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95)
《가면무도회의 정열, 그리고 생의 애환: 탱고의 명곡, '라 쿰파르시타'》
1916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한 서늘한 방에서 한 대학생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건축학을 전공하던 청년 헤라르도 마토스 로드리게스
(Gerardo Matos Rodríguez)는 이듬해 열릴 동아리 축제의 가장행렬을 떠올리며 작은 행진곡 하나를 구상하고 있었다.
곡의 이름은 ‘라 쿰파르사(La Cumparsa, 가면무도회 가장행렬)’에 귀여운 축소 접미사를 붙인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 즉 ‘작은 가면무도회 가장행렬’이었다.
자신의 음악에 자신이 없었던 이 수줍은 청년은 친구를 통해 당대 탱고계의 거장인 로베르토 피르포(Roberto Firpo)에게 악보를 전달했다. 피르포는 4/4박자의 정통 라플라타 탱고 리듬을 더하고, 오페라 '아이다'의 대행진곡 풍 테마를 은연중에 녹여내어 곡을 완성시켰다.
1917년 4월 19일, 몬테비데오의 작은 카페 ‘라 지랄다’에서 첫 울림을 시작한 이 곡은 순식간에 남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한 청년의 소박한 시상이 인류 보편의 정열로 승화하는 순간
이었다.
이후 파스쿠알 콘투르시가 "Si supieras, que en mi alma..."(네가 알았더라면, 내 영혼 속에 여전히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음을...)로 시작하는 애절한 가사를 붙이고,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이 곡은 명실상부한 탱고의 대명사이자 우루과이의 '문화 애국가'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음악을 들으면 특별히 설명을 듣지 않아도 ‘탱고’라는 단어를 떠올리리게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음악 한 곡이 장르의 얼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라 쿰파르시타'가 가진 음악적 매력은 단순한 화려함에 있지 않다. 곡의 도입부를 강타하는 ‘단- 따- 단- 따-’로 시작되는,
'하나하나의 음을 또렷하고 분명하게 강조하여 연주하라’는 뜻의 강렬한
악상 마르칸도(Marcando) 리듬은 듣는 이의 심장 박동을 단숨에 억죄어 온다.
도입부의 비장한 긴장감으로 부터, 이어지는 중반부에서는 바이올린과 반도네온의 상처 입은 선율이 가슴속 깊은 그리움과 슬픔을 쓸어내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마침내 강렬한 마침표를 찍는다.
라 쿰파르시타의 정서를 완성하는 것은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다. 흔히 아코디언과 혼동되지만, 엄연히 계보가 다른 악기다. 반도네온은 19세기 독일의 악기 제작자 하인리히 반트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본래는 교회와 민속 음악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유럽 이민자들의 이주를 통해 들어온 반도네온은 원래의 용도를 완전히 벗어나 탱고라는 새로운 장르의 핵심 악기로 자리 잡는다. 늘어지고 조여드는 특유의 음색은 이민자들의 향수와 항구 도시 특유의 고독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고, 이는 라 쿰파르시타를 비롯한 탱고 명곡들의 정서적 토대가 되었다.
바람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소리를 내며, 그 소리는 마치 고단한 삶의 굴레 속에서 인간이 내뱉는 마지막 한숨이나 탄식과도 닮아 있다는 평을 받으며, 삶의 슬픔을 무도회의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탱고 특유의 '페소스(Pesos, 애환)'를 완성한다.
19세기 말, 고향을 떠나 낯선 남미의 항구 도시에 모여들었던 가난한 이민자들, 그들이 밤마다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추었던 춤이 바로 탱고였다. 그렇기에 '라 쿰파르시타'의 격정적인 리듬은 슬픔에 굴복하는 눈물이 아니라, '슬픔마저도 당당한 춤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방랑자들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생의 의지인 것 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라 쿰파르시타'라는 제목은 깊은 비유를 담고 있다. 축제의 가장행렬과 가면무도회는 화려하다. 그러나 가면을 쓴 무용수들이 정열적으로 발을 맞추는 그 시간에도, 가면 안쪽의 눈동자는 고독과 이별의 상처로 젖어 있을지 모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저마다의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웃고 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말 못 할 외로움과 애환을 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곡은 깊은 공감의 울림을 전하고 있다.
