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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장치 3125
완전장치는 3125개의 의사결정 요소로 이루어진다. 우주 안에 그 이상 복잡한 것도 없고 그 이하로 단순한 것도 없다. 완전장치는 에너지 순환의 1 사이클을 갖추고 자체적으로 동력을 조달하여 일하는 장치다.
우리가 완전장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많은 것을 놓치기 때문이다. 숨은 변수들이 갑자기 개입하여 난장판을 만든다. 인간의 작위는 실패로 돌아간다. 인간이 오판을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겪는 이유다.
하나의 존재는 5다. 외력에 맞서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에 원인, 결정,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가만 있으면 5라는 것은 움직이면 25가 된다는 말이다. 그냥 돌멩이가 5라면 돌멩이를 막대로 치면 25가 된다.
당구장만 가봐도 알 수 있는게 당구공과 큐대만 가지고 당구가 되는게 아니고 당구대가 있어야 한다. 어떤 둘이 만나게 하려면 신용을 보증하는 주선자가 있어야 한다. 컵과 주전자만 있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컵에 따를 물도 있어야 하고 주전자를 따라줄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들을 같은 공간과 장소에 묶어줄 지구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25가 된다. 여기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조절장치가 있느냐를 놓치기 쉽다.
들어온 만큼 곧장 나가는게 아니라 일정한 시간 머물렀다가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 나가게 하는 조절장치가 들어가면 125가 된다. 에너지를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분량만큼 머무르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이프는 그냥 통과시키므로 5다. 주전자는 물탱크와 물부리와 아가리가 있다. 일정한 분량을 채워서 일정한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내보낸다. 물이 들어왔다가, 머물렀다가, 나간다. 속도와 분량이 조절된다.
1. 존재한다 - 5
2. 전달한다 - 25
3. 조절한다 - 125
4. 붙잡는다 - 625
5. 발생한다 - 3125
세상은 물레방아다. 물레와 방아가 연결되어 있다. 방아확과 방아를 찧을 곡식이 있다. 그 둘을 합치는 것은 물이고, 물에는 수압이 걸려 있고 압력을 가두는 용기가 있다. 물레방아는 125개의 구성요소가 있다.
방아공이 - 5
방아장치 - 25
물레방아 - 125
물레방앗간 - 625
그냥 방아라면 절구통과 공이만 있으면 된다. 사람이 손으로 곡식을 찧는 것이다. 공간과, 곡식과, 사람의 노동도 포함되므로 25가 된다. 여기에 수력의 힘을 태우면 125가 된다. 물레방앗간 전체로는 625다.
1. 물레와 방아의 연결
2. 곡식과 껍질의 연결(방아를 견뎌야 한다.)
3. 확과 방앗간의 연결(사람이 곡식을 넣고 꺼낸다)
4. 물과 계곡의 연결(동력을 전달해야 한다)
5. 땅과 흙의 연결(사람이 다녀야 한다.)
입자가 다섯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전부 자동화 한다면 질이 다섯이므로 도합 3125가 된다.
1. 물레방앗간 625
2. 재료의 조절(곡식) 625
3. 방아의 조절 메커니즘(운전) 625
4. 동력의 전달 메커니즘(기어) 625
5. 동력의 발생 메커니즘(엔진) 625
물레방아가 물과, 물레와, 방아의 3일치를 이루듯이 물레방아와, 곡식과, 방앗간도 3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컵에 물을 따라서 마시려면 물의 성질과, 컵의 형태와, 입술의 형태가 3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것과 같다.
컵을 사용하는 사람의 손가락과 물을 마시는 위장도 같은 성질을 가지므로 5일치가 된다. 물레방아, 곡식의 상태, 방앗간 형태의 3일치에 동력의 발생 메커니즘과 동력의 전달 메커니즘을 더하면 5일치가 된다.
