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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처음 가는 산이면 꼭 산행기를 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번 송년모임에 경품으로 낸 책이 이렇게 쓴 산행기를 모아 낸 책입니다. 최근에 갔다온 백운산 산행기 올립니다. 벌써 2달 전 갔다온 것인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쓰게되었지요. 동창들 홈페이지에는 산행기를 올리는데 이곳은 처음입니다. 카페지기님이 글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내리라고 하시면 즉시 내리겠습니다. ========================================================================================== 생일도 백운산
아직 여명도 밝아오지 않는 이 이른 새벽, 나는 친구 광의와 후배 남규를 태우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내려가고 있다. 전남 완도군 평일도, 생일도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봄에 남규의 고향 평일도에 놀러가기로 하였다가 내 아들놈 군대 가는 날과 겹쳐 계절을 넘겨 오늘(2008. 10. 24.)에서야 남규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아침 8시에 영산강 방조제를 넘기 전 목포 하당의 어느 기사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일찍 출발하니 이렇게 목포까지 와서 아침을 먹을 수도 있구나. 생각난 김에 삼남형에게 전화하여 하당에서 아침 먹고 있다고 하니 깜짝놀라며 돌아가는 길에는 꼭 들르라고 한다.
영산강을 건너 2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가 23번 국도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마량만 너머로 땅끝기맥이 함께 달리고 있다. 지금 보이는 저 땅끝기맥의 두륜산, 대둔산을 지나 계속 내려가면 지난 9월에 올랐던 달마산이 아니던가? 해남 땅끝이 그냥 남쪽으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땅끝기맥으로부터 백두대간의 정기를 바다로 내뿜고 있으니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금도(禁島) 정책에 때문에 꺾였던 바다의 꿈이 저 기운을 따라 지금 조선(造船) 강국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9:06경 마량과 고금도를 잇는 고금대교를 건너 7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머리 위로 고금도 유자축제라는 플래카드가 지나간다. 고금도가 유자로 유명한 모양이구나. 2007. 6.경 개통된 고금대교 때문에 전에는 배타고 40분 걸려 건너가던 곳을 지금은 이렇게 금방 ‘쌔~앵’ 달려서 건너가고 있다. 저번에 해남 달마산을 찾아갈 때도 77번 국도를 달렸는데, 이렇게 전국의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국도에 77번을 붙인 것은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바닷길을 달리면서 그만큼 행운이 더하라는 것일까?
77번 국도에서 830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덕동포구로 향해 가는데 왼편으로 이충무공 유적지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은 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1598. 2. 목포 앞 고하도에서 이곳으로 진을 옮긴 후 밤낮으로 해군력을 확충하느라 전력을 기울인 곳이고, 1598. 11.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후 80일간 임시로 안장되어 있던 곳. 지금도 저곳으로 가면 충무공 사당과 가묘(假墓)가 있다고 하나, 나는 애써 무시하고 조약도를 향해 간다.
고금도와 조약도 사이도 약산대교가 이어주고 있다. 조약도라고 하니 조약돌이 먼저 연상되는데 한자로는 助藥島이고, 또 조약도를 일명 약산도(藥山島)라고 하는데, 조약도 내의 삼문산에 그렇게 약초가 많다나? 그래서 조약도 하면 흑염소가 또 유명하다고 하고... 해동리 선착장을 향해 달려가는데 눈앞에 ‘약산고 양소희 서울대 합격’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이곳 약산고등학교의 양소희 학생이 서울대 수시 1차에 합격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남쪽 섬마을 학교에서 서울대에 합격하니 이렇게 플래카드를 걸만 하겠지. 이걸 보니 내가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거창의 산골마을에서 입학한 한 동기생이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고 지방신문에 나오고 군수가 집에까지 찾아왔다고 하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니 고등학교 들어갈 때나 서울대 들어갈 때나 사법고시 합격할 때나 이런 거 하나 없었는데... 하여튼 얼굴은 모르지만 나랑 종씨 여학생의 합격 플래카드가 이렇게 붙어 있으니 기분이 좋구나.
