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는것''을 찾으면 잠재의식이 깨어난다.
좋은 글
희노애락의 향연(饗宴)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 작가: 崔 長 洙
사람들은 출세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부러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고,
경쟁에서 낙오된 것을 창피하게 여긴다.
열등의식에 빠지고,
실의에 차서 자학하기도 한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규탄하고
개혁을 부르짖기도 한다.
그러나 경쟁이 없는 평등한 사회는
인류역사에서 일찍이 있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올 것 같지가 않다.
사회의 구조와 사람들의
개별적인 능력의 차이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위적인 평등보다는
능력에 따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진정한 평등일지도 모른다.
학의 긴 다리를 잘라서
오리 다리에 잇는다고
평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를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다.
키가 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작은 나무도 있다.
같은 조건 아래서 피는 꽃이지만
노란 꽃이 있고, 빨간 꽃이 있다.
똑같은 물이 모여 이루어졌는데도,
바다와 호수와 웅덩이는 다르다.
천년을 산다는 학도 있고,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도 있다.
하늘을 나는 새도 있고,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도 있다.
거대한 바위가 있는가 하면
고운 모래도 있다.
이 모든 존재들이
모두 제 위치를 지키고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에
자연은 존재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하는 일이 다르고,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종류의 존재들이
한 가지 형태로 통일되어 있다면
세상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하여
재미가 없을 것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사회가 존속하는 것이다.
좋은 자리가 있으면
그늘진 자리도 있게 마련이다.
한 조직에서 우두머리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모두 우두머리만을 고집한다면
갈등만 생길 뿐이다.
회사는 사장 혼자서 경영하는 것이 아니다.
각 부서원들이
제 몫을 다함으로써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사장은 며칠 자리를 비워도
일반사원은 모르고 지내지만,
청소를 며칠씩 안 한다면
모든 직원들의 생활이 불편해진다.
청소부의 역할이 사장직
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겉으로 화려하고 거대한 빌딩은
땅 속에서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가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도 있고,
눈이 오는 날도 있다.
폭염도 있고, 혹한도 있다.
기후의 변화와 계절의 순환이
초목을 살리고 농사를 짓게하는 것이다.
어떤 날씨가 좋은 날씨라고
선호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는 모르는 우매한 생각이다.
다 좋은 날씨이고,
다 필요한 날씨다.
몸이 아파 장기간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로서 그대로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환자가 없다면 제약회사와
약국과 병원은 다 문을 닫아야 한다.
약사 의사 간호사 의료기 제조업자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환자들은
아주 중요한 고객이다.
세상에는 환자도 있어야 하고,
의료인도 있어야 한다.
상부상조(相扶相助)가 상생하는 원리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실패한 사람이 있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1등한 사람은 꼴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꼴찌가 없으면 1등도 없다.
따라서 실패를 하고,
꼴찌를 했더라도 당당해야 한다.
내가 그들을 있게 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승자라 해서 오만해도 안 되고,
패자라 해서 비굴해 할 이유도 없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사회에서의 역할분담이 그랬을 뿐이다.
그것은 본디 하나에서
갈라져 나온 둘이였던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일에 긍지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때 평등한 사회가 된다.
한편의 연극이 만들어지려면
많은 사람들의 공동 노력이 있어야 한다.
주연배우만으로 연극을 진행할 수는 없다.
조연들이 받쳐주어야 한다.
잠깐만 스쳐가는 단역도 있고,
욕먹는 악역을 맡는 배우도 있다.
무대에 나오지도 않는
스태프들도 있는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 몸이 되어
각자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낼 때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는 자랑할 역도
부끄러워할 역도 없다.
다 중요한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면 화려한 의상도 누추한 옷도 다 벗어 버리고 무대를 떠난다.
모두가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의 사회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성직자가 있는가 하면,
무뢰한도 있고 범죄자도 있다.
범죄자가 있어 경찰이 있고,
검찰과 법원이 있고 교도소가 있는 것이다.
시민이 모두 선량해서 죄짓는 사람이 없다면,
변호사는 무엇을 하고,
교도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에게는 범법자가 절대로
필요한 고객이다.
만약 어떤 간 큰 범죄자가 있어,
재판관 앞에서 당신들은 우리 같은
사람이 있어 대우받고 살고 있으니,
고마워하라고 한다면
대답이 난처해 질 것이다.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은 없다.
약초도 있고, 독초도 있다.
독초도 잘 쓰면 약초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식물의 세계다.
싸우는 사람도 있고,
그 싸움을 말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맡은 역이 다를 뿐이지 악인과 선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할 수가 없다.
모든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삶이란 게임과 같다.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어 재미있는 것이다.
어느 편에 서느냐는 하는 것은
다분히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악역을 맡아
고생한 사람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부러워할 것도 부끄러워할 일도 없다.
출세하여 부러움을 사던 사람이
부정을 행하다가 진창으로
추락하는 것을 곧잘 본다.
권세 있는 자리에서 거들먹거리다가
물질의 유혹에 빠져 망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교도소 안에는 머리 좋은 사람이
그 머리를 잘못 굴려 사기꾼이 된,
머리 나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경쟁에 졌기 때문에 마음 편하고
깨끗하게 무명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노자는
‘아름다움이 널리 긍정될 때
바로 거기에 추함이 있고,
착함이 널리 긍정될 때
바로 거기에 착하지 않음이 있다.
(도덕경 제2장)’고 했다.
아름다움과 추함,
착함과 착하지 않음은 상관적
대립의 차이인 것이다.
출세하는 것과 출세하지 못한 것의 차이도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반드시 좋은 것도 없고,
반드시 나쁜 것도 없다.
어떻게 살았든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다하면,
가졌던 것 다 놓고 떠나야 한다.
다 승자고, 다 패자다.
모두가 주머니도 없는 수의 한 장
얻어 입고 가는 것이다.
삶이란 연극이 끝났을 때 배우들이
퇴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배우들이 떠나고 나면 무대는 텅 빈다.
모든 것은 공(空)으로 돌아간다.
연극의 모든 장면들은 환(幻)이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다음 연극이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부러워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할 것인가.
모든 삶이 다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