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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요 15:1-8, 갈 5:22-23
I. 육체의 열매들∙성령의 열매
젊었을 때는 교회 안에서 사역을 많이 잘 감당하는 사람들이 귀하게 보였습니다.
또 그분들 이 있어서 교회가 크게 성장을 했고 또 그분들 때문에 교회가 행복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나니까 그분들이 귀하고 또 귀하지만 한분 한분 품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교회 안에 품성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며 오늘도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오늘“성령의 열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모시고 사는 나의 하나님이요,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순복하고 살아야 될 대상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가 경험해야 될 대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이란 말보다는 성령님이란 말을 더 좋아하고 자주 사용합니다.
「Good Morning Holy Sprit」 “안녕하세요 성령님”이라는 베니 힌의 책이 있습니다.
매일 성령님과 함께 살며,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내게 말씀하시고 매일 매일 내게 선한 일을 행하시는 인격이십니다.
여러분이 “성령”이라는 말을 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능력, 성령의 은사를 떠올릴 겁니다.
한국교회 많은 성도님들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이 구절 속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를 성령으로 이해합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선 비교적 잘 압니다. 관심도 많고 체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격 혹 성령의 열매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관심도 적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관한 책을 찾아보아도 신통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의 열매를 맺으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어느 날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열매,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했습니다.
그때부터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범죄하고 타락한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납니다.
창세기 5:3 말씀입니다.
“아담은 ...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창세기 6:3 말씀에 의하면 “육신이 됨이라” 개역한글엔 “육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육체가 된 인간들과는 거듭나기 전까지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지 않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육체가 된 인간에게 맺혀지는 열매도 너무나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22-23 바로 앞 3절입니다.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열매들이 나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개역한글에는 “현저하니”육체의 일은 복수 일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이런 일을 하는 자들 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육체의 일들, 육체의 열매는 복수요 성령의 열매는 9가지나 되지만 단수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품성적 선물이 곧 “성령의 열매”입니다.
II.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열매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양식이었습니다.
창세기 2:16-17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여러분, 오미자라는 열매를 아시지요. 지름이 1cm 남짓 되는 붉은 열매로 그 속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그리고 매운 맛까지 다섯 가지 맛을 품고 있다고 하여 오미자입니다. 오미자는 폐기능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기침, 가래, 만성기관지염, 인후염, 편도선염에 좋습 니다. 오미자의 신맛은 입이 마르고 갈증이 심한 사람들의 특효약입니다. 오미자는 오래전부터 자양강장제로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머리를 맑게 해주고 건망증을 개선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열매 하나에 여러 가지 맛과 만병에 유효할 만큼 여러 가지 약효를 담아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나눠주시는 품성을 열매라고 정의해 주신 것이 참 재미있습 니다. 열매는 맛있습니다. 그리고 예쁩니다. 색깔들이 다양합니다. 모든 열매는 몸에 유익합 니다. 이게 바로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5장 22절 성령의 열매는 9가지 안에 다양한 맛, 예쁜 색깔들을 담아 주었습니다. 단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맛이 9가지 아니 그 이상의 수없는 맛이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인의 품성 안에 담겨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쪼개 보면 그 안에 3개의 방이 있습니다. 3개 안에 3개씩의 열매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닮은 품성이 방 안에 3개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랑 과 희락과 화평입니다. 두 번째,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맺혀지는 열매가 있습니다.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살아가며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세상과 이웃 을 섬깁니다. 이 섬김 현장에서 나타나는 열매가 있습니다.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① 사랑. 제일 먼저 나타나는 열매가 사랑입니다. 모든 열매의 으뜸, 중심이 되는 열매입니 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낸 아가페 사랑, 그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복음을 전하고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② 희락. 희락은 환경이나 세상적인 조건과 상관없는 예수 믿고 오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③ 화평. 화평을 에스키모인들은 참 재미있게 설명했습니다. 원수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 ④ 오래 참음.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닙니다. 사랑 장에 보면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가는, 합력하여 유익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⑤ 자비.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⑥ 양선. 내가 가진 좋은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복음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배고픈 사람 에게 양식을,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⑦ 충성. 착하고 충성된 종의 반대말은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충성의 반대는 악한 것입니 다. 착한 것은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믿음생활에서, 교회생활에서 변덕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변덕이 심한 사람은 마귀도 싫어합니다.