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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어휘들을 하나씩 하나씩 연구함으로써, 성경의 진정한 의미와 올바른 신학을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112번째 시간으로 십일조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십일조라는 단어 어휘를 함께 연구하고, 그 의미가 우리 신앙생활에 미치는 비중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일조라는 한자를 쓸 때 가닥 조(條) 자를 쓸 수도 있고, 세금 조(租) 자를 쓸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돈을 나타내는 쇠 금(金) 자를 붙여서 '십일금'이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을 어떻게 써야 바른지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십일조의 의미와 그 기원을 살펴보겠습니다. 가닥 조(條) 자를 쓰는 '십일조(十一條)'는 사전에 보면 '기독교에서 교인이 성전에 헌납하는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이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아주 잘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타이드(Tithe)라고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가 성경을 자기 언어인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열 번째 부분'이라는 뜻의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반면 세금 조(租) 자를 쓰는 '십일조(十一租)'는 생산량의 10분의 1을 바치던 조세, 즉 세금을 말합니다. 옛날에 국가에 바치는 조세를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고 '십일금'이라고 하는 말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드리는 십일조를 편의상 또는 잘못 일컫는 말입니다. 이 '십일금'이라는 단어는 우리 국어사전에도 없고 성경에도 없습니다. 흔히 십일조 대신에 십일금을 드린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리 적합한 표현은 아닙니다. 원래 사전에 없고 성경에도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의 의미와 기원을 따지는 가운데 한자 '조(條)' 자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 조(條)는 곁가지 또는 가닥을 뜻합니다. 우리가 법률을 말할 때 가령 '헌법 제1조', '제2조'라고 할 때의 '조'가 바로 이것입니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같이 조목조목 나눌 때 이 조 자를 씁니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星條旗)'를 할 때도 이 조 자를 씁니다. 이는 '별과 가닥이 있는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The Stars and Stripes'라고 합니다. Stripes는 줄무늬(가닥)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13개의 줄이 있습니다. 이는 미국 독립 초기에 있던 동부의 13개 주를 가리킵니다. 별은 처음에는 13개로 시작해서 지금은 50개 주를 상징하는 50개의 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Stars and Stripes라 하고, 한자로 번역하면 성조기가 되는데 이때의 '조'가 바로 곁가지와 가닥을 뜻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교회에서의 십일조는 세금이 아닙니다. 세금의 성질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자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예배 행위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세계 여러 나라 국기의 독특한 이름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국기는 태극 무늬가 있어 '태극기'라 하고, 프랑스 국기는 세 가지 색깔이 있어 '삼색기(Tricolore)'라고 부릅니다. 일본 국기는 붉은 태양 모양이 있어 '일장기'라 하고, 영국 국기는 연합의 의미를 담아 '유니언 잭(Union Jack)'이라 부릅니다. 대만의 국기는 파란 하늘에 하얀 해가 그려져 있어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라 하고, 중국의 국기는 다섯 개의 별이 붉은 바탕에 그려져 있어 '오성홍기(五星紅旗)'라고 부릅니다. 각각의 배경이 있습니다.
