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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여러가지 '난처한' 상황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리'를 언급한다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인의 '기리'는 친절에 대한 답례부터 복수의 의무까지 여러가지 서로 다른 잡다한 지켜야할 것들이다 일본인들 조차 '기리'의 정의를 명쾌하게 내리지 못한다
어떤 일본어 사전에서는 '...기리는 올바른 도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unwillingly' 가 기리와 기무의 큰 차이점이라 보여진다
기무는 천왕 또는 가족을 위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 obligation 이고 기리는 unwillingly 내키지 않은 일이 많다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적으로 생기는 것이고 기리는 살아가면서 생기는 일종의 계약관계의 실행이다
기리는 두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세상에 대한 기리'를 갚는 것은 받은 온(恩)을 갚는 것이고 '이름에 대한 기리'를 갚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나 명성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생부모가 아닌 계약상의 부모는 기리의 아버지 즉 의부(ぎふ 義父) 기리의 어머니 즉 의모(ぎぼ 義母)라 부른다 이 호칭은 배우자의 혈족 또는 혈족의 배우자에게도 사용한다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계약이기 때문에 상대 가문에 대한 무언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기리라고 생각한다
배우자의 부모와의 기리는 무겁다 특히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기리는 더욱 무겁다 그 이유는 그 집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인장모에 대한 사위의 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적으로 도움도 줘야 하고 책임도 가져야 한다
이런 모습은 데릴사위(婿養子)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사업을 잇거나 별도의 목적으로 딸의 데릴사위를 정한다 일종의 정략결혼이다
데릴사위는 생가의 호적에서 말소되고 처가의 성을 쓰며 기리의 복종을 한다 죽으면 처가의 묘지에 묻힌다 데릴사위의 기리는 특히 무겁다 일본사회에서 호적이 바뀐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쟁터에서 생부의 목숨보다 호적의 부모를 우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데릴사위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쌀 세홉만 있으면 데릴사위가 되지말라' 라는 이야기도 있다 바로 이 기리때문이다 아주 괴롭고 본의가 아닌 것이 기리이다
중국은 먼 친척까지 효를 표시하고 또 재산분배를 같이 나누어 받는다 그러나 일본은 직계가족에게만 고(孝)이고 숙부나 조카에게는 기리이다 즉 계약상의 친척이다 이들이 도움을 청하면 과거에 나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는지 먼저 살피고 그것부터 먼저 언급한다
더 무거운 기리는 주군에 대한 또는 전우에 대한 사무라이들의 기리이다 주군에게 생명을 바치고 대신 소속감이나 경제적인 보살핌을 받는다 소속된 주군이 없는 사무라이는 멸시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주군이 몰래 팔아넘기는 경우도 있고 거꾸로 매수 당한 자도 많고 주군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배신하고 복수하는 자들도 많다
일본인들은 주군에게 하는 충성과 같은 주군에게 하는 복수 둘다 기리라고 생각하고 둘다 찬양한다 충성은 주군에 대한 기리이고 복수는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일 뿐이다 노(能)나 가부키(歌舞伎)에 그런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기리는 더이상 윗사람에 대한 충절이 아니고 내키지는 않지만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사항으로 바뀌었다
기리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심하다 '기리 때문에 저사람과 결혼한다' '기리 때문에 저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기리때문에 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기리로 강요한다' 등 일본인들은 온갖 기리에 얽혀있다
과거에 내가 또는 나의 가족이 베풀었던 온을 암시하면서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한다 시골 논밭에서 작은 가게에서 재벌 거실에서 정치인 사무실에서 심지어 혼인관계에서도 기리는 생긴다
기리를 지키는 이유는 기리도 모르는 인간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체면도 지키고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기리를 행한다
이처럼 기리는 갚아야 하는 부채이기 때문에 '부당한' 부탁도 들어주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기리(義理) 때문에 기(義)를 지킬 수 없다'고 자조한다
일본인은 자발적으로 하는 착한 행동을 찬양하지 않는다
일본인의 기리는 미국인의 빌린 돈갚기로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미국인들은 편지를 받았거나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인은 빌린 돈은 반드시 갚아야 하고 갚지 못할 정도가 되면 파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기리를 갚지 못하면 파산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의 돈갚기와 비슷한 점이 또 있다 돈갚기나 기리갚기는 받은 만큼만 갚아야 한다 일본인은 매년 6개월마다 그사이에 받은 온이나 기리를 꼬박꼬박 되갚는다 이때 받은 기리보다 적게 하거나 크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장례식같은 큰 행사에서는 누가 어떤 온 - 음식이든 물건이든 작업이든 돈이든 - 을 주었는지 촌장이 일일이 기록한다 나중 유사한 경우가 생기면 장부를 확인하여 그만큼 갚는다
일본인은 세상에서 생기는 모든 접촉을 기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미국인이 평상시에 서로 편안하게 행동하는 사소한 일들을 일본인들은 일일이 장부에 적어놓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기리는 빠른 시간에 갚아야 한다 혹시 늦어지면 그만큼 더 요구하고 더 갚아야 하는 압박감이 계속 커지기 때문이다
참조 : <국화와 칼> 발췌요약
다음은 제8장: 오명을 씻는다 Cleaning One's Name 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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