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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암면 성기리 → 능가사 → 제1봉~7봉 → 정상(8봉) → 능선 안부 → 능가사 → 성기리' 9km, 5시간 코스의 다도해 조망 산행을 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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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八影山]
높이: 609m
위치: 전남 고흥군 점암면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팔영산은 1봉에서 8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종주 산행의 묘미가 각별하며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되는 등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절경이 일품이다.
팔영산에는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를 비롯하여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많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인기 명산[86위]
아기자기한 암릉 산행지로 3~4월의 이른 봄 봄맞이 산행지로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으며 조망이 좋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9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가 있음. 신선대, 강산폭포 및 자연휴양림이 있음. 정상에서 대마도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이 좋다. - 한국의 산하
3월 2일 팔영산을 오를 예정이었지만, 산악회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남해 금산으로 변경했었다. 그렇다고 팔영산 등산 목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 금산을 다녀온 후 각 산악회 동정을 확인해 봤다. 그중 한 산악회에서 3월 9일 팔영산을 간다고 해 예약 현황을 보니 성원은 넘은 상태였다. 최소한 성원 미달로 취소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개인적 사정으로 그날 시간을 낼 수 있을까였다. 해서 몇 친구가 토에 어느 산에 갈 거냐는 질문을 했지만, 명확히 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산악회 버스 좌석이 줄어가는 것을 초조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목요일 저녁 개인적인 일을 일단 봉합하고 - 해결이 아님 - 바로 산악회에 입금하고 자리를 예약했다. 이번 토는 여기저기 그룹별로 움직이는 곳이 많고, 팔영산행이 계획이 너무 늦어 오랜만에 단독 산행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서울 사당 기준 왕복 9시간이 걸리지만, 산행은 4시간이면 족한 곳이라 적극적으로 같이 가자고 할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오랜만의 단독 산행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간만에 산에서 라면이나 끓일까 생각 중이었다.
이번에 팔영산을 안내하는 산악회의 특징이 버스를 타면 김밥과 생수를 준다는 거다. 해서 굳이 김밥을 사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원래 김밥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등산객의 아침으로 제공하는 것이지만, 나처럼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는 산꾼에게는 점심으로 그만이다. 이 산악회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김밥이 해결되었으니 언제든 들고 가기만 하면 되도록 티타늄 코펠과 티타늄 버너, 110g 이소가스, 라면, 햇반, 라이터 등으로 만들어 놓은 디팩만 배낭에 넣으면 된다. 이번에 라면을 소비하면 다시 라면을 넣어 두면 되고.
내 산행의 신조 산에서 잘 먹으려면 비상용 디팩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활동식과 김치, 마늘종 무침, 라면에 넣기 위한 청양고추와 파, 오렌지 그리고 빨갱이를 236mL 스탠리 플라스크에 - 혼술이라 - 담아 별도의 디팩에 넣었다. 티타늄 소주잔도.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디팩 두 개를 배낭에 넣고 테이블과 선글라스를 챙겼다. 겨울에 들고 다니던 의자는 빼고. 겨울이야 눈 때문에 의자가 있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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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에 맞춰놓은 알람에 기상해 냄비에 누룽지와 물을 부어 누룽지가 불도록 놓아두고 아지트로 이동했다. 생강차 끓일 물이 끓는 동안 옷을 갈아입었다. 날씨가 어떨지 몰라 바람막이 안에 패딩 조끼 입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강차를 물통에 담은 후 배낭 옆 주머니에 넣고 배낭과 모자를 들고 아침으로 누룽지를 끓여 먹으러 갔다. 끓인 누룽지와 달걀부침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45분이다.
6시 45분경 사당역에 도착해 10번 출구로 나가니 다른 때보다 버스가 많았다. 늘 날 기다리던 버스가 있던 장소에는 다른 단체의 버스가 서 있어, 잠깐 당황하기도 했다. 춘삼월 꽃놀이 철을 맞이하여 남도로 놀러 가는 동창회 등의 버스 여러 대가 정차해 있었다. 내가 타야 할 산악회 버스를 찾아 짐칸에 배낭을 넣고 왕복 9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 줄 안드로이드 패드만 들고 버스에 탔다. 그나마 몇 자리 남아 있던 버스의 좌석은 금요일 저녁에 만석이 되어, 빈자리가 없었기에 내 자리를 찾아 앉아야 했다.
