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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천사들이 앞에 쫙 서가지고요. 아주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영적 치매입니다. 오늘 좀 내용이 많아서 조금 빠르게 가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들으셔야 됩니다.
옛날 원시인들을 그릴 때 보면은 이렇게 사각턱으로 아주 네모나게 많이들 그립니다. 그리고 치아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치아보다 더 어금니 쪽이 더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딱딱한 그죠? 가공되지 않은 음식들을 먹기 때문에 아주 발달할 수밖에 없고 사각턱을 갖게 되어진 건데요. 어떤 치과 의사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점점 부드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피자라든지 케익이라든지 곶감도 제 기억으로는 딱딱하고 하얀 가루가 잔뜩 있는 동그란 납작한 그 곶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맛이 그리운데 요즘 곶감하면 부드럽고 그렇지 않습니까? 약과도 더 부드러워지고 점점 부드러운 음식을 현대인들은 좋아하기 때문에 사각턱이 아니라 점점 갸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게 이제 미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이 치과 의사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틀니를 하신 분이 아무래도 보통 치아를 갖고 있는 분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조금 더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게 단단한 음식을 씹을 때에 치신경을 자극하고 이 치신경을 통해서 뇌 신경까지 자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단한 음식을 씹을 때 치열을 또 고르게 해주죠. 부드러운 음식을 씹기 시작하면서 덧니들이 나기 시작한 거잖아요. 그래서 뇌신경을 자극하니까 치매를 예방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죠.
이 치매라는 것은 특징 중에 하나가 분별력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할머니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고 지금 아버지도 조금 치매기가 있으셔서 평소에 멀쩡하시다가 주중에 한 번 전화가 왔는데 들어가는 번호를 잊으셔서 그 앞에 앉아 계시다고 그래서 이제 번호를 알려드리고 그런 주 중에 그런 좀 마음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구분이 힘듭니다. 밖에서만 신어야 할 신발을 집에 안에 신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밤낮을 구분하지 못해서 밤에 자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가족을 깨우며 괴롭히기도 하고 배부름을 구분하지 못해서 먹는 것을 말리지 않는 한 계속 먹으려고 하고 이렇듯 치매는 분별력이 없음으로 인한 아주 무서운 질병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죠. 요컨대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무서우며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영적으로도 어린아이와 같이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나오고요. 또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 두 사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분별력이 없게 된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되며 주위 사람들 힘들게 할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영적으로 분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디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오늘 오전 말씀하신 것처럼 선을 넘지 말아야 되는데 선을 넘는다든지 그런 것들이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방향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며 혼란스러움 뭔가 하는 것 같은데 그냥 혼란스러운 신앙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영적 치매가 걸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 의의 말씀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도 우리의 삶과 신앙이 제대로 되어져 있는가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의 말씀입니다. 의의 말씀은 악을 드러내게 합니다. 말씀의 잣대가 내 안에 있으므로 내 삶과 신앙의 기준을 잡아줍니다. 요즘엔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이 집 벽돌 쌓을 때 다림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줄을 달아서 줄을 쫙 내리고, 그것의 기준을 잡아서 벽돌을 쌓으면 벽돌이 삐뚤삐뚤하지 않고 곱게 기준에 의해서 쌓아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으므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말씀이죠. 에베소서 6장 17절 말씀을 보면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것처럼 유일한 공격 무기 그게 성령의 검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 있어 좌우에 날은 어떤 건보다도 예리하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수술칼처럼 예리한 말씀이 내 안에 상처 입고 곪아 터지고 썩어진 부분을 돌려내게 됩니다. 더러운 부분, 더러운 부분, 악한 부분이 말씀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의로움을 나타내며 내 생각대로가 아닌 주님의 생각이 마음 판에 새겨져 있으므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그 기준에 내가 부합하게 분별하며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의롭게 나타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여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적 침해는 영적인 교만을 뜻합니다. 부드러운 음식만을 먹게 되면 교만하게 됩니다. 직접 해보지 않고 그냥 알기는 아는데 알기 때문에 말은 쉽습니다. 직접 부딪혀서 해볼 때 어려운 것도 알고 그것을 해봤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는 어려움도 알면서 격려해 주지 옆에서 그냥 이렇게 하면 되잖아 저렇게 하면 되잖아 이렇게 하라고 그렇게 말로 훈수만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연단을 통해 정결하게 되고 겸손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고통과 고난이 다가오면 남을 탓하고 비난하는 것은 악한 사람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남을 탓하거나 환경과 상황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정결하고 깨끗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연단을 대하는 지혜로운 자의 태도입니다.
