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nXpuHHsEw?si=Tt-dfzS5u7bvqXT3
어떤 사람이 완전히 해탈한 사람인지, 아라한인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다.
이미 해탈하여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다.
세상에 아라한, 열반에 도달한 존재들은 적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은 의미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가 자신의 수행 정도, 깨달음의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자가 체크리스트' 기준을 설정해 주셨다.
10가지 족쇄를 기준으로 한 도과의 성취.
수행을 진심으로 전념하여 간절하게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다.
조급증과는 다른 급함이다.
도둑놈 심보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겠다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빨리,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수행의 인을 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열매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간절함이 원기를 찾아가게 하고, 스승에게 오체투지 하며, 스승에게 온전히 귀의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버리고, 스승에게 의지할 때, 스승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으로 스승님을 존경합니다'라고 말로만 찬탄하고, 귀의한다고 하면서 몸으로는 공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신구의 삼업으로 스승에게 예를 다하고, 간절하게 매달리고, 합일된 존경의 찬탄과 귀의가 자신에게 수행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볼 때는 봄만이 있고, 들을 때는 들음만이 있다.
냄새를 맡을 때, 맛을 볼 때, 만질 때는 단지 냄새를 맡음, 맛을 봄, 만짐만 있다.
인식할 때는 오직 인식만 있다."
감각을 경험하는 여섯 기관 중 어떤 것이라도 접촉이 일어날 때
어떤 평가도, 조건화된 지각도 없어야 됩니다.
일단 지각이 경험을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오래된 맹목적 반응들 때문에 세상을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모든 조건화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려면,
과거의 반응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을 멈추는 법과
평가와 반응을 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가오는 경험이 있으면 그 경험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먹는 것은 먹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전념하게 된다.
걷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고, 호흡하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평가와 반응을 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법이다.
오직 볼뿐.
수행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 목적, 완전한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다.
완전한 해탈이란 고통, 번뇌의 불이 완전히 뿌리 뽑히고, 꺼져버린 니르바나 상태를 말한다.
다시 고통이 일어날 일이 없어진 상태이다.
불씨는 무서운 것이다.
불씨가 남아 있다면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다.
이 불씨가 꺼질 때까지 수행을 해야 하고, 간절하게 해야 한다.
주어진 경험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수행의 핵심에 해당하는 요결이다.
볼 때는 보고, 들을 때는 듣고, 맛을 볼 때는 맛만 보는 것.
전념하는 삶, 몰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마음의 기술을 익히는 수행을 이어나가야 한다.
첫댓글 주어진 경험에 전념한다는게 그리 쉽지 않아서
제 자신이 진심인가 거짓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이렇게 매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법우님~ 감사합니다_()_
"볼 때는 봄만이 있고, 들을 때는 들음만이 있다.
냄새를 맡을 때, 맛을 볼 때, 만질 때는 단지 냄새를 맡음, 맛을 봄, 만짐만 있다.
인식할 때는 오직 인식만 있다."
요부분에서 아하하고
자각이 일어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