7시 정각에 버스는 출발했지만, 평소엔 없던 관광버스로 사당역을 벗어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버스의 좌석은 1/3 정도가 비어 있었다. 늘 그렇듯이 남은 좌석은 양재, 죽전, 신갈에서 탈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잠을 청했다. 사당에서 10분만 가면 되는 양재에서 한번 정차, 그리고 죽전, 마지막으로 신갈에서 정차하고 네 번째 정차하는 곳이 휴게소다. 머릿속으로 이걸 계산하고 있는데 10분이 지난 거 같은데 정차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창밖을 보니 고속도로들 달리고 있었다. 아니, 왜 양재에서 타는 등산객이 하나도 없지?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가는 산이라 딱히 뒤풀이할 일도 없어 바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양재와 사당 어느 쪽이 빠를지 계산하고 있었다. 결과지만, 귀경 시에도 양재에 서지 않았다. 양재에서 내릴 예정이었는데, 탄 사람이 없으니 내릴 사람도 없어 정차하지 않았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이 글을 쓰며 확인해 보니 애당초 이 산행에서 양재는 정차 지역이 아니었다.
죽전과 신갈에서 등산객을 마저 태운 후 버스는 실내등을 끄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깊은 잠에 빠졌고. 다시 실내등이 들어오고 여산 휴게소에 정차한 시각이 9시 15분경이다. 9시 30분에 버스가 휴게소를 출발했는데 도착 예정 시각이 11시 30분이니 앞으로 두 시간을 더 달려야 했다. 패드를 꺼내 읽던 '야간 비행'을 마저 읽은 후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다. 그리고 '아Q정전'에 도전했다. 동양 소설에는 관심이 없어 - 일본 책은 만져 보지도 않았다. 하긴 중국 책도 사대기서 외에는 안 봤구나 - '아Q'를 읽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야간 비행'을 처음 봤다는 것에 놀랐다. 과거에 읽었는데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버스가 구례를 지날 때 창밖으로 보이는 지리산을 감상하며 사진으로 남기고, 앞으로 남은 거리를 확인해 보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켰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두 가지, 하나는 팔영산과 금산은 바로 이웃이라는 거, 둘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는데 팔영산도 한려해상 국립공원 지역이라는 것이다. 한려해상과 붙어 있어 표기상의 오류라고 위안을 하며 계속 책을 봤다. '아Q'를 다 읽고 유튜브로 다큐를 보고 있는데 저 멀리 8개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솔자가 지도를 나눠주며 팔영산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유감이지만 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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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 시각 11시 30분보다 15분 빠른 11시 15분에 들머리인 팔영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인솔자는 예정대로 5시에 같은 장소에서 서울을 향해 출발하니 시간을 지켜달라고 했다. 그런데 산악회의 등반 계획에 보면 서울을 향한 출발 시각은 명확히 나와 있지 않았다. 몇 개의 산악회를 따라 산을 다녀본 결과 산악회 또는 인솔자에 따라 종료 시각이 애초 계획과는 달랐는데, 이 산악회와 인솔자는 계획대로 움직여 합리적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5시간 45분 거리는 9km 정도! 시간당 2km로 간다고 해도 4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서자 창으로 이미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버스 다섯 대가 주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 고흥을 가면 유자 막걸리를 마셔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4시까지는 주차장에 도착해야 한다. 물론 10분 만에 한 병을 마실 수도 있지만, 폼 나게 마시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버스까지 총 6대의 버스 중 최소한 50% 이상은 까만 소 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주 피곤해지는데…. 그럼 달려서 모두를 추월하는 게 답이다. 해서 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패딩 조끼를 벗어 좌석 앞주머니에 넣고 등산화를 단단히 매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주차한 버스 짐칸에서 배낭을 들고 나와 카메라와 선글라스를 꺼낸 후 그것을 메고 산행을 시작했다. 그 시각이 11시 17분이다. 나보다 앞서 출발한 팀은 친구로 보이는 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팀과 여성 단독, 그리고 중년의 남성 한 명이다. 3분 정도 걸어가니 능가사 천왕문이 나타났다. 처음 산행 코스를 보고 능가사가 있어 입장료를 받겠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일단 그게 마음에 들었다. 능가사 구경은 하산 시 시간이 나면 하기로 하고 천왕문 앞을 지나 산을 향해 갔다. 3분 정도 더 가자 전깃줄 사이로 8개의 봉우리가 보였다. 팔영산이다.