다시 십일조로 돌아가겠습니다. 성경의 십일조는 히브리말로 '마아세르(Ma'aser)'입니다. 그 말은 '10분의 1'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데카테(Dekate)'라고 합니다. 명사 '데카테'는 십일조를 말하며, '데카(Deka)'는 숫자 10을 뜻합니다. 10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데카메론'이나, 10계명을 뜻하는 '데칼로그(Decalogue)'에 이 데카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포데카토오(Apodekatoo)'라고 하면 십일조를 바친다는 동사입니다. 이 십일조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 30회, 신약 성경에 3회 사용되어 성경 전체에 총 33회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일조의 기원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국민의 연 수입 가운데 10분의 1을 세금으로 바친 사례들이 고대 바벨론이나 이집트에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제도를 본받았다기보다는, 당시 근동 지역에 수입의 10분의 1을 바치는 공통적인 문화적 기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방 민족들은 국가나 왕에게 바쳤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십일조의 사례는 창세기 14장 20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노획물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준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과 빼앗긴 재물을 되찾기 위해 집에서 훈련한 사병 318명을 거느리고 단 지역까지 추적하여 원수들을 물리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수입의 10분의 1을 바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적으로 축복을 비는 자가 복을 받는 자보다 신분이나 기능상 더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7장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획득한 모든 것의 10분의 1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멜기세덱의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 곧 '평강의 왕'입니다.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아주 닮았습니다. 조상 아브라함도 가장 좋은 노획물 중 10분의 1을 그에게 바쳤으니 이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비록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후손일지라도 백성들에게서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보다 한참 뒤에 나타날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보다, 아브라함에게서 직접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이 땅에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훨씬 더 존귀하고 높은 분임을 히브리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두 번째 기원은 야곱이 벧엘에서 한 서원입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들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의 의무를 깊이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두 가지 사례가 모세 율법 이전에 창세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십일조 사례입니다.
이후 모세 시대에 이르러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과 법률로 제정됩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 "그 땅의 10분의 1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10분의 1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소유의 10분의 1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민수기 18장 21절에는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봉사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은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자기 몫의 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생업을 하지 않고 오직 회막에서 제사 드리는 일에만 전념하는 전업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이 없는 레위인들에게 다른 지파들이 바치는 십일조를 그들의 생계를 위한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레위 지파를 제외한 다른 열한 지파가 각각 수입의 10분의 1을 내면 그것이 고스란히 모여 레위 지파의 몫이 됩니다. 물론 레위인들 역시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 중에서 다시 10분의 1을 하나님께 거제로 바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제사장들이 농사나 장사를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십일조 제도의 근본 설계입니다.
신명기 14장 22절-23절에도 "너는 마땅히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수입의 10분의 1을 구별하여 바치는 예배 행위였습니다.
느헤미야 10장 37절-38절에도 "우리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와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가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으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라"고 기록되어 백성들이 레위인들을 공양할 의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성실히 바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것을 슬쩍 가로채고 불성실하게 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엄하게 꾸중하셨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호소하실 만큼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백성들이 받을 영육 간의 약속된 복을 강조하신 구절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이 약속을 믿고 기쁨으로 십일조를 바치며, 삶 속에서 다양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아모스서에도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아모스 4장 4절-5절에 보면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고 야유가 섞인 책망을 하십니다. 우리말 번역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한번 해 보려무나" 하는 뉘앙스입니다.
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도덕적인 죄는 죄대로 계속 지으면서 벧엘과 길갈 같은 도성에 가서 십일조와 제사는 꼬박꼬박 바치며 헌신하는 척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꼬집으신 것입니다. 죄는 가득 지으면서 제물만 풍성하게 바치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십일조 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서 드리는 위선적인 예배를 멈추라는 강한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십일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명확한 기준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아주 작고 미미한 채소 풀들의 십일조까지 아주 꼼꼼하게 바치면서도 정작 마음의 공의와 자비와 믿음은 저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시면서도, 정의와 긍휼을 행하는 동시에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심으로써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 11장 42절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십일조는 성경을 깊이 연구해 보면 크게 세 가지 목적으로 나뉘어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인 전업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한 십일조입니다(민수기 18장).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족과 노비, 그리고 성중에 있는 레위인들과 함께 성소에 모여 즐거운 감사 축제를 벌이기 위해 매년 저축하여 먹고 즐기는 데 사용한 제2의 십일조입니다(신명기 14장 22절-27절).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라는 말씀처럼, 믿음의 공동체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용도였습니다.
셋째는 매 3년마다 성중에 저축하여 땅이 없는 레위인과 함께 사회적 약자인 객(나그네), 고아, 과부들이 와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구제 사업에 사용한 구제 십일조입니다(신명기 14장 28절-29절, 신명기 26장 12절).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구제 제도였습니다.
