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1~21절 “성경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든 이방 사람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동일하신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셔서 그 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하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보냄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기록되기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여,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그렇다면 내가 묻겠습니다. 그들이 듣지 못했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음성이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의 말이 당 끝까지 이르렀다.” 라고 했습니다. 내가 다시 묻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했습니까?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자로 너희를 시기하게 하고 내가 미련한 백성으로 너희를 분노하게 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가 아주 담대하게 말하기를 “나를 찾지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내게 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내가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라고 했습니다.”(우리말 성경)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 요엘서 2장 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이 신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하고 규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구원은 주의 이름을 부른 자에게 주어진다는,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 본 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뜻이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나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만이 그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날 문뜩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른 횟수가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마음의 생각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의미 없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내가 필요한 때만, 그냥 기도를 마칠 때, 주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불러드린 경우는 극히 적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주 예수님! 제가 이제 어린이가 자기 엄마나 아빠를 알고 “엄마!” “아빠!”하고 손을 내밀며 달려가며 그저 좋아서 부르는 것처럼 저도 우리 주 예수님을 마냥 좋아서 부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기뻐 손을 내밀며 달려오시도록 사모함으로 주님을 부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주 예수님!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까?
1. 주 예수님을 갈망하는 자로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오, 주님! 저는 부족합니다. 저는 연약합니다. 저는 미련합니다. 저는 무능합니다. 저는 절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적으로 우리 주님이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주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주님이 만나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언 8: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제가 지은 죄로 인하여 죽었던 자입니다. 저는 죽음이라는 세상 바다에 빠졌던 자입니다. 저의 구원의 닻줄은 오직 우리 주님 밖에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주 예수님을 목말라하는 심정으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럴 때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엘서 2:32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오, 주님! 저의 마음과 영혼은 상처투성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믿었던 사람에게, 이웃들로부터, 믿음의 형제자매들로부터 상처받았습니다. 쓰리고 아픕니다. 제 상처를 싸매주시고 치유하실 이는 오직 우리 주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라고 간절한 심정으로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럴 때 불의에서 떠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19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2.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내 대신 다시 사신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십니다.
사도행전 3장 6~8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고 했습니다.
사도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를 손잡아 일으켰을 때 그는 일어나 섰습니다. 그는 서서 걸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처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형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전인 성도들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그 성막 가장 깊은 곳인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그 법궤는 주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법궤로 이름 하신 주님의 이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6:2절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점을 쳐서 주인에게 많은 유익을 주던 여종에게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6장 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25~26절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3. 예배하는 자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 예수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거룩하심, 광대하심과 영원하신 사랑을 찬양하며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참된 예배 자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인 것입니다.
4. 복음을 전하는(전파하는) 자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여 듣게 하고 들은 자로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어야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보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가 그 이름을 듣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얻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며 가까이 하십시오. 모두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복된 자들의 발걸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0: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엘 2:31~32절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종말에 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종말 때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15~21절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중략)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였느니라.”
오순절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와서 하나 되자 사람들은 방언으로 말하지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령님의 역사가 하나님이 요엘 선지자에게 예언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요엘서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었는데 이게 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뀐 것입니까?
출애굽기 3:15절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라 알려주시고 영원한 이름이며 대대로 기억할 표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9: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은 한 아기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실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함이라.”
구약성경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처녀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62:2절 “열방이 네 공의를, 열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본문에서 ‘네’라고 지칭하는 이는 이사야처럼 보이지만, 이사야가 아닌 앞으로 나타날 주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기가 받게 되는 새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 ‘예수’이름은 “자기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7:12절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집 앞에 문패를 달아 자신의 집인 것을 표시하는 것처럼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새 이름이 된다는 것은 주 예수님이 하나님이 거하는 처소(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9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님 가르쳐준 기도문의 내용 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기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시편 23: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대로 불러져야 할 여호와의 새 이름인 ‘예수’로 불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1:15절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주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자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주 예수님은 염병, 이단 나사렛 괴수라 부르면 핍박했습니다.
요한복음 5:43절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암행어사가 왕의 명령을 받고 왕의 이름을 대신하여 오는 것처럼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오셨습니다.
출애굽기 20:7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사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새 이름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욕을 하였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같은데도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신약성경 예언서에는 주 예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되어지는 사건이 예언되어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되는 돌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10:5절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하였거니와”
사도 바울은 구약성경 레위기 18:5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율법을 지키던 유대인들에게 성경대로 오신 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8:5절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율법)를 반드시 지켜야만 산다고 하셨습니다. 도덕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도 있고, 앞으로 지켜야 하는 예언의 법도 있습니다. 로마서 10:11절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사야 28:16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의 예언에는 ‘예수’라는 단어 대신 ‘돌’을 믿어야 죽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니 지켜야 하는 예언의 법입니다.
베드로전서 2:4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 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실제 돌을 믿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돌로 예표 된 ‘주 예수님’을 믿어야 산다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무엇을 믿을 것입니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입니까?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0:9~10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태복음 10:32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도행전 2:21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시편 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요엘 2:32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로마서 10: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하니”
사도 바울은 이사야 28:16절을 인용하여 돌이 아닌 ‘저’(예수)를 믿어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누가복음 24:44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주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에서 자신에 대한 예언을 일일이 찾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습니다.
신명기 30:11~14절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 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로마서 10:6~8절의 말씀은 신명기의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명령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마음 판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2:2~3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은 새기라하는 판은 마음 판입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이 생각나도록 외우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원인을 하나님의 법이 생각과 마음에 없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계속되는 패역으로 새로운 언약을 세우기로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라도 예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의(義)는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노숙자를 위해 한 끼 밥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의(義)를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15:4절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 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언제가 하나님의 의(義)로 우신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유대인처럼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다가 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을 따라 의(義)를 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
|

첫댓글 주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이십니다
나의 왕되시며 나의 아버지 이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세기며
말씀을 따라 행할 것입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아멘 !아멘!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