팔영산 야영장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11시 52분경 흔들바위에 도착했다. 내가 지금까지 산에 다니며 소위 흔들바위라고 이름 붙여진 많은 바위를 흔들어 봤지만, 유일하게 흔들리는 것은 울산바위 흔들바위밖에 없었다. 몇 년 전 두륜산, 지난주 금산, 이번의 팔영산 다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수십 배 큰 거인이 흔들었더니 흔들렸다면 할 말이 없고. 물론 한참 흔들다 보면 내가 흔들려 바위가 흔들리는 거처럼 보일 수는 있을 거다.
12시 15분경 1봉인 유영봉 정상에 올랐다. 인솔자가 말하길 팔영산은 1봉인 유영봉을 1시간 걸려서 힘들게 올라가면 그다음 봉우리부터는 10분 간격으로 아주 쉽다고 했는데 정확했다. 왼쪽으로는 선녀봉이 보이고 그 좌우로 다도해가 보였다. 목적이 있어 달리다 보니 '당진 다음 산악회?'라는 팀의 절반 정도를 추월했는데, 그들이 유영봉 정상석을 장악하고 있었다. 까만 소의 영향인지 몰라도 요즘은 굳이 신도로서 인증이 필요 없는 장소에서도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독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른 등산객이야 기다리든 말든. 여기서 삼각대 꺼내 설치하고 사진 찍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앞서 출발했지만, 내가 추월했던 여성 산꾼이 보여 사진을 부탁했다. 물론 내가 찍어 주기도 하고. 사진을 부탁했을 때 그 여성 산꾼이 말하길 내가 너무 빨리 달려, 쫓아오는데 힘들었다고….
그 여성 산꾼의 사진을 찍어 주고 바로 2봉인 성주봉을 향해 갔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팔영산에서 나란히 서 있는 팔봉외에 선녀봉이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그 봉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 일단 팔봉에 집중하기로 하고 버린 것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을 줄 알았으면 다녀왔을 것이다. 1봉에서 12분이 걸린 12시 27분에 2봉인 성주봉에 도착했지만, 굳이 인증을 찍을 만한 조망이 아니라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다음 봉인 생황봉으로 바로 출발했다. 슬슬 배가 고파왔지만, 일단 정상인 깃대봉을 포함 9개의 봉우리 중앙인 5봉 오로봉을 지나 으슥한 곳에서 라면을 끓이기로 하고 계속 갔다.
능선을 타거나 바위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설치된 계단이나 쇠줄을 잡고 오를수록 왼쪽으로 보이는 선녀봉이 아까워 사진으로만 계속 남겼다. 그리고 12시 34분에 3봉인 생황봉에 도착했다. 마침 두 친구 등산객이 각자 사진을 찍어 주고 둘의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던 차에 내가 도착해 내가 둘의 사진을 찍어 주고 반대급부로 내 사진을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시간이 지나 봉우리를 하나씩 넘어갈수록 등산객의 수는 급감해 여유 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내가 추월한 것도 있지만, 점심시간이라 대부분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나야 단독 산행에 오로봉을 지나 라면을 끓일 생각이라 주변의 경관과 점심 먹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곳에 오붓하게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때 든 생각이 이 산이 의외로 짱박힐 곳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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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40분에 4봉이 사자봉에 도착했지만, 여기도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다음 봉우리로 출발했다. 그리고 1분 만인 12시 41분에 아홉 봉우리의 중앙인 오로봉에 도착했다. 오로봉에서도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바로 두류봉을 향해 내려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1봉에서 5봉까지와는 달리 6봉인 두류봉은 봉우리를 돌아가는 우회로가 있었다. 그리고 오로봉과 두류봉 사이는 너덜을 이루고 있어 너덜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한 사람 정도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으슥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불이 날 염려도 없는. 그게 12시 50분경이다.
