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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 자료입니다.
특히 안넨코프에게 보내는 편지는 유물변증법의 관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맑스와 엥겔스의 전투적인 면모도 인상적입니다.
K. 맑스: 「전시 법규에 의한 [신 라인 신문]의 폐간」, 최인호 역
[신 라인 신문]의 11월 7일 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령 유럽 전체에서 반혁명이 무기에 의하여 생명을 유지했다고 한다면, 반혁명은 유럽 전체에서 화폐에 의하여 죽게 될 것이다. (반혁명)의 승리를 취소시킬 숙명이란 유럽의−파산, 국가 파산일 것이다. 총검의 끝은 ‘경제(학)적’ 요점에 부딪히면, 부싯깃처럼 부스러진다. 그리고 (사태의) 발전은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유럽 상횡에 대하여 발행한 저 수표의 만기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파리에서 6월 혁명이 섬멸적 반격을 가할 것이다. 파리에서의 ‘붉은’^ 공화국의 승리와 더불어 군대들은 나라들의 내부로부터 국경으로 또 국경 너머로 출동하게 될 것이며, 격투하는 당파들의 실제적 힘이 순수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면 우리도 6월, 10월을 회상하며 이렇게 부르짖을 것이다. 패배자들에게 불행이 있으라! Vae Victis! 6월과 10월의 사건 이후의 무익한 학살들, 2월과 3월 이후의 지루한 봉납제, 반혁명의 잔학성 자체는 낡은 사회라는 살인마의 비명과 새로운 사회의 피어린 진통을 짧게 하고, 간단하게 하고, 집중시키는 단 하나의 수단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민에게 납득시킬 것이다. 단 하나의 수단−혁명의 테러리즘.”(선집1,574-575)
작년 1848년을 우리는(1848년 12월 31호를 참조하라) 다음과 같은 말로써 요약하였다. “3월부터 12월까지의 프로이센 부르주아지의, 일반적으로 독일 부르주아지의 역사는, 독일에서는 순수한 부르주아 혁명 및 입헌 군주제 형태하에서의 부르주아 지배의 수립이 불가능하다는 것, 오직 봉건적⋅절대주의적 반혁명 아니면 사회적⋅공화주의적 혁명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선집1,575)
“프랑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봉기, 세계 전쟁−이것이 1849년의 내용 목차이다.” 그리고 이미 모든 민족들의 투사들로 구성된 혁명군이 동쪽에서, 러시아 군으로 대표되는 연합한 낡은 유럽에 대립하고 있다. 이미 파리로부터 ‘붉은 공화국’이 들이닥치려 하고 있다!(선집1,576)
1849년 5월 19일자 [신 라인 신문] 제301호
엥겔스가 브뤼셀 공산주의자 연락 위원회에게, 김태호 역
프루동적 조합 계획에 대해서 사흘 밤 동안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모두가 한패가 되어 나에게 반대했지만, 마지막에는 아이저만과 나머지 3명의 그륀 파만이 나에게 반대했습니다. 당시의 요점은 폭력 혁명의 필연성을 논증하는 것, 그리고 프루동의 만병통치약에서 새로운 생명력들을 발견한 그륀의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틀어 반프롤레타리아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이며 유랑 직인적인 것이라고 하여 퇴짜놓는 것이었습니다.(선집1,579)
요컨대 나는 공산주의자들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1. 부르주아들의 이익에 대립하여^ 프롤레타리아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 2. 사적 소유의 폐기 및 재산 공유에 의한 사적 소유의 대체를 통해 이를 수행하는 것; 3. 이러한 의도들의 수행에는 폭력적인, 민주주의적 혁명 이외의 어떤 수단도 없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선집1,580-581)
그륀은 자신의 이름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나 비겁합니다. 다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집회 전체가 이 때문에 경찰로부터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선집1,585)
1846년 10월 23일, 파리
맑스가 파벨 바실리예비치 안넨코프에게, 최병연 역
브뤼셀, 1846년 12월 28일
왜 프루동 씨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기 동일적인 것^이었고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오직 그것을 올바르게 의식하기만 하면 되는 신, 보편, 이성, 인류의 비인격적 이성 따위를 논하는 것일까요? 왜 그는 강력한 사상가로서 자기를 정립하기 위해 허약한 헤겔주의를 좇는 것일까요?(선집1,587)
프루동 씨는 역사 속에서 사회 발전의 일정한 계열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진보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끝으로 그는 인간들이 개인들로서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했으며 자신들의 운동에 대해 잘못 생각했다는 것, 즉 인간의 사회적 발전은 언뜻 보기에는 그들의 개인적 발전과는 구별되고 분리되고 독립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발현하는 보편 이성이라는 가설이 나타납니다.(선집1,587)
그 형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사회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들의 상호 행위의 산물(입니다). 인간들은 이러저러한 사회 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산력들의 특정한 발전 상태를 상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교류 형태 및 소비 형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생산, 교류, 소비의 특정한 발전 단계들을 상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사회 질서, 그에 상응하는 가족, 신분들 혹은 계급들의 조직, 한마디로 그에 상응하는 시민사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시민사회를 상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정치질서를 얻게 될 것인데, 이 정치 질서란 시민사회의 공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프루동 씨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국가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시민사회에 호소하는 것으로, 즉 사회의 공적 요약에 호소하는 것으로부터 공적 사회에 호소하는 것으로 넘어가면서 무슨 큰일이나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선집1,587)
