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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연구 19 - 정행正行의 기틀
역근易筋법과 굴신屈伸법
1. 몸의 기틀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그 나무가 바람에 아니 밀리고 가뭄에 마르지 않는 이유가 있다. 뿌리가 있어 땅 속의 물줄기와 닿아 통하기 때문이요, 잎이 있어 하늘 가운데 빛을 받아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요, 가지와 줄기가 있어 잎과 뿌리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사람도 이와 같이 하늘 땅 기운과 한시도 떠나서는 살 수 없는데, 어찌하면 나무의 뿌리와 잎처럼, 天地의 기운과 만날 수 있는 사람 안의 체계를 틀 지을 수 있을까!
이렇게 틀 만드는 일은 크게 보아 '안과 밖'에서 가능한 일이 된다. '안'에서 틀 지우는 노력을 '진공(眞功)'과 '본공(本孔)'의 영역으로 하여 수련을 한다면, '밖'에서 틀을 만들어 가는 수련을 대표하는 것이 '무학(武學)' 이다.
'武學'이 '學'이 되는 것은 '몸'에 대한 공부 체계이기 때문이다. 보통 '수신(修身)'이라 하는 몸 공부 체계, 곧 수신학(修身學)은 과정에선 '문무(文武)'를 겸하고, 목표에선 '심신(心身)'을 일체로 하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文武수련에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사람 몸에도 뿌리가 있고 지엽이 있으며,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끝남과 일어남이 있다.' 이 이치 가운데서 앞서고 뒤서는 이 이치를 안다면 곧 진리에 가깝게 된다는 것이다.
뿌리라 하면 우리 몸의 중심을 말하고, 지엽, 곧 末이라 하면 몸의 중심을 떠받치고 있는 사지말단을 말한다. 일어난다는 말은, 사람 몸이란 일정한 물(物)로서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 변화의 시작을 말한다. 마친다는 말은 일정한 작용을 거쳐 기존의 物이 새로운 物로 변화한 결과를 말한다.
이는 사람 몸은 변화한다는 것과, 그 변화는 반드시 인파(因果)적인 틀을 가지면서 마침과 일어남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말한다. 몸을 단련한다는 '수신(修身)의 법'은 '몸'이라는 구체적인 '物'을 일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찌하면 천연(天然)의 모습처럼 건강하게 因果를 지을 가에 대한 사람의 노력이다.
'修身'의 노력에서 先後가 되는 원칙은 사람마다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앞서 '修身'의 방법은 크게 안으로 해서 곧바로 사람 몸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있고(이를 本功이라 함), 이와 비교되는 방법으로 밖에서 몸을 움직여 중심을 단련하는 방법이 있다(이는 여러 學과 功과 術의 이름을 갖고 있다). 修身의 법은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여야 한다.
正行의 기틀로서 살펴보고자 하는 ‘굴신’과 ‘역근’의 法은 후자를 단련하는데 기초가 되는 내용이다. 무슨 모양을 만들고자 하면 일정한 틀이 필요하게 된다. 사람의 몸 틀을 바로 하는데 ‘굽히고 펴는' 음양의 흐름과 '힘줄을 바꾸어 변화를 주는’ 훈련이 있는데 그 중의 기초가 '굴신법'과 '역근법'이다.
사람은 식물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며, 그리고 동물이라는 범주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크게 보면 자연의 틀 안에 있는 하나의 존재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양 그대로가 하나의 '틀'이 되고 '형(形)'이 된다는 말을 한다. 그럼에도 해당 존재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거나, '건강과 질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 몸도 인과관계를 거친 탓에 '자연스런 존재'라는 당위와는 다른 현실의 역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을 '사람'이라고 하는 큰 이유는, '마땅한 바'와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에서 '선(善)'을 내재적으로 지향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2. 어떤 '틀'을 어떻게 짤까?
손발과 머리와 몸통이라는 외형의 틀을 몸의 중심과 어떻게 상대하며 옳은 틀을 짤까?