총을 금속으로 만들면 총알도 금속으로 만들어야 한다. 총이 방아라면 총알은 곡식이다. 곡식은 그냥 있고 우리는 방아를 곡식에 맞추지만 인간이 장치를 만든다면 곡식 포지션도 방아에 맞추어 설계를 해야한다.
인간의 보조가 필요하지 않은 하나의 완전장치를 가동하려면 최소 3125개 의사결정 요소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어떤 하나의 성질에 맞추어 다른 요소들이 연동되어 전부 결정되기 때문이다.
활이 단단하면 화살도 단단해야 한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은 성질이 일치해야 한다. 내가 손으로 주는데 상대가 발로 받겠다고 하면 싸움이 일어난다. 사람의 입술과, 컵의 테두리와, 물은 같은 성질을 가져야 한다.
물이 부드러우므로 입술도 부드럽고 위장도 부드러워야 한다. 어떤 둘이 연결되어 하나의 메커니즘을 이루면 실제로는 다섯이므로 다섯 배가 된다. 어떤 둘의 결합을 도와주는 주변요소들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판하는 이유는 붙잡아주는 주변요소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를 감시하는 수단이 검찰인데 검찰을 내려놓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원이다. 지금까지 검찰과 언론이 정치를 감시했다면 이제 당원이 감시해야 한다. 그런 부분을 도외시하고 그냥 검찰만 조지면 된다고 생각하는 단세포는 구조를 모르고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입술과 컵이 만나려면 손이 받쳐줘야 하고, 그 손을 다시 몸이 받쳐줘야 하며, 그 몸을 다시 지구가 받쳐줘야 한다. 자전거의 페달과 바퀴를 연결하려면 안장과, 프레임과, 핸들이 옆에서 붙잡아주고 있어야 한다.
하나를 추가하면 두배가 되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다섯 배가 된다. 우리가 그런 부분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많은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컵과 주전자를 사기도 전에 찬장이 있다.
지구가 상당부분을 커버해 준다. 축구공만 가지고 시합을 할 수는 없다. 심판도, 그라운드도, 관객들도 필요하다. 보통은 이런 부분을 생략하므로 구조를 오해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다.
주전자가 없어도 그냥 컵으로 계곡물을 뜨면 되지 않냐 싶지만 계곡이 물을 보관하는 점에서 일종의 주전자다. 주전자는 계곡을 사람 가까이로 끌어와서 편리를 추구한 것이다. 우리가 이런 부분을 놓치곤 한다.
1. 동력을 생성해야 한다.
2. 동력을 감당하도록 붙잡아야 한다.
3. 공간과 시간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4. 외부로 전달해야 한다.
5. 존재해야 한다.
천은 그냥 있고 가위만 가져오면 된다고 믿기 쉽지만 사실은 천도 가위에 맞는 직물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쪽가위로 가죽을 재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상당부분 미리 주어져 있는 것들을 가공하므로 오판한다.
칼과 도마만 있으면 요리가 되는게 아니다. 재료도 미리 가공해 두어야 한다. 부엌도 있어야 한다. 재료는 미리 주어져 있고 모자라는 부분만 조달하는게 보통이지만 완전장치는 모든 부분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우주 안에 완전장치보다 간단한 것도 없고 더 복잡한 것도 없다. 자동차는 3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 지지만 인간의 편의를 위해 용도를 추가한 것이다. 방앗간의 도정기는 쌀만 도정할 뿐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세상의 복잡한 것은 인간이 용도를 추가해서 그러한 것이며 간단한 것은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므로 생략된 것이다.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면 수저는 필요가 없지만 대신 손을 씻으러 가야하므로 손해다.
진보의 실패는 붙잡아주는 부분을 놓치기 때문이다. 남자는 파트너가 이쁘기만 하면 된다고 믿지만 신용이 매우 중요하다. 지식은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한다. 믿을만한 동료를 얻어야 창업도 하고 연애도 한다.