9:30경 당목항에 도착하니 바로 건너편으로 평일도와 생일도가 보이나, 건너갈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다 위로 차를 달릴 수는 없고, 이제부터는 페리호 신세를 져야겠지. 오래간만에 바다를 가르면서 바다 내음새를 마음껏 가슴으로 담으니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을 쫙 펴는 내 앞에는 장흥 천관산이 잘 갔다오라며 나를 배웅하고 있다. 저 천관산을 오르고 싶은 데 아직도 가지 못하고 있다.
아! 한 번 갈 기회가 있었다. 목포에 근무할 때 순천에서 변호사를 하는 형수를 만나러 나는 목포에서 가고, 서울에서 또 친구들이 내려왔었지. 그 때 첫날은 골프를 치고 다음날은 천관산을 오르기로 하였는데, 녀석들이 힘들게 산에 오를게 뭐 있냐며 오늘도 계속 골프를 치자고 하여 나도 그에 따른 것. 지금 같으면 녀석들의 손을 뿌리치고 천관산을 올랐을 텐데,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산의 맛을 모르고 있었지.
10:07경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양새의 생일도가 점점 다가오더니 마침내 배가 생일도 서성항에 닿는다. 원래는 남규의 고향 평일도로 들어가야 하나 남규의 고향집에 남규 형 손님들이 와 있어서 이곳 생일도의 남규 6촌 형님이 하는 민박집에서 자기로 한 것. 생일도는 원래 산일도, 산윤도라고 불리다가 1896년부터 생일도라고 한다는데,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착해서 '갓 태어난 아이와 같다.'고 하여 생일도라 불렀다는 설과 예로부터 난바다에서 조난사고와 해적들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 태어나라"는 뜻에서 날 생(生) 날 일(日)자를 붙여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잠시 후 연락을 받은 남규 4촌 김경남씨가 평일도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달려온다. 바다에 왔으니 등산보다는 우선 낚시를 먼저 하기로 한 것. 모터보트가 바람과 물살을 가르며 양식장 사이를 빠져나와 평일도로 달려간다. 우리는 평일도 월송리 남규 고향마을 바로 앞에 배를 세우고 낚시를 드리우는데, 남규 아버님이 배를 몰고 오신다. 바다 위에서 부자의 상봉. 우리가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는 주위는 다시마 양식장. 금일도는 다시마 전국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할 만큼 다시마를 많이 생산하기에 당연히 금일도에서는 다시마 축제도 열린다.
광의와 남규는 원래 낚시꾼들이지만 나는 이게 얼마 만에 낚시를 해보는 것이냐? 그러니까 목포에 근무할 때 해보고 처음 해보는 것이니까 8년만이네. 그런데, 꾼들의 낚싯대에는 고기가 영 안 물고, 왜 내 낚싯대에만 고기들이 물리는 것이지? 녀석들이 손님 대접하려고? 아니면 왕초보 낚시꾼의 기를 살려주려고? 하여튼 녀석들의 살신성인하는 손님 접대에 기분은 조~오~~타!!!
아직 해가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려면 시간이 좀 있으나 바다에 점점 흰 꽃이 핀다고 돌아가잔다. 바람에 파도가 거칠어져 하얀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흰 꽃이 핀다고 표현한단다. 그래? 나는 전에 이를 바다가 흰 이빨을 드러낸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흰 이빨 보다는 흰 꽃이 훨씬 정감 있어 좋구나. 김경남씨가 흰 꽃이 만발하기 전에 생일도로 돌아가려고 보트를 전속력으로 몰아대니 바다는 부드러운 물이 아니라 굳어버린 진흙처럼 딱딱해져 우리들은 우당탕탕 하는 배위에서 이리 저리 흔들흔들하고, 운전대를 붙잡고 서있는 김경남씨 얼굴로 바닷물이 마구 달려들어 얼굴을 흠뻑 적셔준다.