왜 나만 고난이냐고, 왜 나만 고통을 겪어야 되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통과 고난을 통해 내가 더 정결함으로 연단되어지므로 단단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한때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 연예인들이 군대에 가서 경험하는 그런 인기 있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수도방위사령부편을 보면 기동 헌병대 훈련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360kg이나 되는 모터사이클, 그걸 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큰 무거운 그것을 끌고 다니는 훈련을 보기에는 멋있어 보여서 연예인들도 처음에는 저기 가면은 좀 폼도 나고 좋겠지 했었지만 정작 죄송합니다. 정작 그 훈련을 받을 때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힘든 훈련을 강도 높게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베테랑 교관이 얘기합니다. 아끼던 부하가 임무 도중 사고로 죽게 되는데, 그때 그 교관은 자신의 부하가 죽은 것에 대해 충격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자꾸 반문하다가 어떻게 하면 다시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찾던 중 방법이 더 강한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기본기를 튼튼히 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 어떠한 상황에도 이겨낼 수 있는 군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단을 받는다는 것은 견디는 것입니다. 연단을 받는다는 것은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연단을 통해서 이길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선악을 분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과 악이 불분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에도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콩쥐팥쥐, 신데렐라 흥부 놀부 선과 악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결국 잘 됩니다.
근데 지금은 오히려 흥부는 무기력 무능력의 대상이고 놀부가 프랜차이즈도 만듭니다. 그럴 정도로 물질 세상적인 것에 무산되어지며 논리 싸움이 팽배해집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오제이 심슨이라는 유명한 풋볼 선수도 부인을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불충분하고 재판에서 어떻게 되면서 논리 싸움에서 이기면서 형사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이 됩니다. 민사에서는 유죄가 됩니다. 그래서 감옥은 안 갔지만 민사에서 유죄가 되면서 물어주는 그거는 했지만 아주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죽였는데, 살인을 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무죄를 받는다는 것.
논리 싸움이 팽배한 시대,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우리가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세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우리를 세우셨는데, 이것이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할 때에 차별화가 되는 것입니다. 선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위조 지폐 간별대회가 있었습니다. 위안화, 달러, 원화 세 가지를 가지고 각국에서 모여서 대회를 했는데 우리나라가 1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승한 팀을 불러서 인터뷰를 합니다. 비결이 뭡니까라고 했을 때 우리가 훈련한 방법은 오로지 진폐만을 가지고 연습했습니다. 가짜 지폐랑 비교한 것이 아니라 진짜 지폐만을 연구했습니다. 진짜 지회가 갖는 특징만을 알고 그것만을 계속 보고 연구했을 때에 가짜가 보니까 딱 뚜렷하게 가짜가 티가 나고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천지 같은 경우도 보면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 교회에서 내가 성경 말씀을 목사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잘 훈련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에 갔을 때 분명히 보면 딱 티가 납니다. 그래서 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갔다가 금방 뭐가 이거 이상한데 하고 빠져나옵니다. 그걸 구분을 못하는 사람은 거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죠.
진리를 정확히 알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내가 온전하게 견고하게 세워져 있을 때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분별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제가 한 번은 사역할 때에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꿈에서 사단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몰랐죠 다 하얀 방에 하얀 옷을 입은 빼빼 마르고 대머리에 아주 빼짝 마르면서 턱은 아주 빼쭉하게 생겼고 눈도 아주 쫙 째져 있고 내 앞에 나타나서 막 싸우자고 막 이럽니다.