한붓 그리기와 같다. 어디서 시작하든 자유지만 입구와 출구는 하나다.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는 있으나 더하고 뺄 수는 없다. 변화는 없고 자리바꿈은 있다. 똑똑한 사람은 이게 위상수학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직관력의 사용법
구조론의 가치는 직관력의 사용에 있다. 척 보면 알아야지 말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직관적 사고는 모형적 사고다. 머리 속에 모형이 하나씩 들어있어야 한다. 어느날부터 의심하게 되었다. 이것들이 혹시 맹탕이 아닌가?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사람들과 나의 미묘한 불일치가 그것 때문이었어.
우리가 직관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적 직관이 틀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직관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틀린 직관이다. 직관 믿다가 망한 사람 많다. 우연히 한번 맞춘 것을 잘못 해석해서 같은 짓을 반복하다가 망하는게 보통이다. 30대 중반이면 애널리스트 업계에서도 은퇴해야 한다.
경험이 직관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미가 같으면 직관이고 자식이 같으면 경험이다. 마이너스는 직관이고 플러스는 경험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하부구조의 플러스에 주목하다가 감추어진 상부구조의 마이너스를 놓친다는 사실이다. 플러스는 사건의 결과측이고 마이너스는 사건의 원인측이다.
결과는 관측되지만 원인은 추론된다. 관측되는 플러스는 이름이 있지만 추론되는 마이너스는 이름이 없다. 인간들이 추론에 약한 이유다. 깨달음은 상부구조를 보는 눈을 얻는 것이다. 먼저 잃고 다음 채운다. 활이 잃은 화살을 과녁이 얻는다. 아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자식의 주머니에 채워진다.
원자론이 대표적인 플러스 사고의 병폐다. 세상이 단순한 원자에서 복잡한 우주로 나아갔다면 그게 플러스다. 플러스는 당연히 틀렸다. 구조는 원래부터 복잡하다. 세상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순수한 것이 간섭되어 오염된 것이다. 오염되어 순수를 잃은게 마이너스다.
원자는 막연한 생각이고 존재는 의사결정단위다. 원자는 구조가 없으므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의사결정단위는 처음부터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객체 내부에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축과 대칭의 밸런스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중심점을 공유하며 꼬인 파동의 동적균형이 있다.
빅뱅 이후로 세상은 조금도 복잡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화론으로 검증할 수 있다. 창조설의 신봉자는 생물의 진화가 복잡해지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단순한 세포가 어떻게 복잡한 고등동물로 진화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구조로 보면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오염된 것이다. 간섭된 것이다.
복잡과 간섭은 무엇이 다른가? 관측자의 위치가 다르다. 두 손을 깍지 끼면 복잡해 보인다. 눈이 손가락을 겹쳐서 보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복잡해진 것이 아니고 관측자의 위치에서 피사체가 겹쳐진 것이다. 그것이 오염이다. 손은 변화가 없고 눈의 위치가 옮겨졌다. 복잡성은 관측자의 위치 문제다.
시계가 복잡하다지만 내부에 있는 앵커라고 하는 부품이 시계다. 간단하다. 손목시계 부품의 90퍼센트는 인간의 욕망을 보조하는 것이고 실제로 시간을 정하는 부품은 하나 밖에 없다. 라디오는 음파 대신 전파를 감지하는 귀다. 안테나가 라디오다. 트랜지스터가 전파를 증폭시키므로 소리가 들린다.
코일을 감아서 만든 전자석으로 전자총의 전자빔 각도를 휘어주면 브라운관 TV다. 가솔린의 폭발력을 회전운동으로 바꿔주면 자동차다. 구조는 간단하다. 기계의 본질은 간단한데 그것을 인간의 욕망에 맞추기가 복잡하다. 생물은 조금도 복잡하지 않다. 진화는 DNA가 일부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무엇을 잃었는가?
1. 야간시력을 잃었다. - 원숭이는 밤눈이 어두워 낮에 돌아다니므로 햇볕과 포식자를 피하게 하는 나무를 떠나지 못한다.