이렇게 몸이 마구 흔들리다보니 물이 딱딱하다는 것을 이렇게 배 위에서 말고 직접 몸으로 느껴본 기억이 나는구나. 예전에 청평호수에서 수상스키를 탈 때에 나를 끌고 가는 모터보트가 커브를 틀면 자연 나는 모터가 가르고 지나간 물결을 타고 넘어야 하는데,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물이 이렇게 딱딱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지.
저 앞의 청산도는 바로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진 섬이 아니던가? 영화에서 유봉과 송화 모녀와 동호, 이렇게 3명의 주인공이 섬 밭길을 - 그 밭들은 야트막하게 돌들을 쌓아 경계를 이루고 있었지. -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소리에 취해 둥실둥실 춤을 추며 내려오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영화에서 유봉은 소리의 완성에 집착하여 송화에게 한(恨)의 소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송화의 눈을 멀게 하였었지. 과연 소리에 집착하면 아무리 양딸이지만 딸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을까? 청산도 왼쪽의 조그만 섬은 여서도라고 하는데, 이 근해의 황제도와 함께 낚시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낚시로 유명한 섬이라고 한다.
갑자기 경남씨가 허리를 구부리더니 오바이트를... 어제 오래간만에 사촌 남규를 만나고 과음을 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빈 속에 급히 산을 오르다보니 속에서 올라오나보다. 쯧! 쯧! 임도는 용출봉을 감아돌아 좀 더 전진하더니 갑자기 지 몸을 덮은 콘크리트를 걷어버렸다. 지금부터는 흙길을 따라 임도를 오른다. 오히려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느끼면서 임도를 걸으니 훨~ 낫다.
암자를 지나 숲속길을 헤쳐 나가는데 앞에 웬 발자국이? 바로 멧돼지 발자국이라는데,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발자국이 생생하다. 이 섬에도 멧돼지가? 멧돼지가 육지에서 헤엄쳐 이 섬에까지 건너온 것이란다. 멧돼지가 그렇게 수영도 잘하다니! 천적이 없는 멧돼지가 서울 근처에까지 나타난다고 하던데 이젠 섬에까지 진출하고 있구나.
재작년에는 처음 이 섬에 출몰한 멧돼지가 섬에 방목하는 염소들을 잡아먹어 섬사람들은 괴물이 나타났다고 공포에 떨었는데, 결국 괴물의 실체는 멧돼지로 판명되었단다. 이곳 섬사람들이야 설마 멧돼지가 바다를 헤엄쳐서 이곳까지 쳐들어와 염소를 잡아먹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이제 능선 위로 올라 오로지 백운봉 정상만을 향해 오르는데, 능선은 가려줄 나무 없이 사방으로 트여 사방의 섬들이 내 발밑으로 조아리고 있다. 한여름에 이 능선을 올랐다간 강렬한 태양을 가려줄 아무 것도 없어 바닷가의 태양에 몸은 금방 타오를 것 같다.
10:38경 드디어 해발 482.6m의 백운산 정상에 섰다. 사방에서 섬들이 나를 에워싸고 나의 등정을 축하해주는 것 같다.
남서쪽으로는 노화, 소안, 보길도 3섬들이 몰려있다. 보길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윤선도. 윤선도는 저 섬에 세연정과 동천석실 등을 짓고 국어책에도 나오는 오우가(五友歌),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등을 짓지 않았는가? 목포에 있을 때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보길도에 들어간 적이 있지. 보길도에 들어가기 전만 하여도 나는 윤선도가 보길도라는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는 섬에서 고생하였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그 때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돌면서 윤선도가 낮에는 세연정 정자에 앉아 시를 구상하고, 저녁 노을 질 무렵이면 동자의 손에 찻주전자를 들리우고 낙조가 보이는 동천석실로 올라가 또 한 번 시를 읊는 등 신선의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지.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저 섬은 무엇인가? 경남씨는 거문도란다. 저기가 거문도? 거문도라면 부산에 근무하면서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여수에서 배 타고 들어갔던 섬이 아니던가? 1885년 영국 해군이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한다며 거문도에 상륙하여 포트 해밀톤(Port Hamilton)이라 이름 짓고 22개월간이나 자기 멋대로 남의 나라 섬을 점령하고 돌아갔던 역사의 아픔이 있던 섬. 지금 저 섬에는 그 때의 영국 수병중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곳에 잠들어 있는 수병들이 있지?
