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相公)에게로 가서 상주(喪主)를 삼고서는 공에게 말하기를 “다만 있는 것 모두가 공일뿐임을 원할지언정, 부디 없는 것 모두를 실제라고 하지 말라”고 하고, 말을 마치면서 죽었다. |
이것 또한 있다 없다는 소견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미묘하게 남이 없는 뜻을 얻는 것이다. |
[문] 보리(菩提)가 곧 제 몸과 마음이라면, 어찌하여 교(敎) 안에서는 “보리는 몸과 마음으로써 얻을 수 없다”고 말하였는가. |
[답] 보리의 도가 곧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곧 자성(自性)이 청정하고 마음이 맑고 잔잔하여 부동(不動)한 것을 말한다. 대개 이는 정각(正覺)의 모양 없는 참된 지혜로서, 그 도는 비고 깊으며 더할 나위 없이 묘하여 항상하는 경계이다. |
귀 밝은 이도 그 듣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지혜로운 이도 그 아는 것을 이용할 수도 없으며 말 잘하는 이도 말을 할 수가 없고 상(像)을 잘 그리는 이도 본뜰 수 없거늘, 미혹한 사람이 분명히 모르면서 색음(色陰)을 붙잡아서 제 몸으로 삼고 능지(能知)한다고 오인하여 제 마음으로 삼는다. |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몸은 마치 초목과 같아서 지각하거나 아는 바가 없으며, 마음은 마치 허깨비와 같아서 허망하여 진실하지 아니하다”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그 집착하여 취하는 마음을 없애려고 “보리는 몸과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
보리는 촉진(觸塵)이 아닌지라 몸으로 얻을 수 없고, 보리는 법진(法塵)이 아닌지라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 |
만약 분명히 아는 이로서 곧 음(陰)의 몸이 본래 공하여 허망한 마음이 모양 없음을 통달한 이라면, 본래 공이기 때문에 법신은 항상 나타나고 모양이 없기 때문에 참 마음은 이지러지지 아니한다. |
이와 같이 밝히면, 5음이 곧 보리요 이것을 여의면 보리가 없다. 보리로써 보리를 구할 수도 없고, 보리로써 보리를 얻을 수도 없다. |
문수(文殊)가 이르기를 “나는 보리를 구하지 아니한다. 왜냐 하면 보리 그대로가 나요 내가 바로 보리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
『유마경(維摩經)』에서 이르기를 “관하지 아니함이 보리이니, 모든 반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