이에 대하여, 옛사람의 글에 "曲直前後爲一體 進退下上爲一脚 (곡직전후위일체 진퇴하상위일각)"이란 말이 있다. "굽고 바르며 앞 되고 뒤 되는 것이 모두 한 몸이며, 나서고 물러서며 내리고 올림이 모두 한 '다리이다.“ 이는 '氣天'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曲直前後'와 '進退下上'은 모두 몸 동작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는 안에서 보면 일정한 기운의 흐름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몸 동작에는 '기운'과 '동작'이 함께 맞물려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처럼 동작을 통한 몸 공부란 그와 같은 행위를 가장 바르게 하는 데서부터 그 기운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것을 말한다.
각각의 동작을 만들어내는 기운을 굴려가는 방법을 가지고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비유를 들기를 "어린아이가 하나의 사물을 들기 위해서 원리를 이해하고 그 원리를 계속 적용시킴으로써 사물을 들게 된 것이 아니듯이, 사물을 잘 들고자 하는 바른 길을 깨달음으로써 사물을 들게 되고 마침내 그 속에서 그 길과 함께 그 힘도 얻게 되는 것과 같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그 다리를 가지고 주춤 주춤해서 그 길을 바로 안 다음에 그 걸음을 걸을 수 있고, 설 수 있고 마침내 그 길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 걷고 있는 건지 누구 하나 그걸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가 공부라 할 것입니다."
몸을 어떻게 굴릴 것인가? 거기에는 正曲과 正直과 正前과 正後 등의 法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의 바름은 무엇일까?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곧 '심법(心法)'이다. 손이나 발을 들고 차면서, 손이나 발을 들고 차는 방법과 그리고 손과 발을 들고 차는 기운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 내용은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 하나 알아가야 할 것들이다.
위의 여덟 가지의 움직임은 어떤 기준으로 '틀'을 세우고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낼까? 예를 들어 몸의 중심을 上下로 들고 낮춘 때, 몸통은 어찌하고 다리부터 손은 어떤 모양을 취해야 되는가? 그 외에도 앞과 뒤로 나아가는 움직임 속에서 몸통과 다리와 손은 또 어떤 모양새를 취해야 되는가?
햇빛을 주요 에너지로 취하는 식물들은 그 빛을 향하여 잎과 꽃의 방향이 틀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바른 기운을 향한 몸의 흐름이라면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다면 부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사람이 행한 동작들과 인과(因果) 틀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일방의 방향과 자세에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부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러움을 대체한다. 아픈 게 당연한 게 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몸 수련내용은 경험에서 나오기도 하고 상상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이러저러한 모양새를 취한 결과 어떤 자세에선 몸의 어느 부위가 풀리고 어느 부위는 당기더라…… 가만히 앉아 시선을 거두어 몸 속을 보니 이러저러한 기운이 흐르고 피가 가고 힘이 가더라…… 그래 그 흐름을 외화시켜 움직여 보니 한 그림이 그려지더라……
선각자들이 자신의 몸을 실험 삼아 '진리'의 증표를 내놓은 바를 두고 '사랑의 지극한 道‘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몸으로 가는 길이 몸에서 끝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누릴 과보는 달라지겠지만……
3. 몸에 대한 이해
구체적인 움직임을 행하기 전에 몸에 대해 살펴보자. 사람 몸의 외양을 보면 좌우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심장은 왼쪽에 있고, 간장은 몸의 우측에 있어 몸 속은 좌우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안을 흐르는 기운의 흐름은 다시 좌우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 사람 몸은 보기에 따라 갖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러기에 보는 시선과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몸에 대한 공부는 반드시 '본말(本末)'을 세워 두어야 한다. '本'은 몸의 '中'이요, '中'이라 하면 위치에 있어서나, 무게중심에 있어서나, 작용상에 있어서나 '中心'이 되어야 한다. '수련학(修練學)'에선 '中'을 '하단(下丹)'이라 하고 '광거(廣居)'나 '원단(元丹)'이라 한다. 다른 가르침에서 이를 '공(空)'이니 '무(無)'니, '원(圓)'이니 하는 표현들을 쓰고 있다.
