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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민수기 18장 20-23절「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것은 율법 안에서 내라고 말한 것이며, 하나님이 받으신 것 가운데 레위지파는 특별히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되고 성막에 관한 일들을 해야만 하니까 하나님이 받은 것 중에서 일부를 주는 것이다. 레위지파에게 주기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받은 것 중에서 일부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율법에 있는 모든 행사가 장차 오는 그림자다. 제사도 십일조도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인간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그림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이『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과거시제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주 작은 소득이 있는 것을 정성스럽게 십일조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참 좋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십일조를 드렸는데, 정작 율법에서 정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에 의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잘 한 일인데, 율법 속에 담겨진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다.
율법은 행하면서 율법이 나타내고자 하는 좋은 일을 봐야하는데, 율법이 말해주는 장차 오는 좋은 일은 버렸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버렸으니까 이제 앞으로는 율법도 잘 지키고,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아라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켰으나 의와 인과 신은 버렸는데, 결국 십일조를 낼 때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았어야 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앞으로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민수기 18장 24절「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거제란 단순히 제사 방법으로서의 거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레위인들에게 돌려지는 모든 몫을 대표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몫의 대부분은 바로 거제로 드려지는 예물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아론과 그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에게도 생계 보장을 위한 땅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는 달리 별도로 주어지지 아니하였다. 대신 그들에게는 여호와가 그들의 분깃이었다. 즉 여호와의 일에 전념함으로써 여호와께로부터 받는 몫이 그들의 분깃이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레위인들에게는 달리 땅을 분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레위기 27장 30절에 하나님이 땅의 십분의 일을 내라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 과실을 생산했는데,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한다. 해를 주고 비를 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자연의 혜택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갖는 혜택이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들은 나그네』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도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소작료를 내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작료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하나님이 그 과일과 양식을 먹기 위해서 소작료를 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이유는 백성들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나그네』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이다. 즉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이다.
민수기 18장 25-32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십일조의 십일조”에 대해서,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의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다시 떼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비록 성막봉사에 임하고 있지만, 다른 이스라엘 지파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백성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한편 레위인들이 낸 십일조는 제사장들의 분깃으로 돌아갔다.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일반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바칠 때 그 십일조를, 일반 농부들이 밭에서 거둔 소산의 십일조를 내는 것과 동일한 가치로 보신다는 뜻이다. 이는 레위인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아름다운 것(헬레보)은 문자적으로는 그것의 지방질이란 뜻이다. 이것은 종종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가장 기름진 것을 상징했다. 레위인들이 일반 백성에게서 받은 십일조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치라는 것이다.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일반 농부들이 경작물 중 십일조를 제외한 나머지 십분의 구를 임의로 사용했던 것처럼, 레위인들 역시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제외한 나머지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타작 마당의 소출은 보리, 밀, 등 곡물류를, 포도즙 틀의 소출은 포도, 올리브 등 과실류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모든 논과 밭의 작물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분의 일을 내지 않으면, 그것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욕되게 하는 것일 뿐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 하는 것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에 해당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질 십일조, 곧 성물은 죄에 오염된 물질로 전락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헌상되어야만 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생각하는 십일조와 헌금)
십일조는 율법에 근거해서 소득의 십분의 일을 의무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이해되고, 헌금은 교회의 운영을 위해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회비 명목으로 일정한 금액을 내므로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정해진 금액이 아니라 자신의 수준에 맞게 헌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전히 신약에 와서 십일조라는 말이 맞느냐 틀린 것인가 라는 논쟁이 있어왔다. 올바르게 알고 행해야만 될 것이다.
십일조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반드시 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이것을 잘 내면 하나님이 더 큰 복으로 갚아준다』라고 한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십일조는 구약에서 정한 율법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깊히있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십일조는 율법에서 정해져서 내야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으므로 현대에 사는 우리도 십분의 일을 내야한다』라고 십일조의 기원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야곱이 자기 형 에서의 손길을 피해서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돌 베게를 베고 자다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깨어나서『하나님이 여기 계신데 알지못했다』
라고 하면서 서원 기도를 하는데, 내가 아무 일 없이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나님이 해 주시면, 하나님께 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그렇게 서원을 했다. 그래서 율법 이전에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으므로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라고 말하는 교회들도 있다.
또 레위지파는 기업을 받지 않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께 바친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지파에게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이것을 근거로 해서 십일조를 내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오늘날 목사들이 레위지파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라는 설명이다.『십일조를 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목사들은 레위지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께 바친 것으로 생활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십일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특별히 목사만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성경에서는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이라든가 야곱의 서원이라든가, 레위지파의 경우에 있어서 십일조에 대한 말은 구약에서 레위지파가 기업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와 관련하여, 오늘날 십일조를 어떻게 바쳐라 라고 하나님이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것은 율법 안에서 내라고 말한 것이며, 하나님이 받으신 것 가운데 레위지파는 특별히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되고 성막에 관한 일들을 해야만 하니까 하나님이 받은 것 중에서 일부를 주는 것이다. 레위지파에게 주기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받은 것 중에서 일부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에 의한 십일조 외에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십일조를 낸 것은 스스로 서원해서 낸 것인데,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명령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낸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율법에 의한 십일조는『하나님이 이렇게 잘 내면 보상을 해 주겠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 뜻을 알지 못하면 안된다. 신약시대에는『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가 되었기 때문에 안 내는 것이다.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했다.
율법에 있는 모든 행사가 장차 오는 그림자 라는 것이다. 제사도 십일조도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인간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는 2000여년 전에 오신 좋은 일인 것이다.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내는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재산이지만, 엄밀히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로 온 것이다.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헌금을 많이 모으기 위해 율법에 정해진 십일조라는 용어를 이용하는 것은 십일조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신도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될지 몰라도, 율법 속의 십일조의 의미를 깨닫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옮으로 오히려 신도들에게 이러한 의미를 깨닫게 하고, 헌금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수님이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하시는 속에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미를 깨달았으면서도, 십일조를 여전히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여전히 나그네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을 믿지 않고,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자들인 셈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닌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육신적으로는 이 땅에 있는 자이지만 나그네가 아니요, 하나님 나라에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모여진 헌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도 중요하다. 교회 헌금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된다면, 큰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목사나 선교사들이나 일부 지도자들의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 가치가 훼손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