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충성된 사람입니다. ⑧ 온유. 길들여진 맹수입니다. 호랑이 사자는 동물원에 가야 보지만 길들여진 강아지 한 마리, 반려견은 주인의 품에서 잠이 듭니다. 주인의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습니다. 언어가 부드럽고 얼굴이 부드러운 것입니다. ⑨ 절제. 모든 품성을 담는 그릇입니다. 9가지 열매를 담는 그릇이 바로 절제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 그동안 빨리 성장했습니다. 잎사귀가 무성합니다. 대형교회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난거리가 되어 가기도 합니다. 왜요? 열매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다움, 열매가 갖는 향기가 있습니다. 열매가 갖는 맛이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 고린도전서 12장 성령의 은사도 9가지를 대표적으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열매도 9가지를 대표적으로 꼭 집어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두 성경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책입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와 9가지 열매를 대비시키는 절묘 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나 성령의 열매나 다같이 성령님이 주신다는 차원에서 공통점, 유사성이 있습니 다. 은사도 열매도 그 근원 뿌리는 한분 성령님이십니다. 은사도 열매도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시절을 따라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옵니다. 곧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1절에 이 나무를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냇가에 던져진 나무가 아닙니다. 시냇가에 우연히 솟아난 나무가 아닙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심은 나무입니다. 우리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천국에 심어 놓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심으신 하나님 의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반듯이 맺는 열매가 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상명 령입니다. 전도의 열매입니다. 한 가정에 어린아이 한 명만 교회에 나와도 거기에서 열매가 나타나서 온 가족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품성의 열매는 하나님을 사랑해라. 이웃을 사랑해라. 이것이 계명의 전부다. 이 계명 을 순종할 때 맺혀지는 열매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목적이 같습니다. 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트라 이앵글 테스트를 사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았을 때, 품성을 주셨을 때 내 삶이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교회에 유익한 덕이 되는가? 여기에 맞아 야 은사가 제대로 된 것이고 제대로 된 품성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는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은사는 성령의 나타 나심 즉 성령의 능력 자체입니다. 그러나 열매는 예수 안에 있는 그분의 품성이 내 안에 맺혀져 나의 품성이 된 것입니다. 은사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똑같은 것을 받는게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합당한 은사를 다양하게 나누어 주십니다. 은사는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열매는 크든 작든 하나님의 자녀들이면 누구나 모든 열매를 다 맺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키워가 는 것입니다. 은사는 일시적이지만 열매는 이 땅에서 맺어 천국까지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 다. 은사는 이 땅 지상교회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열매는 천국에서도 서로 나눠먹고 나누어야 할 본질입니다. III. 예수에게 붙어 있기 싸움 어떻게 내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게 될까요? 구원얻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가 빌런이 되겠다! 내가 악당이 될 거야. 가롯 유다가 되어보 겠다는 사람은 없지요. 열매 맺고 싶지 않은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내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지 마음 먹는다고 하루 아침에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는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정답이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좋은 열매가 맺혀지는 겁니다.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고 나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는 겁니다. 사과나무가 되면 사과가 달리고 배나무에 배가 매달리듯이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혀지 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방 탁 쏘아주고 싶은데 그게 참아집니다. 내 안에 없는 품성인데 오래참음의 열매가 맺혀졌네. 지금까지 당해보지 못한 환경 속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납니다. 위기를 만났는데 옛날 같으면 절망, 좌절, 폭망까지 올 텐데 기쁨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제 내가 달라졌지? 희락의 열매가 내 안에 있네. 저 사람하고도 화평 하게 잘 지내네. 어느 날 물씬 성장한 자신을 보고 자신이 놀라게 됩니다. 원수 맺은 사람들,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용서가 됩니까? 용서해 야지 백번 외친다고 용서되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겨울 에 쌓여진 눈이 봄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듯이 내 안에서 언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게 성령의 열매입니다. 잘못된 생각, 부정적인 생각들이 심지어 더럽고 추한 생각들이 내 머리, 내 입술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고쳐달라고 기도해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사랑하고 교회 를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런 생각들이 사라졌습니다. 입을 열면 은혜의 말이 나옵니다. 긍정적인 말이 쏟아져나옵니다. 복음의 언어가 터져나옵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달라졌지? 이게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장 열매맺는 포도나무 가지 이야기에서 “열매를 맺으라”고 윽박지르 는 말씀이 없습니다. 명령형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강요가 아니라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는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1-11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여기 해답이 있습 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11절 안에 무려 11번 등장하는 단어가 내 안에 거하라는 단어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열매를 맺으라! 열매를 맺읍시다!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맺혀지는게 아닙니 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착 달라붙어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게 착 달라붙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착 달라 붙어 있으면, 성령 안에 거하면 저절로 열매가 맺혀지느니라. 