인간이 그들의 생산력들−인간의 전 역사의 기초−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부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개의 모든 생산력은 이미 회득된 힘이며 이전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력들은 인간의 에너지가 사용된 결과이지만, 이 에너지 자체는 인간들이 처해 있는 상황들에 의해서, 이미 획득된 생산력들에 의해서, 그들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산물로서 그들 앞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 형태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습니다.(선집1,588)
모든 새로운 세대는 생산력들을 과거의 세대에 의해 획득된 것으로서 발견하며 이 생산력들이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생산의 원료로 된다는 단순한 사실로 말미암아 인간의 역사 속에는 하나의 연관이 성립하고 인류의 역사가 성립하는데, 이 역사는 인간의 생산력들이, 따라서 그들의 사회적 관계들이 성장하면 할수록 더욱더 인류의 역사가 되는 그러한 역사입니다.(선집1,588)
인간의 사회사는 인간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항상 인간의 개인적 발전의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물질적 관계들이 그들의 모든 관계들의 기초를 형성합니다. 이 물질적 관계들은 인간들의 물질적, 개인적 활동이 실현되는 필연적 형태들에 지나지 않습니다.(선집1,588)
프루동 씨는 이념과 사물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들이 그들에게 특정한 생산력들을 획득하게 한 그 사회 형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반대입니다. 획득된 성과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문명의 결실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들은 그들의 교류 향식이 더 이상 기존의 생산력들에 조응하지 않는 순간부터 그들의 모든 전통적 사회 형태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선집1,588)
특권, 길드 제도 및 동업 조합 제도, 중세의 규제들은 기존의 생산력들 및 이 제도들을 낳은 선재하는 사회 상태에만 조응했던 사회적 관계들이었습니다. 동업 조합적 그리고 규제적 체제의 보호 아래에서 자본이 축적되었으며 해상 무역이 발전했고 식민지들이 건설되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결실들이 성숙하도록 보호해 준 그 형태들을 보존하려고 했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결실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교환을 수행하는 경제 형태들은 과도적이며 역사적입니다. 새로운 생산력들의 획득과 함께 오직 특정한 생산 양식의 필연적 관계들일 뿐이었던 모든 경제 관계들을 변화시킵니다.(선집1,588-589)
바로 이것이 프루동 씨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 증명은 더더욱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역사의 현실적 운동을 구명할 능력이 없는 프루동 씨는 하나의 환영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변증법적이라고 우쭐대고 있습니다. 그는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관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역사는 상상의 안개 낀 영역 안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헤겔식 폐물이지 결코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의 역사−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신성한 역사−이념의 역사−입니다. 그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란 이념 혹은 영원한 이성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루동 씨가 말하는 진화는 절대 이념의 신비로운 품속에서 일어나는 진화입니다. 이 신비적인 언어의 장막을 찢어 버린다면, 프루동 씨가 자기의 머릿속에 있는 경제적 범주들의 배열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선집1,589)
영원한 이성의 경제적 진화의 계열은 분업으로 시작됩니다. 프루동 씨에게 있어서 분업이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그러나 카스트 제도는 일종의 분업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동업 조합 제도는 또 다른 분업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영국에서 17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18세기 후반에 끝나는 매뉴팩처 제도의 분업은 대공업의 분업, 현대 공업의 분업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선집1,589-590)