근데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딱 느낌이 사단 근데 조금 왠지 모르게 붙어보지 않았으니까 두려움이 있어서 나도 이렇게 들고 왔는데 막 잽을 날리면서 막 나한테 공격을 합니다. 근데 딱 맞아보니까 타격감이 없는 거예요. 꿈속에서 전혀 타격감이 없는데 그러면서 막으면서 이제 나도 한 방울 날려야지 원퍼치 쓰리강냉이 하면서 막고 있다가 온 힘을 다해서 정통으로 얼굴을 팍 때렸습니다.
근데 갑자기 어 그러면서 아내가 얼굴을. 그런 해프닝이 있었긴 하는데 우리가 사단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막상 닥쳤을 때 사단이라고 생각하고 타격감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어렸을 때 보면 집 앞에 대문이 있고 들어가면 개집이 있고 개가 늘 지어댑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 그 벽에 딱 붙어서 갑니다. 개가 개 목걸이에 목줄에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 달려들 것 같고 개 집은 들썩들썩거리고 잘못해서 나한테 달려들면 어떡하지 그렇지만 개는 묶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마음에 두려움에 그 앞을 지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묶여 있습니다. 결코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하는데 그런데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거죠. 그죠? 이 영적 전쟁을 통해서 우리를 흔드는 겁니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사단은 제일 중요한 리더급들을 겨냥합니다.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 권사님들 가장들 영적 전쟁에 있어서 바로 서 계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그 사람의 제일 약한 부분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왜냐 그 아킬레스건은 그 사람한테만 아킬레스건입니다. 기가 막히게 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주 내내 그런 일들이 내가 걱정스러워하는 부분들, 내가 흔들릴 수 있는 부분 이슈들이 자꾸 터지는 겁니다.
아버지 전화 와서 이렇게 전화번호 번호를 몰라서 못 들어가고 있다 그러고 그러니까 내가 걱정하던 몇 가지 일들이 계속 터지면서 마음이 좀 어려운 한 주를 보내게 되면서 왜 이러지 이번주 왜 이러지 근데 어저께 교회에 와서 보면서 영적 전쟁이 시작이 됐구나를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원래 준비했던 설교에서 바꿨습니다.
오늘의 설교로 왜 우리가 이제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면 당하지 않습니다. 모르면 당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전쟁에서 사단은 그저 그 씨를 던져주고 그 말 한마디에 내가 마음이 뒤집어집니다. 그 말 한마디에 계속 마음이 부글부글 끓게 만듭니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무능력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그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그 이상은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동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인 것이죠. 나를 정신없게 만들고 집착하게 만들고 이 은혜의 내가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후방에서는 아닙니다. 전방입니다. 최전방입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이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흔들어보십니다. 더 단단하게 튼튼하게 견고하게 세워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쓰러지느냐 이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 시작되면 더 기도해야 합니다. 더 말씀으로 세워져야 됩니다. 더 분별되어야 됩니다. 이게 영적 전쟁이구나라고 어저께 제가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마음이 어려웠던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왜 사단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그거니까 그것에 계속 마음에 빼앗기게 만들고 그거에 묶여 있게 만들지 않습니까? 다른 거를 못 보게 만듭니다. 근데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박했다는 얘기와도 같습니다. 왜 그 은혜를 못 받게 하려고 그렇지 않습니까? 손바닥만한 구름까지도 우리가 저번 주에 얘기를 했는데 은혜의 단비가 막 내리고 폭포수처럼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려고 하는데,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어떻게 주시려고, 이번 행축을 통해서 어떤 은혜를 부어주시려고 우리를 이렇게 준비시키시는가, 부활의 임박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하시는가를 보게 됩니다.
은혜의 최전방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 은혜를 못 받게 하려고 사단들이 비상이 걸리고 영적 전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동물과 우리가 다른 분명한 구분점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영적 치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분별 못하고 내 감정에만 충실한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바로 서서 분별되어지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은혜를 기도하며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