배낭에서 디팩 두 개를 꺼낸 후 비상용 디팩에서 버너와 가스, 코펠을 꺼내 버너를 조립하고 코펠에 물을 부어, 라면 물을 끓이는 동안 다른 디팩에서 먹을 것을 꺼내 상을 차렸다. 비상용 코펠과 버너는 무게를 가볍게 하는데 집중한 물건이라 아주 소형으로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해서 라면을 잘 익히기 위해 젓기라도 하려면 코펠을 잡아야 하는데 뜨거워서 맨손으로는 못 잡는다. [산행기] 작년 가을 내장산에서 처음, 이 버너와 코펠 세트를 사용해 라면을 끓이다가 뜨거워 라면을 엎었던 아픈 추억이 있다.
해서 그 이후 늘 들고 다니는 레더맨 멀티툴을 이용해 코펠을 잡고 라면을 젓는다. 라면이 끓어 잘게 썰어 가져간 청양고추와 파를 넣고 조금 더 끓인 후 버너의 불을 끄고 멀티툴을 이용해 코펠을 내려놓고 산악회에서 준 김밥과 내가 가져간 빨갱이 반주로 점심을 먹었다. 난 스탠리 플라스크가 대략 180mL 정도로 소주 반병 정도 들어가는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아 다 마시지는 못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236mL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내가 있었다는 흔적을 말끔히 없앤 후 6봉인 두류봉을 향해 출발한 시각이 1시 15분경이다. 두류봉을 오르는 길은 정상까지 바위에 철심을 박고 그 위에 철봉을 용접한 철책의 형태였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내가 경치 좋은 곳에서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는 동안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 등산객이 줄을 서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 줄을 따라가다간 하산해 막걸리 마시는 걸 포기해야 할 거 같았다. 해서 철봉을 우회해 바위를 타고 올라 대부분을 추월해 두류봉 정상에 올랐다. 그 시각이 1시 39분이다.
두류봉 정상에서도 삼각대 설치하고 할 분위기도 아니고 누구에게 사진 찍어 달라고 할 분위기도 아니라 정상석만 사진으로 남기고 다음 봉인 칠성봉을 향해 바로 출발했다. 통천문을 지나 598m로 팔봉의 최고봉인 칠성봉에 도착한 시각이 1시 51분이다. 마침 칠성봉에는 등산객이 전혀 없어 삼각대를 설치하고 인증을 남겼다. 유감이라면 날이 흐려 조망이 좋지 않다는 거였다.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는데 대마도는 그렇다 쳐도 옆의 금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가까운 섬은 보였지만, 좀 거리가 있는 섬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팔봉 넘어 팔영산의 정상인 깃대봉이 뚜렷이 보였다. 지금까지의 팔봉이 바윗덩어리였다면 멀리에서 보기엔 작은 언덕으로 보였다. 인솔자가 까만 소를 기쁘게 하려는 순례가 아니면 볼 것도 없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이유는 하산하기 위해서는 깃대봉을 갔다가 다시 팔봉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나야 언제 다시 이 산을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에 정상에 들리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정상을 다녀오기로 했다.
