀이 청주를 지난다는 것을 듣고는 수박이며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찾아왔었단다. 대구에서는 김충배 조합원과 트위터로 소식을 주고받던 시민이 가게에 있는 파스를 싹쓸이해서 들고오기도 했다. “얼른 서울로 오라고, 서울에서 만나자고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도 엄청 많습니다.” 이들의 트위터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최일수, 김충배 조합원은 비해고자다. 대장정팀에는 비해고자 조합원들도 상당수 있다. “17년을 주야 맞교대 하면서 정말 시키는대로 일만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형님들 친구들이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최 조합원이 이 투쟁을 같이 하고 있는 이유다. 최 조합원은 “일할 때는 개처럼 시켜놓고 버릴 때는 뒤도 안돌아보는 것이 자본”이라며 “같이 싸우는 것 내가 선택했고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김충배 조합원은 “우리 조합원들은 처음부터 같이 살자고 결의하고 투쟁하고 있다”며 “이겨서 다같이 공장 돌리러 들어가야한다”고 강조한다. 문영섭 지회장도 “결국 이 잘못된 것들 바꾸지 않으면 개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비해고자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싸움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풍산 투쟁의 의미를 말한다.
힘든 대장정 길에 숙소며 씻는거며 뭐 하나 만족스러울 순 없지만 먹는 것 만큼은 든든하게 챙기는 이가 있다. 바로 대장정팀의 일명 ‘짬장’을 맡고 있는 유경재 조합원. 유 조합원은 25년 넘게 풍산에서 일한 고참 형님에 속한다. 그리고 이번 정리해고 때 해고자가 됐다. “이렇게 싸우면서 진짜 형제 같고 동지가 됐으니 얼마나 좋냐. 동생들 열심히 싸우는데 밥이라도 맛있게 든든히 먹어야지.” 유 조합원은 이런 마음으로 부산에서부터 지금까지 조합원들의 식사를 챙기고 있다.
“해고자 비해고자, 우리는 같이 살겁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하고, 조합원들이 걷는 동안 점심 밥을 준비해온다. 저녁을 하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조합원들에게 밥은 잘 먹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형님 음식 솜씨가 최고”라며 “40명 분 음식 매번 하는게 힘든데 정말 고생 많다”고 말한다. 이날 점심과 저녁도 모두 다른 반찬에 국을 손수 준비했다. 맛도 일품이다. “걷는 사람들 건강해야 하니까 음식도 신경쓴다. 조합원들이 ‘맛있다, 헝님 잘 먹었다’ 이런 얘기 하면 힘든 줄도 모른다”는 유 조합원. 서울에 도착하는 날까지 대장정팀의 식사는 안심이다.
23일 동안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왔다. 이제 서울까지 약 1백 키로미터만 남겨뒀다.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은 경기, 인천을 거쳐 27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건강하게, 이왕 시작한 거 아무 사고 없이 완주해야죠. 서울에서 기다리세요.”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잘 사는 세상을 위한 이들의 힘찬 발걸음. 27일 우리 서울에서 만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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