거문도가 보이면 그 왼쪽으로 백도도 보이지 않을까? 경남씨가 왼쪽으로 어느 섬을 가리키며 백도라고 한다. 아! 백도. 그 때 거문도에서 하룻밤을 자고 백도로 출발하였는데 사방은 온통 안개 속이었지. 그 때 내가 탄 배는 둥그런 주발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고, 그 둥그런 주발 바깥쪽으로는 온통 안개로 뒤덮여 주발 안쪽만 겨우 숨통이 트여있고, 둥그런 주발은 배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이며 항상 배를 주발 한가운데에 두고 있었지. 그 때 나는 내가 이상한 백색의 나라 어느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어. 그런데, 어느 순간 백도의 암석 절벽이 이런 백색의 나라를 불쑥 뚫고 갑자기 나타나더군. 그런 백색의 나라 한가운데에서 보던 백도의 모습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환상의 나라 한가운데에 남아있지.
잠시 거문도와 백도 여행의 추억에 잠기고 있는데 남규에게 전화가 온다. 어제 한 마리도 못 잡아 좀 체면이 구겼었는지 오늘은 벌써 감성돔을 여러 마리 잡았다고 자랑하며 빨리 오라고 한다. 내려가는 능선쪽엔 여기 저기 돌탑들이 쌓여 있다.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에 가면 돌탑 쌓기를 좋아하는데 이 먼 남쪽 섬 산 위에도 돌탑들이 있구나.
능선을 내려가던 경남씨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남쪽 바다 저 멀리를 유심히 쳐다본다. 무얼까? 순간 경남씨가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아니 여기서 한라산이 보여?? 하긴 지나 번에 동해 쪽에 솟아 있는 일본 입산을 갔을 때에도 태평양 쪽에서 솟아오른 후지산이 보여 놀랐었는데 여기서 한라산이 보인다는 것이 전혀 무리는 아니겠지. 나도 경남씨를 따라 눈을 가늘게 뜨며 열심히 수평선쪽을 바라보는데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후지산이야 3,000m 넘는 곳에서 보는 것이라 하늘이 맑아 그 먼 거리의 후지산이 보이는 것이겠지만, 이곳은 바닷가에서 피어오르는 공기를 통하여 보려는 것이 여간 한라산의 윤곽을 잡기 힘들다. 그러나, 경남씨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남쪽 수평선을 뚫어져라 보니 멀리 수평선상으로 희미하게나마 한라산의 꼭대기 부분이 보인다. 하~ 이곳에서 한라산까지 볼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내려가는 능선의 건너편 능선 자락에는 나무도 없이 수평으로 줄이 가 있다. 경남씨에게 뭔가 하고 물으니 예전에 계단식 논이 있었는데 지금은 바다에서 다시마, 굴 양식이 더 경제성이 있는지라 경작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남해도의 다랭이논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관광상품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곳의 다랭이논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구나.
11:50경 하산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남규 6촌 형님이 모는 배를 타고 섬의 반대편으로 돌아나가니 갯바위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바닷가까지 달려나온 능선의 절벽 때문에 백운상 정상이 안 보인다. 그래서 아까 남규와 통화할 때 내가 손 흔드는 것 안 보이냐고 하는데 안 보인다고 하였구나. 이윽고 옆구리를 나란히 서로 비비며 바다 한 가운데에서 흔들리고 있는 2배로 다가가니 한창 낚시 삼매중. 한 배에는 남규 아버님이 혼자서 바닷물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당연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는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남규 아버님이 월척을 낚으셔야 할 텐데...