'下丹'이 '中'이라 하는 것은 오장육부의 모든 경락이 이곳을 지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덟 개의 기운을 펼치고 있는 곳이 '下丹'이기도 하다. 피와 氣와 힘마저도 모두 이 '下丹'이 중심이 되어 갖은 길 따라 온 몸으로 이어지고 있다. 氣는 몸과 마음의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터전이 바로 '下丹'이 되기도 한다.
수련 용어로써 사용하는 '정기신(精氣神)'이란 사람에게 ‘마음’의 영역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장기와 血, 筋, 骨, 肉‘ 등은 사람에게’몸‘의 영역으로 이해한다. 전자를 형태가 없는’무형(無形)‘의 것이라면, 후자는 형태가 있는’유형(有形)‘의 것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자를 동물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기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 하고, 후자는 식물처럼 자신에게 정해진 곳에서 길 따라 작용을 한다고 비유를 들기도 한다.
공부에서 선후(先後)의 원칙은 가까운 것을 먼저하고 먼 것을 나중에 한다. 몸과 마음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가는 순환론적인 대답에 빠질 수 있으나, 사람에게 있어서 몸이 마음보다는 보다 구체적이다 수련에 있어서 형태가 있는 ‘筋, 骨, 肉’ 등을 먼저 단련하여 ‘마음의 제영역’ 을 돕고, 정기신을 배양하는 것으로써 ‘근, 골, 육’ 등의 육체적 조건을 돕도록 해야 한다.
몸과 마음은 서로를 차별할 수 없고 차별해서도 안 된다. 형태의 있고 없음은 그 자체로서도 조화를 이루는 일이기에 몸과 마음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 된다.
거중(居中)선생님은 육체를 기관(機關)과 현상이란 측면에서 여섯 가지로 나누어 놓고 있다.
인체에 들고 나는 작용과 체계를 일러 식(息)이라 하고,
인체에 통하고 막는 작용과 체계를 일리 막(膜)이라 하고,
인체에 단단하고 유약함을 관장하는 작용과 체계를 일러 골(骨)이라 하고,
인체에 크고 작음을 관장하는 체계와 작용을 일러 육(肉)이라 하고,
인체에 맑음(淸)과 탁함(濁)을 관장하는 체계와 작용을 일리 혈(血)이라 하고,
인체에 강하고 약함을 관장하는 체계와 작용을 일러 기(器)라 한다.
이는 해부학적인 개념이 아니라, 6가지 매커니즘을 총합으로 존재하는 것이 몸이라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뼈라는 것은 뼈다귀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러면서 뼈는 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체 매커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뼈의 매커니즘은 숨과 피와 그릇과 고기와 막과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과 작동 체계와 서로 간의 상관성까지를 포함하여 보는 기관으로서 ‘뼈’라는 것이다.
우리 몸 안에 있는 無形의 것을 ‘精氣神’이라 했는데, 이는 중국 도가적인 표현이다. 전통적으로 마음의 영역을 6心으로 풀어보기도 한다. 여섯 가지 마음이란, 식(識)과 업(業)과 기(氣)와 영(靈)과 신(神)과 명(命)을 말한다. 이를 無形이라 하여 일정한 자리는 없이 현상만 있거나 사람의 관념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보아서는 잘못이다. 오히려 이 마음의 영역들은 일정한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 만일 제자리에 가 있지 않으면 사람은 정신적인 질환에 걸리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도 구체적인 기관으로 작용하고 그 작용의 체계와 현상을 일러 각기 해당되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 이 여섯 가지 전체 매커니즘을 일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氣수련한다 하는 것은 氣가 심신을 매개하는 고리이기 때문에, 氣수련을 心身수련이라고 말을 한다. '氣'라는 마음의 기관을 최대한 발동시켜서 심신이 일체가 되도록 하는 수련이 '氣수련'이다. 우리가 호흡을 하거나 막(膜)을 단련하는 ‘몸수련’이 곧 ‘마음수련’과 직결되는 이유는 이처럼 ‘氣’를 매개로 하여 몸과 마음의 각 체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4. 몸틀과 ‘굴신(屈伸)’
몸틀에 대한 직접적인 수련에서 첫 번째 방도가 ‘굴신’이다. 몸 자체를 굽히고 펴는 일이다 몸통만이 아니라 손과 발 모두가 마찬가지의 흐름을 타야 한다.