그는 분업에 관해 논하기 위해 세계 시장에 관해 논해야 할 필요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식민지도 없었으며 아메리카가 유럽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았고 동아시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중개를 통해서만 존재하던 14세기 및 15세기 분업은, 이미 발전된 식민지들을 가지고 있던 17세기의 분업과는 완전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모든 국내 조직, 국민들의 모든 국제 관계들은 특정한 분업의 표현 이외에 다른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들은 분업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까?(선집1,590)
프루동 씨는 분업 문제를 별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독일에서 9세기에서 12세기까지 진행되었던 도시와 농촌의 분리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프루동 씨에게 있어 이 분리는 영원한 법칙으로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분리의 기원도 발전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저서 전체에서 특정한 생산 양식의 이 산물이 최후 심판의 날까지 존속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선집1,590)
프루동 씨에게 있어서 분업과 기계 사이의 연관은 완전히 신비적입니다. 각각의 분업 방식은 특유한 생산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구들을, 더구나 작업대, 베틀 북, 지렛대 등등과 같은 아주 복잡한 도구들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기계가 분업 일반의 결과로서 생겨난다고 하는 것보다 더 웃기는 말은 없습니다.(선집1,590)
1825년−최초의 전반적 공황의 시기−까지는 소비 일반의 욕구들이 생산보다 더 빨리 증가했고 기계의 발전은 시장의 욕구들에 의해 강요된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825년부터는 기계의 발명과 사용은 오직 고용주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전쟁의 결과일 뿐입니다. 아직 이것은 영국에서만 진실일 뿐입니다. 유럽 국민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세계 시장에서나 국내 시장에서나 영국인들과의 경쟁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끝으로 북아메리카에 대해 말하자면 기계의 도입은 타국과의 경쟁과 일손의 부족에 의해서, 즉 북아메리카의 공업상의 욕구들과 인구 사이의 불균형에 의해서 초래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당신은, 프루동 씨가 경쟁이라는 유령을 제3의 진화로서, 기계의 안티테제로서 주문을 외어 불러내 올 때 참으로 비상한 명민함을 발휘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선집1,591)
기계는 쟁기를 끄는 소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범주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기계 사용은 우리의 현재 경제 제도의 관계들 중의 하나이지만 기계를 이용하는 방식은 기계 자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화약이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기 위해 사용되든 부상자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든 화약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선집1,591)
프루동 씨가 자기 머릿속에서 경쟁, 독점, 조세 혹은 경찰, 무역 차액, 신용, 소유를 여기서 제가 인용하는 순서에 따라 창조해 낼 때, 그는 자기 자신의 능력 이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신용제도들이 기계가 발명되기 전인 18세기 초에 발전하였습니다. 국채는 세금을 증가시키고 부르주아 계급의 통치에 의해 생긴 새로운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었을 뿐입니다.(선집1,591)
끝으로 소유는 프루동 씨의 체계에서 마지막 범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반대로 분업 및 프루동 씨의 여타의 모든 범주들은 총체적으로 오늘날 소유라고 하는 것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입니다. 이 관계들 밖에서의 부르주아적 소유란 형이상학적 혹은 법률적 환상 이외의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시대의 소유, 봉건적 소유는 전혀 다른 일련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발전합니다. 소^유를 하나의 독립적인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프루동 씨는 방법상의 오류 이상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르주아적 생산의 모든 형태들을 연결하고 있는 끈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특정한 시대의 생산형태들의 역사적이고 과도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 제도들이 역사적 산물임을 알지 못하고 그 사회제도들의 기원도 발전도 이해하지 못하는 프루동 씨는 오직 그것들을 독단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선집1,591-592)
그리하여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프루동 씨는 허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분업, 신용, 기계 등등의 모든 것이 그의 고정된 이념, 평등의 이념에 복무하도록 발명되었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것들은 평등을 위해 발명되었으나 불행하게도 평등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추론의 전부입니다. 즉, 그는 아무 근거도 없는 가정을 만들어 내고 있으나, 현실의 발전과 그의 허구가 매 걸음마다 모순을 일으키자 이로부터 그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모순은 그의 고정된 이념들과 현실의 운동 사이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감추고 있습니다.(선집1,592)
