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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음악사랑4560 원문보기 글쓴이: 안단테
그리운 금강산
1.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작품해설 그리운 금강산은 1961년, KBS에서 마련된 ‘6.25 11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작 곡된 곡이다. 당시 조국강산을 주제로 한 노래를 기획했는데, 그리운 금강산은 작곡가 최영섭이 작곡한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 11곡 중 하나였다. 작사자 한상억(韓相億)씨는 한달만에 ‘아름다운 내 강산’이라는 큰 제목 하에 산·강·바다 주제에 의한 3장의 시를 썼다.'산'에 포함된 것은 남산·금강산·백두산.그러니까 '아름다운 내 강산'에 포함된 한곡이 '그리운 금강산'인 셈이다. 이 칸타타는 1961년 9월 KBS교향악단 연주로 녹음해 라디오로 첫 전파를 탔고 1962년 10월20일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 1972년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이후 해빙 무드와 함께 후렴 '더럽힌지'가 '못가본지', 2절에서 '짓밟힌 자리'가 '예대로 인가' '우리 다 맺힌 원한'이 '우리 다 맺힌 슬픔'으로 가사가 부드럽게 개정되었다. ※ 소프라노 이규도(李揆道)씨는 85년 평양 공연에서 '더럽힌 지'를 '못가본 지'로 고쳐부르면서도 '짓밟힌 자리'나 '원한'은 그대로 불러 방문단 일행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고 한다. 고향이 평북 의주라 한이 서린데다 의도적으로 예전 노랫말을 불러 버렸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나 청중이 눈치를 못 채고 넘어가 버렸지만 이규도씨 자신은 불안한 나머지 관광도 못하고 호텔방에서 두문불출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금강산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 그리고 통천군에 걸쳐있으며, 동서 너비는 약 40km, 남북길이는 약 60km로 그 면적은 약 530㎢에 달한다. 이 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639 미터)의 남북을 기준으로 동쪽의 봉우리들에서는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내륙 산악지대와 접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을 크게 나누어 각각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이라고 부르며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 또는 눈이 왔을 때를 설봉산이라고 부른다.또한 예로부터 금강산은 지리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리어 왔다. 즉, 해동에 삼신산이 있으니 일(一)봉래가 금강산이요, 이(二)방장(方丈)이 지리산이요, 삼(三)영주(瀛洲)가 한라산이라 하였다. 그 밖에도 백두산(북악), 묘향산(서악), 북한산(중악), 지리산(남악)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수호하는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동악(東嶽)이라 하여 민족의 영산으로 숭앙을 받아왔다. 그리고 금강산은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불계에서는 금강산을 열반산, 기달산, 구황산, 중향성이라고 불렀는데, `열반`이란 불생불멸의 법성을 중험한 해탈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라 하니, 이로 미루어 볼 때 불자들은 금강산을 현세의 극락정토로 믿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밖에도 `금강산 1만 2,000봉` 이란 표현은 불교 화엄경에 `동북 바다 건너에 금강산이 있는데, 1만2,000봉이라 이름하며 담무갈 보살들이 그 안에 상주하고 있다`는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금강산의 이름은 불교와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이미 언급한 별칭과 영어식 명칭인 `다이아몬드 마운틴(Diamond Mountain)`까지 합치면 10여 개에 이르고 있어 금강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칭을 가진 산이라 하겠다. 금강산 일대는 한반도의 전반적 기후에 비해 비교적 따뜻하며, 비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하나이다. 태백산 줄기의 북단에 놓여있고, 동쪽면이 바다와 접해 있으므로 기후 조건에서 동쪽과 서쪽의 차이가 심하다. 금강산을 이룬 지질층은 태고계로부터 신생계이 걸친 오랜 지질시대에 속하는 여러 종류의 암석들로 되어 있으며, 특히 검은 운모를 섞은 화강암과 얼룩을 가진 화강암이 가장 널리 퍼져있고 곳에 따라서는 화강-편마암과 거대한 수정돌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암석들은 거의 모두가 백옥같은 흰 빛깔을 나타내거나 강한 광택을 띤 가지색으로 금강산 특유의 산 빛을 드러낸다. Mezzo-soprano, 백남옥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졸업, 조선일보 신인음악회 출연,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수료, 제15회 서울음대 주최 음악콩쿨 특상, 제6회 동아콩쿨 1위입상 베를린 국립음대 교향악단과 말러의 가곡 솔리스트로, 프랑스 순회(바이욘느,뚤루즈,파리) 국내독창회 및 연주회 다수(세종문화회관,호암아트홀), 미국 워싱턴,뉴욕,시카고,유타 솔트레이크시티,캐나다, 토론토,뉴질랜드 등에서 독창회,오페라 출연 다수(나비부인,라 죠콘다,코지 판 투데, 호프만 이야기 등) 한상억 韓相億, 1915.9.1~1992.11.8 시인. 