딱딱한 나뭇가지는 바람에 쉽게 부러지지만, 내성이 있고 탄력이 있는 가지는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바람을 타고 돌뿐이다. 그처럼 사람의 육체도 탄성(彈性)이 있어야 내성(耐性)이 있고, 내성을 기르기 위해선 탄성의 정도가 일정하게 있어야 한다.
탄성이 없는 몸은 쉽게 부러지고 병이 든다. 인체에 탄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운동 부족이다. 이외에 왜곡된 운동도 한 몫 하게 된다. 현대인의 노동성향은 일방적이다. 한 방향으로 고정된 흐름이 단순하게 반복된다. 학생들의 자세를 습관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습관은 곧 관습처럼 된다. 개인적 처지와 사회적 조건이 결합하여 사람을 기형화시킨다. 그 기형화의 정도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비정상을 오히려 정상으로 이해하고, 일정한 (비정상적 또래사회에) 소속감을 갖게 하는 위안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운동을 한다고 일방으로 움직이는 동작의 반복은 힘을 기를 수 있을지 몰라도 몸의 균형을 파괴하게 된다. 가령 ‘역기’를 들어올리는 운동은 근력도 기르고 외관도 멋있게 하는 일이 되지만, 아래로 내리는 힘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 운동은 몸 속의 상하 균형을 깨트리게 된다.
사람은 크게 3번 변한다고 한다. 처음엔 태내에 있을 때이고, 다음은 네발로 기어 다닐 때이고, 다음은 두발로 서 다닐 때이다. 태내에 있을 때, 사람의 모습은 손을 중심으로 거꾸로 있으면서 배꼽을 통하여 숨도 쉬고 에너지도 보충 받는다. 기어 다닐 때는 손발을 중심으로 몸의 상하 균형을 맞추면서 동시에 몸의 기둥이 되는 척추를 활처럼 바르게 하여 탄성을 기르는 때이기도 하다. 두발로 서서 다닐 때는 사람의 중심이 아래로 쏠리게 되고, 발을 중심으로 힘의 균형이 맞추어지면서 육체가 하체 중심으로 몰리게 된다.
이것은 육체가 성장 변화하는데 특별한 예외가 없는, 사람에게 공통된 내용이다. 이러한 점이 사람의 몸 공부에 전제가 된다. 그래서 때로는 손으로 중심을 잡는 훈련이 있게 되고, 척추를 활처럼 세우는 일과, 손과 발을 마치 한 몸처럼 세우고 움직이는 동작을 하게 된다. 모두 몸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훈련이기도 하다. 이를 원시반본(元始返本)이라고 한다.
현대사회의 직업병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단순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데서 오는 육체적 균형의 상실에서 비롯한다. 견비통, 요동, 신경통 모두 그런 일종의 통증이 대부분이고, 치질도 기운이 아래로 처지는 가운데 생긴 질병의 하나이다. 노동만이 아니라 편향된 방향의 운동도 이런 결과를 낳게 된다. 앞으로 발을 차는 운동도 계속되면 근육을 단련하고 폐활량을 높일 수는 있어도 몸의 균형은 상실되게 된다. 몸 공부에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조화'이다. 육상 선수가 100미터를 뛰기 전에 발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라. 앞으로 차고 나가는 달리기를 하기 위해 그들은 발을 뒤로 차며 풀어준다.
몸에 병이 있는 경우, 몸의 굴신 정도에 그대로 표현된다. 가령, 심장이 이상하면 오히려 가슴 부위가 앞으로 더욱 드러나 거만한 형태의 틀이 되고, 간장이 좋지 않으면 어깨가 움츠러들어 안으로 오그라드는 틀이 된다. 그래서 심장이나 폐가 좋지 않으면 굴적(堀的)인 경향의 방향으로 운동을 하고, 심장이나 신장이 좋지 않으면 ‘펼치는' 쪽의 운동을 자주 하는 게 효과적이다. 산에 오를 때에는 다리를 앞으로 뻗어 올려야 한다면, 이때에 쌓인 피로는 산을 내려갈 때 평탄한 길에서 뒤로 걸어 내려가면 쉽게 풀어지게 된다.