2. 꼬리를 잃었다. - 균형을 잡아주는 꼬리를 잃은 유인원은 원숭이와 달리 나뭇가지 위를 뛰어다닐 수 없다. 나뭇가지 아래로 매달리다 보면 슬금슬금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3. 털을 잃었다. - 새끼가 어미의 털을 붙잡지 못하므로 네 다리로 걷는 주먹보행이 안 된다. 엄마가 새끼를 양팔에 하나씩 안고 달리다 보면 자동으로 직립보행이 된다.
4. 송곳니를 잃었다. - 사냥한 짐승을 송곳니로 해체하지 못하므로 돌도끼를 써야 한다. 도구의 사용이 강제된다.
5. 사냥능력을 잃었다. -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사냥능력이 떨어지므로 집단사냥을 한다. 사회가 발달한다.
6. 소화능력을 잃었다. - 풀을 소화시키지 못하니 사냥과 채집을 해야 한다. 더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위장이 작아져서 허리가 날씬해졌다.
여기서 진화가 강제된다는게 중요하다. 잃는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잃는게 먼저다. 돌연변이로 무언가를 잃으면 필사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급격한 진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진화를 격발하는 방아쇠다. 잃은게 없다면 돌연변이로 무언가를 얻어도 도움이 안 된다. 내부의 밸런스를 깨기 때문이다.
인류는 컬러를 보는 눈을 얻었다. 이족보행을 얻었다. 도구를 얻었다. 땀샘이 발달했다. 뇌용적이 커졌다. 언어능력을 얻었다. 우리는 얻은 것만 주목한다. 얻은 것은 자식이고 잃는 것이 부모다. 부모가 잃어야 자식이 얻는다. 잃음이야말로 진화를 격발하는 엔진이다. 잃음에 주목해야 퍼즐이 맞다.
틀린 가설 - 직립보행을 하면서 체온조절을 위하여 털이 줄어들었다.
바른 구조 - 털이 줄어들면서 아기를 안고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털이 있었는데 털이 없어진 것은 호모 에렉투스 시절부터라고 한다. 맞는 견해일까? 300만년 전부터 진작에 털을 잃었다는 머릿니와 사면발이 가설도 있다. 환경변화로 나무가 사라져서 장거리 추적사냥을 하며 땀과 열을 배출하기 위하여 털이 없어졌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위하여'가 들어가면 전부 개소리다. 결과를 원인으로 돌려막는 순환의 오류다. 돌연변이로 털이 없어져서 나무를 떠났다고 보는게 맞다. 털을 잃은 결과로 호미닌은 멸종의 위기에 몰렸다. 자연선택설은 틀렸다. 자연선택설이 옳다면 영장류가 번성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은 사실 몰락했다.
한때 지구 전체에 인류의 조상은 1천개체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건 거의 멸종 직전이다.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다. 나는 학생 때 유명한 진화론 그림을 처음 보고 그림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신체 밸런스가 안 맞기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이 처음부터 직립했다고 생각했다. 필자 생각이 맞았다.
다윈 - 기린은 처음부터 목이 길었다.
구조론 - 호미닌은 처음부터 털이 없었다.
필자의 생각은 처음부터 기린의 목이 길었다는 다윈의 생각과 결이 맞다. 보다 이른 시기부터 직립했듯이, 보다 이른 시기부터 털이 없어지고 송곳니가 사라졌을 수 있다. 무언가 없어지면 멸종하든가 아니면 진화할 수 밖에 없다. 필사적으로 변이를 생산하여 적합한 생태적 지위를 찾아내는 것이다.
1.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이른 시기부터 긴 송곳니를 잃었다.
2. 인류의 조상은 이른 시기부터 직립했다.
3. 인류의 조상은 이른 시기부터 털을 잃었다.
4. 원숭이는 원래 야간시력을 잃어 나무로 도망쳤다.
5. 유인원은 처음부터 꼬리를 잃고 나무 아래로 슬금슬금 내려왔다.