낚시 시작하기 전에 맛있는 점심부터. 광의가 물속에 잠겨있는 어망을 드니 포로가 된 감성돔들이 퍼득퍼득 뛴다. 이곳 다시마 양식장에 먹을 것이 많아 감성돔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이윽고 녀석들은 자신의 배를 오늘의 낚시를 위해 기꺼이 제공해준 무림의 고수 남규 후배의 춤추는 듯한 칼 앞에 앙상한 뼈만 남긴 채 자신의 살들을 우리에게 공양제물로 내놓는다. 그래 너희의 희생이 값없이 되지 않게 맛있게 먹어주마. 역시 바다 위에서는 어떤 고기들을 회 쳐 먹더라도 꿀맛. 낚시꾼들은 짜릿한 손맛 외에도 이 맛에 바다를 찾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낚시는 어제 낚시를 바다 밑바닥에까지 내려 고기를 잡는 것과는 달리 미끼를 중간에 드리우고 수면에서 까딱까딱하는 찌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고기가 미끼를 물면서 찌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찰나에 낚싯줄을 채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고기는 미끼만 채고 얼른 사라지기에, 그 적절한 타이밍에 낚싯줄을 채는 솜씨는 숙련된 낚시 솜씨에 비례하는 것. 어쩐지 아까 전화로 남규가 감성돔 많이 잡았다고 하기에 나는 어망에 고기가 넘쳐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속으로 낚시꾼들 뻥은 알아주어야 한다고 했더니 이게 쉬운 낚시는 아니구나. 결국 나는 한 마리도 못 잡아 어제를 생각하며 왜 쉬운 바다밑 낚시를 하지 않느냐고 불평하니, 고기들에 따라 노는 곳이 틀리는데, 감성돔은 바다 중간에서 돌아다닌다고 한다. 그럼 어제 내가 잡은 감성돔은 왕따 당한 녀석이었나?
서울 가는 길이 멀기에 어느 정도 고기를 잡고 배 철수. 남규는 어제도 바다 위에서 부자 상봉을 하더니 오늘도 바다 위에서 부자 이별을 한다. 돌아오면서 다시 갯바위를 쳐다보는데 어느 한 갯바위에 까만 점들이 왔다갔다 한다. 무얼까? 다가가니 흑염소들이다. 아니 애네들이 수영할 것도 아니고 낚시 도구도 없으면서 먹을 것도 없는 갯바위까지 왜 내려왔을까? 소금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렇지! 모든 생물들이 소금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지. 어느 다큐멘타리에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밀림의 동물들이 소금을 보충하기 위해 암염(巖鹽)이 있는 어느 밀림 속 절벽으로 모여드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바다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히말라야와 티벳에서도 소금이 필수적이기에 사람들은 소금을 싣고 그 험한 산을 넘나들었지 않았는가?
짐을 정리하여 차에 싣고 우린 남규 6촌 형님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선착장으로 와서는 이번에는 평일도로 돌아가는 경남씨에게 작별인사. 그리고, 차와 함께 배에 올라 멀어져가는 생일도에 작별인사. 1박2일의 짧은 섬 여행이었지만 바다의 풍성함 속에서 투명산의 비밀을 알아보고 가는 추억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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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양변호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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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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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면산 하늘이면하늘 꼭 저희 어울사랑 식구들 경비행기 체험 이나 산행모임 한번 주선하세요 ^^ 
'얼굴 없는 사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님은 얼굴을 드러내 놓고 여러 분야에 열심히 사시는 모습, 저 또한 그런 부지런한 삶이기를 바랍니다. 여행이 좋아 이곳저곳 다녀 봐도 가야 할 곳이 아직도 많은데 '생일도'와 '백운산'을 자세히 알게 되어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모님과의 환상적인 커플, 늘 행복하세요.
이렇게 생소하고 예쁜이름을 가진 섬들이 있다니놀랍고 상세한 --늘 공부하는 자세로 여행을 다니시는 모습이 참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 되네요, 본받을점이 많으신 님을 뵙게 되어 행복한 한해 였습니다, 좋은 새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