‘굴신(屈伸)’의 동작이 갖는 강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활’이다. 느슨한 활을 팽팽하게 당겨 화살을 멀리까지 날려보낸다. 느슨함과 팽팽함의 상호작용이 큰 힘으로 표출된다. 이것을 무예에서 특별히 응용한 것이 ‘반탄(反彈)의 원리’이다.
긴장과 이완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두 축이다. 긴장만 한다면 사람은 기계처럼 마손될 것이요, 이완만 있다면 사람은 강(剛)없이 유(柔)만 있어 오히려 기능상실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람에게 조증(躁症)과 울증(鬱症)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이 몸의 탄력의 정도에 있어서도 굽히고 펴는 흐름이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몸이라 할 수 있다.
‘굴신’의 正行 공부는 특별한 수련과정보다도 일상 속의 자세와 행동이 중요하나, 걷고 앉고 서고 뛰고 오르고 내리고…… 하는 여러 동작과 자세에서 바름을 유지하고 그 바름을 유지한 가운데 행위를 하는 것이 ‘굴신’의 공부이다. 특별한 훈련에 해당한 것은 뒤에 기술한다.
5. ‘역근(易筋)’의 공부
본래 '역(易)'이란 글자는 해가 비추는 모습을 형상한 것이다. 해가 비추면 그에 따라 양지와 음지가 달라지며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易'은 어떤 변화를 의미한다. ‘易筋’이라 하면 筋에 어떤 변화를 준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順易'과 '逆易‘이 있다. 물로 비유하면 물을 따라 흐르는 흐름과 물을 거슬러 가는 흐름이 있다. 이 두 흐름을 합쳐서 '易'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래로 흘러가는 흐름은 쉬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나, 물을 거슬러 가는 흐름은 어려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힘이 있어야 거센 물살을 헤치며 오를 수 있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모습은 하나의 경이로움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람에게도 그와 같은 힘이 몸에 필요하고, 그와 같은 몸의 힘으로 거슬러 마음의 길을 올라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근’ 공부의 의의이다.
본래, 달마대사는 ‘역근’공부를 통하여 心法에 다다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여 그 공부를 ‘역근세수경(易筋洗髓經)’이라 하였다. 心法에 이르지 못하는 ‘역근’공부는 참장(站壯)의 공부가 되어 극양(極陽)의 흐름이 된다. 힘을 한편으로 강화시키기에 正功이 아닌 마공(魔功)의 일종이 된다.
그처럼 ‘역근’수련은 그 사용 여하에 따라 음양조화가 될 수 있는 공부가 되기도 하고, 그 균형을 깨뜨려서 오히려 강한 힘을 얻는 마공의 일종이 될 수 있는 공부법이다. ‘역근’의 '易'은 '거스르는 것'만이 아닌' 순리의 흐름'을 포함한다고 했다. 힘은 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쌓기 위해선 반드시 버리는 일과 병행이 되어야 한다. 힘을 쌓는 일과 힘을 쓰는 일의 조화 역시 공부에 있어서 새겨야 할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달마의 역근경을 번역한 '반자밀제'는 득도(得道)를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청허(淸虛)’와 ‘탈환(脫換)’ 이다. "마음이 청허하면 어떠한 일에도 장애 될 것이 없고, 行이 탈환하면 게을러짐이 없다. 이 두 가지 道를 분별하지 못하면 배움에 기초가 없어진다."
여기서 ‘청허’는 ‘세수’를 말하고, ‘탈환’은 ‘역근’을 말한다. ‘세수’는 마음의 때를 씻고 참된 마음의 빛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역근’이라 하면 筋을 변화시켜 근을 굳세게 경(勁)한다는 뜻이다.