플러스 사고를 하면 모든게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마이너스 사고를 하면 모든게 이르게 시작되었다고 본다. 뭐든 생각보다 이르다고 하면 대충 맞다. 직립은 언제부터? 처음부터. 도구는 언제부터? 처음부터. 송곳니 상실은 언제부터 ? 진작부터. 알몸은 언제부터? 처음부터.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완전한 알몸은 아니고 침팬지보다 털이 부족한 정도였을 수 있다. 침팬지 새끼도 잘 매달리지 못해 어미가 한쪽 팔로 감싸안는다. 새끼가 두 살이 되면 어미 등으로 옮겨서 잘 매달린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교정해야 한다. 뭐든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왜 처음부터인가? 돌연변이는 쉽기 때문이다. 그냥 유전자 하나를 버리면 된다. 무언가를 잃기는 쉽고 얻기는 어렵다. 인간의 조상은 여러가지를 잃어먹은 결과로 자연선택이 아니라 자연도태가 되어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나 필사적으로 변이를 일으켜 운좋게 살아남았다. 단순한 것이 본질이다.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쿠데타가 제일 쉬웠다. 그에게 정치는 어렵다. 장동혁은 왜? 극우가 제일 쉬웠다. 중도는 너무 힘들다. 의도나 목적은 거짓말이고 인간들이 어떤 짓을 하는 이유는 그게 쉽기 때문이다. 왜 노동자는 계급배반투표를 하는가? 그게 노동자 집단이 의사결정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혼자 진보에 찍어봤자 사표가 된다. 투표에 의미가 있으려면 몰표를 던져야 한다. 몰아주려면 극단에 서야 쉽다. 두 극단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극우로 가기가 쉽다. 극우라고 하지만 사실은 지정학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자명한 운명이다. 자명한 운명은 강자가 약자를 때린다. 즉 마이너스다. 쉽다.
좌파는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우파는 누군가를 조지려고 한다. 어느 쪽이 쉬운 결정인가? 마이너스가 쉽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결정하는 것이다. 소수자를 조지고, 조선족을 조지고, 다문화를 조지자. 호남을 포위하자. 이건 합의하기 쉬운 결정이다. 다양한 세력이 다름을 유지하며 연대하자? 어렵다.
구조는 직관이다. 직관은 쉽다. 어미를 공유하면 맞고 자식을 공유하면 틀리다. 마이너스는 옳고 플러스는 틀린다. 에너지의 방향을 보면 3초 안에 안다. 인간의 행동 예측은 쉽다. 인간은 그저 집단이 결정하기 쉬운 것을 결정한다. 진화가 쉽기 때문에 진화했다. 우주는 단순하고 복잡한 것은 없다.
환원주의를 깨달음
깨달음은 환원주의다. 세상은 단순한 것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정답은 근원의 단순한 것이다. 환원의 정점에 원자가 있다. 원자는 단순하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으므로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다. 단순한 원자가 모여서 복잡해졌다. 과연 그런가? 천만에! 이게 틀렸다는게 구조론이다.
우리는 체와 용의 관계를 안다. 원자가 체라면 용은? 원자가 불변이라면 변화는? 변화는 시간을 타고 진행한다. 원자론은 공간의 안정을 설명할 뿐 시간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원자론이 반쪽짜리 불완전한 아이디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와야 대화가 된다. 이 단계까지는 자력으로 건너와야 한다.
원자론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이 필요없다. 뭔가 갈증이 있어야 한다. 이게 전부가 아닐텐데. 벗겨야 할 양파껍질이 한 겹 더 남아있을 텐데 하고 의심을 품은 사람이 구조론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양자역학과 원자론은 뭔가 결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세상은 단순한 것의 집합이 아니고 원래 복잡한 것이다. 학생 때 제논의 궤변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주 안에 변화는 없고 자리바꿈이 있을 뿐이다. 변화는 열역학 1법칙을 어긴다. 불변도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아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다. 존재가 부정되는 것이다.
