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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5절 내 안에 거하라 요약설교
1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8: 8-10, 이사야5:1-7, 겔15:1-6, 렘2:21).
(1)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가 거짓 포도나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열매를 맺는 몹쓸 포도나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2) 그리고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있는 성도들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3)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고, 잘려진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즉,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이 인정하실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신 성도만이 성령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나쁜 포도나무였지만,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참 포도나무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자신에 대해서 자증(自證)하신 말씀(나는 –-이다/ Ἐγώ εἰμι) 이 요한복음에는 여러 번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등)
3.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참 농부이십니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씀대로, 악한 농부인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포도나무가 열매 맺도록 거름 주고, 가지 자르고, 김매주는 일은 하지 않고, 술친구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서로 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한 농부로서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들이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하십니다.
2절.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 본문에서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신약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교회 시대에서도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고, 육신적인 탐욕만을 따라 사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2.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πνευματικοῖς: spiritual men)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σαρκίνοις: men of flesh)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이와 달리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말씀한 <육에 속한 사람>이란 불신자 자연인(ψυχικὸς ἄνθρωπος: natural man)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성도는 <신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갈라디아서 5:19-21절에서 육체의 정욕만을 따라 사는 성도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깨끗케 하시느니라>는 단어(καθαίρω)는 깨끗케 하다, 정화시키다, 가지치기를 하다( cleanse, purify, prun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히브리서 10장 2절에서는 속죄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죄가 정결케 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3. <제해버리신다>는 단어(αἴρω: take away, remove)는 고린도전서 5장 2절에서는 <교회에서 쫓아내라>는 말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제해버리신다고 말씀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로마서 1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가지를 잘라버리시고, 그 대신에 돌감람나무 가지와 같은 이방인들을 그 나무에 접붙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인인 너희도 잘려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교훈했습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성령의 은사를 맛보고 타락한 자들을 새롭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으므로, 구원에 속한 것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6:9)
4.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농부가 잘라버립니다.
그러나, 과실을 많이 맺는 가지는 잘 보관합니다.
이처럼, 유대교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아서, 농부 되시는 하나님이 잘라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성도들은 사랑의 열매를 잘 맺기 때문에, 농부 되신 하나님이 잘 보관하십니다.
오늘날도 성령의 열매 즉 사랑의 열매를 잘 맺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잘 보존하시고, 더욱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악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해버리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도 상주거나 벌을 주시고, 죽은 후에도 영생천국과 영원형벌을 주십니다.
5. 그러면, 어떤 사람이 좋은 열매를 맺습니까?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이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된 성도가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고, 가지 혼자 노력하면, 성령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자가 혼자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예수님을 신랑 삼고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성도라야,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6. 이처럼, 신랑 되신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가 잘 유지되려면, 성령님과 말씀의 통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원 줄기로부터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과 성도들 간에 화목하고,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성도들 간에 불화하고, 막히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의 물줄기 관이 막히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은혜의 물줄기 관이 막히는 것은 불화 때문입니다.
7.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 포도나무는 성질이 예민한 나무입니다.
그래서, 섬세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봄이 오면 묵은 껍질을 벗겨주어야 합니다.
가지치기도 해주어야 합니다.
보르도 액을 발라주어야 합니다.
(2) 포도나무는 가지치기 기술이 아주 필요합니다.
포도나무를 그냥 놔두고, 조금만 게을리 하면, 줄기만 무성하게 자라버립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기는 하지만, 작은 열매만 다닥다닥 열립니다.
이것을 <바라>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품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초보자는 가지가 아까워서 커팅 작업을 잘 못합니다.
전문가는 꼭 잘라주어야 할 곳을 과감하게 잘라줍니다.
그래야, 굵은 열매가 맺힙니다.
이제 노련한 농부가 되면, 맘대로 조정하여, 굵은 포도, 중간 포도, 잔 포도를 적절히 마음대로 맺게 합니다.
(3)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문가이시기 때문에, 성도들을 다루실 때도 그렇게 하십니다.