筋은 몸 둘레에 막(膜)과 함께 분포되어서 氣를 통하고 血을 회전시켜서 정신이 명령하는 대로 자유자재하게 운동할 수 있게 한다. 그처럼 운동은 筋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筋이 해이(解弛)하면 몸에 병이 들고, 筋이 오그라들면 몸이 구부러지고, 筋이 약해지면 신체가 해태(解怠)해지며, 筋이 끊어지면 신체가 좌절(挫折)된다.
이와 반대로, 筋이 장성(壯盛)한 사람은 신체가 강인(强靭)하고, 筋이 발달하면 신체 발육이 양호하며, 筋이 굳센 사람은 자세가 바르게 되고, 筋이 조화를 이루면 건장해진다.
이러한 상태는 모두 타고난 것으로, 외기(外氣)의 감응(感應)에 의해 스스로 성(盛)하고 쇠(衰)하는 것은 있어도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련으로 ‘약(弱)을 강(强)으로, 구부러진 것을 바르게 펴고, 유(柔)를 강(剛)으로, 쇠(衰)한 것을 건전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역근법’이다.
수련에는 '法'이 있다. 그 '法'에 따라 사람 몸과 마음의 틀을 짠다. 근(筋)은 ‘힘줄’이다. '힘이 가는 줄'이 힘줄인데, 이렇게 힘이 사지말단으로 전달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氣’와 ‘膜’이다.
6. 筋과 膜과 氣
'역근‘공부를 통하여 근육을 단련할 때는 반드시 膜을 단련해야 한다. 그리고’막‘을 단련함에는 반드시’기‘의 체계를 바로 세우고 강화시켜야 한다. ’근‘이라 하면’뼈‘만을 생각하면 안 된다. ’筋‘의 무게는 몸무게의 반을 차지한다. 피부, 눈, 심장에도 筋이 있어 각 그릇의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근‘과 함께’막‘은 뼈와 살과 그릇 등과 함께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역근‘은 근육운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氣에 대한 공부요, 膜에 대한 공부이다. 그러기에 육체를 단련한다는 일이 곧 마음을 밝히는 공부와 연관을 맺게 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역근‘공부를 힘 기르는’극양공(極陽功)‘으로 쓴다면 몸의 因果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근‘을 단련하긴 쉬우나,’막‘을 단련하기 어렵고,’막‘을 단련하기 어렵다고 하나’氣‘를 연마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라 한다. 그래서 수련할 때 먼저, 가장 어렵고 가장 부족한 곳부터 정하여 바로잡고 뿌리박게 한 후, 완전한 인격체를 향하여 참된 방법을 순서에 따라 펼쳐가야 한다.
수련의 중심이 되고 첫 방도가 되는 것이 바로 ‘氣’에 대한 것이라고, 정렴 선생은 이를 두고 한마디면 족하다 하시면서, 그 방법을 폐기(閉氣)라 하였다 (용호비결 참조).
수련의 先後를 말한다면 이렇다. "먼저 숨에 대한 매커니즘을 바르게 하고, 그 연후에 사람의 '中'이 되는 下丹을 중심으로 세우라. 그 연후에 膜과 血과 그릇과 뼈의 매커니즘을 바르게 하라. 그러면 조화로운 인격체로 자리할 것이며, 사람 안에 천지가 하나될 것이다(‘九宮圖’ 참조)."
수련의 진도를 제한하여 ‘氣’와 ‘膜’과 ‘筋’의 단련에 주목해 보자.