이와 같이 프루동 씨는 무엇보다 역사적 인식이 부족한 까닭에 인간은 자신들의 생산력들을 발전시킴으로써 즉 생활함으로써 특정한 상호 관계들을 발전시킨다는 것, 그리고 이 관계 양식은 생산력들의 변화 및 성장과 함께 필연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경제적 범주들이란 이러한 현실적 관계들의 추상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범주들은 이 관계들이 존속하는 한에 있어서만 진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경제적 범주들을 특정한 역사적 발전에 대해서만, 생산력들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대해서만 유효한 역사적 법칙들로 보지 않고 영원한 법칙들로 간주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따라서 프루동 씨는 정치 경제학적 범주들을 현실적, 과도적, 역사적 사회관계들의 추상으로 보는 대신에 신비스럽게 전도시킨 결과, 현실적 관계들을 이러한 추상의 화신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선집1,592)
그러나 여기서 이 선량한 프루동 씨는 엄청난 정신적 경련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약 이 모든 범주들이 신의 가슴으로부터 발산된 것이라면, 인간의 숨어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면, 첫째 어떻게 발전이 존재할 수 있겠으며, 둘째 어떻게 프루동 씨가 보수주의자가 아닐 수 있습니까? 그는 이 명백한 모순들을 적대 관계의 체계 전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선집1,592-593)
독점은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제적 범주, 따라서 신의 발산이기 때문이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경제적 범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지 않은 것은 독점의 현실과 경쟁의 현실이다. 더욱더 나쁜 것은 독점과 경쟁이 서로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신의 이 두 영원한 관념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이 두 관념들의 진테제도 신의 품속에 존재하고 그 진테제 속에서 독점의 폐해들은 경쟁에 의해 상쇄되고 그 역 또한 성립한다는 것이 프루동 씨에게는 자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이념들 사이의 투쟁은 좋은 면만을 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신에게서 이 은밀한 관념을 탈취하여 그것을 응용해야 한다. 그러면 만사형통일 것이다. 인류의 비인격적 이성의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테제의 정식을 드러내야 한다. 프루동 씨는 스스로를 계시자로 만드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선집1,593)
그러나 잠시 현실적 삶에 눈길을 던져 보십시오. 오늘날의 경제생활에서는 경쟁과 독점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진테제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진테제는 공식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입니다. 독점은 경쟁을 생산하고 경쟁은 독점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정식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 상태의 난점들을 제거해 주기는커녕, 결과적으로 훨씬 더 어렵고 훨씬 더 혼란한 상태를 초래하게 됩니다. 따라서 당신이 현재의 경제관계들이 기초해 있는 토대를 변화시키고 현재의 생산 양식을 파괴한다면, 이는 경쟁과 독점 및 이것들의 적대관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통일, 이것들의 진테제, 즉 경쟁과 독점을 현실적으로 균형화하는 운동도 또한 파괴하는 것입니다.(선집1,593)
이제 프루동 씨의 변증법에 관한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유와 노예제는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좋은 측면들에 관해서도 나쁜 측면들에 관해서도 제가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예제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 나쁜 측면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설명되어야 할 단 한 가지는 노예제의 좋은 측면입니다. 문제로 되는 것은 간접적 노예제, 즉 프롤레타리아의 노예 상태가 아닙니다; 문제는 직접적 노예제, 즉 수리남, 브라질, 북아메리카의 남부 주들에서의 흑인 노예제입니다.(선집1,593-594)
직접적 노예는 기계, 신용 등등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의 산업주의의 주축입니다. 노예가 없다면 면화도 없고, 면화가 없다면 현대 공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노예제가 식민지들에게 가치를 부여했고, 식민지들이 세계 무역을 창조했으며, 세계 무역은 기계제 대공업의 필수조건입니다. 또한 흑인 매매 이전에 식민지들은 구세계에 극히 적은 생산물을 공급했을 뿐이며 세계의 모양을 눈에 띄게 변화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이처럼 노예제는 극히 중요한 경제적 범주입니다. 노예제가 없다면 가장 진보적인 나라인 북아메리카도 가부장제적인 나라로 변할 것입니다. 세계지도에서 북아메리카만을 지워 보십시오. 그러면 무정부 상태, 상업과 현대문명의 완전한 몰락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제를 소멸시키는 것은 세계 지도에서 아메리카를 지워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노예제는 하나의 경제적 범주인 까닭에 태초 이래 모든 민족들에게 있어 온 것입니다. 현대 민족들이 자국에서는 노예제를 은폐할 수 있었고 신세계에서는 그것을 공공연히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일 뿐입니다. 노예제에 관한 이러한 성찰 끝에 이제 그 선량한 프루동 씨는 어떤 일을 시작하겠습니까? 그는 자유와 노예제의 진테제, 참된 중용, 달리 말하면 노예제와 자유의 평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선집1,594)