탱고의 발상지를 둘러싼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경쟁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라 쿰파르시타는 이 신경전의 한복판에 놓인 곡이다. 작곡가 마토스 로드리게스가 우루과이인이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 곡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데는 아르헨티나 탱고 악단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루과이 의회는 1998년, 라 쿰파르시타를 자국의 "문화적·대중적 찬가(himno cultural y popular)"로 공식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카니발을 위한 소품으로 태어난 곡이 한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지위에까지 오른 셈이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포함된 탱고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라 쿰파르시타'의 음악을 들으면서,
춤출 수 있지만 동시에 슬프다.
힘차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단순한 듯하지만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같은 '라 쿰파르시타'라도 어떤 오케스트라가, 어떤 악기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심지어 동양악기인 해금으로 필자의 아릿다운 여사부가 연주하는 것을 들을 때, 그 감흥 역시 새로 왔다.
탱고라는 음악 자체가 그렇다. 몸은 서로 가까워지고 발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음악의 정서는 오히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열정과 체념이 한 곡 안에서 서로 마주 본다.
탱고의 음악에는 묘한 쓸쓸함이 있다. 그러나 그 쓸쓸함은 절망의 쓸쓸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온 세월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한 걸음 내딛는 사람의 쓸쓸함이다.
'라 쿰파르시타'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이 음악을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서 너무 작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마디의 말, 한 번의 만남, 어느 날 우연히 읽었던 한 줄의 시어(詩語)가 오랜 세월 뒤에는 내 삶을 설명해주는 하나의 문장이 되기도 한다.
'라 쿰파르시타'가 그렇다.
작은 행렬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세계의 거대한 음악 행렬의 맨 앞줄에 섰다.
그러니 우리도 소망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두고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꾸준히 지속적으로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 가기를 갈구해 본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괜찮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반도네온의 깊은 숨결 사이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삶이라는 무대를 당당히 건너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지나온 시간들이 평소 흥얼거리는 필자의 18번 애창곡인, 위키리의 '미련도 후회도 없다'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와 슬며시 미소짓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첫댓글 La Cumparsita - Singapore Broadway Harmonica Ensemble
https://youtube.com/watch?v=St5URPvir3U&si=zeK1uQcHo0nLVOEB
PLAY
[뮤직필드] 라쿰파르시타 - 이미경-하모니카
https://youtube.com/watch?v=ZSd9grFOsGE&si=wRQYmzFTStAFNaSA
PLAY
미련도후회도없다 - 위키리(이한필)
https://youtube.com/watch?v=g3YExXcCzbc&si=k8MpcLgr137jcF-2
PLAY
La Cumparsita 라 쿰파르시타 / 트레몰로하모니카 전설
https://youtube.com/watch?v=j5UReVr6gks&si=gC_3NiUezvyQ0ExZ
PLAY
https://youtu.be/kdhTodxH7Gw?si=GWXZv-qGlif-6hfl
PLAY
#하이쿠
《탱고》
칼바람이네
굶주린 야수들의
눈빛 가득한
욕망과 번뇌
구르는 발아래로
짓밟고 선 채
꺽여진 허리
스치는 옷소매에
삶이 불타오
생사의 불빛
넘나드는 비장감
바닥을 찬다
붉은 옷자락
죽음도 불사할 듯
뿜어낸 열기
달빛 흐느낌
가식일랑 벗고서
본능의 물결
사막의 여우
올어대는 음률엔
모랫바람도
내일은 없다
오늘 지금 이순간
핏빛 절정감
오늘밤 그대
죽으면 죽으리다
온몸 던져서
한 줄기 눈물
별빛으로 산화된
성자의 몸짓
La cumparsita tango Roby DI Nunno e Olga Landi
https://youtube.com/watch?v=k2jHkNIVBMo&si=8p0Qwc2KJgrRhHrr
PLAY
열심히 준비해서 연주로 발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