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환기 선생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된 건 몇 번의 인연이 더해진 결과다.
처음 추상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를 보았고, 제목이 김광섭 시인의 < 저녁에 > 싯구에서 따왔고, 한때 유행했던 노래에도 나오는 구절이라 귀에 익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화가의 작품과 삶이 유홍준 선생의 글에 여럿 인용되어 관심이 더 커진 터에, 우연한 기회에 작품명과 동일한 제목의 수필집의 존재를 알게 되어 사서 읽고 있다.
유명 화가가 쓴 편지와 잡문, 기고문 등을 읽으며, 대가의 일상과 미술, 가족과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화가의 솔직한 생각들을 그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함께 알게 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오늘 아침에도 그의 글 몇 편을 읽었다. 조선백자 달항아리에 대한 애정이 녹아든, <청백자 항아리> 편에 묘사된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란 문구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 많은 인용의 원문이 김환기 화가에서 시작되었구나. 그의 책을 읽으며, 결국 솔직한 자기 감정의 고백이 명문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뒤척이다 깬 잠 끝에 읽은 수필 한 편에 마음이 동해, 새벽 백운호수의 풍광이 그리워 길을 나섰다.
카페 맥시 앞을 따라 길게 이어진 메타세콰이어의 진한 갈색, 색에 반해 걸음을 멈춘다. 백운호수의 새벽 걷기의 매력은 일출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에 오리가 유영하고, 기지개를 펴는 먼 산을 바라보는 건 또 다른 호사였다. 게다가, 서리가 곱게 드리운 철길을 따라 아직 파란 잎을 지닌 풀을 바라보는 건 가는 계절에 대한 연민과 함께 먼 봄의 희망도 갖게 해 준다.
그렇게 걸어 다시 출발점에 선다. 아침 해살이 유난히 고운 아침이다. 빛의 반짝임에 몽롱해진다. 문득 내 고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해, 안부를 여쭈었다.
희망을 가득 안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