당시 농경 사회에서 이러한 세 가지 성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꽤 무거운 책무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구약 시대와 똑같은 형태의 객이나 고아와 과부가 복지 제도의 발달로 다르게 관리되므로 이를 문자 그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유지하고, 구원 사업에 전념하는 복음 전도자들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기 위한 십일조는 여전히 유효하며 필수적입니다.
십일조 제도가 가진 신학적 취지는 무엇일까요? 단지 교회를 운영하고 남을 돕기 위함만은 아닙니다.
첫째로, 나의 존재와 내가 가진 모든 소유의 진짜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존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시간의 7분의 1인 안식일을 구별하여 드리고, 물질의 10분의 1인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나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예배를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 힘과 손의 능력이 아니라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표현입니다. 신명기 8장 17절-18절에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와 기회와 건강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정직한 행위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셋째로, 복음 전파와 예배 제도를 지속해서 운영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십일조는 구약 시대의 율법이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신 신약 시대에는 바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꽤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십일조 관련 강의를 찾아보면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의 설교 중 상당수가 십일조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들은 성도들 중 일부는 오랫동안 성실히 바쳐오던 십일조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물론 구약의 제사 제도나 절기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완전히 성취되어 폐지된 예식적이고 한시적인 의식법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거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나타내는 도덕적이고 지속적인 신앙의 의무들은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준수되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후자에 속하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제도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 9장 13절-14절에서 구약의 제도를 인용하며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을 위한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업 목회자와 선교사들의 생계와 복음 전파 사역을 책임지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의무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근간이 바로 성도들의 십일조와 헌금입니다.
많은 목회자가 교인들이 실망하여 교회를 떠날까 염려하여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거나, 안 바쳐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씀을 견강부회하여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록되었으되" 하신 성경의 명확한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져야지, "기록되었으나 그것은 옛날 법이다"라며 말씀을 피해 가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10분의 1을 구별하여 드림으로써 내 모든 존재와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가장 신실한 신앙적 행위입니다. 성경에 약속된 신령한 복과 은혜를 누리며, 복음 전파의 도구로 쓰임 받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십일조에 대한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십일금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임의적인 단어는 쓰지 않는 것이 좋고,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십일조(十一條)'의 의미를 새기며 신실하게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축복을 모두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십일조(十一條)'의 한자적 의미와 오개념 바로잡기
십일조(十一條): 가닥 조(條) 자를 쓰며, 성경 전체에서 33회 언급된 '수입의 10분의 1을 구별해 바치는 성물'을 가리킵니다.
십일조(十一租): 세금 조(租) 자를 쓰는 단어로, 고대 국가나 군주에게 바치던 조세(세금)를 의미합니다.
십일금(十一金):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를 편의상 부르는 말이나, 성경과 국어사전에도 없는 잘못된 표현이므로 사용을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십일조 제도의 신학적 취지와 목적
주권의 인정: 시간의 7분의 1인 안식일을 구별하듯, 물질의 10분의 1을 드려 내 삶과 소유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예배 행위입니다.
감사의 고백: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실천입니다.
복음 사역의 유지: 생업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전념하는 전업 사역자(구약의 레위인,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의 생계를 책임져 교회를 유지하고 복음 사역을 지속하게 합니다.
구약 시대 십일조의 세부 구성
제1십일조: 땅의 분깃이 없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한 것(민수기 18장).
제2십일조: 백성들이 매년 가족과 노비, 레위인과 함께 성소에서 풍성한 절기 축제를 즐기기 위한 것(신명기 14장).
제3십일조: 매 3년마다 모아 사회적 약자인 나그네, 고아, 과부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한 구제 십일조(신명기 26장).
신약 시대 십일조의 영속성
제사 제도와 같은 예식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지되었으나, 창조주를 기억하고 헌신하는 도덕적·지속적 원리인 십일조는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예수님의 지지: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을 책망하시면서도 십일조에 대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하심으로써 십일조 제도를 인정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 구약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었듯이, 신약의 복음 전하는 자들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함을 규정하여 교회의 부양 책임을 확증했습니다(고전 9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