호 이록(二綠). 인천 강화 출생. 1935년 인천공립상업학교 졸업. 1946년 김차영(金次榮) 등과 함께 인천에서 《시와 산문》 동인으로 활동했고, 1956년 《자유문학》에 시 《평행선》 《네거리에서》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대립(對立)》 《강》 《아침》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1958년 인천시 문화상, 1963년 경기도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생활 주변과 현실 사상(事象) 등 다양한 제재를 읊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경기도 지부장, 《주간인천》 주필, 《경기매일신문》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시집으로 《평행선의 대결》(1961)이 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 《그리워라 두고 온 사람들》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최영섭 崔永燮 1929~ 작곡가. 지휘자. 경기도 강화군 출생. 경복중학교 5학년 때 이미 작곡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음악적 소질을 보였던 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학하여 김성태 교수에게 배웠으나 6ㆍ25 전쟁 중에서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 4년을 수료하였다. 그 후 비인 국립음대로 유학하여 칼 베스터라이히(Karl Westereich) 교수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한 때 이화여고에서 재직하였고 한양대, 상명여대, 세종대 강사를 지냈다. 다섯 회의 작곡발표회를 열고 여러 장의 독집음반을 내는 등 활발한 작곡활동을 펼쳐왔으며, 서울그린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는 등 지휘자로서도 활동하였다. 가곡과 합창곡, 칸타타를 주로 작곡하였으며, 대표가곡으로는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의 삽입곡 중 하나인 <그리운 금강산>이 있다. 작곡집으로는 가곡집 <소라>(인천문화사, 1954)와 오페레타 <운림지>(성좌사, 1956) 등이 있다. 한국작곡가회 회장, 사단법인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 한국예술가곡진흥회 회장, MBC 예술단 자문위원을 지냈다. 경기도 문화상, 인천시 문화상, 한국뮤직펜클럽 가곡작품상, MBC 방송대상, MBC 가곡공로대상, 대한민국 방송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한국이 낳은 작곡가 최영섭 선생의 생가터에서 최 선생님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77 최 선생의 생가터에서 있었다. 최영섭 선생은 1929년 11월28일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서 태어나 인천중학교를 거쳐 경복중고교시절 임동혁 교수와 서울대 음대 작곡과 김성태 교수에게 작곡 이론을 사사 받았다. 그후 그는 인천여중고, 인천여상고, 이화여고를 거쳐 한양대, 상명대, 세종대 등에서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 '추억'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100여곡을 통해 통일을 염원하며 민족의 애끊는 심정을 담은 작품을 남기고, 작곡 발표회를 5회에 걸쳐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는 지금도 한국예술가곡 연합회 명예회장, 인천음악애호가협회 '영상감상회' 해설자로 출연하고 있고 인천시립교향악단 회장, 서울 그린 오케스트라 전임 지휘자, 서울오페라단 및 아스트라 꼬레아 오페라단 고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후배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최영섭 선생에 대한 노래비는 인천시종합문화예술회관 광장에 지난 2000년 8월15일 건립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 최초로 태동된 시립교향악단 팬모임인 ‘인천시립교향악단을 사랑하는 모임’(인향사모)에 회장을 맡고 있다. 음원출처:http://daumbgm.nefficient.co.kr 이미지출처:http://pds42.caf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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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강산에 가본적은 없는데 이 노래가 주는 느낌에 중독되어 실제로 가봤을때 실망할까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