보통 초신자들은 커팅을 작게 하셔서, 작은 열매들을 많이 맺게 하십니다.
좀 중간 위치에 가면, 좀 더 묵직한 커팅을 하십니다.
아주 큰 일꾼들에게는 큰 커팅을 하십니다.
(4)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5-11절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한다고 했습니다.
(5)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교회에서 은혜만 받고, 불신자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전도의 열매를 잘 맺습니다.
그런데, 진지하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새벽예배에 나가기 때문에, 텔레비전 보는 것과 밤늦게 자는 것, 취미생활, 계모임 등을 거의 다 정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의 중직을 맡아서 교회 일을 많이 하다보면, 집안 일 하기도 바쁘고, 도무지 세상 친구들 만날 시간이 없어서, 전도의 열매를 잘 맺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날 어르신들이, 교회 중직자가 되면, 오히려 세상 모임에 들어가서, 인간관계를 해야, 굵직한 전도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3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을 깨끗케 하십니다.
(1) 이 때, 제자들은 3년간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서,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 능력의 역사를 합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63. 주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로마서 1:16.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 <머무르다>는 단어(μένω)는 <머무르다, 거주하다, 살다, 기다리다>(to stay, abide, remain, live, await) 등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개역성경에는 <거하다>로 새번역성경에는 <머무르다>로 현대인의 성경에는 <살다>로 번역했습니다.
2. <과실>이란 단어(καρπός)는 일반적으로 식물의 열매를 가리키고, 비유적으로는 행동의 결과를 가리키며, 이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fruit, generally vegetable, sometimes animal/ met: fruit, deed, action/ result, profit, gain)
본절에서 ‘과실’이란 도덕적인 선한 결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열매가 사람(가지) 스스로 맺을 수 없고, 예수님(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열매는 인간적인 수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로써 양심이 정결하게 되고, 성령님이 맺게 해주시는 성령의 열매로써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1) <거한다>는 것은 이미 있는 은혜의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자녀 삼으신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원래 둘 다 명령형으로서, <내 안에 거하라. 그리고,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입니다.
즉, 성도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늘 모시고, 예수님과 생명적 관계를 가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일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됩니다.
우리가 착하게 산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모셔 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9.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래서, 성령님께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라고 권고하시는데, 내가 자꾸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성령님께서 근심하십니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4.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계의 법칙을 통해서, 심오한 신앙적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 너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예수님에게서 성령님의 생명과 은혜들을 공급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성도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의 은혜들을 공급받지 않으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님의 은혜들을 공급 받고 살면, 성령의 열매, 사랑의 열매, 빛과 소금된 삶, 예수님의 증인된 삶, 예수님의 향기 날리는 생활, 예수님의 편지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성령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 화평의 열매, 봉사와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1. <나는 포도나무요>란 말씀(ἐγώ εἰμι)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독특한 입니다.
2.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란 표현은 아가서에 많이 나오는 표현으로서,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아가 2: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아가서 6:3 등)
이것을 한문으로 <일체>(一體)라고도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삼위일체이시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예수님과 내가 일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고 살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신랑, 성도는 신부가 되어서, 예수님과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살면,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 의의 열매, 봉사의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는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들을 맺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3. 과실을 많이 맺나니
<과실>이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성령의 열매>라고 할 수 있지만, 문맥으로 보아서는 <기도의 응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나 이 두 가지(성령의 열매, 기도의 응답)는 모두 주님과 성도가 하나가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7절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란 말씀만이 아니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단서가 첨가되어서, 성령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이 첨가되면, 기도 응답이라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무리 성도라도 예수님을 떠나서 나 홀로 살아가면, 사랑이나 봉사나 생명을 살리는 일이나, 용서와 섬김이나, 기도의 응답 등,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죄악 된 생활을 하고, 마귀의 종노릇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예수님과 한 마음 한 몸을 이루고 살면,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서, 생명을 살리고, 사랑하고 섬기며, 용서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하나 되어, 날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고, 사랑하고 봉사하며, 용서하고 평화를 이룩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