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덕담을 싣고
칭찬 받으면 기쁜데 칭찬하기는 왜 그리 어려운가. 칭찬이든 덕담이든 많이 하는 사람이 어른이다. 칭찬을 듣고 우쭐하면 어른 될 날이 멀었다. 칭찬을 받고도 덕담이려니 하면 좀 더 겸손해 진다. 나무랄 일을 뒤집어 칭찬하면 덕담이 된다.
친분을 나눔에 있어 지켜야 할 불문율 중에 불가근불가원이 있다고 들었다. 영화 「대부」에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라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를 볼 때는 갱들의 은어로 여겼는데 살아보니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인간은 얼마만큼 가까워야 하며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적절한가.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관계정립에 칭찬과 덕담이 중요한 수단으로 쓰인다.
상이란 어쩌다 한 번 받아야 가치가 있다. 우등상을 5학년 때 한 번 놓쳤더니 주변 눈총이 따가웠다. 상을 꼭 받아야 했다면 힘들 것 없었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까짓것 싶었다. 상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을 쪼잔 한 짓으로 여겼다. 방학숙제 중 일기장 제출하는 것을 거부했다. 내 일기를 왜 선생님께 보여줘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명예는 실속 없는 허상이고 덕담을 들을지언정 칭찬받기는 쑥스러웠다.
설날 세배를 하고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으스대는 또래를 보면 어딘가 철부지 아이로 보였다. 당연히 성장속도가 더딘 녀석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형제들 사촌들 다 듣는 칭찬을 ‘어른들은 저렇게 말 하는구나’하고 넘겨야 한다.
일흔이 다된 보살이 실버패션 콘테스트에 출전한다기에 카메라 챙겨들고 행사장엘 갔다. 24명이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서 겨뤘는데 특상1명, 금상3명 등 4명이 웅장한 팡파르 속에 수상하였다. 이어서 은상 20명. 참가자 전원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전자 24명이 예선 탈락 없이 전원 본선에 진출한 것도 좀 그렇다. 게다가 본선 참가자 전원이 수상하였다. 사리 판단에 어두운 노인들의 허영심을 부추겨 주최 측이 소득 사업을 벌인 결과였다. 기가 차는 일은 “드디어 내가 해냈다.”며 은상을 자랑하고 다니는 소갈머리 없는 보살이다. 기가 찼지만 수고했다고 추켜 주었다.
몇몇 시상식에 가 보면 동상, 은상, 금상, 그 위에 또 있다. 장인匠人이니 명장名匠이니 하여 상을 만든다. 장인이라는 명칭은 등위라기보다 자격이다. 1등, 2등은 시합 때마다 바뀔 수 있지만 명장은 영원하다. 특별상이란 동상도 못 받은 사람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하급 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아래 장려상, 봉사상과 참가상도 있다. 그래도 상을 받으라면 좋아한다.
무슨 상이든 수상자에게는 축하 메시지가 쇄도한다. 상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명분과 당위성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상을 양보하지 않으면 영광이 아니라 수치가 될 수 있다. 영광과 수치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철든 사람이라 한다. 칭찬을 잘못하면 비아냥이 된다. 교양과 인품을 갖추고 덕담을 던져야 건방지다는 핀잔을 면한다.
수상소감 발표하라면 “채찍질인 줄 알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당연히 상을 베풀 위치에 있는 기관, 심사위원, 기관장이 있다. 나아가 정말 타의 모범이 되어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덕담이 되었건 칭찬이 되었건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건넬만한 상도 많다.
복국을 먹고 가족이 사망했다는 기사. 연탄가스 중독으로 유명을 달리한 가족에 관한 기사가 신문 사회면을 채우던 시절. 지리산 공비 토벌 소식이 호외로 흩뿌려지던 당시. 반공방일이 충효보다 상위개념으로 교육되던 학창시절. 70명이 복작거리며 수업을 받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도시락을 싸 오는 학생은 50명을 넘지 않았다. 손에 꼽을 정도 몇 명을 제외하면 보리알갱이 틈새에 어쩌다가 흰 쌀알이 보이는 도시락들이었다. 김칫국이 밥을 적셔 애써 비비지 않아도 비빔밥이 되어있었다. 그나마 싸 온 학생은 즐거운 점심시간을 구가 하였다.
내 뒷자리에 동식이. 걸핏하면 수업시간에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간지러 키득거리게 했다. 내가 간지럼에 약했던지라 딴은 재미가 있었던가 보았다. 쉬는 시간이면 쫓고 쫓기던 재미가 이제는 추억이다. 이 친구 도시락은 쌀알이 제법 많이 섞여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가끔 달걀프라이를 얹어 오기도 했다.
어느 날 도시락을 못 싸온 짝지에게 달걀프라이를 건네주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또 어떤 날은 배가 아프다며 짝지에게 도시락을 통째 양보하는 모습도 보았다. 녀석은 교문 앞 가게에서 주전부리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러기를 한두 번이 아니어서 나는 알아차렸다.
담임선생님께 자초지종을 귀띔하게 되었고 학년이 바뀌던 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착한 어린이 상을 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기분 좋은 상이었다. 그러나 동식이 반응은 딴판이었다. 누가 그런 상 받게 해 달라 부탁하더냐며 정색을 하고 대들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동식이는 한 번도 나에게 그런 얼굴을 한 적이 없었다.
나와 동식이는 숙제도 함께 하고 방과 후 공놀이도 자주 하며 가깝게 지냈다. 그 상을 받던 날 정말 들켜서는 안 될 장면을 들킨 것처럼 원망스런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짝지가 부끄럽지 않았겠느냐며 심각하게 고민 하였다. 그날 이후로 동식이는 내 옆구리를 간질이지 않았다. 내가 동식이보다 철이 덜 들었던 때 이야기다.
칭찬은 받기보다 하는 것이 고수다. 매사에 덕담으로 응대하는 습관이 존경받는 처세다.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칭찬할까 살피라’는 속담을 모두가 실천하면 좋겠다. 해양으로 나가기 좋고 대륙으로 뻗어가기 좋은 반도 국가에 살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창의력이 뛰어나다고 칭찬받는 민족이다. 젓가락질을 잘해 손 솜씨가 다부지다고 소문난 백성이다. 한국인 에게는 머리나 솜씨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니 정이다. 정으로 이웃을 보듬으며 살면 더 좋겠다.