이게 열매 맺는 길입니다. 지난 주일 오후 저의 심리전기 토크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저는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인정하기도 어렵지만 어린시절부터 제 안에는 애정결핍, 안정 결핍, 분리불안증 같은게 있었다는 겁니다. 심리검사에서 나온 결론이니 맞겠지요. 물론 그 상처와 약점들을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는게 리질리언스 회복탄력성입니다. 저는 어릴 땐 교회 잘 나가는 개구쟁이였습니다. 청소년시절엔 예수 잘 믿는 말썽쟁이였습니 다. 교회 잘 나가는 문제아였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말썽 피우고 들어오는 제게 “너 계속 말썽 피우면 너희 엄마 신랑 얻어서 도망간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아버지도 우리 곁을 떠났는데 엄마도 떠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 치마끈과 내 허리끈 을 묶어 놓고 잠을 잤습니다. 그걸 알고 안쓰러웠든지 내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엄마, 내 새끼 두고 어디 안 가.” 그 말씀 기억하면 지금도 내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 성령님 내 새끼 두고 어디 안 가. 여러분을 버려두지 않습니다. 홀로 이 세상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 다. IV. 영원을 사모하라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장에서 성령이 부어주시는 품성을 포도나무 가지에 달리는 열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사명은 오직 열매에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나무라고 하지만 실은 포도덩쿨이지요. 포도나무는 관상용이 아닙니다. 볼품이 없습니다. 더구나 재목으로 쓰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열매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입니다. 그 어떤 과목보다 많은 열매를 힘겹게 매달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과제가 있다면 열매를 맺는데 있다는 겁니다. 열매 맺는 삶을 강조하면서 성경은 늘 꽃과 열매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꽃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세상 가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꽃이란 단어는 37번쯤 나옵니다. 반면 열매는 200번이상 등장하며 항상 영적, 궁극적, 종말적,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꽃을 구하는 인생은 순간적 행복을 구하다 인생 허무만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가요를 부르려면 조용필의 “♪난 아니야 꽃이 아니냐”를 불러야 합니다. 난 열매야 꽃이 아니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니 라(떨어지되)”(벧전1:24)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는 우리의 육체도 풀잎처럼 쇠하여집니다. 이 땅의 모든 자랑과 영광도 떨어집니 다. 심지어 우리의 정신도 쇠약해집니다. 마지막 남는 것, 천국까지 함께 가는 것은 구원의 열매, 전도의 열매, 품성의 열매 주님을 닮은 것. 이 사역의 열매만 남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치매에 걸린 88세 어머니의 신앙을 유튜브에 올려 1천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아들의 이름 을 대도 모른답니다. 딸의 이름을 불러도 모른답니다. 조금 전에 뭘 먹었는 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딸이 별의별 질문을 다 하다가 “예수님이 누구냐?” 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또렷하게 “예수는 나의 구세주. 내 안에 살아계시 며 나와 함께 하는 분. 나를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실 분”이라고 대답했습니 다. 이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치매가 걸려도 이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여러분 깜빡깜빡 기억이 왔다 갔다 하실 때가 있으시지요? 내 새끼 이름도 깜빡깜빡 할 때가 있으시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내가 치매가 걸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 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예수는 내 구세주. 내 안에 살아계시는 분.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가실 분. 그분이 부어주신 열매 안고 구원의 열매 안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실 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하는 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영적인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시는 자리, 성령의 품성을 부어주시는 그 자리를 사모하고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체 그리고 건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호르몬 엔돌핀이라는게 있습니다. 그 귀한 엔돌핀의 4천배에 달하는 다이돌핀이란게 있습니다. 국가대표로 국제경기에 나가서 지고 있다가 역전홈런을 치는 순간 쏟아지는 호르몬 다이돌 핀. 국가대표로 마지막에 슛 골인~ 했을 때 쏟아지는 호르몬이 다이돌핀이라는 겁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쏟아지는 호르몬이 다이돌핀이라는 겁니다. 영적으로 적응했을 때 성령을 받았을 때 영적인 호르몬, 육체는 다이돌핀이 쏟아지지만 변화의 품성이 우리에게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에 땅바닥에 돋아나는 풀잎 한 포기가 얼마나 신비했습니까? 가을에 물든 단풍잎이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어제 떠올랐던 태양인데 전혀 다른 태양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게 바로 육체적으로 다이돌핀, 영적으로 성령의 품성, 우리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은혜의 동산에 다녀와서 그곳에서 주는 찬양테잎을 듣고 자유로를 달려가다가 눈물이 쏟아져서 더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길로 빠져나와서 조용한 곳에 차를 세우고 그 테잎이 다 닳을 때까지 창문을 열어놓고 하늘문이 활짝 열려진 광경속에서 찬양하고 혼자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때 쏟아지는 다이돌핀, 성령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켰습니다. 은혜의 동산 갔을 때에 2박3일, 3박4일이 나를 바꿔줄 줄이야! 성령수양회에서 그 한번의 성령의 임재의 경험이 내 모든 부정적인 것을 태풍으로 날리듯이 날려 보내고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치유수양회에서 육체적인 질병이 떠나고 마음의 상처가 떠나고 영혼의 온갖 진통들이 떠나 는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오는 은혜가 성령의 품성, 변화의 모습인 것입니다. 3부 예배를 끝나고 나면 4층 제 방에서 정리하고 조금 늦게 내려갑니다. 그날도 조금 늦어져 성도님 한 분이 타셔서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갑니다. 마스크를 끼어서 누군지 제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요. 그런데 저를 쳐다보더니 “목사님~” 그래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어려운 일이 있으세요?” 그랬더니 이 분이 눈이 빨개서 하시는 말씀이 “좋 아서요. 목사님 좋아서요. 우리 교회가 좋아서요. 예배가 좋아서요. 목사님이 좋아서요. 은혜가 좋아서요. 우리 예수님이 좋아서요.” 예배 한 번이 우리를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예배가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품성이 맺혀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이 문을 나서면서 하늘을 향하여 “예수님” “왜 그래?” “예수님, 좋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