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즉통(不通卽痛)
이영호
내가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이가 들면 똑같은 시간과 세월이라도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이미 경험한 것에 새로울 것도 흥분할 것도 없는 사안들에 대해 우리의 뇌가 신경을 쓰지 않아 생기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뇌 과학자의 주장이다.
흔히 인간의 일생을 4계절에 비유한다. 봄(아동기). 여름(청소년기). 가을(성인기). 겨울(노년기)로 구분하는데, 노년기는 푸르고 무성했던 나뭇잎이 누렇게 물들어 낙엽 지고 앙상하게 된 나무처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쇠퇴하여 직장에서 퇴직 후 인생의 마무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나온 세월이 눈 깜박할 사이 벌써 고희(古稀)가 넘었으니 나는 현재 인생의 한겨울에 살고 있다.
인간의 수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현재는 100세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태어나는 세대는 120세까지 살 것이라고 한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렇게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은 식생활과 의학. 과학 기술의 발달 영향이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젊은 인구는 줄고 노령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 구성과 인구 패러다임(paradigm)도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길어진 인생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기 위해 ‘삶의 질’이나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뇌신경과 전문의(구도 치아키)가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면서 경험한 것을 모아 쓴 책 “신경 청소 혁명”(김은혜 번역)을 사서 읽어 보았다.
사람의 노화된 신경이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 뇌 혈액과 산소를 흐르게 하는 혈관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경이라고 했다.
오래 사는 사람과 빨리 죽는 사람은 신경이 다르며, 신경의 노화가 혈관의 막힘, 자율신경의 이상이 근육과 관절의 퇴화 등을 유발한다. 만병의 근원이 신경에서 출발, 혈관은 각 가정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이라면 신경은 각 가정에 전기를 보내는 전선에 비유했다.
신경이란 목숨을 연결하는 생명선으로 신경의 노화를 개선해 젊게 만들어야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고, 통증과 질병은 신경이 원인이며 신경의 막힘, 누출, 과다 흐름을 잡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했다.
동의보감에 통즉불통,불통즉통(痛卽不通,不通卽痛)이라는말이 있다.
소통(疏通)이 안 되면 몸도 마음도 멀어지듯이, 통(通)하지 않으면 고통(苦痛)이 온다. 마음의 병이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원한 천 리 길이 되어, 공황장애, 우울증, 치매 등으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고 있다.
기(氣)와 혈(血)이 통(通)하여 순환이 잘 되기 위해, 만병을 사전에 물리칠 수 있는 적당량의 물을 꼭 마시고, 식 생활개선과 적당한 운동으로 신경을 젊고 튼튼하게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의사의 처방으로 약을 먹는 것도 필요하지만, 평소 내 몸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백발가)
고려 말 유학자이며 문장가인 우탁(禹倬) 선생이 무정한 세월의 흐름과 늙음을 백발가 시조로 남겼듯이 많은 사람이 삶과 세월 속에 얽힌 사연을 글과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노 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花爛春盛 萬化方暢),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야~이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시대를 앞서가는 유행가들이 삶을 더욱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길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과거 보릿고개를 넘기며 어렵게 살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세상, 골골하며 오래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부자(富者)가 아니라도, 의식주 생활에 어려움이 없고, 혼자 움직일 수 있고 사리 판단 할 수 있는 정신력이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축복이다.
세상은 신비의 존재로 가득 차 있는데, 하루를 살아도 맑은 정신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착시현상(錯視現像)이 아닌 정시현상(正視現像)으로, 내 인생 여정 끝나는 날까지 항상 기쁜 마음으로 나의 길을 걷고 싶다.
2022. 2. 2.
* 시간의 착시현상 뇌 과학자:미국 택사스주 베일로 의과대학 데이비드 이글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