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목사처럼 ‘그리스도 십자가’와 ‘그리스도 부활’을 ‘분리’한 Wolf이철 :
십자가와 부활에서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두 가지 의義(이중 은혜)를 ‘구별’하신 존 칼빈 선생님
朴埰同 (2020.11.20.08:15)
‘그리스도 온전한 순종’에서 ‘그리스도 능동 순종’과 ‘그리스도 수동 순종’을 ‘구별’할 수 있을지언정 ‘분리’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구속 사역에서 ‘그리스도 십자가’와 ‘그리스도 부활’을 ‘구별’할 수 있을지언정 ‘분리’해서는 안 된다. ‘분리’하면, ‘그리스도 십자가’를 건너뛴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 이른바 “부활 복음”이라는 ‘다른 복음’이 태어난다. 다음은 ‘존 칼빈 <고린도전서 15장 4절 주석>’에서 옮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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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죄를 위해”라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친히 저주를 담당하신 것이다. 그분께서 속죄의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됐고, 한 사람이 정죄를 받음으로 우리 무죄 석방이 이뤄지지 않았는가? 바울은 이와 비슷한 말을 로마서 4장 25절에서도 역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 구절에서는 부활이 다른 효력을 낳는데, 바로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의義를 가져다 준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죄가 그리스도 죽음으로 소멸하듯이 그분 부활로 또한 의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게 되는가를 알고 또한 그분 부활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게 될 것인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이 구별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다른 구절들이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언급할 때 우리는 그런 실례들에서 그분의 부활이 그분의 죽음에 내포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죽음과 부활이 따로따로 언급돼 있을 때는 우리가 여기서 보는 대로 우리는 ‘우리 구원의 시작(initium)이 그분 죽음에 있으며 그 완성(complementum)이 그분 부활에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