칠성봉을 출발해 정규 등산로가 아닌 바위를 타고 다니며 팔봉의 마지막인 적취봉에 도착한 시각이 2시 6분이다. 정규 등산로를 벗어나 바위를 타다가 든 생각이 1봉부터 8봉까지 암벽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상당하리라는 것이다. 버스에서 인솔자의 말에 의하면 과거 안전시설이 없었던 시절에는 무박으로 내려와 팔봉을 올랐다고 했었다. 언제 시간이 되면 등산객이 거의 없는 평일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적취봉에서 혼자 온 등산객의 사진을 찍어 주고 나도 부탁해 인증을 남긴 후 500m 떨어진 팔영산의 정상 깃대봉을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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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봉을 향하는 길목에 팔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었다. 그 전망을 헤치는 전봇대와 전깃줄이 가로질러 유감이었지만, 전경을 보며 높낮이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전경을 사진에 담고 깃대봉을 향하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군의 등산객이 보였다. 다른 봉이 아니라 깃대봉만 참배 장소로 인정한 까만 소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볼 것도 없고 볼품도 없는 깃대봉에는 까만 소를 기쁘게 하겠다는 신도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나도 여기에 왔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제일 뒤에 줄을 섰다. 이단에게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아 삼각대를 조립해 준비하고 있다가 내 차례에 재빨리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그 시각이 2시 26분이다.
다시 적취봉으로 돌아와 탑재를 향해 출발했다. 그 과정에서 잘 다듬어진 낙엽송 숲을 지나 앞서가는 모든 등산객을 추월해 탑재에 도착한 시각이 2시 53분으로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주차장까지는 2.5km가 남았다. 그리고 탑재에서 주차장까지는 임도로 보이는 갈지자의 도로가 있었고 등산로는 그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등산로와 내 상태를 봤을 때 4시 훨씬 전에 주차장에 도착할 것으로 보였다. 등산을 시작하며 보아둔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기는 하겠지만, 혼자 마시는 술을 한 시간 이상 마시기는 쉽지 않아 시간을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오랜만의 단독 산행에 속도를 늦출 생각은 없었다. 해서 등산로가 계곡을 따라 이어진 만큼 이 페이스로 계속 가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오랜만에 아니 올 들어 처음 세족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앞에 보이는 모든 등산객을 추월하며 계곡의 물 상태를 확인해봤지만, 가물어 발을 담글만한 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내려가 3시 16분경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타나고 등산 앱에 의하면 6.5km 지점을 통과한 이후라 남은 거리는 대략 1.5km 정도 되는 위치였다. 하류라 그런지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의 물은 흐르고 있었다. 볼 것도 없이 계곡으로 내려가 다리에서 상류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도 그 모습을 보고 다들 계곡으로 내려왔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발을 계곡물에 담근 후 점심때 다 못 마시고 남긴 빨갱이와 안주로 오렌지를 꺼냈다. 남은 소주를 티타늄 머그잔에 다 부어 오렌지를 안주로 마셨는데 잔으로는 한 잔 반 정도 되어 보였다. 딱 두 잔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속에 아직은 차가운 흐르는 계곡물에 발이 벌겋게 되도록 넣어 두었다. 10분 넘게 발을 얼린 후 발을 닦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계곡을 떠난 시각이 대략 3시 29분쯤이다.
계곡을 나와 500여 미터를 가니 환종주 산행의 원의 시작점이자 끝인 팔봉산 야영장이 나왔다. 이렇게 가까울 거라곤 생각을 못 했다.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주차장에서 야영장까지의 거리였다. 그 거리가 대략 800여 미터가 넘었다. 잘 포장된 800m의 거리는 5분이면 충분히 내려갈 수 있었다. 시간을 조율했다고 했는데도 많이 남는다. 야영장 끝이자 산행의 시작점인 야영장 매점에 도착한 시각이 3시 33분경으로 잠깐 여기서 한잔하고 갈까 하는 유혹이 생기기도 했지만, 산행 시작 시 점 찍어 두었던 식당에서 마시기로 하고 계속 갔다.