‘氣’수련을 통하여 ‘氣’라는 매커니즘의 체계를 잡으면 (이를 ‘執’이라 함) 심신의 체계가 서로 이어지게 되고, 그 체계를 놓치게 되면(이를 ‘放’이라 함) 몸의 체계가 끊어지게 된다. ‘氣’의 체계와 흐름이 잘 잡히어 맑고 고르게 창달하면 능히 막을 관통하여 온 몸에 고루 통하게 되고, ‘근’에도 보내지는 것이다. 즉 ‘기운’이 이르게 되면 ‘막’은 일어나고, ‘기운’이 가게 되면 ‘막’은 팽창하게 되니, 능히 ‘막’과 ‘근’은 고루 굳세고 단단해진다. 왜냐하면 ‘근’은 ‘막’과 함께 몸 둘레에 분포되어 ‘기혈(氣血)’을 회전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만일 근만 단련하고 막을 단련하지 않으면 막이 主가 되지 못하여 從에 따르는 몸이 되고, 막만 단련하고 근 단련을 하지 않으면 ‘막’은 의지할 바가 없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과 막만을 단련하고 ‘기’ 수련을 하지 않으면 근과 막 사이가 뭉쳐져 움직임이 어려워지고, 氣만 수련하고 ‘근, 막’을 단련하지 않으면 氣는 위축되고, 氣가 위축되면 각 경맥(經脈)이 막히거나 단절되게 된다.
수련하는데 있어 ‘근’이 일어난 후에 힘을 다하여 모든 몸의 ‘막’이 일어나게 하여 ‘근’과 더불어 고루 견고하게 될 수 있어야 비로소 합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근’이 비록 견고하다 하여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비유하면 식물을 흙 없이 기르는 것과 같으니 어찌 온전한 수행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역근은 ‘막을 단련함으로써 先이 되게 하고, 근과 막을 단련함에는’氣‘를 수련함으로써 主가 되게 하라” 고 한다.
‘膜’이라 하면, 지막(脂膜)도 있고, 근막(筋膜)도 있고, 횡경막도 있고, 중막(中膜)도 있다. 역근을 말한다면 지막이 아닌 근막으로, 근막은 뼈의 바깥을 싸고 있는 것이며, 筋은 힘줄로써 사지백해(四肢百骸)를 연락하며, 근막은 해(骸)와 골(骨)을 싸 붙이고 있다. ‘근막’은 대개 살 안과 뼈밖에 있으며 뼈와 살을 감싸는 물체이다.
氣 수련을 말한다면 관계되는 막이 ‘중막(中膜)’으로, 이는 '中' 곧 '下丹'을 싸고 있는 膜을 말한다. 膜을 단련하면 자신의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膜은 우리 몸 안에서 막고 통하는 작용을 하는데, 通해야 수련의 길이 되고, 막히면 죽음의 길이 된다.
수련의 초심자가 역근을 무리하게 하면 쉽게 피곤해지고 졸음이 몰려오거나, 허열(虛熱)이 올라 뒷목이 뻐근해지기도 한다. 이는 ‘역근’을 하는 자세에서 비롯한 문제이기도 하고, 힘이 가는데 기혈의 흐름이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일반적인 현상에 속하기도 한다.
7. 단련해야 할 수련내용
몸의 움직임이 마디를 이루거나, 아니면 그 움직임이 멈추어 머무를 때에도 역근법은 근과 막과 기를 아울러 단련하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폐기’라든가 ‘중막 단련’은 모든 수련의 主가 된다. 여기에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몸 수련법이 있게 된다.
우리 몸에 들고나거나, 통하고 막히는 작용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사지말단’을 제대로 부릴 수 있어야 한다. 몸을 정동(靜動)간에 틀을 짜서 흐름이 뿌리를 갖추고 참을 이루어 내외로부터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역근 기공’이요, ‘진공(眞功)’의 공부이다.
마법(馬法)을 취하여 역근을 하면, 안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밖에서 오는 어떤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동작을 풀기 전에는 무너지지 않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를 연마하는 공부가 ‘진공’ 수련이요, 안에서 뿌리를 가다듬어 내리는 것이 ‘본공’ 수련이다.
본공이 되는 공부는 몸에 있어서 ‘식(息)’의 공부영역이다. 이는 별도의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역근과 굴신을 위해 필요한 공부 방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1) 단좌법(端坐法)
2) 반탄과 패철돌리기
3) 반장(反掌)과 교장(交掌)
4) 태내세(胎內勢)와 팔굽혀펴기
5) 진퇴(進退) 보법(步法)
6) 백학타사(白鶴打蛇)
7) 등천(騰天)
8) 육합단공(六合丹功)
9) 장틀진공(眞功)
- 서해진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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