프루동 씨는 인간들이 모직물, 아마포, 견직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주 잘 이해하였는데, 이러한 사소한 것을 이해했다는 것은 큰 공적입니다! 프루동 씨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들의 생산력들에 따라 사회적 관계들 또한 생산하며 이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모직물과 아마포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프루동 씨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성에 조응하여 사회적 관계들을 생산하는 바로 그 인간들이 또한 이념들, 범주들, 즉 바로 그러한 사회적 관계들의 추상적, 이념적 표현을 생산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주들은 그것들이 표현하는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역사적이고 과도적인 산물입니^다. 프루동 씨에게 있어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추상들, 범주들이 제1의 원인입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추상들, 범주들입니다. 인간들과 그들의 물질적 활동으로부터 분리된 추상, 범주 그 자체는 물론 불멸 불변 부동의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 이성의 본질일 뿐이며, 이는 추상 그 자체는 추상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놀랄 만한 동어반복!(선집1,594-595)
그러므로 범주의 형태로 고찰되는 경제적 관계들은 프루동 씨에게는 기원도 진보도 없는 영원한 공식들입니다.(선집1,595)
프루동 씨는 부르주아적 생활이 그에게 있어서 영원한 진리라고 직접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관념의 형태로 부르주아적 관계들을 표현하는 범주들을 신격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산물들이 그에게 범주 및 관념의 형태로 나타나자마자 그는 그것들을 저절로 생겨난, 고유의 생명을 부여받은 영원한 존재들로 여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는 부르주아적 지평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르주아적 관념들을 영원히 진리인 것으로 가정하면서 취급하기 때문에 이 관념들의 진테제, 이 관념들의 평형을 추구하나, 평형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양식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선집1,595)
사실 그는 모든 선량한 부르주아들이 행하고 있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경쟁, 독점 등등이 원리상으로는, 즉 추상적 관념들로서는 삶의 유일한 기초들이지만 실제로는 아직 개선할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 모두가 해로운 결과를 수반하지 않는 경쟁을 원합니다. 그들 모두가 불가능한 것, 즉 부르주아적 생활조건들의 필연적 결과가 없는 부르주아적 생활 조건들을 원합니다. 그들 모두는 봉건적 형태가 그랬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적 생산 형태 또한 역사적이며 과도적인 형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오류는 그들에게는 부르주아적 인간이 모든 사회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기초라는 것, 인간이 부르주아이기를 그만둔 사회상태를 그들이 상상할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나옵니다.(선집1,595)
따라서 프루동 씨는 필연적으로 공리공론적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를 전복하는 역사적 운동은 그에게서는 두 가지 부르주아적 관념들의 진정한 평^형, 진테제를 발견하는 문제로 해소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하여 이 재간꾼은 명민한 머리로 신의 감추어진 관념, 고립된 두 관념들의 통일을 발견해 냅니다. 이것들이 고립된 두 관념들인 까닭은, 단지 프루동 씨가 이 관념들을 실제의 생활로부터, 즉 이 관념들에 의해 표현되는 현실의 결합물인 현재의 생산으로부터 고립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선집1,595-596)
이미 획득된 인간의 생산력들과 이 생산력들에 더 이상 조응하지 않는 그들의 사회적 관계들 사이의 충돌로부터 생기는 거대한 역사적 운동 대신에, 한 국민의 각이한 계급들 사이에서 그리고 여러 국민들 사이에서 준비되고 있는 가공할 만한 전쟁들 대신에, 이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대중의 실천적, 폭력적 행동 대신에, 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이고 복잡한 운동 대신에, 프루동 씨는 그의 두뇌의 배설 운동을 제시합니다. 이리하여 역사를 만드는 것은 학자들, 신의 내면의 관념을 빼낼 줄 아는 사람들로 됩니다. 보잘것없는 인민은 그들의 계시를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선집1,596)
현재의 문제의 해결은 그에게 있어서는 공적 행동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서 수행되는 변증법적 원환 운동 속에 있습니다. 그에게는 범주들이 원동력이기 때문에 범주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실제의 생활을 변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범주들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고 현실 사회의 변화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선집1,596)