그리고 3시 37분에 능가사 부도군에 도착했다. 등산 시에 지나쳤던 부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안내문에 있는 그 역사에 대해 읽은 후 능가사로 들어갔다.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사적비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대웅전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고 올 들어 처음 보는 활짝 핀 동백을 감상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인공물에 방해 받지 않고 팔봉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전경을 사진으로 찍고 사천왕의 면면을 감상하며 산행 시작 시 앞으로 지나쳤던 천왕문으로 나와 식당에 도착한 시각이 3시 56분이다. 오늘 산행의 종료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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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식당에는 등산객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내가 들어간 식당은 두세 자리를 빼고는 만원이었다.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은 몇 사람 없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주차해 있던 버스의 등산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어쨌든 빈 자리 중 한자리에 앉아 주문했다. 유자 막걸리를 마셔보라는 주변의 추천에 따라 유자 동동주 하나와 안주는 배가 부른 상태라 딱히 먹고 싶은 것은 없었지만, 만만해 보이는 파전을 시켰다. 그리고 주문한 술과 안주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자리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자리에 앉아 한잔하던 두 등산객이 정치 얘기로 서로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는데 동동주와 파전이 나왔다. 그런데 그 동동주가 주전자에 담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병입된 것으로 혼자 마시기에는 너무 많았다. 내가 놀라서 주인장에게 이렇게 많았나요? 하고 물으니 그럼 막걸리를 마시라고 해 동동주를 반납하고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막걸리는 유자가 아니라 흑마늘이었다. 이런 경우에 동행이 아쉽다.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유자를 마셨을 텐데.
흑마늘 막걸리를 마시며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논쟁을 - 논쟁이라고 하기엔 근거도 없고, 있는 근거는 인터넷에서 본 거 같다가 다인 - 계속 들었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우리 애국시민의 무 근거, 무지에 가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막걸리가 한잔 들어가니 두 사람의 논쟁을 보는 재미가 웬만한 영화나 소설보다 재미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논쟁에 흥분되기보다 더 침착해지며 분석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술이 이런 긍정적인 효과도 있구나 하고 스스로 놀랐다. 물론 그 장면을 우리 방에 중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4시 31분경 안주는 반이 넘게 남았고 막걸리는 떨어졌지만, 배가 불러 술이든 안주든 먹을 상황이 아니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계산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에는 다른 버스는 다 떠났고 '당진 다음 산악회'와 우리가 타고 온 버스 두 대만 남아 있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들은 버스 옆 주차장 바닥에 앉아 시간 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배낭에서 보조 배터리를 꺼낸 후 짐칸에 싣고 버스에 타 내 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다. 그러나 산행이 힘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라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데 한두 사람이 타는 거 같더니 4시 50분이 되기 전에 모두 버스에 탔다. 그럼 5시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으므로 버스가 출발했는데 그게 아마 4시 50분으로 기억된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거 같은데 눈을 떠보니 오수 휴게소였다. 다시 버스가 달려 신갈, 죽전에 등산객을 내려 주고 양재를 통과해 사당에 도착한 시각이 9시 전이었다. 고흥에서 사당까지 4시간가량 걸렸다. 막힘이 없이 달렸다는 얘기다. 인솔자와 기사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애초 계획대로 '팔영 주차장 → 능가사 → 유영봉 → 성주봉 → 생황봉 → 사자봉 → 오로봉 → 두류봉 → 칠성봉 → 적취봉 → 깃대봉 → 적취봉 → 탑재 → 능가사 → 팔영 주차장'의 8.3km(트랭글 기준), 4시간 35분의 팔영산 환종주 산행을 했다.
오랜만의 단독 산행으로 비록 코스는 짧았지만, 마음껏 달렸다.
기회가 되면 선녀봉을 거쳐 1봉에서 8봉까지 암벽 산행을 해볼 생각이다.
두 주에 걸친 한려해상 산행 모두 날이 흐려 閑麗의 참 면목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어떤 모습일 거라는 그림은 그릴 수 있었다. 다음 기회에 참모습과 대마도를…
첫댓글 히어리꽃을 봤구만, 나도 선녀봉에서부터 한번 다시 가보고싶은곳
시간 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