우주 안에 변화도 없고 불변도 없으면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섭이다. 오염이다. 둘의 관계가 변할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복잡한 것이고 더 복잡해지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어떤 이유로 복잡해졌다는 것은 관측자 입장이고 세상은 원래 복잡하며 오염되었을 뿐이다.
구조로 보면 복잡한 것은 없다. 라디오가 복잡하다지만 핵심은 전파를 잡는 안테나다. 나머지는 들러리다. 우리는 음파를 듣지만 전파를 듣는 사람이라면? 인간 라디오다. 라디오는 전파를 듣는 귀다. 사람 귀보다 복잡하지 않다. TV는 전자총이다. 코일을 감아놓고 자석을 갖다대면 전자가 휘는게 TV다.
복잡해 보이는 것은 관측자 입장이고 내막은 간단하다. 우주 안에 복잡한 것은 없고 오염된 것이 있을 뿐이다. 두 손을 깍지끼면 복잡하다. 뭐가 복잡해졌지? 변한 것은 없다. 손은 그냥 손이다. 인간의 관측이 복잡해졌다. 두 손을 따로따로 보다가 겹쳐서 한꺼번에 보니 복잡하다. 복잡은 관측의 문제다.
창조설을 신봉하는 사람은 생물의 신체가 복잡하다고 하는데 전혀 복잡하지 않다. 관측법을 모르니까 복잡한 것이다. 모르면 봐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껍질과 내용을 겹쳐서 본다. 겹쳐서 한꺼번에 보려고 하므로 복잡할 뿐 껍질을 하나씩 벗기고 알맹이를 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일반인의 오류 : 단순 -> 복잡
깨달음의 진실 : 순수 -> 오염
단순 -> 복잡이라는 사고를 깨야 한다. 순수 -> 오염이 진실이다. 복잡해 보이는 것은 간섭이며, 오염이고, 관계이고, 간격일 뿐 본질을 다치지 않는다. 노이즈를 제거하고 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아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원자론은 틀렸다. 세상의 기본 단위는 시공간의 변화를 반영하는 만큼 복잡하다.
세상은 원래부터 복잡하다. 모든 변화는 복잡이 깨져서 단순해지는 것이다. 닫힌계 안에서 복잡해지는 변화는 자연에 없다. 복잡한 구조는 중첩된 것이다. 자발적인 변화는 단순해진다. 국힘당은 갈수록 단순해지고 있다. 복잡한 부분은 선거때 국민이 간섭해서 그러한 것이며 놔두면 제 스스로 단순해진다.
닫힌계 안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변화는 무조건 단순해진다. 화장실에서 분뇨를 배설한다. 시원해졌다. 총이 총알을 발사한다. 단순해졌다. 밥을 먹으면 위장이 복잡해진다. 이는 자발적 변화가 아니다. 배가 고파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외부 요인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뇌가 먹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세상이 변하는 것은 멈추어 있던 것이 어떤 이유로 갑자기 움직이게 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 숨은 변화가 외부의 간섭이라는 가림막이 벗겨져서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커튼 뒤에 조수가 숨어 있는데 마술사가 커튼을 벗기면 구조가 복잡하지만 사실은 그냥 커튼을 벗긴 것이다. 오히려 단순해졌다.
모든 복잡성은 관측의 방해요인이다. 관측자가 이동해서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원자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최소한의 복잡성은 갖추고 있다. 그것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내부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이 있고 대칭과 축의 밸런스가 작동하고 있다. 이것을 천칭의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우주 안에 천칭저울보다 복잡한 것은 없고 더 단순한 것도 없다. 단 천칭저울에 중력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 부분을 반영하면 물레방아의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물레와 방아의 결합이다. 물레가 돌면 방아가 돈다. 물레는 방아를 돌리지만 방아는 물레를 돌리지 못한다. 이것이 본질이다.