모순들을 화해시키려는 열망에 들떠 있는 프루동 씨는 이 모순들의 기초 자체가 전복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은 한 번도 떠올리지 않습니다.(선집1,596)
프루동 씨는 한편에는 영원한 이념들, 즉 순수 이성의 범주들을 놓고 다른 한편에는 인간들 및 프루동 씨에 따르자면 이 범주들의 적용인 인간들의 실제 생활을 놓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에게서 처음부터 생활과 이념들 사이의, 영혼과 육체 사이의 이원론을−각종 형태로 반복되는 이원론을−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당신은, 이러한 적대 관계란 그 자신이 신격화한 범주들의 세속적 기원과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프루동 씨의 무능력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선집1,597)
제가 프루동 씨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단 한 가지는 사회주의적 감상벽에 대한 그의 혐오입니다. 프루동 씨보다 앞서 저는 맹목적, 감상적,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해 야유를 보냄으로써 많은 반감들을 불러일으켰었습니다.(선집1,597)
그는 사회주의적 감상들, 혹은 그가 그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자나 교황처럼 불쌍한 죄인들을 파문하고, 소부르주아지에 대한 찬양의 노래를, 가정에 대한 비참한 가부장제적 사랑의 환상들에 대한 찬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프루동 씨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부르주아지의 철학자, 경제학자입니다. 소부르주아는 발전된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의 지위로 말미암아 부득이하게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자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학자가 됩니다. 즉 소부르주아는 대부르주아지의 화려함에 현혹되고 인민의 고통에 공감합니다. 소부르주아는 부르주아인 동시에 인민입니다. 그는 중용과는 구별된다고 자부하는 진정한 평형을 발견했다고, 편파적이지 않다고 내심 우쭐댑니다.(선집1,597-598)
이와 같은 소부르주아는 모순을 신격화합니다. 왜냐하면 모순이 그의 존재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은 실해에 옮겨진 사회적 모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실천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이론을 통해 정당화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프루동 씨는 프랑스 소부르주아지의 과학적 해명자라는 공적을 세웠는데, 이는 진짜 하나의 공적입니다. 왜냐하면 소부르주아지는 준비 중에 있는 모든 사회혁명들의 구성 부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선집1,598)
엥겔스가 런던의 에밀 블랑크에게
대부르주아들과 노동자들은 직접 대치하고 있네. 소부르주아들은 중개적인, 그러나 매우 초라한 역할을 하고 있네. 그렇지만 이 후자가 임시 정부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네(라마르틴느. 마라스트, 뒤퐁 드 뢰르, 마리, 가르니에-파제, 그리고 때로는 크레미유도). 그들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임시정부는 대단히 동요하고 있다네. 모든 것이 잠잠하면 할수록 정부와 소부르주아당은 더욱더 대부르주아지쪽으로 기울고, 모든 것이 불안하면 할수록 그들은 다시 노동자들의 편을 든다네.(선집1,600)
가장 큰 곤경이란 정부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약속들을 해야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한 약속들을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정부는 부르주아들에 대한 혁명적 방책들, 즉 강력한 누진세, 상속세, 모든 해외 이주민 재산의 몰수, 화폐의 국외 유출 금지, 국립 은행 등등을 통하여 약속 이행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네.(선집1,601)
그런데 국민의회에서는 더욱이 새로운 요소가 덧붙여지고 있다네: 프랑스 국민의 5/7를 이루고 있으며, [나씨오날], 즉 소부르주아들 당파의 편에 서 있는 농민들. 이 당파가 승리하게 되는 것, [레포름] 일파가 몰락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나서 다시 혁명이 발발하는 것 등은 매우 있을 법한 일들이라네.(선집1,601)
[나씨오날] 일파, 마라스트와 그 일파는 평소에도 극히 좋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네. 그들은 방종하게 생활하고, 친구들과 함께 궁전과 좋은 지^위를 염려하고 있다네. [레포름]파 사람들은 전혀 다르네. 나는 두어 번 늙은 플로콩과 함께 있었는데, 그 사나이는 예전처럼 5층에 있는 열악한 주거에서 살고 있었으며, 오래 된 도기 파이프로 보통의 안연초를 피웠고, 또 침실 가운 한 벌을 새로 샀을 뿐이라네. 게다가 그는 생활 방식에 있어서 [레포름]의 편집장이었을 때와 똑같이 공화주의적이었으며, 마찬가지로 똑같이 친절하고 매력적이며 솔직했다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용감한 사나이들 중의 하나라네.(선집1,601-602)
지금 막 마르세에즈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부상으로 죽은 한 노동자의 장례 행렬이 지나가고 있네. 최소한 10,000명의 국민군과 무장한 인민이 그 노동자를 뒤따르고 있으며, 앙탱 거리의 젊은 멋쟁이들이 국민군 기마병으로서 행렬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네. 사람들이 한 노동자에게 그렇게 최후의 경의를 표한다는 데 대해 부르주아들은 격노하고 있다네.(선집1,602)
1848년 3월 28일.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