우주는 돌고 있는 물레방아다. 어떤 것이 변하는 이유는 원래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팽이는 돌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가 나란히 가면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우주 안에 불변은 없다. 감춘 변화와 드러난 변화가 있을 뿐이다. 변화가 원래 있었으므로 변화의 탄생은 없다.
변화는 없고 간섭과 오염이 있다. 불변은 없고 밸런스의 복원이 있다. 변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으며 겉보기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관측자의 시선이 겹쳐서 그러할 뿐 실제로는 지극히 단순하다. 오염되지만 관계가 오염될 뿐 바탕은 오염되지 않는다. 어린이는 오염되지 않는다. 어른의 관계가 오염된다.
세상은 낳음이다. 낳음은 자궁이다. 자궁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대칭된 둘이 축 하나를 공유한다. 세상은 단순한 원자가 아니라 낳음의 복제다. 무수히 낳는다. 처음부터 낳을 수 있는 정도로 복잡했다. 세상은 3125가지 요소 이상은 복잡해질 수 없다. 3125는 어떤 둘이 간섭할 때 의사결정 횟수다.
그 이상의 복잡은 중복과 혼잡이다. 중복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이 객체를 정밀하게 컨트롤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복잡성은 인간과의 접근거리 한계를 반영한다. 로켓의 구조는 간단한데 사람이 타고 가는 로켓을 만들려고 하니 복잡하다. 음식을 만들기는 쉬운데 먹는 사람의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다.
학자들은 환원주의를 싫어한다. 사회학의 엔진은 심리학, 심리학의 엔진은 뇌과학, 뇌과학 엔진은 생물학, 생물학의 엔진은 화학, 화학의 엔진은 물리학, 물리학의 엔진은 수학, 수학의 엔진은 구조론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자꾸 윗선에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심리학을 해야지 사회학 하면 뭣하냐? 이런다.
심리학 하면 뭣하냐? 생물학이 답을 내는데. 생물학 하면 뭐하냐. 화학이 답을 내는데. 이런 식으로 되어 결국 수학까지 간다. 수학만 하면 되고 다른 학문은 필요없다. 제자들이 교수님 말을 안듣는다. 피곤하다. 수학은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데 수학을 왜 하냐? 결국 학문이 실종하고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져서 상처입고 한국기원에서 은퇴해 버린다. 망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문제이지 진리의 잘못이 아니다. 환원주의는 인간들의 책임회피와 발뺌에 사용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이게 다 트럼프 때문이라네. 이러면서 점차 현실도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한다. 발뺌과 책임회피는 구조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열쇠를 쥐지 못했기 때문이다. 핸들을 놓쳤기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다. 원자론이 틀렸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를 계속 추궁하면 원자론에 도달하고 원자는 쪼갤 수 없다고 선언하는 지점에서 인간들이 나동그라진다.
원자는 당연히 쪼개진다. 원자의 구조가 있다. 존재단위의 최종적인 종착역은 공간의 출렁임이다. 공간은 파동을 갖추고 있으며 8자 모양으로 꼬여서 매듭을 이룬다. 동그라미 두개가 만나는 꼭지점을 공유한다. 이것이 우주의 본래 모습이다. 이 매듭이 어떻게 꼬이는가에 따라서 삼라만상이 결정된다.
파동을 품은 폐곡선 끈의 매듭이 레고블럭의 최소단위 블럭조각이 되어 세상을 조립한다. 이 하나의 본질을 깨달으면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인간사회의 모든 대립과, 모순과, 충돌과, 다툼이 더 높은 하나 안에서의 역할분담으로 정리된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공격수와 수비수의 팀플레이로 조절된다.
매듭이 꼬이면 쟁이고 풀리면 화다. 낮은 단계의 화쟁은 높은 단계의 일심으로 돌아간다. 우주는 꼬였다 풀렸다 하며 출렁이는 매듭의 간섭에 의한 무한 복제다.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간섭하므로 연결된다.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은 우주 안에 없다.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하여 에너지를 전달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